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20강(눅23:13-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5. 19:30

누가복음 강해 220(23:13-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14()

 

로마법에 따라 예수님을 재판하고 석방하려는 총독 빌라도에게 정치공세를 펴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교인들에 대하여(23:13-21);

 

나사렛 예수를 심문한 결과 로마총독인 빌라도와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는 그를 처형할 만한 죄를 발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질문에 대하여 괘씸하게도 미동도 하지 아니하고 전혀 일언반구도 없는 예수를 미워하여 그를 멸시하고 희롱하다가 빌라도에게 다시 보내 버리고 맙니다(23:9-11). 자신은 나사렛 예수를 처치할 마음이 조금도 없으므로 로마총독이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헤롯 안디바가 유대인들 사이의 내부적인 종교적 분쟁과 갈등에 휘말려 들지 아니하려고 무척 조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 로마총독인 자신의 입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대제사장 가야바와 전직인 안나스 그리고 산헤드린 대공회의 관리들과 유대교 성도들은 한꺼번에 몰려와서 부디 나사렛 예수를 빨리 십자가에 처형해 달라고 자신에게 정치적인 공세를 펴고 있습니다(23:13).

따라서 빌라도는 그들에게 헤롯 안디바의 심문의 결과를 의지하여 자신의 견해를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심문하였지만 백성을 선동하여 반체제운동을 전개한 흔적을 찾지를 못했다고 한다. 본인 역시 예수를 심문하였으나 그를 처형할 만한 혐의를 발견하지를 못했다. 그러므로 그저 매질만 하고서 방면을 하고자 한다.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란다”(23:14-16).

그러나 유대교인들을 앞세운 유대교지도자들의 정치적인 공세는 조금도 누그러지지가 않고 있습니다. 로마황제에게 역심(易心, 반역하려는 마음) 품고 있는 예수를 석방시키려고 한다면 로마총독인 빌라도 역시 황제에 대하여 불충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수밖에 없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19:12). 그러한 거센 압박에 대하여 빌라도는 로마총독이 유대인 명절을 맞이하여 중죄인 하나를 특사(特赦, 특별히 죄를 사해주고 석방함)해주는 전례를 빌려서 나사렛 예수를 석방해주고자 합니다(27:15-18).

그래서 명백하게 로마에 대한 반란의 주동자의 하나로 체포가 되어 있는 정치범 바라바와(23:19) 종교적으로 정죄가 되고 있는 나사렛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석방시켜 주기를 너희들이 원하고 있는가?(27:17) 하고 질문을 하게 됩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반란을 도모한 바라바의 편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빌라도는 내심 자신의 묘책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뜻밖에도 유대교지도자들의 선택은 예수를 처형하고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23:19). 빌라도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한번 확인을 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23:20-21).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를 제거하려고 하는 유대교지도자들의 노력이 어느 정도로 필사적인가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깊숙한 유대교내부의 갈등에 자신이 무방비로 빠져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늪에서 빠져나오고자 역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빌라도와 유대교지도자들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긴장 가운데 계속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23:22-23). 점은 다음 강해에서 계속하여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빌라도가 대제사장들 관리들 백성 불러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s1]  일에 대하여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23:13-14);

(1)   헤롯 안디바가 얼른 나사렛 예수를 자신에게 되돌려 보낸 것을 보고서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빨리 사건을 종결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예수를 고발한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와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를 비롯하여 산헤드린 대공회의 관리들과 그들이 동원하고 있는 유대교인들 모두를 자기 앞에 불러모으고 있습니다(23:13).

(2)   그리고 자리에서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공식적으로 선포를 합니다’ “너희들이 나사렛 예수가 백성을 미혹하여 로마황제에게 반역하도록 천국복음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본인이 직접 그를 심문하였다. 그러나 본인은 너희들이 고발한 내용에 부합이 되는 어떠한 혐의나 증거를 나사렛 예수에게서 발견하지를 못하였다”(23:14 의역). 빌라도가 자신의 입장을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력한 유대교인들 앞에서 분명히 말할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다음 구절의 내용입니다.

둘째로,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23:15-16);

(1)   빌라도 자신 뿐만 아니라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도 별도로 나사렛 예수를 심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헤롯 안디바가 예수에게서 반란의 혐의를 전혀 발견하지를 못하자 빌라도 자신에게 예수를 되돌려 보내어 왔다는 것입니다(23:15a). 그러므로 갈릴리의 분봉 왕과 로마총독인 자신의 심문의 결과가 일치하고 있으므로 나사렛 예수는 사형에 처할 만한 죄를 범한 자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23:15b). 따라서 빌라도는 그저 민심을 일부 어지럽힌 죄를 물어서 나사렛 예수에게 태형을 가하고 석방하겠다는 것입니다(23:16).

(2)   그렇지만 빌라도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관철할 수가 없습니다. 로마의 만민법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분명히 무죄석방의 대상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고발자체가 거짓말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하지만 거짓고발을 해놓고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산헤드린 대공회의 판결을 존중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 들여서 나사렛 예수를 무조건 로마의 반역자로 인정하여 십자가 처형을 하도록 만들 있는 신의 한수가 유대교의 지도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변방의 로마총독이 안고 있는 정치적인 약점입니다.

(3)   로마의 황제는 속국에서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못을 떠나 무조건 변방에서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하게 되면 현지에 파견나가 있는 로마의 총독이나 속국의 왕에게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무능한 관리자로 낙인이 찍히게 되면 로마로 소환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비근한 예로서는 옛날에 막강했던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분봉 헤롯 아켈라오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는 선친인 헤롯 대왕에 이어서 예루살렘에서 강력한 통치를 했는데 그의 독단적인 폭정을 싫어한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황제에게 청원을 하는 바람에 그만 주후 6년에 폐위가 되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격이 떨어지는 로마총독 빌라도가 어찌 유대교지도자들의 강력한 공세를 견디어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로,(어떤 사본에는)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사람을 놓아 주더라.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23:17-19);

(1)   빌라도가 판단하기에 유대교지도자들이 너무나 세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꼼짝하지를 못하고 로마총독인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아니할 없는 묘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동원하고 있는 회심의 한수가 바로 명절에 사람의 중죄인을 특사해줄 있는 총독의 권한입니다(23:17). 그는 지난 번의 반란사건에서 주동자의 사람으로 체포가 되어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바라바를 이용하고자 합니다(23:19).

(2)   바라바와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석방시켜 주기를 원하느냐? 그들에게 물으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유대교지도자들이 간이 크다고 하더라도 로마에 대한 반란의 죄가 명백한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당연히 유대교 내에서 단지 미운 털이 박혀서 안티가 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석방시켜 달라고 말할 것입니다. 빌라도는 쾌재를 부르면서 묘수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와 반대입니다.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23:18). 어째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을까요? 그것은 빌라도가 스스로 악수(惡手, 잘못된 나쁜 ) 두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23:20-21);

(1)   감히 로마에 반역하여 무장봉기를 주동자를 특사로 석방하겠다고 하는 것은 로마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시행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23:19). 그것을 일개 변방의 총독에 불과한 빌라도가 언급을 하였으니 뒷감당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지도자들은 얼른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하면서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한 것입니다(23:18). 이제 빌라도가 스스로 자승자박(自繩自縛, 자신의 올무에 자신이 묶이게 되는 ) 수순을 밟게 됩니다. 그는 올무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습니다. 가장 좋은 해법은 애초의 생각대로 예수를 석방하고 바라바는 그대로 수감을 해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절규하듯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23:20).

(2)   그러나 영악한 유대교지도자들이 빌라도의 소원을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쉽게 로마총독의 손으로 처형할 있는 호기가 찾아 왔는데 그만둘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가 이구동성으로 다시 한번 강조하여 차례나 한꺼번에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소리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23:21). 그대로 일이 마무리가 되어버리게 되면 빌라도는 큰일입니다. 반란의 주동자인 바라바를 풀어주게 되고 무혐의가 분명한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가지의 잘못을 동시에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서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 다음 강해의 내용들이라고 하겠습니다(23:22-25).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갈등과 종교적인 갈등 가운데 어느 것이 심각한 것일까요? 본문에서 있듯이 종교적인 갈등과 분쟁이 심각한 것입니다. 피지배국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에 불과한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이 감히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와 한판 정치적인 힘겨루기를 하여 승기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나눔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나눔이 중요한 법입니다. 정신적인 가운데 이념의 문제와 신앙적인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해결의 근본적인 방법을 먼저 두고서 생각을 해본다면 신앙의 문제의 해결, 이념의 문제의 해결, 다음이 물질적인 문제의 해결의 순서가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백성들은 지난 년의 세월을 물질적인 경제건설에 치중해왔습니다. 결과 아직 남북의 이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근본적으로 신앙을 바로 세우고 다음에 이념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나아가는 것이 순리가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한국의 기독교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 남북통일의 관건이 된다고도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한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복음으로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뜻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