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13강(눅22:39-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3. 04:31

누가복음 강해 213(22:39-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7()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에 대하여(22:39-46)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감람 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하신 장면이 마태, 마가, 누가 등의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내용을 기록하면서 의사 누가는 특이한 지적을 가지 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기도를 하러 가셨다고 적고 있습니다(22:39). 그것은 마가와 마태가 놓치고 있는 대목을 의사 누가가 제대로 적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오랜 시간 말씀을 묵상하면서 뜻을 알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셔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간을 별도로 가지고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여 천국복음으로 백성들에게 선포하며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복음의 생명력이 그토록 대단하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2)   둘째,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기도처소로 들어가시기 전에 수행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22:40). 그것은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는지 이유의 하나를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이기시기 위하여 기도에 집중을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혹이란 육신을 가지신 예수님이시기에 다른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지니고 있는 약점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극도의 고통을 오랜 시간 당하는 십자가처형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단숨에 목을 쳐서 번제로 드리는 제사라고 하면 고통이 일순간에 끝나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십자가에 매어 달려서 천천히 죽어가는 극한의 고통을 견뎌야만 한다는 것입니다(22:42). 인간의 엄청난 죄악을 청산하자면 정도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하시니 약한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매일같이 매어 달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디 다른 처형의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3)   셋째, 예수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서 돕고 있다고 의사 누가가 적고 있습니다(22:43-44). 그것은 마치 모세가 호렙 산으로 올라가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원수 아말렉의 기병과 싸우는 모습을 내려다 보면서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높이 들고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양쪽에서 도와 주고 있는 아론과 훌의 역할과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의 팔을 지탱하여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줄 때에 여호수아의 군대가 아말렉의 기병을 완전히 물리치는 승리가 찾아오고 있습니다(17:12-13).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이 예수님의 피곤한 육신을 보살펴주고 있기에 예수님께서 처절한 간구를 모두 마치시고 마음속 평안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정해진 대속의 십자가를 향하여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가실 뿐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나가사 습관 따라 감람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22:39-40);

(1)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시점을 사도 요한은 초막절이 지나서라고 적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7:2-3),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7:8-10). 그때 초막절이 지난 주후 31 10월말부터 예수님 일행은 그해 겨울 수전절과 이듬해 주후 32 4 유월절까지 예루살렘과 근방에서 지내십니다;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10:22),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되,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12:1).

(2)   물론 겨울철 수전절과 이듬해 유월절 사이에 한동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체포 움직임을 피하여 요단 건너 또다른 베다니 마을로 가십니다(10:39-40). 그리고 그곳에서 복음사역을 하시게 됩니다(10:41-42). 하지만 체포 움직임이 완화가 되자 다시 요단 강을 건너서 예루살렘이 가까운 감람 아래 마을 베다니로 오십니다. 그곳에서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내에 가셔서(8:2) 복음사역을 하시고 오후 늦게는 베다니에 있는 숙소인 나사로의 집으로 오신 것으로 보입니다(7:53, 8:1).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는 감람 산으로 가셔서 매일같이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십니다(22:39).

(3)   의사 누가는 성도들이 매일같이 기도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빌려서 마디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22:40). 사도 바울의 교훈 가운데 기도에 대한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깨달은 마음으로 5마디 말을 하는 것이 1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9).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복음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도가 자신의 행동을 말씀에 따라 실천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뜻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4)   정리를 해보자면, 말씀을 묵상하면서 뜻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하게 구하며 동시에 자신의 삶이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 바로 기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서 실천할 때에 비로소 사탄과 세상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기도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그것을 실천할 있는 능력을 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말씀의 묵상과 능력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매일같이 생활화되어 있을 때에 사탄의 유혹은 힘을 상실하게 된다고 말할 있습니다(6:17-18). 그런데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기도가 상당히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유는 가장 고통스러운 대속의 십자가를 지셔야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그들을 떠나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22:41-42);

(1)   의사 누가가 예수님의 기도의 장소 기도의 자세 그리고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의 장소는 제자들과 던질 만큼 떨어진 곳입니다(22:41a). 50미터 정도 떨어진 조용한 곳으로 보입니다. 둘째, 기도의 자세는 무릎을 꿇고서 하는 것입니다(21:41b). 셋째, 기도의 내용은 나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역사가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2:42). 그것은 결국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순종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22:42b).

(2)   하지만 기도의 과정에 있어서는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뜻으로 고난의 잔을 부디 옮겨 달라고 하는 간절한 요청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도 약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부디 극악한 형벌인 십자가 형만은 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뜻을 받아 들여서 십자가 제사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고통이 아주 순식간에 끝나게 되는 번제라는 형식이라도 취하게 해달라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3)   따라서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다음과 같이 알게 됩니다; 첫째, 기도는 나의 뜻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조율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둘째, 당장 자신의 뜻에 하나님의 뜻을 맞추도록 강청하여 요구가 관철이 되게 되면 이익이 나는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 나의 욕심 때문에 어긋나게 되기 때문에 결국은 나를 포함하여 모든 이해당사자들에게 손해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올바른 기도의 결과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나의 뜻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보너스를 주십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십자가 고난에 있어서는 보통 3-4 동안 매달려서 고통을 당하는데 예수님의 경우에는 6시간만에 운명을 있도록 고통의 시간을 엄청나게 단축시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조율해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례이며 일종의 보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22:43-44);

(1)   약한 육신을 지니고 있는 인간이 과연 현세적인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기도의 결론을 쉽게 얻을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과정에서 얼마나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십니다. 내일이면 극형 중의 극형인 십자가 처형을 받아야만 하는데 어떻게 순순히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 들일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의 육신은 다시 한번 아버지께 간구하여 죽음의 형식을 바꾸어 달라고 강청을 하라고 합니다.

(2)   최근에 매일같이 반복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간구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이제는 당장 그날이 내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빨리 결론이 나와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이 어느때보다도 요청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기도를 도와주고 있습니다(22:43).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방법만은 피하고 싶다는 예수님의 기도의 내용이 바뀌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살려 달라고 하는 간절한 기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하는 기도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만은 줄여 달라고 하는 몸부림이 여전히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22:44a).

(3)   마침내 천사의 도움으로 탈진상태를 면하면서 십자가의 희생방법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때 핏방울처럼 떨어지고 있는 예수님의 땀방울을 보시고서(22:44b)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너무 걱정과 염려를 하지 아니하도록 6시간으로 십자가 고통의 순간을 줄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15:25, 33-37, 23:44-46). 그와 같은 하나님의 배려와 고통의 시간적인 경감이 없으면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종말의 고난도 빨리 끝날 수가 있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은혜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때에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24:21-22).

넷째로,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22:45-46);

(1)   대속의 십자가 형벌은 예수님께서만 당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일로 말미암아 함께 체포가 되거나 처형이 되는 사도나 제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라서 감람 산으로 함께 기도하고자 동원이 되고 있는 사도들은 스승님처럼 절실하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결과 기도를 하다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잠에 떨어지고 있습니다. 모습을 사실은 예수님께서 번이나 기도 도중에 방문하여 보시게 됩니다(14:37-38, 40-42).  

(2)   그런데 의사 누가는 달리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으로 압축하여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22:45-46).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는 도중에 사도들의 기도장소를 방문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곤히 자고 있습니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예수님께서는 정해진 수순대로 체포를 당하시고 여러 차례 심문을 받은 후에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그것이 자신이 당하는 일이 아니고 단지 스승님의 예언에 불과하므로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의 처지를 먼저 좋게 이해를 하시고서 다음에 권면의 말씀을 해주시고 있습니다;

1)      첫째, 이제 시간 후면 사도들이 마치 목자를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는 양처럼 되고 것입니다(14:27). 그들은 스승님을 잃어버린 슬픔에 빠지게 되고 것입니다. 그것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계시는 예수님이심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22:45).

2)      둘째, 앞으로 슬픔도 이겨내고 세상을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시험을 이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권면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22:46).

결론적으로, 기도는 그냥 자신의 생각이나 뜻만을 아버지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영이시며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의 이기적이고도 세상적인 공부나 방법으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사람들이 적어 놓은 영적인 깨달음의 글들을 성경으로 성도들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효과적인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것에 발맞추어 자신의 기도의 내용을 변화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설사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그것을 온전히 실천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릴 있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성령님의 역사가 말씀과 기도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결론을 얻을 있는 예수님의 감람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말씀의 묵상과 기도가 하나로 합체가 되며 그것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실천이 되는 성도님들의 영적인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