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21강(눅23:22-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5. 19:31

누가복음 강해 221(23:22-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15()

 

예수를 무죄 방면하려고 했던 로마총독 빌라도가 어이없게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할 수밖에 없게 이유가 무엇인가?(23:22-25)

 

유대교지도자들은 로마총독인 빌라도의 제안을 역이용하여 그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23:17-21). 결과 본문에서와 같이 빌라도가 자신이 잘못 함정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게 됩니다(23:22). 그러나 발버둥을 칠수록 자꾸만 유대교인들을 대거 동원하여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교활한 유대교지도자들의 외통수에 말려들고 있습니다(23:23).

따라서 빌라도는 유대교지도자들과 막후협상을 통하여 당면문제를 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협상의 내용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처형하는 대신에 빌라도가 잘못 빌라도의 특사를 제안한 내용과 예수를 부당하게 처형한 내용을 유대교지도자들이 전부 눈감아 준다는 것입니다. 양자사이에 드디어 그러한 조건으로 합의를 하고 맙니다. 결과 빌라도는 바라바에게 석방을 언도하고 나사렛 예수에게는 십자가 처형을 명령하게 되는 것입니다(23:24-25).

조금 자세하게 전후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에 따라 다음과 같이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하게 되는 스토리와 전개과정을 더듬어 봅니다;

(1)   첫째, 유월절이 유대인들의 최대의 명절이며 가장 의미가 있는 절기입니다. 그때를 축하하기 위하여 로마총독이 죄인 한사람을 방면해주는 전례가 있는데 빌라도는 그것을 이용하여 나사렛 예수를 풀어줌으로써 자신이 유대인 내부의 알력에 휘말리는 것을 예방하고자 합니다.

(2)   둘째, 빌라도의 아이디어는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빌라도가 도저히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수용할 없는 중죄인을 고르다가 보니까 실수를 것입니다. 로마에 대한 반란을 도모한 혐의로 체포가 되어 현재 로마총독부의 감옥에서 중요한 정치범으로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바라바의 이름을 빌라도가 입에 올린 것입니다.

(3)   셋째, 바라바와 나사렛 예수 가운데 누구를 석방시켜 주기를 원하는가? 하고 빌라도는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교인들에게 묻고 있습니다(27:17, 23:17). 빌라도의 예상으로는 당연히 그들이 나사렛 예수를 풀어주고 바라바를 계속 옥에 가두어 두라고 선택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 불을 보듯이 분명하고 뻔한 )합니다. 이유는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청하게 되면 요청자는 바라바와 한패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4)   넷째, 유대교지도자들이 아무리 나사렛 예수가 밉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처단하고 대신에 로마의 반역자임이 명확한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선택이 예수가 아니고 바라바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로마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도로 나사렛 예수를 처치하는 것이 유대교지도자들에게는 절실한 문제입니다.

(5)   다섯째,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정신이 아찔합니다. 그는 다음 순간 어째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그러한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이유를 깨닫고 있습니다; 첫째, 로마총독이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이 알아채고 있습니다. 로마에 대한 반란을 주도한 자는 비록 로마의 황제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사면을 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그런데 로마제국 전체로 보아서는 변방에 주둔하고 있는 하급 총독에 불과한 빌라도가 감히 그러한 자를 석방시켜줄 수도 있다고 하면서 은근히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빌라도는 분명히 유대교지도자들이 빌라도를 선택하지 아니할 줄을 예상하고서 그렇게 분수에 넘치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   여섯째, 유대교지도자들이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청함으로써 자신들이 얻을 있는 이익과 손해를 얼른 계산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반역자인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구함으로써 유대교지도자들이 바라바와 한패라고 오해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위험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천만뜻밖에도 그러한 제안을 빌라도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바 석방의 책임은 유대교지도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로마총독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7)   일곱째, 바라바를 풀어주고 나사렛 예수를 처형해 달라고 외치게 되면 빌라도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로마의 반역자를 함부로 풀어준 잘못을 범하게 되며 동시에 반란의 혐의가 전혀 없는 종교지도자 예수를 처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지 경우에 있어서 모두 로마의 법을 어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자기 길을 찾아서 은밀하게 유대교지도자들과 정치적인 협상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8)   여덟째로,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나지 아니하고 있는 막후협상 빌라도와 대제사장 사이의 은밀한 거래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마디로,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총독인 빌라도의 잘못을 눈감아주는 대신에 빌라도는 그들을 위하여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이 빌라도로부터 바라바를 인계 받아서 그를 보호하고 있으면 로마총독의 인질을 잡고 있는 것과 진배가 없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성실하게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실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간략하게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빌라도가 세번째 말하되,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23:22);

(1)   빌라도가 애타게 세번째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23:22a). 부디 혐의가 없는 나사렛 예수이지만 그에게 태형을 가해서 풀어줄 것이니 정도로 만족하고 반란죄수인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지는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23:22b). 빌라도 자신이 사람을 석방해줄 것이니 누구를 선택할지 말해보라고 소리를 때는 언제이고(27:17) 이제와서는 발뺌을 하느라고 바쁜 것입니다(23:22). 그와 같이 로마황제를 유대 땅에서 대리하고 있는 로마의 총독이 한번 잘못 뱉은 말은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오고 있습니다. 잘못 쏟아버린 물을 다시 그릇에 주어 담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습니다.

(2)   그러나 빌라도의 입장에서는 반란죄수인 바라바를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혐의가 없는 나사렛 예수를 처형할 수도 없습니다. 바라바를 석방해주면 직권남용이 되고 예수님을 처형하게 되면 재판의 공정성이 깨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애초의 판정 그대로 나사렛 예수를 무혐의로 무죄방면(無罪放免, 죄가 없음을 선포하고 풀어주는 )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요구를 빌라도가 약은 꾀로 물리치려고 것이 그만 화근(禍根, 재앙의 근원) 되고 있습니다(27:15-18). 이제는 그들이 동원한 군중들의 거센 고함소리에 밀려서(23:18, 21) 점점 늪에 빠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그들이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23:23);

(1)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동원한 군중들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27:20). 유대교인들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군중들은 그들이 소리로 떠들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 흑암의 세력의 준동인지도 모르고서 목소리로 크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박기를 구하니”(23:23a).

(2)   시위군중들을 어떻게 하면 해산시키고 현안문제를 원만하게 수가 있을까요? 방법은 빌라도가 대제사장과 막후협상을 벌이는 것입니다. 결과 합의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합의의 내용은 쉽게 짐작을 수가 있습니다;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 처형하는 대신에 로마총독이 직권남용을 하고 불공정한 재판을 했다는 사실이 일체 외부로 나가는 것을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책임을 지고 막아주는 것입니다”. 결국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요구가 관철이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모든 책임을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교인들이 떠맡도록 말하고 있습니다(27:24-26). 그것을 의사 누가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소리가 이긴지라”(23:23b)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셋째로,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23:24-25); 이미 막후협상이 성사가 되었기에 다음은 모든 일의 처리가 일사천리(一瀉千里, 모든 일이 한꺼번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처리가 되는 )입니다; 첫째,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에게 로마황제에 대한 반란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을 천국복음으로 미혹하였다고 판정하고 사형을 언도합니다(23:24). 둘째, 바라바를 사면하고 신병을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인도합니다(23:25a). 셋째, 나사렛 예수를 로마의 병정들에게 넘겨주어 십자가형에 당일 처하라고 명령을 합니다(23:25b). 그리고 처형의 책임은 모두 유대교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므로 죄값을 그들이 져야만 한다고 선언을 하고 맙니다(27:24-26).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의사 누가의 표현이 (유대교지도자)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23:25c) 입니다.

결론적으로, 겉으로 보이는 민중의 소리나 유대교지도자들과 로마총독 빌라도 사이의 정치적인 힘겨루기만 가지고는 본문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스토리의 비약과 과정의 생략이 눈에 뜨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역사적인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는 역시 사회과학적인 이론과 지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세력 간에 원만한 상호이익을 도출하기 위하여 정치적인 막후협상을 했다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협상의 이슈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서로가 무엇을 주고 받았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의 약점을 어떻게 파고들고 있는지 그리고 계속 상대방을 밀어 부치기 위하여 군중을 어떻게 동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결과 빌라도와 대제사장이 서로 윈윈(win-win) 전략 구사합니다. 내용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해주는 대신에 빌라도의 직권남용이나 불공정한 재판에 대해서는 일체 서로가 함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검은 거래의 희생양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겉으로 보면, 가장 힘이 없어 보이는 제물이며 희생양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흑암의 역사를 끝내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의 산물입니다. 왜냐하면,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 다음에 창조주가 주관하시는 무덤 부활과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의미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음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 안에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시는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