사도행전 주석

사도행전 제19장 주석(요약자;에덴지기)

손진길 2024. 5. 25. 01:06

사도행전 제19장 주석(요약자;에덴지기)

 

사도행전 19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막간에 삽입된 아볼로에 관한 언급이 끝나고 다시 바울에 관한 기록으로 돌아간다. 아볼로는 아가야 지방 사역을 위한 매우 효과적인 중심지를 고린도에서 발견하고 당분간 그곳을 본부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바울은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서쪽(18:23) 에베소로 가고 있었다.

윗지방으로. 참조 13:50 주석. 이 지방은 내륙의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사도는 아마도 그가 전에 방문했던 루가오니아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 여행했을 것이다.

에베소에 와서. 이 방문은 전에 그가 떠나면서 했던 약속(18:12)을 이행한 것이었다.

어떤 제자들. 그들이 아볼로처럼 “제자들”이라고 불렸던 이유는, 그들을 더 많이 가르칠 수 있는 바울로부터 예수에 관해서 무엇인가를 배웠기 때문이다.

2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너희가 믿을 때에. 즉 “너희가 믿었을 때” 혹은 “너희가 믿으므로.” 바울은 이 사람들을 믿는 자들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의 배경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에게서 영적 은사나, 복음기별을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에게 나타나는 평화와 기쁨과 밝은 표정 따위를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있음도. 이 제자들의 입장이 아볼로가 에베소에 도착했을 당시의 입장과 매우 흡사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아볼로의 전도로 회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그들이 구약과 침례자 요한의 가르침( 3:11)을 통하여 성령이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을 것이나 그 이상으로 성령의 본질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회개의 조건으로 침례받고 더 개선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성령 안에서 그들이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경험( 14:17)은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이 유대인이었고 이방인 제자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무슨. 참조 2:41; 8:38 주석. 신약에서는 “잠기다” 또는 “~로 잠기다”라는 표현으로, 사람이 물에 잠기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의 밀접한 연합을 나타냈다. 사람들의 대답은, 그들이 불완전한 가르침 때문에 침례 후보자가 일반적으로 받아야 할 교육에 미달되었을 뿐 아니라, 부족한 지식에서 오는 불완전한 영적 경험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분명히 그들은 그들의 부족함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자신들이 믿는 자의 회중에 속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요한의 침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충분한 가르침을 받기 전에 아볼로나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어떤 사람이 베풀었을 것이다. 4절을 제외하면 이것이 신약에서 요한의 침례에 대한 마지막 언급이다.

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회개의 침례. 바울은, 요한이 가르친 것 즉 회개의 침례와 따라야 할 분을 믿는 믿음을 요약해서 말했으나, 이 에베소 사람들은 성령의 침례와 성령의 은사들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가르침도 부족하였다.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니

저희가 듣고. 틀림없이 이 회심자들이 들은 것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바울이 구약을 가지고 이것이 사실임을 입증하고 구약이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논증이었을 것이다. 여기 나타난 묘사는 간단하지만 그들의 회심이 갑작스러웠거나 충분한 가르침 없이 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름으로. “이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서는 3:16; 4:12 주석을 참조하라. 이것은 새롭고 핵심적인 진리를 받아들이고 재침례받은 사람들에 대한 일례다. 그러나 이것이 재침례를 자주 행하라는 보증은 아니다. 재침례는 아무렇게나 행해져서는 안 된다. 죄된 세상의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죄로부터의 정결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요일 1:9; 2:1, 2)로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죄의 정결을 상징하는 세족 예식( 13:4~10)으로 증거가 이루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 침례받은 사람에게 재침례는 단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요구되는 신조와 기준에 명백한 배교가 있을 때 필요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 적용될 수 있는 예외는 여기에 묘사된 경우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침례는 구원의 계약 관계에 들어가는 서약으로, 영원하고 지속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안수하매. 참조 6:6 주석.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침례를 받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경험이다. 이 경우 성령이 임한 것은, 완전히 아데미 여신에게 바쳐진 에베소를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쳐진 곳으로 변화시켜 이 지역 전체가 향후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지가 되게 하기 위한 준비였다.

방언도 하고. 정확히 말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고.” 이것은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의 부어주심과 동일한 역사였다. 같은 절기에 예루살렘에서 이 은사가 제국의 모든 지역에서 모인 유대인에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제 이방인 활동의 중심지에 주어진 이 성령도 같은 결과를 낳음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기별에 관심을 갖고 그리스도께 회심하는 자들이 더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에베소와 인근 지역에서 선교사로 일할 수 있는 자격과 소아시아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할 자격도 갖추었다”(EGW RH Aug. 31, 1911).

예언도 하니. 정확히 말해 “예언하기 시작하니.” 이것은 구약의 예언 해석과 더 큰 설교의 능력을 소개함으로 더욱 확신 있게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 사건에 대한 예언은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 단어가 반드시 미래 사건의 예언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열두 사람쯤 되니라. 이 열두 사람은 지금까지 한 동아리가 되어 교회 모임에 함께 참석했겠지만, 이때에야 비로소 온전히 그들의 삶을 함께하기 시작했음이 이야기에 암시돼 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회당에 들어가. 사도 시대의 관습에 따라(참조 9:20 주석). 이런 방문들은 주로 안식일에 이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바울은 안식일 준수자였고(참조 13:14; 16:13) 주중에는 노동을 했으며( 18:3; 20:34; 살전 2:9; 살후 3:8), 유대인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안식일이 최상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석 달 동안. 이 짧은 구절에 힘겹게 일한 시간을 모두 포함돼 있다. 바울은 분명히 예전처럼(참조 20:34) 매일 장막 만드는 일을 했고, 최소한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설교하고 예수의 사업의 본질과 그의 왕국의 영원한 율법을 선포했다.

담대히. 참조 9:27 주석.

하나님 나라. 참조 1:6 주석.

강론하며. 참조 20:7 주석; 17:2; 18:4, 19.

권면하되. 즉 “설득하려고 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참조 14:2 주석.

이 도를 비방하거늘. 즉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도, 동료들이 데살로니가에서 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그에게서 돌아서도록 함으로써 바울에 대한 그들의 증오를 나타냈을 것이다. 하류 계층의 백성들은 항상 폭동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떠나. 즉 회당의 공적 봉사를 중단했다.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즉 회당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과 바울의 가르침에 관심을 보인 유대인들이 물러났다. 이것은 기록상 그리스도교 신자들 전체가 유대인 회당과 관계를 끊은 최초의 시기이다. 이렇게 뒤로 물러가는 과정은, 유대인과 교제하는 것이 불편할 뿐 아니라 어떤 지역에서는 위험하기까지 했던 유대 전쟁 기간 즉 AD 68~135년에 가속화되었을 것이다(참조 제10, 92, 93).

두란노. (「제임스왕역」에는 “one Tyrannus[두란노라 이름하는 한 사람]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두란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는 단어 “one”의 생략을 지지한다. 이 사람에 관해 확실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아마도 철학이나 수사학 교사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혀 회심하지 않은 완전한 이교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이교도였다면 어떤 집단에서는 조롱거리였던 이 새로운 신앙을 가르치는 교사에게 자신의 교실을 사용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참조 17:32).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곳이 유대 청중이 쉽게 모일 수 있었던 유대인 학교 베트-함미드라쉬(Bet-Hammidras)였다고 생각한다. 청중의 얼마는 유대인이었고 얼마는 헬라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에베소에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그런 “학교”를 운영하기에 충분한 수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따라서 그러한 학교의 지도자가 유대인 이름에 이방인 이름을 추가하여 사용하기가 매우 쉬웠을 것이다. 따라서 두란노는 유대인이었을 것이다.

서원. 헬라어 스콜레(schole-). 이 단어의 유래는 흥미롭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가”를 의미했다가, 후에 학문적인 논쟁이나 연구를 위해 주어진 여가에 적용되었다. 그런 후에 여기서처럼 학습이 이루어지는 어떤 장소를 의미하게 되었다. 마침내 “제논 학파”라는 말처럼, 특별한 선생을 따르는 자들을 가리키는 집합적 용어가 되었다. 이 성경절에서는 개인 소유주가 사도에게 임대해 준 강의실을 가리킬 것이다.

날마다. 바울은 분명히 매 안식일, 어쩌면 더 자주 에베소의 회당에 갔을 것이지만, 석 달 동안 얼마나 자주 거기서 가르쳤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 그는 적어도 매일 일정 시간을 바쳐 집중적인 공중전도 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생계를 위해서도 계속 일했을 것이다(참조 8절 주석).

강론하여. “날마다 두란노라는 학교에서 제5시부터 제10시까지 강론하여”라는 또 다른 독법을 지지하는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를 제시할 수도 있다. 이 독법이 원문으로 취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 독법이 원문이라면, 동방 지역에서는 제5시부터 제10(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경)까지가 낮잠 자는 시간(siesta)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두란노 서원이 사용되지 않는 “휴식 시간”에 이 건물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10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두 해 동안. 후에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3년 동안”(20:31) 에베소 교회를 훈계했다고 말했다. 기간에 대한 두 언급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여기 언급된 2년에는 8절의 석 달과 회당에서 그가 전에 가르친 시간(참조 사도행적, 291)을 합해야 한다.

아시아에 사는 자. “아시아”에 대해서는 2:9 주석을 참조하라. 분명히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바울은 분명히 거기서 주위 성읍들을 방문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교회들(2, 3)의 기원이 바울에게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진술( 2:1; 참조 행 18:23 주석)이 그러한 가능성을 제한한다.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성된 에베소에 있는 새로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성장은 괄목할 만했다. 아데미에게 바치는 예물과 아데미 신 기념품 판매는 현저히 감소했다. 누가는, 바울이 끌어들인 청중들이 에베소에 사는 거주자뿐 아니라 그 도시를 방문한 사람들로 이루어졌고, 설교자 바울의 소문과 그의 기별을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달했음을 시사한다. 골로새의 빌레몬도 이 기간에 얻은 바울의 회심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참조 몬 19).

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손으로. 수단을 나타내는, 잘 알려진 히브리어 관용구를 문자적으로 번역한 표현(참조 5:12 주석).

희한한 능(). 문자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어떤 일이 아니라 능한[]”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다(참조 28:2 주석). 여기에 사용된 “능”에 해당하는 헬라어 명사는 뒤나미스(dunamis, 참조 제9, 119)이다. 하나님이 그 일을 하셨고 바울은 도구였다.

행하게 하시니. 이 동사의 헬라어 시제는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은 사도가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 계속되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어떤 힘있는 강연 한 번으로 생긴 돌발적인 능력의 나타남은 아니었다.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몸에서. 이 절은 “손수건이나 앞치마가 그의 몸에서 병든 자에게로 옮겨졌다”(「개정표준역」)로 번역할 수도 있다. “손수건”이나 “앞치마”의 헬라어 단어는 라틴어에서 음역되었다. “손수건”(수다리아[soudaria])은 얼굴의 땀을 닦는 데 사용했고, “앞치마”(시미킨씨아[simikinthia])는 직공들이 입고 있던 짧은 앞치마이다. 2년간의 사역을 몇 마디로 간단히 정리하면서 누가가 이러한 세세한 사항들에 관심을 기울인 일이 다소 특이해 보인다. 그는 의사로서 초자연적인 치료행위에 자연히 관심이 끌렸을 것이다. 사도가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 신실한 사람들이 와서 그가 사용하고 있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치료 도구의 효력은 주의 겉옷자락(참조 막 5:27, 28 주석)과 그분이 소경을 치료할 때 사용한 진흙의 효력(참조 요 9:6 주석)과 비교된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치료 행위에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은 두 가지뿐인데,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믿음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믿음 사이의 간격을 연결해 주는 물질적인 것들은 믿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매개체물일 뿐이다.

병이 떠나고. 이 장()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무당과 희한한 요술과 마법이 사람들 눈앞에 펼쳐진 에베소에서, 믿음의 능력에 대한 특별한 증거로 기적적인 치료를 하신 것으로 보인다.

13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 즉 “유랑하는 유대인 마술사들”(「개정표준역」). 사기꾼들이 이익을 얻으려고 바울과 예수의 이름을 사칭하며 돌아다녔다. 이 유대인들은 마력과 주문(참조 8:9; 13:6 주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공언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솔로몬이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악마에 대항하는 묘기과 귀신 물리기를 사용한 것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런 종류의 치료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중에서 매우 큰 세력을 미치고 있다”(Antiquities viii. 2. 5 [46]; Loeb ed., vol. 5, 595)라고 덧붙였다.

어떤 유대인들이. 더 정확히 말해 “심지어 어떤 유대인들도”, “어떤 유대인들 또한.

불러. 매우 이른 시기부터 유대 전승 문학들은 형용할 수 없는 신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엄청난 결과들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유대인들은 모세가 애굽인을 죽인 것이나 엘리사가 조롱하는 아이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파멸을 가져오게 한 것도 그렇게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결과를 보고 이런 “부랑자 유대인들”이 같은 이름을 사용하여(참조 3:16 주석) 치료의 효력을 얻으려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14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유대의 한 제사장. 혹은 “유대인의 한 우두머리 제사장.” 이 표현은 이 사람이 제사장들을 나눈 24반차(참조 마 2:4; 3:2 주석) 중 한 반차의 우두머리였음을 암시한다. 이 사람은 어떤 이유로 그의 지위를 잃은 후 에베소에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대제사장이라 칭했고, 따라서 누가도 그렇게 묘사한다.

이 일을 행하더니.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13절에 인용된 구절의 형식 곧 자신들의 위신을 세워줄 줄 것으로 보이는 일종의 공식 문구를, 귀신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사용했다.

15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대답하여. 마술사들은 가다라 지방( 5:3, 4; 참조 마 8:28)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를 만났을 때처럼 매우 격노한 귀신과 대면하였다.

예수도 내가 알고. 헬라어 톤 이에순 기노스코(ton Ie-soun gino-sko-). 여기서 기노스코는 개인적으로 알 뿐 아니라, 권위를 인정하는 것도 포함한다.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헬라어 톤 파울론 에피스타마이(ton Paulon epistamai). 에피스타마이는 잘 아는 것 곧 어떤 사실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너희는 누구냐. 문자적으로 “그러면 너희, 너희는 누구냐.” 이 귀신 들린 사람은 이와 같이 자신을 악귀와 동일시했다(참고 막 5:7~12). 그는 바울 같은 사람이 예수의 이름을 말할 때는 두려워했으나 사기꾼들의 행위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16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들을 억제하여”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본문상의 증거(참조 20)는 “그들 중 두 사람을 억제하여 이기니”라는 독법을 증거한다. 이 독법은 일곱 아들 중 둘만 이 사건에 관련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러나 여기서 “두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가 “모두”(셋 이상)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파피루스의 증거가 있다.
여기서 귀신 들림은 가다라에서와 같이(참조 마 8:28) 귀신 들린 사람에게 정상적인 힘 이상을 발휘하게 했다. 사기꾼들은 이 남자의 악마적인 분노에 놀라 도망쳤다.

벗은 몸으로. 귀신 들린 사람이 찢은 겉옷 또는 외투를 버려 두고 짧은 속옷(참조 마 5:40 주석)만 입고 도망친 사실 그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만약 기자가 이 일을 더 놀라운 일로 조작하려 했다면, 스게와의 아들들이 실패한 후에 바울이 손수 그 사람을 고쳤다고 말하여 이야기를 절정으로 발전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의 기록은 사실에 입각했다.

17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유대인과 헬라인들.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

다 이 일을 알고. 문자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의심할 것도 없이 이 이야기는 빠르게 퍼졌다. 스게와의 아들들은 그 사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동사의 시제는 계속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귀신 쫓는 사람들이 사용한 공식 문구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보다 두드러졌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름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믿음 없이 함부로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위험한 일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벌받은 사람들을 보고 전보다 더 그 이름을 높였다.

미신에 눈이 어두워진 자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못됨( 8:46)―바울이 에베소에 살고 있는 우상 숭배자들과 직접 맞부딪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현저하게 나타났다. 사도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임의로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께서는 그의 사업의 발전이나 그의 이름의 영광에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에 그의 종들에게 이 특별한 능력을 허락하셨다. 바로의 궁전에 있었던 모세와 아론같이 그 사도는 이제 마법사들의 거짓 이적들을 쳐서 진리를 증거하여야 했다. 여기에서 그가 행한 이적들은 그때까지 그가 행하여 온 이적들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옷자락이 믿음으로 만지는 죄인에게 치료의 능력을 전달하였던 것과 같이 이때에도 겉옷이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치료의 수단이 되었다.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그러나 이런 이적들도 미신으로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에게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병들어 고통당하고 있던 여인이 그분을 만지는 것을 느꼈을 때 그분은 “내게서 능력이 나갔노라”고 하셨다. 그와 같이 성경은 주께서 바울의 손으로 이적을 행하셨다고 하시고, 바울의 이름이 크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크게 되었다고 선언하였다(바울의 생애 135).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믿는다”는 동사는 2절에서처럼 침례를 포함한(참조 3) 회심의 전 과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 신자들은 신앙고백을 했으나 그것은 불완전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아마도 침례 후에 빠졌던 마술적인 일과 관련된 몇몇 경우에 저지른 잘못일 것이다. 성령의 감화 아래 교회는 철저히 마음을 살피는 경험을 했다. 이 고백이 개인적으로 바울이나 다른 선생들 앞에서 행해졌는지 아니면 공적으로 회중 앞에서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침례자 요한에게 고백한 경우와 마찬가지로(참조 마 3:6 주석), 공중 앞에서 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악한 자가 예수의 이름을 오용하여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지 보았고, 따라서 자신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면서 그 이름을 잘못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염려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모두의 심판자로서 대면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양심은 일깨워져 열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죄를 고백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용서와 중보의 은혜로운 준비 아래 들어오게 되었다(요일 1:9; 2:1; 참조 사도행적, 288).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많은 사람.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미신적인 마술을 의미하는 “쓸데없는 짓을 행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된다. 이러한 마술은 에베소의 특색이 되다시피 했다. 상당수의 마술사와 점성술사가 떠돌아 다녔고, 부적, 점보는 책, 해몽하는 법을 이용하여 장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소위 “에베소 주문(呪文)들” 또는 “에베소 문서들”(에페시아 그람마타[Ephesia grammata])은 비단(緋緞) 주머니에 들어 있는 조그만 양피지 천 조각들을 가리키는데, 이 천 조각에는 모호한 의미의 고어들이 쓰여 있었다. 이 단어들이 언어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없을 만큼 모호하지만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Stromata 8)는 이것들이 어둠과 빛, 땅과 연(), 태양과 진리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틀림없이 이 문서들은 고대 브리기아의 자연숭배가 남아 있었음을 반영하는데, 이것은 헬라의 여신 아데미보다 앞서며 후에 다른 종교에서 유입된 미신들과 혼합되었다.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주문과 진언이 기록된 문서들 곧 “에베소 문서들”과 이 “비술”(秘術)에 관한 논문으로 발행된 책들을 모아 가지고 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매우 오래되어, 모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문서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부적들도 가져왔을 것이다.

불사르니. 악귀가 마술사로 행세하는 사람들을 “억제하여 이기는” 사건(참조 12, 16) 앞에 있었던 바울의 치유와 이 불사름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믿은” 자들은 그리스도교의 능력이 “신기한 마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부적, 신비한 이름들, 주문 공식들 그리고 “글자들”은 허황한 가짜임이 드러났다. 따라서 기록된 주문, 그것을 포함한 문서들을 불살랐다. 헬라어 동사 형태는 책을 잇달아 불 속에 던지면서 몇 시간 넘게 계속 태우는 것을 의미하거나, 계속 태우는 행위 자체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러한 시위는 상당한 주목을 끌었을 것이다.

값을 계산한즉. 신자들에 의해 초래된 손실에는, 누가가 언급한 책값뿐 아니라, 그들이 “신기한 마술”을 통해서 벌어들일 수 있었던 잠정적인 수입의 상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은 오만. 많은 사람이 가치 있게 여긴 책들을 불태우는 이런 극적인 일이 헬라인 가운데서 발생한 점으로 볼 때 누가가 헬라의 드라크마를 “은”으로 계산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기 언급된 은 50,000 10,000달러가 넘는 금액이 될 것이다. 그러나 드라크마가 당시 하루 품삯에 해당했기 때문에 당시 통화 가치로 본다면, 달러로 환산된 이 수치보다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어떤 책들은 판매했다면 분명히 고가를 받았을 것이었다(참조 제10, 54).

책값을 희생 제물로 바친 셈임―책들이 사루어졌을 때 사람들은 책값을 계속 계산해 보았다. 그 값은 은 오만이나 되었으니 대략 만 달라에 해당되는 돈이다(바울의 생애 137).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힘이 있어”라는 단어는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넘치는 기세와 힘을 가지고”라고 이해할 수 있다.

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이 일이 다 된 후. 이 일이 있은 후 에베소의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 도시와 교회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었다. “믿는” 자들은 개혁을 경험했고, 악의 도구들이 극적으로 파괴되어 도시 전체의 주목을 끌었다. 이제 사업은 굳건히 섰고, 따라서 바울은 도시를 떠나도 되겠다고 느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여기서 한 결심의 배경을 보여 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회들과 꽤 자주 소식을 왕래했는데, 그를 근심하게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가 현존하지 않지만,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그들 중에 거하는 편만한 음행의 죄를 경고하는(고전 5:9~11) 편지를 보낼 필요를 느꼈다.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분쟁 소식을 가져 왔고 심각한 무질서와 교회의 징계 부재, 심지어는 근친상간 문제(고전 1:11; 5:1; 11:18~22)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에는 바울의 직접적인 대처가 필요했다. 또한 그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가난한 유대인 그리스도인 신자들에게 보내는(참조 고전 16:1; 고후 8:1~4) 이방 교회들의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고자 했다.

예루살렘에 가기를. 위에서 언급한 기부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바울은 “에베소() 맹수들”(고전 15:32) 그리고 에베소에서 그에게 “열려 있는”,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고전 16:9)에 대해 말했다. 바울이 그 도시에서 접한 심각한 문제들은 틀림없이 기회의 문이었고 동시에 바울이 죽을 수도 있는 위협이었다. 그는 이제 여기를 떠나서 헬라의 교회들을 방문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다.

경영하여. 바울 자신의 작정일 수도 있고, 바울이 성령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감동받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참조 17:16 주석), 헬라어 본문의 의미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로마도 보아야. 로마에 가고자 하는 그의 갈망에 대한 첫 번째 기록이다. 로마를 방문하려는 계획(참조 롬 1:13; 15:23),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22:21)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갈망을 수년간 지니고 있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제국의 수도에 가고자 한 그의 갈망은 다른 곳에서 알게 된 로마에 있는 많은 친구들( 16:1~15) 때문에 고조되었음이 분명하다. 바울에게는 자신이 제국의 큰 중심지에서 증거하기 전에는 그의 사역이 끝마쳐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망이 여태껏 좌절되었다. 이제 그는 에베소를 떠나면서 로마뿐 아니라 서바나에도 꼭 가려 한다( 15:28)고 말했다.

22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으니라

돕는. 헬라어 디아코네오(diakoneo-). “섬기다”, “봉사하다.” 이 동사에서 “deacon(집사)이라고 번역된 영어가 파생되었다.

디모데. 고전 4:17에서 디모데의 선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를 먼저 보내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권면하도록 했는데, 그렇게 하여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할 때 그들에게 혹독하게 대할 필요를 줄였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디모데를 맞이하도록 권고하였다(고전 16:10). 그는 바울에게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고(고후 16:11),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때 함께 있었다(고후 1:1).

에라스도. AD 1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 포장 벽돌이 고린도에서 발견되었는데, “에라스도는 조영관(造營官, aedile, 옛 로마의 공공 건물, 도로, 공중 위생 등을 관장하던 관리-역자 주)이 된 답례로 사비(私費)를 들여 [포장 도로]를 놓았다”라는 명각이 새겨져 있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에라스도를 이 성경절에 언급된 사람과 동일하다고 본다(참조 롬 16:23 주석; 딤후 4:20).

마게도냐로 보내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한 것처럼(고전 16:2), 교회에서 거둔 기부금을 준비해 두어 그가 직접 갔을 때 연보할 필요가 없도록.

23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이 도로 인하여. 문자적으로는 “그 도.” 하지만 헬라어에서 정관사는 지시대명사의 의미를 나타내곤 한다. 참조 9:2 주석.

적지 않은 소동. 강조하기 위해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줄잡아 말하는 것.

24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데메드리오. 이 사람은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이것은 헬라인들에게 흔한 이름이다.

아데미. (「제임스왕역」에는 “Diana[다이애나]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헬라어 아르테미스(Artemis). 여기에서 「제임스왕역」 번역자들이 헬라어 본문에 나타나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에베소의 신과 어느 정도 동일시되는 로마의 여신 다이아나의 이름을 사용할 적절한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 시대부터 원래 아시아의 종교인 아데미 숭배는 에베소가 중심지였다. 헬라인들이 소아시아에 식민단을 보냈을 때 이들이 이러한 종교의 형태가 이미 확립되어 있는 것을 알고 그 예배에서 발견한 어떤 유사성 때문에 아시아의 신에게 헬라의 여신 아데미의 이름을 부여했다.
아데미에게 바쳐진 네 번째 신전이 장엄한 것은 대부분 크뢰수스(Croesus)의 덕분이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BC 356년 알렉산더 대왕이 태어나던 날 밤 불후의 명예를 얻으려는 광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헤로스트라투스(Herostratus)가 이 신전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그는 오히려 그런 행동으로 불후의 악명을 얻게 되었다. 아데미 대()신전은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전보다 더 장엄하게 재건되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되었다. 신전의 현관은 헬라의 예술의 거장들이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했다. 그 신전에는 사제들, 여사제들 그리고 소년 시종(侍從)들로 이루어진 사교 모임이 있었다. 신전 봉사에 고용된 아이들은 교육을 받았고 사제들과 여사제들은 60세 이후에 연금을 받았다(참조 딤전 5:9). 쎄올로고이(theologoi)로 알려진 사제들의 한 계급은 제의의 신비들을 해석하는 일을 위해 구별되었다.
이 신전을 후원하기 위해 많은 기부금을 받았는데, 후원자들에게는 이 도시가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명예가 수여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순례자들이 와서 은, , 대리석 그리고 점토로 만들어진 기념품들을 구입했는데, 이런 것들 중에는 내부에 아데미 신상이 들어 있는 소형 신전 모양의 공예품이 있었다.
아데미 상의 상체 부분은 유방이 여러 개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 허리 아래로는 신비로운 상징들로 장식된 사각형 기둥이었는데, , 옥수수 열매 그리고 희한하게 혼합된 꽃들이 있었다. 그것은 목재로 조각되었고, 따라서 지금은 오래되어 거무스름해졌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이 신상의 모조물이 있는데, 특이하게 생긴 동양의 어떤 우상과 흡사하게 보인다. 아마도 그 신상의 매우 추한 모습이, 그것에 들어 있다고 믿는 힘의 비밀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수 세기 동안 에베소에서 우상숭배에 가해진 타격 중에 사실상 최초의 타격은, 바울이 이 도시에 거하는 동안 이루어졌다. 이상한 일이지만, 다음 타격은 미친 네로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그는 로마에 있는 자신의 황금집을 예술 작품으로 장식하기 위하여 헬라와 아시아에서 물건들을 강탈할 때 에베소의 신전에서 아데미를 탈취해 갔다. 후에 트라야누스는 멋지게 조각된 문들을, 나중에 콘스탄티노플로 개명된 비잔티움에 있는 한 신전에 선물로 보냈다.
그리스도교가 번성함에 따라 아데미 숭배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오래지 않아 아데미의 은감실도 대개는 황폐화되었다. 고트족이 AD 262년경 소아시아를 유린하였을 때 그들은 이데미 신전을 약탈하였고 수세기 후에 터키족이 완전히 파괴했다. 제국이 기독교화되었을 때 델피 신전과 에베소 신전은, 거룩한 지혜의 신을 기념하여 유스티니아누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세운 성 소피아 교회를 위해 재료를 제공하였다. 터키족의 침략 이래로 교회는 회교의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이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다. 에베소의 쇠퇴로 인하여 그 신전의 부지는 지난 세기까지 불확실하였다. 발굴이 이루어져 신전 부지는 드러났고 그것과 관련된 많은 명각이 빛을 보았다.

은감실(silver shrine). 헬라어 나오이(naoi, 단수는 나오스[naos], 참조 마 4:5 주석). 대개 “신전, 성전”(temple)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모든 경우에 신의 임재가 임한다고 여겨지는 내전(內殿)을 가리켰고, 따라서 여기서도 여신상이 있는 내전을 의미할 것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혹은 테라코타) 신전 형상(“은감실”) 안에 조그마한 여신상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이 모형들은 집안에 두거나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다닐 수 있었다.

벌이. 헬라어 에르가시아(ergasia). “일”, “사업” 또는 “사업으로 얻은 이익” 즉 이윤. 16:16, 19에서 이 단어는 빌립보의 주인들이 귀신 들려 점하는 소녀로 말미암아 얻은 “이익”을 가리키는 말로 두 번 사용되었다. 에베소 직공들은 그들의 이익이 사라지고 있었으므로 큰 소동을 일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자들 중 가장 사나웠던 데메드리오는 실제 작업은 하지 않고 사람을 많이 고용하여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챙긴 것으로 보인다. 아데미의 상()과 그것의 상징들은 은장색들에게 그 기예(技藝)를 사용할 풍부한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25 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모아. “은장색”으로 번역된 단어가 보여 주듯이, 데메드리오의 기술은 은감실을 조각하고 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작업이 이런 최종 단계에 이르기 전에, 준비과정으로 재료는 많은 손을 거친 다음, 마지막으로 숙련된 기술자에게 가서 장식과 광택을 위한 마무리 손질이 이루어졌다. 이들 모두는 사업 손실의 위험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여러분. 문자적으로 “남자들.

이 업에 있는데. 여기서 “업”으로 번역된 단어는 24절에서 “벌이”로 번역된 단어와 같고, 둘 다 “사업”을 의미할 것이다. 데메드리오의 말을 단순하게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종교가 종종 경제적인 기득권을 위협하여, 박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은 큰 어려움을 야기했는데, 그리스도교 복음 전도자들은 이런 어려움 아래에서 일해야만 했다. 모든 도시마다 신전과 제사장, 경전과 성소가 있었다. 제물과 축제들로 인해, 이런 것들이 없었으면 생기지 않았을 사업 시장이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복음이 이교와 갈등을 빚어 경제적인 손실을 줄 때 수입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26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이 바울. 바울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의 풍채가 정말로 볼품이 없었다면(고후 10:10; 4:13~15), 데메드리오가 “이 바울”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던진 경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데메드리오의 연설에는 두려움의 빛이 역력하게 나타나지만, 그것은 10절에 언급된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편지들은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까지 전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버가모, 서머나,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부근에 있는 교회들이 요한계시록에 언급되었다. 복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소아시아라고 불리는 전 지역에 확산되었다. 플리니우스(Pliny)는 거의 반세기 후에 트라야누스(Trajan)에게 보낸 서신에서(Letters x. 96) 데메드리오와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는, 신전은 “거의 버려졌고” 에베소 북동쪽 본도 지역에서 “단지 몇 사람만”이 희생제물을 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그들은 아데미에 대한 헌신에서 돌아섰으며, 신전과 관련된 성물과 물품 구입에서도 돌아섰다.

신이 아니라. 참조 행 14:14, 15; 고전 8:4 주석. 데메드리오는 분노하여 사실상 반대 개념, 즉 우상은 신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교 철학자들은 언제나 형상이란 단지 상징과 관념의 표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이 은장색은 사람들에게 에베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즉 그리스도교 기별과 설교자들이 널리 퍼져 나감에 따라 숭배와 관련한 물품의 요구가 줄어들고 있는 일에 대하여 그들이 증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27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영업. 헬라어 메로스(meros). “부분”, “몫.” 즉 사업의 부문. 메로스는 25절에서 “업”으로 번역된 헬라어와는 다르다.

큰 여신. 형용사 “큰”(메가스[megas])은 특별히 에베소의 아데미 신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며, 이 도시의 많은 동전과 메달 등에도 나타나는 말이다.

경홀히 여김이 되고. 문자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만약 사람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이 진짜 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다. 데메드리오는 열성에 사로잡혀, 뒤에서 서기장이 언급한 대로(35) 우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주장해야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는 여신 숭배와 관련된 수입에만 관심이 있었다. 에베소의 은장색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교의 미래 운명을 말한 선지자가 되었다.

온 아시아와 천하. 아시아는 총독 관할 속주 중 하나였고, “천하”라는 단어는 눅 2:1에서와 같이 통상적으로 로마 제국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헬라와 동방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로마의 백성들도 이 호화로운 신전에 재물(財物)을 바쳤다.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이 큰 여신은 바야흐로 위엄을 빼앗길 찰나에 있었다. “위엄”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종종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2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분이 가득하여. 데메드리오는 논증을 덧붙여 사람들에게 호소함으로 그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다. 교묘한 방법으로, 먼저는 그들 자신의 이해 관계에 호소하고, 그런 다음 자존심과 미신에 호소했다.

외쳐. 또는 “그들이 부르짖기 시작하여.” 시제는 계속 반복되는 행동의 시작을 나타낸다.

크다…아데미여. 데메드리오의 연설에 흥분한 군중은 이 말을 집회 슬로건으로 내걸고 흥분이 고조되면서 반복하여 외쳤으며, 군중심리에 휩싸여 건전한 분별력을 잃고 말았다.

29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가는지라

온 성. 온 도성은 분명히 은장색의 수입보다는 아데미 숭배 장소로서 에베소가 누린 영광과 위엄에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데메드리오가 일으킨 이 소동은 모든 에베소 사람의 주의를 끌었다.

바울과 같이 다니는…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언제 “바울과 같이 다니는 [여행] 동료”가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베뢰아에서 아덴까지(17:15) 그를 안내했을 것이다. 바울과 함께한 그들의 여행은 아마도 그가 에베소에 거하는 동안 에베소 바깥 선교를 위한, 기록되지 않은 선교적 노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 군중이 바울을 찾다가 찾을 수 없게 되자 이 두 사람을 붙잡은 것 같다. 이 마게도냐 회심자들이 신자들 속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바울이 이전 여행 때 그 지방에서 한 봉사의 지속적인 결과를 증명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이 간결하다는 점 때문에, 이렇게 뜻밖에 삽입된 이 부차적인 언급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가이오”(Gaius)는 흔한 라틴어 이름인 “카이우스”(Caius)에 해당한다(참조 행 20:4; 16:23; 고전 1:14; 3:1). 아리스다고는 데살로니가에서 왔으며(20:4; 27:2)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고난(참조 살전 2:14)을 이미 경험했을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길에 바울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20:4) 아마도 마게도냐 지방에 있는 교회들의 대표자 자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을 것인데( 4:10), 바울의 동료 죄수로서 아니면 바울의 필요를 돕기 위해 투옥되었을 것이다.

연극장으로. 즉 에베소의 원형경기장. 그 유적은 24,500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극장으로 끌려 들어간 것 외에 그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들을 끌고 간 것은 바울의 은신처를 밝혀내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30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바울이…들어가고자 하나바울은 열정 때문에 동료들만 정면에서 공격당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투쟁의 최선봉에 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말리고. 형제들은 바울의 안전을 염려하여 거기에 뛰어드는 것을 말렸는데, 만약 두 친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폭도들이 흥분하면 어떤 극단적인 만행으로 치달을지 알 수 없었다.

31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아시아 관원. 이 직함은 속주 주요 도시들에서 해마다 종교 축제와 공공 경기를 주관하도록 선출된 사람들에게 붙여졌다. 많은 도시 대표자 중에서 관원 10명이 선택되고 지방총독이 이들 중 한 사람을 의장으로 임명했다. 그들의 직무는 여러 도시에서 언제, 어디서 축제와 경기를 열지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황제숭배뿐 아니라 아데미 숭배와 연극장에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아시아 관원들은 소동과 그 원인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 고전 5:6~8에서 유월절 예식을 언급한 것은, 바울이 그 서신을 유월절 어간에 기록했음을 시사한다고 여겨져 왔다. 그는 그 후 몇 주 지나지 않아 고린도를 떠났을 것이고(고린도후서는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었다), 소동(20:1) 후에 바로 출발했으므로 소동은 유월절 직후 봄에 일어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아데미의 이름을 딴 아데미 월(Artemision, 4~5)에 아데미를 위한 대축제를 지키고 있었거나, 아니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데메드리오의 호소에 훨씬 민감했을 것이다. 그 해 그 시기에 아시아의 관원들 역시 에베소에 있었을 것이다.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 바울의 열성과 담대함에서 기인한 정중함과 기지는 권위 있는 사람들의 주목과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다른 시기에 서기오 바울(13:7~12), 갈리오(18:14~17), 베스도(25:9~12), 아그립바(26:28, 32), 백부장 율리오(27:3, 43)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 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아의 관원들은 비록 다른 동기였지만 제자들과 같은 충고를 했다. 그들은 바울의 출현이 도움을 주기보다는 군중들을 더욱 흥분시킬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들어가지 말라. 이 우호적인 관원들은 바울의 안전에 개인적 관심을 나타냈다.

32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외쳐. 또는 “계속 외쳐.” 이 이야기의 생생한 표현은 이것이 목격자의 증언임을 보여 준다. 아리스다고와 가이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행에 바울과 동행했던 사람들(20:4)  이 이야기를 누가에게 전해 주었을 수도 있다.

무리.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e-sia). “불러냄을 받은” 무리. 원형극장에 모였던 이 폭도는 고전적 용례에서 이 단어가 암시하는 대로(참조 마 18:17; 19:39 주석) 정부의 합법적인 모임이라는 의미의 에클레시아가 아니다. 여기서는 쉽게 말해서 무질서한 군중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분란하여. 문자적으로 “한꺼번에 쏟아지다”, [매우] 혼합되다.” 생각 없는 군중은 무작정 지도자를 따른다.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복음 전파의 성공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 그 일이 그토록 심각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원형극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몰려드는 군중(그들 중의 다수는 자신이 왜 거기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였다)에 대한 묘사는 우스꽝스럽게 될 것이다.

33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발명하려 하나

권하여. 본문상의 증거(참조 20), 번역하기가 쉽지 않지만 가장 좋은 번역으로 여겨지는 “그들이 촉구하여”라는 이문(異文) 독법을 지지한다. 이 독법과 함께 이 구절 전체는 “군중이 알렉산더에게 촉구했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개정표준역」).

알렉산더. 에베소에서 사도에게 “해를 많이” 끼친 “구리 장색”(딤후 4:14)이었을 것이다.

발명하려 하나. 헬라어 아폴로게오마이(apologeomai).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다.” 소동은 본질상 이교적인 것이었으며, 데메드리오는 이교 우상 제작자였기 때문에  바울에 대한 비난은 이교도에게만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아데미 숭배를 거절한 에베소 유대인들은 이 소동이 셈족에 대한 학살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알렉산더가 하려고 했던 “발명”(defence)은 이교적인 생각에서 에베소의 유대인들을 바울 및 그의 동료와의 모든 관계로부터 단절하는 것이었다.

34 저희는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더니

알고. 또는 “눈치채고.” 군중이 우상숭배에 대한 유대인의 혐오감을 알고 있었지만, 그 남자의 유대인 용모와 옷차림새가 군중을 더 흥분시킨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훔친 물건을 매매하는 것 때문에 고소당했다(참조 롬 2:22 주석). 아리스다고와 가이오를 가리켜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다고 힘주어 말한 것으로 보아, 서기장의 말(19:37)도 같은 생각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다 한 소리로. 군중은 이제 그들의 소동에 한 목적을 가지고 두 시간 동안 계속 외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볼 때 유대인은 평판이 좋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유대인과 바울을 향해 촉발된 분노는 데메드리오의 연설에 의하여 이제 이 도시에 있는 유대인 전체에 대한 분노로 바뀌려하고 있었다.

35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서기장. 헬라어 그람마튜스(grammateus). 복음서에서는 “서기관”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도시의 기록을 관리하는 자였고 에베소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 그를 통해 모든 공적인 통지(通知)가 도시에 전달되었고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직무상 이런 역할 때문에 영어로 “town clerk(동 서기)이라는 직함이 그에게 붙었다. 이 헬라어 명칭은 에베소에서 출토된 많은 명각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모두 에베소 시민이었던 아시아 관원들과 집정관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관료의 말은 데메드리오의 말이 선동적이었던 데 반해, 대단히 신중했다. 그는 아시아 관원들처럼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존경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는 광신적이지 않았으며 박해자가 되려는 의도도 없었고, 군중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종교에 호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큰 아데미. 에베소 명각들 중에는 아데미가 “가장 위대한 자”, “지극히 높은 자”로 묘사되어 있다.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 헬라어 디오페테스(Diopete-s). “쓰스[또는 하늘]에게서 떨어진 우상.” 예를 들어 아덴에 있는 팔라스 아덴 상()과 트로이 사람들의 팔라디움처럼 선사시대의 오래된 조상(彫像)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단어에는, 원래 형태 그대로 숭배되었거나 가장 초기의 조각에 사용된 운석을 가리키는, 훨씬 문자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아데미 상(참조 24절 주석)을 가리키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고대 여러 작가들에 의하면 아데미 상은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돌이 아닌 감람나무, 흑단, 삼목, 혹은 포도나무 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각지기. 헬라어 네오코로스(neo-koros). 문자적으로 “신전 관리인.” 확대 해석하면, 어떤 신과 그 신전에 헌신한 자. 도시 전체가 그 여신을 섬기는 데 바쳐진 것으로 보인다. 소아시아  동전들에서 네오코로스라는 단어를 볼 수 있는데, 어떤 성들이 신이나 황제에게 바쳐진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를 그들의 수호자이며 보호자로 의지했다. 한 명각에는 그 성이 아데미의 “보모”가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되어 있다.

36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그렇지 않다. “반박하다”가 더 나은 표현이다. 서기장은 아무도 그가 방금 말한 것을 반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확립된 제의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보다는 공식적인 성명의 색채가 짙다.

가만히 있어서. 또는 “질서를 지켜야 하리니. 35절에서 “안돈시키다”라고 번역된 단어의 다른 형태이다.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문자적으로 “경솔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리라.” 헬라어 형용사는 진정한 이유도 없이 어떤 유익도 가져다 줄 수 없는, 억제할 수 없는 난폭한 소동을 잘 묘사하며, 또한 범법자도 아니고 군중이 확실하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는 두 사람을 사로잡은 데 나타난 군중의 충동적인 행동을 묘사한다.

37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 또는 “신전 약탈자들.” 에베소에 있는 거대한 신전에는 커다란 보물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런 범죄를 사람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신전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여신의 수호를 받았을 것이고, 따라서 그 당시로는 신전의 재산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전에 속한 것을 무엇이든 훔치는 일은 신성모독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참조 34절 주석.

우리 여신. 대중 연설에서 연설자가 자신을 시민과 동일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절을 보면 바울과 그의 일행이 에베소의 특별한 숭배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의 언어를 신중하게 선택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대원칙을 거듭 권유하여 이러한 말이 효과를 얻게 하였다(26). 아덴에서도 그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17:16)을 보고 심히 분하였지만 동일한 자제심을 발휘했다.

38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송사할 것이 있거든. 즉 만약 누구든지 특정한 고소거리가 있거든 그것들을 가져오게  하라. 그들이 주장한 대로 송사할 것이 있다면 법적 조치를 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리 장색과 그의 친구들이 꾸민 폭동에는 변명할 것이 없었다.

재판 날도 있고. 헬라어 단어들은 복수형태이다. 이 구절은 “재판 날들이 정해져 있고” 즉 그러한 송사를 취급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거나, 더 나은 표현으로는 동사 시제가 법적 소송의 기회가 지금 열려 있음을 암시하므로 “재판들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개정표준역」에는 이 의미를 따라 “재판들이 열려 있다”라 고 번역되어 있다.

총독들. 헬라어 안쒸파토이(anthupatoi, 참조 13:7, 8, 12; 18:12). 아시아는 총독의 관할하에 있는 속주였다(참조 6:9 주석). 이 구절에 나타난 난제는 이 단어의 복수 형태를 사용한 데서 생긴다. 왜냐하면 일정 기간에 한 속주에 한 명의 총독이 있었고, 따라서 서기장이 말할 때 에베소에도 한 명의 총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다. (1) 총독의 법무 보좌관들(콘실리아리이[consiliarii])을 “총독들”로 적절히 묘사했을 것이다. (2) 서기장은 문제가 있을 경우 사법 조치를 받을 수 있는 제국의 제도적 장치에 대해 백성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총독들은 제국의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지역과 마찬가지로 모든 속주에 고위 행정관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물적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3) 이 복수 칭호는 근자에 총독 실라누스(Silanus)가 독살된 후(Tacitus Annals xiii. 1), 아시아에서 제국의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첼레르(Celer)와 헬리우스(Helius)를 의미할 수 있다. (4) 이웃 속주 즉 길리기아, 구브로, 비두니아에서 온 다른 총독이 에베소에 있었을 수 있다. 네 가지 해석 중 두 번째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고소할 것이요. 헬라어 엥칼레오(egkaleo-). 데메드리오와 그의 추종자들은 피고를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진술을 제시하고, 피고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게 쟁점이 결정되면 양측은 각각 증인을 내세워야 한다.

39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그 외에. 어떤 문제들은 재판을 위해 총독에게 보냈을 것이고, 다른 문제는 심의를 위해 민회로 보냈을 것이다.

민회. 전통적으로 헬라 도시에는 시민으로 구성된 있기 있는 민회가 있었고, 거기서 공적인 업무가 처리되었다. 여기서 서기장의 말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군중이 합법적으로 구성된 민회가 아님을 암시한다. 크뤼소스톰(Homily xlii, on Acts 19:21, 23)에 의하면 이러한 모임이 한 달에 세 번 열렸다.

40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책망받을. 또는 “고소당할.

불법 집회. 헬라어 쉬스트로페(sustrophe-). “함께 얽힘”, “공모”, “소요.

41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그는 자신의 직무상 권한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주장이 청중에게 가장 비중있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들이 조금 전에 가담했던 이런 소요 사태가 로마제국에 보고된다면 자신들의 도시에 주어진 특권이 상실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서기장은 군중들을 진정시키고조용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하였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