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35강(눅24:44-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21. 16:15

누가복음 강해 235(24:44-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29()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정확하게 믿을 있는 예언의 말씀의 깨달음에 대하여(24:44-46);

 

누가복음 24장에서 찾아 있는 것으로서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사들이 전하여 부활의 메시지를 듣고 그것을 믿는 둘째, 히브리정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예수님께서 사도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을 믿는 셋째, 사도와 제자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는 넷째, 사도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다시 공생애를 살아가게 되는 등입니다.

가운데 셋째와 넷째의 방법은 11사도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의 특권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 승천을 하고 나면 다음에 예수님의 제자가 성도들은 그러한 특권에 참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후의 성도들은 첫째와 둘째의 방법에 의하여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에 첫째와 둘째의 방법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의사 누가는 그러한 내용을 24 44-49절에서 알기 쉽게 수록하고 있습니다. 누가의 기록은 전반부와 후반부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언의 말씀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다(24:44-46). 후반부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임재로 믿음의 능력을 얻어서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세상에 전하라는 것입니다(24:47-49).

가운데 본문에서는 전반부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24:44-46). 내용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실현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도와 예언에 비추어 보게 되면 가장 확실하게 믿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시편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24:44);

(1)   세상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종교가 두개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이고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차이가 무엇인지 여기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와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기독교는 히브리정경에서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가 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종교입니다”(24:44). 반면에 유대교에서는 나사렛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며 하나님 예언의 성취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유대교인들은 선민 이스라엘을 속량하고 선민들의 제국을 건설해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정경 가운데 특별히 모세오경과 선지서 그리고 시편의 말씀에 메시아인 자신에 관한 내용이 예언으로 들어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근거가 무엇일까요?

1)      첫째, 모세오경인 신명기 18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자신과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18:15). 그런데 장차 오시는 선지자는 모세와 다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소원하고 있는 바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소원은 장차 하나님의 영을 백성들에게 주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게 해주는 그러한 선지자가 오시는 것입니다(11:29).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2)      둘째, 선지자 이사야는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을 구체적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의 대선지서 7(14, 동정녀 탄생), 9(6-7,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로 태어나 공의의 나라를 세우실 것임), 11(1-10, 이새의 줄기에서 태어나 만민구원을 이루실 것임), 그리고 52장과 53장에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역사가 풍성한 예언으로 실려 있습니다.

3)      셋째, 시편에는 특히 다윗의 시편 110편이 그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땅에서 성취하고 부활 승천하신 메시아에게 보좌의 오른쪽을 내어 주시며 세상을 다스릴 있는 권세를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10:1-6).

둘째로,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5);

(1)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믿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히브리정경에 적혀져 있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말씀의 뜻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창조하여 하나님나라를 완성하시는 재창조의 능력을 믿으라는 것입니다(65:17-20, 37:1-14). 하나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메시아로 태어나게 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창조주의 뜻을 성취하신다는 것입니다(11:1-10, 52:13-53:12).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통하여 만들어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과 메시아의 부활을 믿자면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져야만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마디로, “마음의 문을 열어 성경말씀을 깨달아야 한다”(24:4의역)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마음의 문을 연다고 하는 것은 유대교의 교리와 신론 그리고 인간적인 생각과 관념을 뛰어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은 시공간적으로 육신에 갇혀서 살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익숙한 자연과 사회속에서 그만 갇힌 사고를 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역사 가운데 선지자가 스스로 부활한 경우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맙니다. 그리고 모든 일은 당사자가 죽고 나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가 십자가처형으로 죽고 말았기 때문에 그의 예언과 복음사역이 전부 허망한 것이 되고 말았다고 지레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2)      유대교인들은 전통적인 유대교의 가르침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여기고 그것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상 그렇게 경험적이고 이성적이며 현세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24:45). 왜냐하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예수님이 안치되어 있는 무덤속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정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부활이 실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24:44).

3)      유대교지도자들은 인간인 나사렛 예수만 처치하면 그가 주장하고 있던 모든 천국복음사상들이 사라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며 불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 계시며 메시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있는지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감지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디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도 외면하고 메시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나라를 이루시는 여호와의 창조의 능력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유대교인들처럼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지 말고 부디 인간의 관념과 유대교의 교리를 초월하고 있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선명하게 깨닫게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24:45).

셋째로,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 고난을 받고 3일에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24:46);

(1)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지 못하고 있는 가장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소망하고 있는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거뜬하게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메시아는 연전연승의 용사이며 세상에서 대적자가 없는 영광스러운 강력한 대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실패자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이끌고 로마를 물리친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반대입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으며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에서 처형이 되고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뜻과 기대를 저버린 예수님은 메시아가 아니며 기억할 필요도 없는 선지자입니다.

(2)   유대교인들이 그렇게 예수님을 정죄하고 배척했으며(14:63-65) 예수님의 사도와 제자들마저 예수님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떠나버렸습니다(14:50).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고난의 현장을 눈여겨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어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시고(26:52-53) 반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문을 열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26:54, 56).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무덤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시며 영생으로 들어가시는 부활의 몸을 인류 최초로 입으시게 되시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메시아가 외세를 쳐부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배자가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선민들이 이방인들을 역시 제국의 논리로 지배하게 것입니다. 그것은 역사의 발전이 아니고 피의 악순환의 반복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할 필요가 없이 모두가 죄인들이므로 하나님 앞에 죄를 용서받고 영적으로 거듭나야만 된다고 하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의 몸을 영원한 대속의 제물로 희생한 것입니다(1:29, 7:27-28).

이에 따라 속죄의 은혜를 알고서 회개를 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며 만민을 구원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그러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