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05강(눅22: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8. 15:41

누가복음 강해 205(22: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29()

 

12사도의 하나인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하여(22:1-6)

 

이제 누가복음 22장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이 24장에서 끝나고 있으므로 앞으로 3장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22 첫머리에서부터 예수님의 죽으심이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2사도의 하나인 가룟 유다의 배신의 드라마가 드디어 시작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미루어 보아, 22-23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이야기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디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사역을 마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죄인인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의 내용을 참고하면,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희생이 되시기 때문에 옛날 애굽에서 그러한 것처럼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묻혀져 있는 자는 죄의 가리움을 받고 오늘날에도 구원을 얻게 됩니다(1:29).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대속의 피를 생각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의미가 무엇인지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인 24장에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주내용은 예수님의 부활과 제자들의 재교육 파송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과 부활의 증거자로서 살아가게 되는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얻으신 부활과 영생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의 마지막을 기술하고자 하는 첫머리에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외경인 유다복음의 기록을 인용하여 유다의 희생적인 배신의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어린양이 되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실 있게 되었다고 공로를 치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궤변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6:13).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도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를 물리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1-11, 1:12-13, 4:1-13).

성도의 삶이란 마디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따르느냐? 아니면 마귀의 유혹적인 말을 따르느냐? 하는 선택의 삶입니다(30:19-20). 시험이 12사도에게 있었지만 유일하게 가룟 유다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4복음서가 모두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26:14-16, 14:10-11, 22:3-6, 13:27). 그렇다면, 가룟 유다가 마귀의 유혹을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이익과 입신양명(立身揚名, 출세를 하고 이름을 크게 날리는 )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사도들이 원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부터 외세를 물리치시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시는 메시아의 역할을 수행하시는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상경하는 길에서 사도 야고보와 요한은 메시아의 나라에서 자신들에게 좋은 자리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20:20-28, 10:35-45). 그러나 예수님의 예언은 반대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아서 처형이 되신다는 것입니다(20:17-19, 26:1-2, 10:32-34, 18:31-34). 예언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이고서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하는 사도가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버리고 자신의 앞길을 새로이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영리한 가룟 유다가 두뇌를 자신의 보신책의 강구에 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것과 그를 버리고 유대교지도자들과 손을 잡는 사이의 손익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예언처럼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체포가 되어 처형을 당하시게 되면 사도들의 앞날이 캄캄해 집니다. 잘못하면 같이 잡히어 죽거나 도망자신세가 되고 것입니다. 유대교가 지배하고 있는 선민사회에서 곳이 없어져버립니다. 그것은 유다 남부의 가난한 시골마을인 가룟에서 오직 자신의 출세만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온 똑똑한 청년 가룟 유다의 선택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대교의 실세들과 손을 잡을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3)   셋째, 가룟 유다의 제안을 대제사장들은 환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지자 예수를 처단하고 싶지만 백성들의 지지 때문에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26:3-5, 19:47-48, 20:19, 22:1-2). 그런데 조용히 예수를 체포하고 그를 이단으로 만들 있는 방법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의 12제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소위 내부고발자로 나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가지의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첫째, 은밀하게 예수를 체포할 있도록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22:6). 둘째, 예수의 사상이 유대교리와 완전히 어긋나고 있다고 증언해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에게 미리 포상금을 주고 있습니다(26:15, 22:5). 유대교지도자들이 원하고 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면 가룟 유다의 앞날은 활짝 열리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진리인 거짓과 속임수에 입각하고 있는 달콤한 마귀의 유혹을 가룟 유다가 받아들인 것이므로 결과는 그의 예상과 전혀 빗나가게 되고 맙니다(27:3-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 다가오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22:1-2);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 다가오매”(22:1); 유월절과 무교절은 비슷하지만 조금 다릅니다;

1)      본래 유월절은 양력으로 4 14 금요일 저녁과 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12:6-14). 주전 1,446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을 하게 되는 밤에 유월절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호와께서 직접 강림하셔서 애굽인들의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시면서 죽음의 천사들에게 애굽인들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죽여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반면에,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기둥에 바르고 양고기를 구워서 무교병 나물과 함께 먹고 있는 집에는 일체 들어가지 못하도록 조치하십니다(12:6-13). 모세로부터 여호와의 주의사항을 듣고서(12:1-3) 준수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전부 여호와의 명령으로 죽음의 천사들이 집을 건너뜀으로써 죽음을 면하며 구원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 구원의 뜻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살아가라고 하는 의미에서 4월달을 머릿달 정월인 아빕월로 삼고 있습니다(12:1-2). 참고로, 바벨론 시대를 지나면서 유대인들의 설날은 10월달로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유월절은 양력으로 4월입니다.

2)      유월절 행사만으로 구원의 감격을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유월절부터 1주일간 무교절을 지키도록 합니다. 무교절은 크게 두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기간 내내 누룩을 제거하고 딱딱한 빵인 무교병을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12:15). 부드럽지도 아니하고 맛도 없는 무교병을 먹는 것은 옛날 애굽에서의 고생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입니다(12:17). 둘째, 유월절 금요일과 다음 금요일을 모두 성회로 지킵니다(12:16).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각자의 먹을 것만 갖추도록 되어 있습니다.

3)      유월절과 무교절은 유대인들의 최대의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국내외에서부터 경건한 유대인들이 모두 예루살렘성전으로 몰려듭니다. 달전부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매일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복음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무리들이 천국복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백성들의 질병과 장애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님의 인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그것을 유대교지도자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선민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이게 되는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을 심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과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성전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사역을 맛보고서 유대교를 개혁하고 개방하자고 나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2)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예수를 무슨 방도로 죽일까 궁리하니”(22:2a); 의사 누가는 예수를 죽이고자 궁리를 하고 있는 주동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유대교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입니다. 그런데 흔히 대제사장들이라고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적고 있습니다. 이유는 가야바의 장인이며 전전임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가 유대교의 실세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8:13). 그는 현직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하인을 파견하여 예수님을 체포하고 자신의 저택으로 먼저 끌고 오라고 하는 불법행위를 서슴지 아니하고 행하고 있습니다(18:12-14).

2)      예수를 체포하여 잡아 죽이는데 어째서 서기관들이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일까요? 이유는 그들이 백성들의 존경을 먹고 사는 율법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존경심은 그들의 제도적인 신분이 높아서라기 보다는 유대교정경인 율법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5:34, 22:3). 그러므로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인 바리새인 출신 서기관들은 율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출신의 선지자 예수가 나타나서 바리새인들이 정치(精緻, 정밀하고 치밀함)하게 주석을 마련해 놓은 히브리정경의 해석에 대하여 엄청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유대교리를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주의 축복사상 위에 건립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는 만민구원사상과 영생구원사상을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율법해석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은 대제사장 가야바 유대교의 실력자 안나스를 설득하여 예수를 빨리 처리하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22:2a).

(3)   이는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함이더라”(22:2b); 유대교의 실세인 대제사장들과 머리가 좋은 서기관들이 논의를 하고 있지만 나사렛 예수를 처리할 방도를 쉽게 강구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지지하고 있는 백성들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2:2b). 자세히 살펴보면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의 백성들까지 예수님의 천국복음과 치유사역에 감탄을 하고 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유대교 내에서도 개혁과 개방을 부르짖고 있는 파벌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교포 출신 또는 국제정세에 밝은 바리새인들이 중심이 되어 소위 힐렐학파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선민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창조주 되심을 세상에 전파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3:1, 19:38).

둘째로,12중의 하나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 성전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방도를 의논하매”(22:3-4); 2구절이므로 하나씩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1)   12중의 하나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22:3); 마태복음 26장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에 자신이 유대교지도자들에게 팔리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것이라고 예언의 말씀을 하십니다(26:1-2). 말씀을 12명의 사도들이 모두 듣고 있습니다.  이제 이틀이 지나면 스승이 자신들을 버리고 십자가 처형이 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계자이며 선민의 제국을 재건할 정치적인 메시아라고 굳게 믿고서 따라온 사도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만약 예언이 실제로 실현이 된다고 한다면 자신들은 소위 쫓던 개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크나큰 배신감에 사로잡힐 것이며 청운의 꿈이 모두 사라지고 것입니다. 그러나 11명의 사도들은 예수님을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팔고서 자신들의 입신양명의 길을 모색하지를 않습니다. 오직 한사람 가룟 유다만이 자신이 출세하기 위하여 스승을 팔아치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마귀의 엄청난 유혹을 자기 욕심에 이끌리어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22: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벌써 다음과 같이 예언을 하신 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12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12중의 하나로 예수를 자러라”(6:70-71).

(2)   이에 유다가 대제사장들 성전경비대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 방도를 의논하매”(22:4);

1)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가룟 유다가 사탄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승을 배신하려는 의도에만 그치지 아니하고 실제로 스승을 팔아 치우는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전승에 따르면, “사탄의 전신인 미의 천사장 루시엘은 주인이신 여호와의 권위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자신의 보좌를 창조주의 자리까지 높이고자 획책을 합니다(14:13-14). 결과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을 받아 세상으로 내어 쫓기고 사탄인 루시퍼가 되고 있습니다(14:15). 그리고 땅에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하여 거짓말로 예언을 하여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마귀의 꾀임에 빠진 가룟 유다가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를 찾아가서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는 세력들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2)      의사 누가는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성전경비대장들을 만나고 그들과 은밀하게 예수님을 체포할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 현임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전임이며 실세인 안나스와 상의를 하는 것은 이해가 쉽습니다. 그런데 성전경비대장들이 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조금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3)      첫째, 당시는 예루살렘과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 땅까지 전부 로마의 총독이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종교적인 자치권을 부여해주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이 사병을 가질 수는 없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전경비대장들은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4)      둘째, 유다 총독은 시리아총독의 감독을 받고 있는 하급 총독입니다. 그러므로 당시 수십만명의 로마군대는 시리아총독부가 관장하고 있습니다. 휘하에 있는 유다 총독은 비상시에 시리아총독에게 파병을 요청하면 됩니다. 따라서 유다의 총독은 평상시에는 그저 3명의 천부장들과 그들의 예하부대 그리고 약간의 기병대만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5)      예루살렘성전을 경비할 로마의 군대가 부족합니다. 따라서 총독부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체 경비대를 조직하여 스스로 경비를 담당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자체 경비대의 운영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로마총독부가 감독을 합니다. 로마군대의 책임자가 천부장들로 보입니다(18:12). 그러므로 여기서 성전경비대장은 유대인 자체 경비대의 간부들이라고 하겠습니다(22:4). 그들이 훗날 유대교실세인 안나스의 명령으로 한밤중에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겟세마네 동산으로 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22:52).

셋째로,그들이 기뻐하여 주기로 언약하는지라. 유다가 허락하고 예수를 무리가 없을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22:5-6); 4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기뻐하여”(22:5a);

1)      유대교지도자들이 가룟 유다의 방문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동안 어떻게 하면 나사렛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지지를 철회시키고 예수를 긴급 체포하여 처형을 있을지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지만 뾰쪽한 묘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유대인들과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몰려드는 유월절을 넘긴 후에 예수를 체포할 있는 명분을 모색해보자고 잠정적으로 결정하고 있습니다(26:3-5).

2)      그런데 느닷없이 예수님의 12사도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내부고발자로 산헤드린 공회를 찾아온 것입니다(22:4). 이제는 가룟 유다가 은밀하게 나사렛 예수를 체포할 있도록 도와주고 백성들에게 예수가 유대교리를 어기고 있는 이단이며 사이비 메시아라고 증거만 해주면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지도자들이 크게 기뻐할 밖에 없는 것입니다(22:5a).

(2)   주기로 언약하는지라”(22:5b); 의사 누가는 그저 돈을 주기로 언약만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마태는 달리 진술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먼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하면서 대가를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30 달아주므로 그것을 받아서 챙긴 후에 가룟 유다가 그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엿보았다는 기록입니다”(26:14-16).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스승을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가지를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돈을 요구하여 미리 받아서 챙깁니다. 하나는 자신의 신원을 보장해주고 유대교지도자들의 도움으로 교계에서 자리를 잡을 있는 길을 열어 달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조건에 대하여 허락의 약속을 받고서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길 기회를 엿본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3)   유다가 허락하고”(22:6a);

1)      의사 누가는 가룟 유다가 일단 유대교지도자들을 찾아가서 만약 자신이 내부고발자가 되어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게 되면 어떠한 보상을 해줄 수가 있는지 타진을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22:4). 그러자 그들이 기뻐하면서 돈을 주는 보상을 약속해주므로 가룟 유다가 합의를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22:5-6a).

2)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기술은 가지 사실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최종적으로 돈을 받기 전까지 상대방의 조건에 대하여 거절할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상대방의 조건에 완전히 합의를 하고 맙니다. 순간부터 이상 돌이킬 없는 수순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나중에 자신의 배신과 파렴치한 행위에 대하여 크게 후회를 하고 자진을 하고 마는 가룟 유다이지만 이상 구원의 기회가 남아 있지를 못합니다(27:3-5)”. 그러므로 여기서 최후의 허락은 너무나 중차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의 자발적인 선택이며 모든 책임은 자신의 목숨으로 지겠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4)   예수를 무리가 없을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22:6b); 예수를 은밀하게 체포하여 전격적으로 해치워버리려고 하는 유대교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홀로 있는 시간대에 예수님을 그들에게 확실하게 넘겨주려고 획책하고 있는 가룟 유다입니다. 적절한 시간을 포착하기 위하여 그때부터 가룟 유다가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22:6b). 훗날 시간대는 낮이 아니고 밤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성전이나 예루살렘 성읍이 아니라 감람원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입니다(26:36, 22:39).

결론적으로, 가지 의문사항이 있습니다; “어째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가 배신자이며 사탄의 세력이 자임을 미리 아시면서도 그를 12사도의 하나로 거두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잡혀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처형을 당하게 되시는데 불가피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일까요?”. 초대교회 시대부터 그렇게 보고서 유다복음을 저술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이유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모세오경에서부터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으며(30:19-20)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면서 양자 간에 분명하게 선택을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4:1-13). 그러므로 영적으로 잘못 선택한 자는 선택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가 되어 있기에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1:26-27, 3:6). 따라서 자유의지에 의거하여 자발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의 발현으로 인한 선택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3:16-19, 삼하12:9-15).

12명의 사도 가운데 오로지 가룟 유다 사람만이 자신의 안전과 출세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팔아 치우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1사도들은 정치적인 메시아인 알고 예수님을 따랐다가 허무하게 체포를 당하시는 것을 보고서 너무나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14:27, 50). 그렇지만 예수님을 적들에게 팔아 치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12 가운데 1사람의 배신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입니다.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 그보다 배신의 수가 훨씬 늘어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룟 유다와 같이 자신의 안전과 출세를 도모하기 위하여 어리석게도 구원과 영생의 주님을 배신하는 행위가 없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시는 귀한 성도님들의 인생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