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34강(눅24:36-4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21. 16:13

누가복음 강해 234(24:36-4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28()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11사도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시는 방법에 대하여(24:36-43);

 

엠마오로 가고 있던 제자는 처음에는 동행하고 있는 길손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식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식사를 하다가 축사하시는 모습과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모습을 보고서 홀연히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걸어오는 도중에 길손이 히브리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들을 풀이하여 주었는데 설명의 의도를 확연하게 깨닫게 됩니다. 구약의 예언이 온전히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의 제사로 성취가 되었다면 벌써 예수님께서 스스로 예언하신 있는 3 그리스도의 부활도 발생한 것입니다.

메시아의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다면 상급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살리시고 하늘보좌 오른쪽에 앉히신다는 예언도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52:13-53:12, 110:1).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앉으신 자리를 바라보니 벌써 모습을 감추신 후입니다(24:31).

그래서 제자는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있는 11사도와 여러 제자들을 찾아갑니다(24:33). 그곳에서 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고 이제는 주님께서 스스로 찾아오시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실제로 그날 저녁에 닫힌 문을 그대로 통과하여 예수님께서 방안에 들어와 서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부활하였다는 사실을 세가지로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24:36-43).

의사 누가의 본문기록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11사도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고자 사용하신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 방법(24:36). 둘째, 부활하신 주님의 손과 발을 만져보는 방법(24:39-40). 셋째, 함께 식사를 나누시는 모습 등입니다(24:41-43).

의미가 각각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말을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24:36);

(1)   11사도들과 여러 제자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엠마오에서 글로바와 시므온이 찾아 갔습니다(24:33). 사람은 자신들이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간증도 하기 전에 11사도와 함께 있는 제자들로부터 한가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오늘 새벽 무덤속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여자들이 증거하는 것을 사도 베드로가 재차 무덤을 방문하여 확인하고나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했다는 것입니다(24:34).

(2)   사도 베드로가 여인들의 증거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유는 두가지로 추정이 됩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에 기록이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생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전해준 예언들이 모두 성취가 되었다는 천사들의 전갈입니다.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이 천사들의 메시지를 들은 때는 무덤을 막고 있던 바위가 옮겨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직후입니다. 이제는 천사들의 말처럼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으로 가신 3일만에 부활하신다는 예언을 믿느냐? 아니 믿느냐? 문제만이 남아 있습니다.

2)      둘째, 사도 베드로가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하여 무덤을 방문합니다. 여인들의 증언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칭칭 감겨 있던 세마포 붕대가 완전히 풀려져서 침상에 놓여 있습니다(24:12). 그것은 시신을 누가 훔쳐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활하여 자신을 동여매고 있는 세마포 붕대를 풀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을 보고서 사도 베드로는 예언이 성취가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3)   거기에 글로바와 시므온의 간증이 덧붙여지고 있습니다(24:35). 내용은 길에서 만난 예수님께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모두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성찬의 의식을 행하여 줌으로써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있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간증을 듣고서 11사도와 여러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두 그날 저녁에 되도록 빨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으로 자신들을 찾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24:36a).

(4)   바로 그때에 닫힌 방문을 투과하여 가운데 예수님께서 들어서십니다(24:36b);

1)      대목에 대한 사도 요한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날 안식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0:19).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적고 있는 예수님의 첫마디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4:36c, 20:19)입니다.

2)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급작스러운 체포와 십자가처형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사도와 제자들의 마음속 의심과 불신, 그리고 낙담과 절망을 모두 떨쳐버리고 이제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다는 승리의 복음을 믿고서 마음속의 평안을 회복하라는 입니다”.

3)      요컨대, 예언의 말씀이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그것이 마음속 평안을 회복시켜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을 믿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죽음을 이기는 평안이 주어지고 있다면 이미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도의 마음속에 영적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14:18-20).

둘째로,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7-39); 무덤속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면 그것은 영적인 부활일까요? 아니면 육적인 부활일까요? 그리고 정체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1)   첫째, 그것은 육체만 되살아나는 부활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한 영적인 부활도 아닙니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창세기 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람의 창조를 다시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그러므로 몸도 새로 창조가 것입니다. 또한 새로 지은 부활의 몸속에 예수님의 정체성을 보전하고 있는 영혼이 담기어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있습니다. 과거의 육신적인 삶에 충실한 육체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영적인 소원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영생의 몸을 새로 부활의 몸으로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 시공간에 갇혀서 지내지 아니해도 됩니다. 남은 40일간의 사역만 마치고 나면 승천을 해도 됩니다(1:3-9). 이에 따라 예수님은 자신을 완전한 영체인 알고서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24:37) 안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24:38). 비록 영적인 부활의 몸이므로 갇힌 문을 투과하여 그대로 방안으로 들어왔지만(20:19) 자신은 귀신이 아닌 것입니다.

(3)   셋째, 온전히 부활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와 신분을 밝히시면서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과 부활이 의심스러우면 다가와서 손과 발을 만져보라고 하십니다(24:38-39). 하지만 아무도 감히 예수님의 손과 발을 만져보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자신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놀라워하고 또한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정확하게 꿰뚫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4)   사도 도마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첫번째로 나타나신 그날 저녁에는 자리에 없었습니다(20:24). 그러므로 8일후에 예수님께서 다시 사도들과 제자들을 찾아오셨다고 합니다(20:26). 그때 사도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의 상처에 손을 넣어보고서 확실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인정을 하라는 것입니다(20:27). 도마는 자신의 마음속의 의심을 이미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 감히 할말이 없습니다. 따라서 도마는 그대로 승복을 하고 맙니다(20:28). 그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셋째로,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앞에서 잡수시더라”(24:40-43);

(1)   아직 자신들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도와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신분과 몸을 지니고 있기에 서로 서먹서먹합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십자가에 못박힌 상처를 한번 확인해 보라고까지 말씀하셨지만 아직은 어색합니다(24:40).

(2)   그러한 묘한 분위기를 의사 누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24:40-41a).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니 반갑고 기쁩니다. 하지만 어쩐지 생전의 예수님같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으니 어떻게 옛날처럼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마디로 이제는 생전의 인자(人子, 사람의 아들) 예수님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가 되신 두려운 주님이십니다.

(3)   그러한 생소한 분위기를 타파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생애 당시처럼 함께 식사를 하자고 제의하시는 것입니다(24:41b). 예를 들면, “배가 고프다. 같이 밥이나 먹자꾸나라는 멘트와 같이 심히 다정하고 익숙한 느낌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놀라운 안도감을 순식간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같이 먹고 마시면서 다시 공생애를 살아가는 그것입니다(24:42-43). 그러한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40 후에 승천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1:2-3).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하신 말씀 그대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속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그것은 참으로 반갑고 기쁜 일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처럼 대속의 삶을 살고 죽으면 부활과 영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더욱 기쁜 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도들과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부활하여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을 단숨에 반갑다고 포옹을 하거나 입맞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부활하여 영생의 몸을 입고 나타나신 경우를 처음 보았기 때문입니다. 닫힌 문을 투과하여 방안에 들어서시니 어찌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놀라며 두려워하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회복하고 의심스러우면 자신의 손과 발을 한번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못이 박힌 상처를 보고서 동일한 정체성을 지니신 예수님임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사도와 제자들의 두려움과 서먹서먹함을 모두 해소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때에 마지막 방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배가 고프니 함께 먹고 마시자고 하십니다. 먼저 생선 토막을 예전처럼 맛있게 드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지켜본 제자들이 그때서야 모두 안심을 하고 온전히 예수님을 환영하고 반깁니다. 그러므로 가장 확실한 부활의 증명은 예전처럼 함께 먹고 마시며 전도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나 죽으나 모두가 하나라고 하는 영원한 친밀감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생구원이 무엇인지 부활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거나 의심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부활의 증거를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고자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그곳에 임재를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현지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부활을 증거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