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14강(눅22:47-5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3. 15:48

누가복음 강해 214(22:47-5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8()

 

예수님의 체포과정에 대하여(22:47-53)

 

예수님께서 12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다락방에서 가지십니다. 그리고 감람 산에서 기도를 하시고 내려오시는 길에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무리들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십니다. 그러한 내용이 4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 누가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상황을 보다 정치적인 시각에서 다음과 같이 특이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다른 복음서에서는 가룟 유다가 산헤드린 공회의 경비대를 이끌고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26:47, 14:43, 18:3). 그러나 의사 누가는 그것이 아니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함께 가룟 유다의 안내로 감람 산으로 직접 예수님을 은밀하게 체포하기 위하여 왔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습니다(22:52).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여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당시 유대교와 다른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예수님을 하루 빨리 제거하는 것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의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러한 중차대한 문제를 일개 밀고자에 불과한 가룟 유다의 손에 전적으로 맡겨 놓고서 유대교지도자들이 팔짱을 끼고서 기다릴 있는 입장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2)   둘째, 다른 복음서를 살펴보면 가룟 유다가 체포조와 함께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벌써 알고는 계시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집어서 말씀하시지는 않고 계십니다(26:49-50, 14:45-46,18:4-5). 그런데 의사 누가는 그것이 아닙니다. 아주 정확하게 이유를 예수님께서 언급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22:48). 의사 누가의 기록이 보다 명쾌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저 사도 베드로가 혼자서 칼을 뽑아 체포조 가운데 사람을 공격했다고만 적고 있습니다(26:51, 14:47, 18:10). 그런데 의사 누가는 그렇게 단순하게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보다 앞뒤의 메시지를 살펴서 아귀를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사도들과 제자들이 스스로 보호하기 위하여 검을 지니고 다니라고 말씀하십니다(22:36). 그리고 12사도들에게 2자루의 검이 있음을 확인하시고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언급하십니다(22:38). 이에 따라 본문에서는 예수님 주위에 있는 사도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님께 묻고 있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22:49). 사도들 가운데 검을 지니고 있는 2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즉답(卽答, 곧바로 답변함) 하시지 않자 상황이 급함을 보고서 사도 베드로가 먼저 칼을 뽑아서 대제사장의 종을 공격한 것입니다(22:50).

(4)   넷째, 다른 복음서에서는 사도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의하여 대제사장의 종의 귀가 베어졌다고만 적고 있습니다(26:51, 14:47, 18:10). 그런데 의사 누가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귀를 만져서 낫게 해주셨다는 사실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22:51). 의사 누가가 전하고 싶어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을 잡으러 사람들까지 용서하시며 그들을 고치시고자 하시는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하고 있는 로마의 병정들까지 용서하시고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까지 의사 누가가 역시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3:33-34).

(5)   다섯째, 의사 누가는 예수님을 유대교지도자들이 체포한 순간부터 그들은 어둠의 권세에 지배를 받게 된다고 하는 영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2:53). 그것은 예수님이 천국복음을 전하고 치유의 사역을 해주고 있을 때와 그것을 못하도록 완전히 근절하고 있을 때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마음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를 하고 있을 때에는 성령님께서 동행하시는 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뜻이 살아서 역사를 하고 있을 때에는 어둠의 권세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때라는 사실을 쉽게 있도록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말씀하실 무리가 오는데 12중의 하나인 유다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22:47-48);

(1)   의사 누가는 감람 산에서 기도를 끝내신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말씀을 나누고 있을 때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을 이제부터 기술하고자 합니다(22:47a, “말씀하실 ”). 사건은 동안 예수님과 사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감람 산의 처소를 알고 있는 가룟 유다의 소행입니다(18:2). 유다는 유대교지도자들과 담합을 하여 예수님을 은밀하게 체포해줄 있도록 조력을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22:6). 공로로 유대교 내에서 자리를 얻으려고 획책하고 있는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말을 갈아타는 정도는 일도 아니게 해치우고 있는 엄청난 기회주의자입니다.

(2)   가룟 유다는 어두운 밤이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예수님께서 일부의 사도들과 함께 감람 산의 기도처소에 계신 것을 멀리서 쉽게 발견을 합니다. 그래서 체포조보다 앞서 나아와서 예수님께 문안을 하는 것처럼 반갑게 키스를 하려고 합니다(22:47b-48a). 그것은 사도들과 함께 있는 사람 가운데 누구가 예수님인지를 집어주고자 하는 가룟 유다의 술책입니다(14:44). 이제 비록 어두운 밤이지만 누가 예수님인지를 식별하게 체포조가 금방 덮쳐올 차례입니다.

(3)   바로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결코 잊지 못할 마디를 하십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22:48b);

1)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유대교지도자들을 모두 징벌할 있는 능력도 충분하게 지니고 계십니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없는 줄로 아느냐? ”(26:53).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체포를 당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26:54). 그렇다면, 가룟 유다 자신은 엄청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고난의 길을 가시고 있는데 갸룟 유다 자신은 기회를 이용하여 스승을 적에게 팔고서 입신양명의 기회를 얻고자 것입니다. 그것은 용서를 받지 못할 크나큰 죄악입니다.

4)      그날 밤의 일을 생각하면 한없이 자신의 선택을 저주하게 되는 가룟 유다입니다. 끝내 자신의 배신행위를 용서할 수가 없게 유다는 보상금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돌려주고서 그만 깊은 회한과 절망 가운데 자결을 하고 맙니다(27:3-5).

둘째로,그의 주위 사람들이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중의 사람 대제사장의 종을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22:49-51);

(1)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도들이 어째서 가룟 유다가 갑자기 감람 기도처소에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는 많은 무리를 끌고서 밤중에 그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적들로부터 방어하는 것이 급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을 뽑아서 대항을 하고자 예수님의 동의를 먼저 구하고 있습니다(22:49). 그들에게는 사실 검이 자루 뿐입니다(22:38). 따라서 용감한 호위사도 베드로와 야고보가 자루의 검을 뽑아서 적의 접근을 저지하는 사이에 다른 사도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어둠 속으로 피신하면 같습니다.

(2)   가장 좋은 방어는 바로 공격입니다. 원리를 파도가 심한 갈릴리 바다에서 험한 어부생활로 잔뼈가 굵어진 사도 베드로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답변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갑자기 적들을 향하여 선제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칼날에 앞서 달려오던 적병 사람의 귀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는 사람의 신분이 공관복음에서는 대제사장의 ”(26:51, 14:47, 22:50)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훗날 4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사도 요한은 상세하게 종의 정확한 소속과 이름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자는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가 보낸 성전의 정식 경비대원이 아니라 전전직 대제사장이며 가야바의 장인인 유대교의 막후실세 안나스가 불법적으로 보낸 집의 하인 말코인 것입니다; “ 종의 이름은 말코라”(18:10), “먼저 안나스에게 끌고 가니 안나스는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18:13), “대제사장의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18:26). 사실을 통하여 예수님을 체포하여 자신의 저택으로 먼저 끌어가고 있는 안나스는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심문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의 유대교는 대제사장 가야바가 다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비선실세’(秘線實勢, 제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나 권력자와의 친분으로 부당하게 막후에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를 말함) 장인 안나스가 다스리고 있는 잘못된 종교집단이라는 사실을 엿보게 해주고 있는 장면입니다.

(4)   참으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본문에서 의사 누가가 독점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22:51);

1)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게 되는 수모가 예수님에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그것을 참지 못하고 대항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참으라고 하십니다(22:51a). 이유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로 삼기 위해서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      벌써 이사야 53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예언,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깎는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53:7) 등의 예언과 예수님의 예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성취하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을 가야만 합니다.

3)      그러므로 하늘의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체포를 막아서도 안되고(26:53-54) 사도들이 일을 방해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26:52, 54, 22:51a). 요컨대, 어디까지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셔야만 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4)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체포하러 사람들에게도 장차 사함과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체포하러 와서 오른쪽 귀를 잃어버리고 있는 말코에게도 치유의 은혜를 베푸십니다(22:51b). 그것은 땅에 떨어진 귀를 주워서 깨끗하게 소독을 다음에 위치에서 꿰매어준 봉합수술이 아닙니다. 순전히 영이신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으로 예수님께서 말코의 귀를 만져서 자리에 새로운 귀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22:51b).

셋째로, 예수께서 잡으러 대제사장들 성전의 경비대장들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22:52-53);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예수께서 잡으러 대제사장들 성전의 경비대장들 장로들에게 이르시되”(22:52a); 의사 누가가 그날 가룟 유다를 앞장 세워서 감람 산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사람들의 정체에 대하여 정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지도자들이며 사두개파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입니다(22:52a). 그들이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자신들의 하인들을 데리고 출동한 것입니다. 특히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인 안나스는 자신의 하인들을 데리고 직접 나서고 있습니다(18:13, 26). 그는 현직 대제사장이 아니므로 합법적으로는 예수님을 체포할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법치에 구애를 받지 아니하고 무력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체포과정에서 불법적인 행위가 버젓이 자행이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뭉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22:52b-53a); 사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중무장을 자들을 파견할 이유가 없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매일 예루살렘성전에 들리셔서 밝은 대낮에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을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선포하시고 이치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심신이 약한 자들, 병자와 장애자를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주십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실시하신 말씀사역과 치유사역에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면 조용하게 산헤드린 공회로 출석을 시켜서 자초지종을 따지고 판결을 하면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러한 평화적이고도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디로, 유대교지도자들에게는 예수님을 적법하게 체포할 만한 합법적인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예수님과 히브리 정경에 대하여 논쟁을 하게 되면 그들이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눈이 무서워서 낮이 아니라 밤중에 그것도 성전 내가 아니라 한적한 감람 산에서 예수님을 전격적으로 체포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나 이제는 너희 ,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22:53b); 유대교지도자들이 밝고 정당한 방법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둡고도 불법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1)      구체적으로, 배신자 가룟 유다를 앞세워서 감람 산으로 쳐들어와서 밤중에 예수님을 색출하여 전격적으로 체포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선민들의 지도자인 그들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나선 것입니다.

2)      따라서 예수님께서 내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시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실 때까지는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비참하고도 캄캄한 암흑의 역사가 찾아올 것입니다(22:53b). 마치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처치하고서 그것을 차지하고자 하는 농부들처럼(21:37-39) 유대교지도자들이 하나님 아들을 해치우고 유대교를 사유화하고자 하는 야욕만이 기승을 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의 의도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에 의하여 기독교의 교회역사가 시작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40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로마군대에 의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쫓겨나게 되는 비참한 역사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암흑의 세력이 기승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밝히려는 역사섭리 앞에 무릎을 꿇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두드러지게 엿볼 있는 것은 다음 세가지입니다; 첫째, 끝까지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유대교와 종교적인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예수님을 부당하게 체포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처사입니다. 셋째, 적들에게 검을 들고서 무모하게 맞서고자 하는 사도들의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검을 거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정식으로 성전에서 자신을 산헤드린 공회로 호출하여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고 그와 같이 무장세력을 동원하여 한밤중에 부당하게 체포를 하고자 시도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잘못을 질책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떠나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순순히 체포에 응하시고 계십니다.

얼마든지 적들을 물리칠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결코 힘을 사용하고자 하시지를 않습니다. 이유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만민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고 있는 길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을 받아 들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들이 본받아야만 하는 제자의 ,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길입니다. 아무쪼록 길을 신실하게 달려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