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18강(눅23: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5. 04:07

누가복음 강해 218(23:1-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12()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에게 끌고가서 로마의 반역자로 처형을 요구하다(23:1-7).

 

지난 3 6개월 동안 예수님 일행이 가나안 땅과 북쪽 그리고 동쪽에서 행하신 복음사역에 대하여 관심을 크게 기울이면서 지속적으로 정보수집을 하고 분석한 자들은 크게 보아 세력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종교적으로 유대교의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하나는 유대 땅에 주둔하여 군정(軍政, 군사통치) 실시하고 있는 로마의 총독부(總督府, 총독을 우두머리로 하고 있는 행정조직)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수집하여 분석한 예수님에 관한 정보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양자(兩者, 사람 또는 개의 ) 서로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대공회의 구성원들 대다수는 예수님이 유대교에 적대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복음사역을 유대 땅에서 계속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유대교인들 사이에 분열이 발생하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1)      이유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뜻은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의 구원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선민구원사상과 완전히 어긋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구원에 있어서 이방인들을 제외하고 있는데 예수는 이방인들까지 모두 포함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예수는 현실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을 군사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로마총독부와 헤롯 왕가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히브리정경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해석 유대인들의 역사의식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옛날 출애굽 당시에 그러하셨고(12:12-14, 14:30) 히스기야 때에도 그러하셨듯이(왕하19:34-35) 언제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하기 위하여 외세를 물리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3)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의 주장이 틀렸고 유대교지도자들 자신들이 옳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사렛 예수를 통하여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각종 불치(不治, 치유할 없는 ) 병자와 장애자들을 고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합니다. 나아가서 수만명의 무리들에게 기도로 떡을 만들어 나누어 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나사렛 예수를 메시아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일부는 아예 예수를 유대인의 임금으로 삼자고 움직이고 있습니다(6:15).

4)      그대로 내버려 두게 되면 예수를 배척하고 있는 자신들과 예수를 지지하고 있는 백성들 사이의 갈등으로 말미암아 유대교와 선민들이 동강이가 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국론이 분열이 된다면 선민 유대인들의 미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비상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선민들의 유대교리를 온전히 보전하고 유대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이단아(異端兒, 이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 예수를 종교적으로 정죄하고 정치적으로 처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얻고 있는 정보의 최종 결론입니다.

(2)   둘째,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의 총독부가 수집한 정보의 분석은 유대교지도자들의 분석과 다릅니다. 총독부의 관심은 누가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로마황제에게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는 지난 3 6개월 동안 로마의 세력을 몰아내자고 백성들을 선동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의 정치적인 입장을 알아보기 위하여 사람들을 보내어 시험을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20:22). 그에 대한 나사렛 예수의 답변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0:25)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있어서는 교리적인 다툼을 발생시키는 장본인이 되지만 로마황제에게 있어서는 정치적인 위험인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로마총독이 보고를 받고 있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정탐의 결론입니다.

(3)   셋째, 그런데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체포하여 자신들의 대공회에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죄를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것입니다(23:1). 목적은 뻔합니다. 그들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의 집행권이 없으므로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로마총독 빌라도에게 처형을 부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8:31);

1)      그렇지만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나사렛 예수가 조금도 로마황제에게 반역을 도모하고 있는 자가 아닌데 그를 처단하고자 하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돌려보내고자 합니다(23:4).

2)      그와 같은 사실을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이 이미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말로 나사렛 예수를 로마총독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그리스도라 하더이다”(23:2). 그러한 유대인들의 거짓고발에 로마총독이 속아넘어갈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름대로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빌라도입니다. 그는 끝까지 일에 개입하지 아니하려고 예수를 마침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갈릴리의 분봉 왕에게 이첩을 하는 무진장 애를 쓰고 있습니다(23:7).

(4)   넷째, 그렇다면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총독인 빌라도로 하여금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만들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

1)      일단 나사렛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며 구세주인 그리스도라고 칭하면서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아니하고 로마총독부를 쫓아내자고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는 자라고 거짓으로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23:2). 하지만 그것으로 빌라도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23:4). 로마총독이 자기 나름대로 나사렛 예수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따라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이 마지막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생각보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을 도모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무죄 방면하겠다고 하는 로마총독 빌라도는 역시 로마황제에게 역심(易心, 반역하는 마음) 품고 있는 신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19:12).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시리아 총독과 로마황제에게 그렇게 보고를 하겠다고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3)      그리하면 빌라도는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거짓고발인 번연히 알면서도 불필요한 로마황제의 의심을 피하기 위하여 틀림없이 나사렛 예수에게 십자가 처형을 선고할 것입니다(23:23-25). 참으로 간특(奸慝, 간사하고 악독함. 여기서는 약게도 상대방의 약점과 틈을 파고드는 것임) 유대교지도자들의 책략입니다. 그들은 이미 종교적인 지도자로서의 신앙 양심은 버린 오래입니다. 그저 세상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세속적인 종교적 기득권만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유대교의 비극적인 타락의 모습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무리가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그리스도 하더이다 하니”(23:1-2);

(1)   여기서의 무리 대제사장을 대표로 하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의 구성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23:4). 그들이 성전의 경비대장과 수하를 동원하여(22:52) 예수님을 끌고서 로마총독인 빌라도를 찾아가고 있습니다(23:1). 참고로, 빌라도는 평소에는 로마의 총독부가 군대와 함께 주둔하고 있는 가나안의 해안도시 가이샤라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의 가장 명절인 유월절에는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머물고 있습니다. 이유는 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몰려드는 엄청난 수의 순례객들과 국내외의 경건한 유대인들 때문입니다. 혹시 유대인들이 그때를 이용하여 로마에 반역을 도모할지 모르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안전과 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로마총독이 현지에 머물면서 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로마총독 빌라도를 찾아간 이유는 그들에게 사형의 집행권한이 없기 때문입니다(18:31). 비록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예수님을 종교적으로 재판하여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판결을 하였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게는 사형의 집행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당시는 로마총독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과 사마리아 땅을 모두 다스리고 있던 소위 군정시대’(軍政時代)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최종 재판권과 사형의 집행권한은 속국의 백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국인 로마제국의 황제가 파견한 예루살렘 총독에게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한 시대이므로 단지 나사렛 예수가 유대교리와 다른 이단적인 사상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하여 로마총독에게 사형을 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로마의 반역자가 아니면 십자가 처형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단지 나사렛 예수를 처단하기 위하여 거짓말로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마디로 예수가 로마의 반역자라는 것입니다. 거짓증거가 다음과 같습니다;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그리스도 하더이다 하니”(23:2).

(4)   참으로 세속적으로 타락한 자들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목적만 정당하다면 어떠한 비열한 거짓말을 하고 거짓증거로 고발을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목적과 수단이 모두 의로운 것인가를 주시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수가 없는 부끄러운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23:3-4);

(1)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고발한 주장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지 말자고 유대인들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가 유대인들의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로마황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인 자신을 섬겨야만 한다는 논리가 됩니다. 셋째, 예수가 메시아인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세가지 혐의에 대하여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에게 한가지 질문만 하고 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23:3a).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망서리지 아니하시고 말이 옳도다”(23:3b)라고 답변을 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대제사장들을 위시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의 고발내용을 만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빌라도의 태도가 다릅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에게 사람(나사렛 예수)에게 죄가 없도다”(23:4)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세가지 연유를 추론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빌라도가 총독부의 정보조직을 가동하여 지난 3년간 나사렛 예수 일행의 천국복음운동에 대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의 군정아래에서 유대인들이 종교운동을 가장하여 독립운동을 도모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종분석의 결과는 로마황제의 유대 통치에 대하여 조금도 위협요인이 되지를 않는다고 하는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요청을 받아 들여서 나사렛 예수를 처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슬쩍 심문하는 제스처를 했을 뿐입니다.

2)      둘째, 본디오 빌라도는 본래 로마의 장군입니다. 그는 소아시아 본도 지방에서 공을 세운 바가 있기에 칭호가 본디오입니다. 그러므로 용맹한 장군이면서 동시에 지략에 밝은 자입니다. 그러한 빌라도 총독이 유대교 내부의 알력에 대하여 로마황제의 유대인 통치에 위협이 되지 않는 개입할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는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이 나사렛 예수를 자신의 칼을 빌려서 제거하고자 로마에 대한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23:2) 진작에 눈치를 채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셋째, 빌라도 총독이 유대교내의 알력과 유대인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굉장히 민감하고 정보에 밝으며 정세판단이 뛰어납니다. 이유는 그가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 땅에 부임한지가 벌써 6년이 지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빌라도는 주후 26년에 부임을 했는데 지금은 주후 32 4 15 유월절 다음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현지의 사정을 꿰뚫고 있는 빌라도 총독입니다. 그러한 그가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고발한다고 하여 그러한 거짓증거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나사렛 예수를 처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23:4).  

셋째로,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23:5); 그런데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대항하려고 했다고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23:5).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예수를 심문한 결과 그는 죄가 없다고 선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23:4) 유대교지도자들은 계속 억지주장을 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빌라도는 그들의 내부적인 분쟁에 휘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몸을 피할 수가 있을까요? 빌라도의 머리 계산이 민활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결과 하나의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넷째로,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23:6-7);

(1)   지금은 유월절이 시작된 무교절(無酵節, 누룩이 들어가지 아니한 딱딱한 , ‘마쪼 일주일간 먹는 절기, 12:15-17)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헤롯 왕가의 분봉 왕들이 모두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고 있습니다(23:b). 그들이 어째서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있을까요?

1)      그들은 본래 에돔 족속입니다. 에돔 족속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자 바벨론의 편을 들면서 재빨리 가나안 남부지역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원정 때에는 이두매로 불려지게 됩니다.

2)      주전 2세기에 에돔 족속들은 헤브론을 수도로 삼고서 동쪽의 유목민 나바테아인들과 전투를 벌였는데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틈을 노려서 주전 125년에 레위인들이 세운 하스모니안 왕가의 힐카누스 왕이 이두매를 공격합니다. 패전한 이두매 사람들은 모두가 할례를 받고 유대교인이 되는 조건으로 목숨을 유지하면서 국경 남쪽에서 살게 됩니다(3:8).

3)      이두매 출신으로 하스모니안 왕가의 실력자가 안티파터가 똑똑한 둘째 아들 헤롯을 하스모니안 공주와 결혼을 시킵니다. 그리고 헤롯은 로마의 권력자들로부터 유대 왕의 자격을 얻고 시리아 총독으로부터 군대를 빌려서 유대 땅의 반대자들을 모두 물리침으로써 유대 땅을 다스리는 헤롯 왕가를 세웁니다.

4)      그렇지만 헤롯 대왕은 수가 많은 유대인들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그들의 유대교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모양새를 갖추게 됩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성전의 증축 공사입니다(2:20). 그리고 매년 유월절에는 성전을 방문합니다. 헤롯 대왕은 주전 4년경에 벌써 죽었지만 그의 아들들인 분봉 왕들이 역시 유대교인의 자격으로 주후 32년에도 유월절기를 맞이하여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실을 로마총독 빌라도가 알고 있습니다(23:7b). 그리고 그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23:7a). 그래서 관할권을 내세워서 나사렛 예수의 처리를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는 헤롯 안디바에게 맡기고자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슬며시 질문을 던집니다;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23:6). 대답은 뻔한 것입니다. 예수는 갈릴리의 산골마을 나사렛 출신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잽싸게 예수님을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에게 송치하고 마는 것입니다(23:7b).

결론적으로, 이방인인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살려주고자 합니다. 그러나 동족인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메시아가 나타나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모두 몰아내고서 옛날 다윗대왕이 건설했던 선민의 제국을 다시 건설해주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이 메시아로 그들의 땅에 오신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서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 처형을 하도록 만들고자 그처럼 열심입니다. 이유는 마디로,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민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릴 있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이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제국이 아니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이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아만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를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메시아가 나타나 자신들의 유대교를 분열시키고 그들 유대교지도자들의 종교적인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는 것을 지극히 싫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예수님 당시의 일만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신앙생활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조정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지도자들과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타산지석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시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