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06강(눅22:7-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9. 18:29

누가복음 강해 206(22:7-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30()

 

마지막 유월절 만찬과 예루살렘의 대저택 다락방 집의 사람들에 대하여(22:7-13, 24:15, 4:7)

 

의사 누가는 본문을 포함하여 23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함께 지내신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록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출애굽기 12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유월절은 양력으로는 4 14 저녁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명령으로 달이 새해를 시작하는 첫째 아빕월 되고 있습니다(12:2).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아빕월 14일이 유월절 양을 잡아서 피를 문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서 먹는 날입니다(12:6-10). 그날을 기념하여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 해에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체포를 당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유월절 식사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22:15).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나누신 유월절 만찬이 역사적으로 마지막 유월절이 되기 때문입니다(22:16). 다음날에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유월절 양이 되십니다. 따라서 아빕월 14 어린양을 잡는 유월절 만찬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것을 대신하여 이제부터는 15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 제사를 드리신 금요일이 속죄를 위한 고난의 기념일이 되고 있습니다(7:27).

(2)   둘째, 공생애 기간 3 6개월 동안에 예수님께서는 4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십니다. 가운데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지내신 경우가 세번이나 됩니다. 하지만 유월절 만찬에 대한 기록은 오직 공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에 국한이 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마지막 유월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증언과 같이 세상사람들의 죄를 지고 가시는 완전한 유월절 어린양으로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1:29). 그러므로 네번째 유월절을 사도들과 함께 지내시고 다음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의 죽음을 맞이하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민들이 지키고 있는 전통적인 유월절이 사라지고 그때부터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완전한 유월절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성찬식이 전통을 대신하게 됩니다(고전11:23-26). 그러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의사 누가 역시 마지막 유월절 만찬만 기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요한복음의 기록에 비추어보면 공생애 기간 예수님의 유월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십니다(2:13). 두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십니다(5:1). 세번째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 지내십니다(7:1). 네번째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지내시며 그때 유월절 식사를 사도들과 함께 하십니다(12:1, 12, 13:1-4). 그리고 그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가 되십니다.

(3)   셋째, 예수님께서 12사도와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기 위해서는 넓은 방이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그러한 방을 준비한다고 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때 예수님께 자신들의 저택에 딸려 있는 넓은 다락방을 제공한 집안이 있습니다. 저택의 다락방을 빌리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십니다. 사도가 예수님의 지시대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서 객실을 얻게 됩니다(22:10-13). 일을 계시로 하여 다락방을 제공한 집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습니다. 훗날 복음서를 저술하게 되는 마가가 주인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마가의 외삼촌이 후속사도 바나바입니다. 그러한 기이한 역사는 옛날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하란 땅에서 리브가를 만난 이야기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수가성의 여인을 우물가에서 만난 이야기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집안의 구원은 그렇게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돕고자 하는 선의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구절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유월절 잡을 무교절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22:7-8);

(1)   때는 역사적인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 있은 다음의 일입니다(19:35-40).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공생애를 예루살렘에서 지내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22:1). 드디어 아빕월 14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 이르고 있습니다(22:7). 출애굽 당시에 제정이 유월절은 14일에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에 바르고 고기를 불에 구워서 가족이 저녁에 무교병 나물과 더불어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12:6-10). 그날 저녁부터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게 되므로 일명 무교절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22:1, 7).

(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3 6개월 동안 공생애를 지내십니다. 기간 동안에 4번의 유월절을 맞이하십니다. 의사 누가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주후 28년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고(3:1) 29, 30, 31, 32 4번의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신 것입니다. 가운데 요한복음의 기록에 따르게 되면, 주후 31년의 유월절 기간에는 갈릴리에서 지내시고 나머지 3번의 유월절 기간에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십니다. 그런데 공생애의 끝이 되는 마지막 유월절이 다가오자 갑자기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지시를 하십니다; “내가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있도록 준비하라”(22:8의역). 예수님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3총사(9:28, 26:37)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에게 내리신 명령입니다.

둘째로,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22:9-10);

(1)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12사도와 함께 공생애를 지내시면서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라고 특별히 명령을 하신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에 차례나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들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장소를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여짜오되,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22:9)라고 질문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답변을 심히 간단합니다;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면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것이다. 사람을 따라가서 집으로 무조건 들어가면 된다”(22:10 의역). 여기서 가지 사실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12명의 사도들이 함께 유월절 만찬을 있는 객실은 대도시 예루살렘이 아니면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루살렘 성내로 들어가서 구하라고 하십니다(22:10a). 둘째, 오후에 동이를 길러서 집으로 가고 있는 사람은 남자로 보입니다. 보통 저녁 무렵에 여인들이 물을 길으려고 우물가로 나오는데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별도로 물통에 물을 길어 가지고 집으로 가는 것으로 보아 집은 물의 사용량이 많은 부잣집입니다(22:10b). 셋째, 유월절 만찬을 준비하는 비용문제가 전혀 언급이 되고 있지 않습니다(22:9-10). 그것은 예수님께서 일러 주시는 집에서 객실과 유월절 만찬 모든 편의를 무료로 제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22:11-12);

(1)   예수님 일행에게 호의를 베풀 있는 예루살렘의 부자가 과연 누구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성내에서 동이를 길어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서 집의 주인을 만나라고 하십니다(22:10-11a). 그리고 다짜고짜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22:11b).

(2)   예수님의 지시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뒤이어 예언의 말씀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22:12). 다락방을 가지고 있는 저택의 주인이 호의를 베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기록은 창세기 24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의 이야기를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주인의 당부로 늙은 종은 북부 시리아 하란 나홀의 성으로 파송이 됩니다(24:10). 주인의 아들인 이삭의 신부감을 데리고 오기 위한 것입니다. 종은 하란에 도착하여 우물가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자신의 일행과 낙타에게 마실 물을 길어다 마시게 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는 처녀를 순조롭게 만날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녀가 바로 주인이 원하고 있는 믿음의 집안의 며느리임을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24:11-14).

(3)   종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나홀의 손녀인 믿음의 여인 리브가가 나타나 늙은 종의 일행에게 마실 물을 길어다 주고 나아가서 10필의 낙타에게도 일일이 물을 길어 마시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24:16-20). 그와 같은 헌신과 봉사를 귀하게 보시는 여호와께서 그녀를 약속의 아들 이삭의 아내가 되게 하십니다(24:58-67). 그러한 은혜는 예수님 공생애 초기에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 성의 여인에게도 주어지게 됩니다. 서늘한 저녁이 아니라 고의로 뜨거운 정오에 몰래 우물물을 길러 나온 여인입니다(4:6, 정오가  6시임). 남의 눈을 피하고 있는 여인은 여러 남편을 섬기고 있는 처지인지라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4:18). 하지만 그러한 여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4:7-9). 인연으로 여인과 수가성의 주민들에게 하나님말씀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으로 전파가 되고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이 됩니다(4:39-42).

(4)   나그네를 선대(善待, 선하게 대접하는 )하고 마실 물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얻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에서는 다락방을 가지고 있는 저택의 주인이 그러합니다. 그들이 바로 복음서를 가장 먼저 저술한 마가의 부모님입니다(14:51-52, 13:5, 13, 15:37-40, 딤후4:11, 벧전5:13). 그날 저녁 유월절 만찬을 편히 가질 있도록 자신들의 다락방과 음식을 제공하였기에 집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구브로 섬에서 건너온 마가의 외삼촌 요셉도 누나의 소개로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합류하게 됩니다(4:36-37). 그는 훗날 후속사도로서 유명한 선교일꾼  바나바가 됩니다(11:22, 13:3, 14:3).

넷째로,그들이 나가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22:13);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실천하게 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말씀과 예언대로 이루어질지 아니할지 자리에서 고민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말씀 따라서 그들은 나가서 실천을 따름입니다(22:13a).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되고 있습니다. 저택을 가진 부자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들의 다락방을 보여주고 그곳에 종들을 시켜서 유월절 만찬준비를 전부 갖추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22:13b).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유월절 어린양의 시대가 끝나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의 기록 그대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피를 대문에 바른 다음 집안에서 유월절 양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구원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로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들에게만 유월절 규례가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은 의미가 광대합니다; 첫째, 만민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선민 이방인 구분하지 아니하고 누구나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자신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게 되면 칭의의 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 영생구원입니다. 성도의 삶은 단순히 유월절 양고기를 먹는 만찬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마치 양고기를 꼭꼭 씹어서 먹고 소화하듯이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과 생애를 깊이 묵상하여 뜻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해 나가야만 합니다. , 성도들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있을 때에 영생구원이 주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그러한 의미가 포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깊은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