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창세기 제8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손진길 2024. 5. 18. 04:32

창세기 제8장에 대한 강해설교 모음(손진길 목사의 글)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 들었고말씀의 의미(8:1-5)

 

홍수심판의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40일 동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땅 속에서는 지진이 발생을 하고 지층이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그 틈새로 용암과 지하수가 지상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전자를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40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7:11-12)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7:11)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 이유가 2가지입니다;

(1)  하나는, 폭우가 내리는 기간은 40일로 한정이 되어 있지만(7:4) 40일 후에도 지하수는 계속 지상으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가장 높은 산마저 물에 잠겨버리고(7:19-20) 지상에서는 방주에 타고 있는 동물들과 물고기를 제외하면 모든 동물들이 한꺼번에 멸절이 되고 말았습니다(7:21-23).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하수는 계속 터져 나오고 방주 주변의 물은 계속 불어나고 있습니다(7:24). 그것은 방주에 타고 있는 자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입니다.

(2)  또 하나는, 지진이 계속 발생하고 지하수와 용암이 엄청나게 지상으로 분출하자 땅의 모습이 그만 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홍수심판 이전에는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15규빗이므로 7미터 미만입니다(7:20). 그만큼 땅의 모습은 평평하고 그 위로 부는 바람은 온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에 따라 날씨도 쾌청하여 사람과 동식물이 살아가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홍수심판의 결과 높은 산과 낮은 골짜기가 형성되고 맙니다. 수천 미터에 이르는 고산과 깊은 골짜기로 말미암아 흉맹한 바람이 지상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기후조건과 자연환경이 돌변하였기에 먹거리가 줄어들고 더위와 추위가 번갈아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홍수심판 후에는 사람과 동식물이 살아가기가 참으로 고역입니다 그에 따라 그 수명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마는 것입니다.  

 당장은 방주에 타고 있는 노아가족의 걱정이 태산입니다. 폭우는 멈추었지만 물이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습니까? 방주에 실어 놓은 먹거리가 충분할지 걱정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냥 방치를 하신다면 방주 내의 생물들은 꼼짝 없이 죽은 목숨들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족들이 모든 생물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희들이 방주에 타고 있음을 부디 기억해주십시오. 이 공포의 물이 이제는 물러가게 조치를 해주십시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마른 땅을 저희에게 허락해주십시오”. 드디어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타고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들을 기억하십니다(8:1).

그때부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마치 성령님의 바람이 부는 것과 같습니다(3:8, 2:2). 드디어 물이 줄어들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이 일으키시고 동원하시는 그 바람이 물을 말리고 있는 장면을 모세가 훗날 홍해사건에서 다음과 같이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14:21).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결과 홍수심판이 시작된 지 150, 5달만에 가장 높은 아라랏 산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8:3-5). 새로운 땅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게 된 그날이 감격스러워서 그 날짜를 노아의 후손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날짜를 모세가 717이라고 적고 있습니다(8:4). 정확하게 말하자면, ‘노아 600217일에 홍수가 시작되고 5개월이 지난 그 해 717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의 역사가 있게 되면 새로운 살 길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아니하시면 구원은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방주 속에 마냥 타고 있다고 하여 무조건 구원이 자신의 것이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셔야만 성령의 바람이 땅 위에 불게 되는 것입니다(8:1). 그래서 죄와 죽음이라는 심판의 홍수가 물러가게 됩니다(8:1-3, 8:1-2). 마른 땅이 나타나고 드디어 새로운 삶이 시작이 됩니다(8:14-22).

그렇다면 차제에, 방주에 타고 있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둘째, 그 예언의 말씀에 의지하여 구원해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셋째, 자꾸만 하나님의 생각과 어긋나고 있는 환경에 대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드려야만 합니다.

그 환경에 휩쓸리지 아니하도록 강한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삶의 모습이 한 마디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3:5, 8:9-17, 고전6:19-20).

그와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여 승천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그 말씀에 따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열심히 모여서 기도를 했더니 성령께서 바람처럼 임하시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그때부터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새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마치 노아 가족이 밟게 되는 새 땅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과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며 하나님이 기억을 하시고 조치를 하시겠다는 응답을 받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간구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벌써 모든 것을 아시고 또한 그 적절한 역사의 시기를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성도들은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보고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미 약속하신 대로 구원이 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을 하여야 합니다.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때가 되면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실시하실 것입니다.

적합한 좋은 예를 모세가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2:23-25).

 

 

2.    노아 시대 홍수심판의 전개과정과 정찰이 필요한 이유(8:1-8)

 

일단 홍수심판이 시작되자 40일 동안 하늘에서 폭우가 계속 쏟아져 내렸습니다. 땅속에서는 지진과 함께 용암과 지하수가 계속 터져 나왔습니다. 모든 땅과 가장 높은 산들까지 모두 물속에 잠기었습니다. 그렇지만 물은 지속적으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방주에 타고 있는 사람과 동물들을 제외하고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 가운데 코로 숨을 쉬는 존재는 모두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물이 계속 불어나고 있으니 이제는 방주에 타고 있는 생물들이 죽을 형편에 처하게 됩니다.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된 노아의 가족들이 그들과 방주의 생물들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물이 최고도로 치솟고 있음과 노아가족의 기도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음을 보시고서 다음 단계의 구원계획을 실시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억하심입니다(8:1a). 하나님의 영이 역사를 하시자 바람이 불게 되는 것입니다(8:1b).

드디어 물이 줄어들기를 시작합니다(8:2-3). 그 결과 홍수심판이 시작된 지 꼭 150일만에 가장 높은 산 아라랏이 나타나고 가까스로 노아의 방주가 그 곳에 정박을 할 수 있게 됩니다(8:3-4). 홍수심판의 개시일이 노아 600 2 17일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 산에 정박을 할 수 있게 된 날은 정확하게 5달이 지난 그해 7 17일입니다(8:4).

물이 75일 동안, 2달반동안 계속 줄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 101일이 되자 여러 산들의 봉우리들이 보였습니다(8:5).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봉우리가 아니라 산꼭대기인 정상를 말하고 있습니다;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the tops of the mountains became visible”(8:5).

방주가 가장 높은 산 아라랏에 계속 정박을 해 있는 관계로 노아 가족은 마치 소방서의 높은 망대에서 도시 전체를 관찰하듯이 그렇게 저 멀리 산들의 높은 정상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광경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다시 세상이 그 모습을 모두 드러낸다면 새로운 세상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조하게 40일간을 매일 관찰을 했습니다(8:6). 즉 그 해 11 10일경이 되자 이제 제법 산들의 봉우리들이 육안으로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봉우리들만 보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산기슭과 편편한 지면이 어느 정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장차 그들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위해서는 들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초지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과연 들판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 그리고 식물이 다시 자라나고 있는지 궁금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지 거의 10달이나 지난 시점이라 그 동안 물속에 계속 잠기어 있었던 땅에서 과연 식물이 다시 싹을 띄우고서 자라나고 있는지 의문인 것입니다.

만약 대지에서 자라날 수 있는 식물들마저 멸절이 되고 말았다면 앞으로 땅에서 살아갈 방도가 없게 될 것입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아라랏에 정박해 있는 노아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 진위여부를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잘 날 수 있는 새들 가운데 선별하여 정찰을 하게 할 생각입니다.

 

3.    노아의 전령인 까마귀와 비둘기의 차이점(8:6-12)

 

노아는 왜 그 많은 종류의 새들 가운데 유독 까마귀비둘기를 전령으로 선택하고 있을까요? 하늘을 높이 날고 그리고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새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대부분 사냥에 능한 것들입니다. 그리고 길들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 주위에서 친근하게 살고 있는 새들이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동네 어디를 가든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새들이 까마귀이며 비둘기 종류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주는 사료를 먹기도 하고 명령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특히 비둘기는 예로부터 전령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성경에서 제물로 사용이 되기도 하고 다음과 같이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와 3년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15:9),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3:16).

그런데 특이하게도 까마귀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장면이 구약에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는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왕상17:2-6).

그래서 그런지 노아는 매와 같은 맹금류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사람과 친근한 까마귀와 비둘기를 정찰병으로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까마귀와 비둘기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까마귀는 죽은 동물의 사체를 파먹고 사는 새입니다. 반면에 비둘기는 새싹과 곡식을 먹고 사는 새입니다. 그 때문인지 까마귀는 성격이 다소 사납고 비둘기는 온순합니다.

그와 같은 차이가 본문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약간의 풀이를 하면서 알기 쉽게 그 내용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아가 까마귀를 먼저 정찰병으로 방주에서 내보냅니다. 까마귀는 제 세상을 만났습니다. 지면에 아직 물이 가득한데 죽은 동물들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배불리 파먹고서 아예 방주로 되돌아 갈 생각을 아니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답답하여 이번에는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비둘기는 죽은 동물의 사체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새싹만을 찾고 있습니다. 발견하지를 못하자 다시 방주로 되돌아 왔습니다.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파송했습니다. 이번에는 올리브나무의 새 잎사귀를 물고 왔습니다. 먹을 거리는 있는데 쉴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7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보냈습니다. 이제는 먹을 것과 쉴 곳이 모두 육지에 나타났으므로 되돌아오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지면의 상당부분이 물위에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8:6-12 의역).

 

4.    땅이 말랐더라의 의미와 그때까지 걸린 시간(8:13-19)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2:7). 그 말은 사람은 고체인 흙의 성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그 흙덩어리인 고체를 움직이는 힘이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불어 넣어주고 있는 생명의 기운은 기체일까요? 아니면 액체일까요? 그것은 기체도 액체도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적인 기운이기 때문입니다.

영은 근본적으로 시공간에 갇혀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동시에 다발적으로 역사하며 그 힘은 초월적인 것이기에 물질로 구성이 되어 있는 자연계를 제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영적인 기운이 인체에 들어와서 영향을 미칠 때에는 일종의 에너지 형태로 변환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호흡이 인간의 호흡을 강화시키며 그 생기가 인간의 기력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거의 70%가 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 물이 세포 구석 구석에 스며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혈류를 타고서 전신을 돌고 있기도 합니다. 사실 물이 없으면 피가 액체상태를 유지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전이하여 주시는 생명의 기운이 아니면 그 많은 피를 미세한 혈관까지 보내며 모든 세포에 영양분을 골고루 배분시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힘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단지 눈에 보이는 사람의 심장의 펌프력만 가지고서 그것이 전신에 피를 돌게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과연 그 정도의 펌프의 힘으로 전신의 모세혈관에 피를 흐르게 하며 동시에 100(百兆, a hundred trillion) 개에 달하는 인체의 모든 세포에 양분과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펌프력과는 상관이 없이 물 자체에 일종의 에너지가 작용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근거는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1:2),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12:43).

풀이를 해보자면, 하나님의 영적인 기운이 물 위에 미치고 있습니다. 그 힘은 창조주의 힘인지라 실로 막강한 것입니다. 따라서 태초에 혼돈의 힘도 그 물의 막을 뚫지 못하고 있습니다(1:2). 뿐만 아니라 악한 영들도 하나님의 능력이 미치고 있는 물을 피하여 다니고 있습니다(12:43).

그러므로 사람의 육체의 69%를 구성하고 있다는 물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피로 하여금 전신을 돌게 만들고 사람이 ()적인 작용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도 모두가 물이 하나님의 생명의 기운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물이 생명을 살리는 그 고유의 기능을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육체 속에서 지금도 수행하고 있기에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거듭나는 절반의 진리를 아는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그런데 70% 가까이 물로 구성이 되어 있는 인간이 이상하게도 물속에서는 통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물고기와 같은 아가미가 없고 그 대신에 코로 숨을 쉬어야만 하는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젖은 땅이 아니라 마른 땅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뛰고 달리며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마른 땅이 필요한 것입니다(1:28). 젖은 땅에서는 맥을 추지를 못하여 노동도 제대로 못합니다. 자연히 대부분의 경작도 물을 사용하는 논이 아니라 물기가 적은 밭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점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노아 601년 정월 초하루부터 시작하여 바람과 햇빛으로 땅을 말리고 있습니다. 57일간 작업을 하여 모든 육지가 마른 땅이 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 마른 땅을 노아와 생물들에게 선물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번성의 축복을 재차 선언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8:16-17).

본문을 노아 가족과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땅이 마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지면에서 물이 걷힌 것은 노아 60111일입니다(8:13). 그런데 57일이 지나자 드디어 땅이 말랐습니다. 그 날짜가 601227일입니다(8:14). 노아 600217일에 홍수가 시작된 이후 꼭 1년하고도 10일이 지난 시점입니다. 땅이 말랐기에 노아 가족과 동물들이 모두 방주 바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8:18-19). 물론 하나님께서 이제는 안전한 땅이 되었으니 나와도 좋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8:15-17). 홍수심판 일주일 전에 방주에 탑승을 했던 그들이기에 완전히 일년 17일만에 다시 세상구경을 한 것입니다(7:4-11, 8:14)”.

자신의 발로 마른 땅을 다시 밟는다고 하는 것은 육지의 생명체들에게 있어서는 다시 삶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생활의 터전을 다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순간입니다. 마른 땅을 주신 하나님은 찬양의 대상입니다.

그 점을 모세는 그의 출애굽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14:21-22),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15:19-21).

 

5.    새 땅에서 드린 현대인류의 조상 노아의 첫 번째 제사(8:20)

 

새로운 땅과 환경에서 새로운 삶을 일구어 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행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노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심판이 완전히 끝나자 그 동안 방주에서 생활했던 117일간의 긴 생활을 청산하고 새 땅에 첫발을 내디디었습니다(8:18). 그리고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깨끗한 제물을 준비하여 번제를 드리고 있습니다(8:20).

그런데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노아의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땅의 모습이 완전히 변하여 있습니다. 평평하던 땅이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가진 모습으로 변모되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 기후도 옛날의 온난한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사납고 일기의 변화가 매우 심합니다. 게다가 식물이 무성하던 들판이 이제는 붉게 황폐화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합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그가 당면한 현실을 말씀 드리고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을 달라고 매어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홍수심판의 와중에서도 그의 가족과 탑승한 생물을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정성을 다한 제사로써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노아는 정결한 가축과 깨끗한 가운데서 제물을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흠이 있고 정갈하지 못한 것은 제외를 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은 흠이 없고 깨끗하여야만 합니다. 깨끗한 제물을 드리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마음과 몸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몸과 마음가짐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서 앞으로 노아는 자신의 가족과 후손들과 함께 한 평생 깨끗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그 뜻을 받들면서 살아가겠다고 그 제사를 통하여 맹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과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축복의 말씀을 베풀고 있습니다(8:20-21).

 

6.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발언, 심판보다는 구원을 선택하시는 하나님(8:21)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의 응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8:21).

두 가지 놀라운 내용이 그 응답의 말씀 속에 담겨 있습니다; 첫째, 사람의 타락과 악행 때문에 다시는 전면적인 홍수심판을 일으키지 아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것이 본래부터 악한 것이기에 그것을 도려내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각의 뿌리에 집을 짓고 있는 악한 영들의 존재를 모두 박멸하겠다는 발언인 것입니다. 그 계획은 심판과 멸망이 아니라 구원과 영생에 관한 것입니다. 창세기 제3장에서 이미 예언하시고 있는 내용을 이제는 구체화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3:15).

요컨대, 완벽한 여자의 후손으로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사탄의 권세인 죄와 사망의 법을 깨뜨려 버리실 것이라는 구원의 계획이 이제 발동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2-14, 3:16-18, 8:1-2).

 

7.    홍수심판의 결과와 하나님의 약속(8:22)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 홍수심판의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8:22). 40일 동안 쉬지 아니하고 내린 폭우가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오랫동안 진행된 지진과 용암의 분출은 땅의 모양을 변하게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평평하고 살기 좋았던 땅의 모습을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즐비한 살기 힘든 지형으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그 위를 불고 있는 바람과 계절의 변화는 사납고 변덕스러워졌습니다. 무더운 낮과 차가운 밤이 번갈아 찾아오고 있습니다. 일교차가 심해진 것입니다. 계절적으로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과 극심한 추위를 동반하는 겨울이 자꾸만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나마 살기에 적합한 봄과 가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습니다. 심한 일교차와 적대적인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생물들의 세포분열이 자꾸만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명이 단축이 되고 식물의 생산량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살기 힘들어진 자연환경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현대인류의 조상이 되고 있는 노아의 후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축복을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이 있을 것이라”(8:22a)는 내용입니다.

풀이를 해보자면, 봄에 씨를 뿌릴 수 있도록 이른 비를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름에는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늦은 비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작목이 열매를 맺고 가을걷이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땅이 있을 동안에는 파종과 가을걷이가 가능하게 은혜를 베풀어주겠다는 것입니다(11:14).

그러므로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가 깨어지지 아니하는 한,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이 계속될 것입니다. 황폐한 지구가 아니라 푸르른 지구의 모습은 유지될 것입니다. 심음과 거둠을 단절시키는 홍수심판은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의 연장선상에서 영적인 말씀의 심음이 가능하도록 이른 비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2:23, 1:1-4, 11-14). 그리고 그 믿음이 자라날 수 있도록 늦은 비로 진리의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2:28, 14:16-17, 16:13-15, 2:1-4).

마침내 주님과 함께 성도들이 교회를 세우며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성도로 수확을 하게 될 것입니다(16:18, 28:18-20, 1:8). 그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이 땅에서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자료) 창세기 강의 골자 10(8:1-2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5 10 15()

 

1.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기억하심으로부터(8:1)

(1)   창조주는 만물을 만드시고 그들을 기억하심(10:28-33, 참새 마리까지 계수하시고 기억하시는 하나님).

(2)   특히 번성의 축복을 받고 있는 사람과 동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억하셔야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맛볼 있음(1:20-22, 새들과 물고기에 대한 번성의 축복, 1:28, 사람에 대한 번성과 다스림의 축복)

(3)    영생의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면 생명이 있고 기억을 지워버리시면 사망과 소멸이 찾아옴;

1)      26:14, “이는 주께서 벌하여 그들을 멸하사 그들의 모든 기억을 없이하셨음이니이다

2)      44:21,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3)      49:1, “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4)      62:6, “예루살렘이여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4)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며(7:21) 이름을 생명 책에 기록하신다고 있을 것임(21:27). 그것이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며 영생을 얻는 방법이 되고 있음.

 

2.      감수(減水, 물이 줄어드는 )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가지 조치(8:1-3)

(1)   노아의 방주와 속의 생물들을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치를 행하시다.

(2)   구원의 조치 가지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수가 이루어진 것임(8:3).

1)      바람을 위에 불게 하다(8:1)…성령의 역사로 있음(3:6-8).

2)      하늘의 창문을 닫아 비를 그치게 하다(8:2b).

3)      깊음의 샘을 닫아 지하수의 분출을 막다(8:2a).

 

3.      홍수심판 시작 150 후에 비로소 감수가 시작되었다는 기록의 의미(8:3)

(1)   하늘의 비는 40일만에 그침(7:4, 12)

(2)   해저지진의 발생으로 인한 지하수의 분출은 40 후에도 계속된 것임(8:3)…그러므로 지진과 쓰나미 등으로 인하여 있는 터전이 상실되는 것이 재앙임.

 

4.      노아 600 7 17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는 기록의 의미(8:4)

(1)   해저지진의 발생으로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생겨남. 가운데 가장 높은 산이 아라랏 산임.

(2)   같은 2 17일부터 7 17일까지는 5달이며 150일이 경과한 시점임.

1)      그때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고 있으며 감수가 시작이 되고 있음(8:4).

2)      따라서 노아의 방주는 줄곧 높은 아라랏 꼭대기에 추를 내리고 정박하고 있어 표류신세를 면하고 있었다고 있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임.

 

5.      다른 산들의 봉우리를 있게 때까지 걸린 날짜의 계산(8:5)

(1)   10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게 (8:5).

(2)   7 17일부터(8:4) 물이 줄어들어 74일이나 경과한 시점임. 그러므로 아라랏 산이 다른 봉우리에 비해서 굉장히 높은 산임을 있음.

 

6.      40 후에 노아가 까마귀를 내보내고 다음에 비둘기를 내보낸 이유(8:6-9)

(1)   지면에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어 있는지를 알고자 (8:8).

(2)   사명감당하기에 까마귀는 적당하지가 않음.

1)      땅이 아니라 물위에 있는 사체 위에 앉아서 그것을 먹어 치울 있는 새이기 때문임. 그래서 돌아오지 아니함(8:7).

2)      때문에 노아가 다음에 비둘기를 정찰용으로 내보낸 것임(8:8-9).

 

7.      까마귀와 비둘기가 상징하고 있는 것들(8:7-12)

(1)   세상을 사는 방법 가지를 상징하고 있음.

1)      까마귀는 죽은 시체를 파먹으며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림.

2)      반면에 비둘기는 사체를 먹지 아니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있음.

(2)   비둘기가 물고 감람나무 잎사귀(8:11)

1)      물이 걷힌 일부 지면에서 감람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임.

2)      세상이 열리고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비둘기가 감람나무 잎사귀로 전해주고 있음.

3)      따라서 비둘기와 월계수 잎이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음(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의 머리에 월계관이 씌어짐).

(3)   그로부터 7 다시 파송된 비둘기가 돌아오지 아니함 지면에 상당히 많은 땅에 물이 걷혔다는 표시임(8:12).

 

8.      노아 601 1 1일에 지면에서 발생한 (8:13)

(1)   위에 완전히 물이 걷힘(8:13a).

(2)   노아가 방주의 뚜껑을 열고서 직접 목격을 하게 (8:13b).

 

9.      노아 601 2 27일에 땅이 마르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8:14-19)

(1)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가족 동물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심(8:15)

(2)   하나님의 정식명령이 있기까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고 기다린 노아의 신앙의 자세를 배울 필요가 있음.

1)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사는 것임(17:1).

2)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의미임(5:22, 24, 6:9).

(3)   방주에서 나오는 순서는 방주에 순서와 같음(7:7-9, 사람 다음에 동물임, 8:16-19).

 

10.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제일 먼저 행한 일의 의미(8:20)

(1)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린 것임.

1)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의미임(8:21).

2)      그리고 있는 여건과 터전을 허락해달라는 의미임(8:22).

(2)   노아가 자신의 가족 모든 생물의 대표로서 드린 제사임(8:20).

 

11.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의 마음중심의 변화(8:21-22)

(1)   이제부터는 전면심판을 행하지 아니할 것임을 내비치심(8:21ac).

(2)   사람 속에 어려서부터 악한 생각과 계획을 심어주고 있는 영적인 세력을 도려내고자 하심(8:21b).

 

12.   마지막 하나님의 언급에서 있는 지형의 변화(8:22)

(1)   추위와 더위(8:22b), 그리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오고 있음(8:22d)…일교차가 심하다는 것임.

(2)   여름과 겨울이 언급되고 봄과 가을에 대한 언급이 없음(8:22c)…계절의 변화가 극심해짐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기후가 불순해진 것임.

(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농사를 지을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을 형성해주겠다고 약속하심(8:22a)…하나님의 배려와 은혜로 오늘날에도 70억의 인구가 먹고 있음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