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11강(눅22:31-3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1. 21:37

누가복음 강해 211(22:3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5()

 

똑같은 유혹, 동일한 예수님의 기도, 그러나 당사자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길에 대하여(22:31-34);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의 예를 본보기로 삼아 제자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체포를 당하시기 전에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는 마지막 유훈(遺訓, 최후에 남긴 교훈) 조각과 같습니다. 마치 옛날 모세가 신명기를 기록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고 있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생명과 사망, 그리고 복과 저주를 백성들 앞에 두시는데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고 말합니다(30:19). 또한 선택에 따라서 책임을 져야만 하므로 부디 사망 대신에 생명을 택하고 저주 대신에 복을 선택하도록 하라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30:20).

그와 같은 심정으로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   첫째, 사도들 가운데 자신과 나이도 비슷하고 마치 친구처럼 우정을 나누고 있는 유부남 베드로에게(4:38) 개인적으로 당부하는 것처럼 하여 모든 사도와 제자들이 알아 들을 있도록 쉽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은 사실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사탄이 가룟 유다를 유혹하듯이(13:21, 26-27) 그렇게 베드로를 유혹했다는 것입니다(22:31). 그러므로 사탄의 동일한 유혹은 다른 사도들은 물론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항상 복음사역의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12사도 가운데 사람이 자신을 것이라고 단언하십니다(13:21). 그리고 본문에서는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사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고 특히 베드로의 예를 들어서 말씀하십니다(22:32).

(4)   넷째, 예수님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가룟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대제사장에게 보여서 새로운 출세의 길을 잡아보고자 합니다(14:10-11). 그것은 적극적인 패역함입니다.

(5)   다섯째, 비록 소극적인 배신이지만 다른 사도들도 스승을 버리고 자신의 살길을 찾아서 떠나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미리 알려주십니다(26:31).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사도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26:35). 특히 가장 먼저 자신을 믿어 달라고 소리를 치고 있는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는 뼈아픈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22:34). 그리고 사도들에게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불행하게도 다음날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맙니다(14:50, 22:56-6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 너희를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22:31);

(1)   시몬아, 시몬아”(22:31a)라고 연거푸 부르고 있는 것은 간절하거나 다급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정말 간절하게 알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기에 그의 이름을 그렇게 반복하여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가룟 유다 사람만을 유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라고 하는 단수가 아니라 여기서 너희를’(22:31b)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2)   흔히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탄이 가룟 유다만을 유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만이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 살길을 찾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12사도 모두를 유혹했습니다. 유혹의 내용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들은 예수님이 정치적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 외세를 몰아내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실 것으로 믿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제 예언의 말씀 그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처형이 되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들도 위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빨리 살길을 찾아야만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고발자가 되어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스승을 팔고서 아예 말을 갈아 타는 것이다. 공을 세우게 되면 엄청난 보상이 따를 것이다. 유대교 내에서 자리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3)   그와 같은 사탄의 유혹에 마구 흔들리고 있는 12사도들의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사탄의 장단에 마치 까부르듯’(22:31c) 흔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와 같은 위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탄도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 것도 스스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보내어 주신 자들은 구원의 대상입니다(6:37-40). 그들을 함부로 실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사탄이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경우에도 욥기의 기록이 그러한 것처럼 사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합니다(1:12, 2:6). 그래서 본문에서도 요구하였으나”(22:31d)라고 적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형제 굳게 하라”(22:32);

(1)   위와 같은 사실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12사도들의 마음이 사탄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중보의 기도를 해주십니다(22:32a). 그러나 최종적인 선택은 12사도들 각자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제자들의 자유의지에 의한 최종선택까지 함부로 좌지우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자유의지는 태초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여 부여하여 천부적인 특권이기 때문입니다(1:26-27).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최종선택을 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합니다.

(2)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가 있기에 사도들의 배신은 최소한에 그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에만 자신의 욕심에 이끌려서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팔고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자 합니다(26:14-16). 나머지 11사도들은 소극적인 행동에 머물고 있습니다. 위기가 닥치게 되자 대부분 도망을 치게 됩니다(26:56). 예수님을 따라갔던 사도 베드로만이 인상착의에 걸려들자 순간을 모면하려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차례나 부인을 따름입니다(22:56-60).

(3)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믿음을 보전하기 위하여 간절하게 기도하신 하나의 이유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돌이킨 형제 굳게 하라”(22:32b). 겉으로 보면, 사도 베드로에게 개인적으로 당부하는 말씀으로 보이지만 실제내용은 모든 사도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훗날 스승님을 버리고 떠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그때부터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과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장차 경험하게 되는 사도들의 사명인 것입니다(28:18-20, 21:15-19).

셋째로,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22:33-34);

(1)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사도들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충성심을 과시하고자 여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인간의 약함을 무시하고서 다분히 감정에 치우치고 있는 일시적인 결단의 목소리입니다. 먼저 성급한 베드로가 앞장을 서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22:33). 뒤를 다른 사도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26:35).

(2)   그들의 소원대로 현실화되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26:41). 훗날 사도 바울도 탄식하며 그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법을 깨달았노니,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5). 모두들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마는 것입니다(14:50).

(3)   자신의 충성심을 가장 먼저 강하게 주장했던 사도 베드로의 경우가 더욱 위험합니다. 자신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살고자 하는 본능을 간과하였기에 그가 자신의 주장과 같이 행동하지 못하게 되면, 수치와 분노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감과 좌절은 또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점을 내다보시고서 베드로를 걱정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미리 주시고 있습니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22:34). 훗날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현실이 임하게 되면 그때에는 자신의 약함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예언의 말씀과 같이 다음날 베드로는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승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게 됩니다(22:56-60).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를 못하고 통곡을 하게 됩니다(22:61-62). 그와 같은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이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사명을 부여하시는 것입니다(21:15-19). 하나는 예수님께서 다시 주시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임재하시게 되면 복음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있다는 예언입니다(24:45-49, 1:8).

    결론적으로, 인간의 모든 약함을 경험하시고 전부 아시는 예수님께서 처방을 마련하여 주시고 있기에 그것을 믿고서 사도들이 남은 인생을 쓰러지지 아니하고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일에 앞장서게 되는 베드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져야만 합니다. 결과 주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어떻게 성도들을 도와서 예수님의 제자로 한평생 살게 하는지를 깨닫고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만 합니다. 나와 같이 믿음이 약한 자를 택하셔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게 하시는 은혜를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베드로처럼 성도들은 자신의 믿음이 굳건하다고 과신하지를 말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과 지혜로 교회가 운영이 되며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고 착각하지도 말아야만 합니다. 일찍이 베드로를 다시 일으켜 세워서 교회와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신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주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성도님들의 전도의 삶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