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08강(눅22:19-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1. 08:59

누가복음 강해 208(22:19-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2()

 

예수님께서 그의 몸과 피를 바쳐서 이루고자 하시는 언약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무시하게 되면 어찌되는가?(22:19-23)

 

의사 누가가 적고 있는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성찬식의 의미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의미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저버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함께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주요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언약을 세우기 위하여 자신의 몸과 피를 모두 바친다고 하십니다(22:19-20). 도대체 언약이 무엇이기에 그것을 세우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전부 희생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1)      여기서의 언약이란 기존 언약을 새롭게 것을 말합니다. 기존 언약은 히브리정경에서 말하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12:1-4, 17:19, 22:17-18, 35:9-15, 3:6-10, 19:5-6).

2)      언약에 기초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출애굽의 역사가 있게 되고(2:24)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거룩한 백성 선민이 됩니다(19:5-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나라가 선민의 나라로 불리게 됩니다.

3)      나아가서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사함의 신탁의 말씀을 주시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짓게 합니다(25:1-9). 그리고 솔로몬 대왕에게는 성막을 모시는 예루살렘성전의 건축을 허락하십니다(삼하7:12-13, 왕상5:5).

(2)   둘째,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구원하심의 은혜를 자신들에게 계속 임재시킬 있는 요건으로서 전통적으로 세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성전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안식일에는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둘째가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셋째가 각종 절기와 규례 그리고 십일조를 비롯한 여러가지 생활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유대교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여호와를 모시는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인 할례 그리고 속죄의 제사의 방법을 지니고 있는 자신들이야 말로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세상의 중심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선민들의 유대교가 타락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를 모시고 사함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므로 모든 이방인들은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우대하고 말을 따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마디로, 선민들을 섬길 때에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괴롭히거나 무시하게 되면 그러한 나라와 민족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며 모두 멸망의 대상이 되고 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세상의 중심이 이스라엘이며 모든 영광은 선민들의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얻기 위해서는 선민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서운 선민우월사상이며 현세적인 축복의 사상입니다. 유대교의 기반이 그러한 유대교지도자들의 가르침 위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4)   넷째,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유대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 유대교리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하십니다. 하나님말씀의 진정한 뜻은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3:16-17). 그리고 현세적인 복을 나누어 주는 것보다는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5:24-29).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므로 세상 피조물들을 모두 돌보고 생명을 살리고 싶어하십니다. 그들 모두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는 그것이 하나님말씀의 취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서 이탈하고 있는 유대교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구원사상과 현세주의는 철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18:6-10).

(5)   다섯째,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만민구원사상과 영생구원사상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건설은 사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시내 언약 가운데 벌써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십니다. 다만 그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차이에 따라서 왜곡과 변질 그리고 현세적인 타락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는 출애굽시킨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선포하십니다; “세계가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5-6). 선민 모두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사함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결코 자신들의 죄만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1:5).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선지자 아브라함과 같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18:23-32).

(6)   여섯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말씀의 본래의 취지를 되살리기 위하여 3 6개월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사시면서 복음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유대교리에 빠져서 꼼짝하지를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1)      이제는 마지막 방법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과 피를 바쳐서 그들과 세상사람들의 속죄를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복음사역의 마지막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인생을 모두 바쳐서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자신의 마지막 소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부디 선민들의 마음을 돌이키셔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모두 구원하는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도록 해주십시오”.

2)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자신의 간구와 소원을 성찬식의 포도주와 떡에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마실 때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의 피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떡을 먹을 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평생동안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의 영과 육을 치유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3)      사실을 깨닫고 이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몸과 피로써 세우신 새로운 언약이 응할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언약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이나 자신의 민족만 현세적인 복을 받고 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언약의 주내용은 세가지입니다; 첫째,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천국복음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영생구원의 나라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전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7)   일곱째,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생과 몸과 피를 산제물로 바쳐서 이루고자 하시는 언약에 대하여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12사도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입니다;

1)      유다는 자신의 살길과 입지만을 챙기고자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입신양명하기 위해서는 이제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자 결심하시는 예수님을 버려야만 된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스승을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은밀하게 넘겨줌으로써 현실적인 대가를 얻고자 합니다. 그것은 단순하게 장정노예의 몸값인 30세겔이 아닙니다(26:15). 적어도 산헤드린 공회에서 일할 있는 자리와 신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2)      현실적으로 가룟 유다처럼 자신의 소원성취와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언약을 세우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도리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자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찬식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까요? 살길이 아니라 도리어 죽을 운명이 닥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화가 미친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예언이 본문에 적혀져 있기 때문입니다(22:21-22).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가져 감사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22:19);

(1)   떡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감사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린 경우가 차례 있습니다. 그때 오병이어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9:16-17, 8:6-9). 떡을 아무리 조각으로 떼어서 사람들에게 주어도 부족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기적 때에는 장정만 5천명 전체 2만명으로 추산이 되는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의 부스러기를 거두셨습니다(9:14, 17).

(2)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떡을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사도들에게 떼어 주십니다(22:19a). 그것은 하나의 다른 기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심으로써 떡이 제자들을 위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몸을 영적으로 상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떡을 사도들이 받아서 먹게 되면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서 행하신 모든 복음사역과 치유의 기억이 영적으로 그들에게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22:19b).

(3)   예수님께서는 훗날에도 사도들이 성도들과 함께 행하는 성찬식의 자리에서 그와 같은 영적인 기적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22:19bc);

1)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나면 사도들이 옛날 예수님과의 유월절 만찬 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성찬식을 거행할 것입니다. 떡을 가지시고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서 성도들에게 줍니다(고전11:23-24).

2)      떡을 받아 먹으면서 성도들이 자신들의 속죄를 위하여 몸을 희생의 제물로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그것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인생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을 기념하는 방법입니다.

둘째로,저녁 먹은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잔은 피로 세우는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이라”(22:20); 가장 중요한 순서가 나중에 있게 됩니다.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잔을 들고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니다(22:20a). 그리고 사도들에게 잔에 부은 포도주의 영적인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 잔은 피로 세우는 언약이니 너희를 위하여 붓는 이라”(22:20b); 조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히브리정경의 말씀 그대로 피는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17:11). 그러므로 생명으로 생명을 대신하듯이 반드시 제물의 피를 뿌려야 속죄의 제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속죄일의 제사도 그러합니다.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가지고 그날만은 지성소 안에 들어갑니다(16:15, 29-30). 피를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고서 여호와의 사면의 말씀이 울려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음성을 듣고서 성막의 뜰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함의 은혜를 선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1 동안 지은 죄가 비로서 사함을 받게 됩니다.

(2)   둘째, 히브리 정경에서 말하고 있는 제물은 우양(牛羊, 소와 )입니다. 그러므로 우양의 제사와 피의 뿌림으로 인하여 1 동안 지은 죄가 사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유대교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제례의식과 관련이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가 새로운 언약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불완전한 가축의 피가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 아들인 자신의 피가 사함의 도구로서 사용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7:27). 따라서 다음날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예수님의 대속의 피는 다음과 같은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1)      첫째, 매년 드리는 가축의 피가 아니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이므로 효력이 영구적입니다. 한번 용서하신 죄에 대해서는 일사부재리의 원칙이 적용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예수님의 피는 피의 부음을 받은 성도들에게만 효력을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 앞에서 스스로 회개하고 결단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별 구원이라는 새로운 언약입니다. 결코 집안구원이나 민족구원을 한꺼번에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3)      셋째, 성도들은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면서 영적으로 자신에게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때에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갈 있는 거듭난 삶이 영적으로 열리게 됩니다. 그러한 성찬식의 은혜는 선민에게만 국한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보혈의 은혜인 것입니다.

셋째로,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파는 사람에게는 있으리로다 하시니”(22:21-22); 3대목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나와 함께 상위에 있도다”(22:21); 원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승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의 성공을 위하여 스승을 팔아 치우려고 하는 배신자의 손이 같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는 자리에 원수가 참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현장에는 마귀의 하수인들이 일종의 정탐꾼으로서 너무나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2)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22:22a);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직진을 하십니다. 결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시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길을 달려가십니다. 악한 세력들이 끊임없이 위협을 하면서 회유를 하고 있지만 시험을 하나님말씀의 올바른 뜻으로써 모두 물리치십니다. 결과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의 길로 달려가십니다. 그것이 이미 작정이 새언약과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길이지만 동시에 결과를 생각하면 그것은 영광의 길입니다. 그리고 만민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참으로 후회가 없는 좁은 길입니다.

(3)   파는 사람에게는 있으리로다 하시니”(22:22b); 그렇지만 예수님의 언약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가 12사도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입니다;

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장차 사도들과 제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계승하는 자리에서도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 파는 사람에게는에서 있듯이, 1인칭이나 2인칭이 아니라 객관적인 3인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자들은 자신들이 예상하고 있는 작정된 길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가 자신이 원했던 현실적인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팔았기에 자살을 하게 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27:3-5). 장차 같은 잘못을 행하는 자는 마치 가룟 유다처럼 자신이 결코 원하지 아니하는 보응을 받게 것입니다(22:22b).

넷째로,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22:23);

(1)   세상에서는 완전히 선한 자가 없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에 약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선한 선생님이여”(18:18)라고 부르고 있는 부자청년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18:19).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만이 절대적인 선함, 모든 생명을 살릴 있는 전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2)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성도들이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12사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선한 그리고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스승을 파는 자가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실 때에 서로 자신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사도들을 쳐다보면서 자가 누구인지 묻고 있습니다(22:23).

(3)   사실은 그들 모두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그날 밤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14:27, 50). 특히 수제자로 불리는 베드로는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스승을 3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합니다(14:66-72). 그러므로 가룟 유다가 있는 요소를 조금씩 지니고 있는 것이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7:18-25).

결론적으로, 본문은 12사도들이 자신은 의로운데 다른 사도가 혹시 예수님을 팔아 치우고 혼자만 살길을 도모하고 있지나 않는지 그것을 확인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스스로 의인이며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희생하고 피를 그들에게 부어주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대속의 피로 세우고자 하시는 언약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의 생애를 기억하면서 지체로서 살아가고자 작심을 하는 제자들에게 효력을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크리스찬의 삶은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스스로 피의 제사로 세우신 언약의 은혜를 입어야만 합니다. 그때부터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영적인 삶을 힘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24:49, 1:8).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성찬식과 언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의미를 깊이 묵상하시고 모두들 힘찬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