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04강(눅21:34-3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8. 15:40

누가복음 강해 204(21:34-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28()

 

올바른 종말론을 가지고 개인적으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하여(21:34-38);

 

본문은 사실 올바른 종말론을 가지라는 말씀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전제가 되고 있는 앞부분의 내용 21 20-33절의 내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핵심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종교생활의 중심지 예루살렘이 적군들에 의하여 포위가 되고 마침내 멸망을 당하는 때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21:20). 예루살렘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그때로부터 이방인들에게도 같은 현상들이 차례로 발생하게 됩니다(21:24, 25:29).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이지만 아직 완전한 종말이 아닙니다.

(2)   둘째, 완전한 종말이란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우주의 질서가 깨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천체들이 흔들리고 일부가 궤도를 이탈하게 되면 무질서로 말미암아 땅과 바다의 질서가 깨어지게 됩니다. 총체적으로 우주의 질서가 파괴가 되고 무질서한 태초의 혼돈으로 되돌아가게 되면 예수님의 재림이 있게 됩니다.

(3)   셋째, 재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의 심판 가운데서 성도들을 속량하여 하나님나라로 들여보내시는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배경에서는 지금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창조가 되어지며 예루살렘이 하나님나라의 수도로서 하늘에서부터 건설이 되어 땅으로 임하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됩니다(65:17-20).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의 창조입니다(21:1-8).

(4)   넷째, 그와 같은 종말과 구원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만 될까요?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는 단어가 세대”(21:32)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자신들의 세대에 있어서 여호와의 종답게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본문에서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1:34-38).

그와 같은 내용들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 취함 생활의 염려 마음이 (영적으로) 둔하여지고 뜻밖에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21:34-35); 다음과 같이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21:34a);

1)      본문의 앞부문에서는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새로운 세상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각자의 세대에 있어서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기본적인 말씀이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21:34a) 것입니다.

2)      그것은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신앙생활이란 평소에 스스로 정신을 차려서 자신의 영적인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세상적인 유혹뿐만 아니라 영적인 시험이 심각해지고 올바른 신앙생활에서 실족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스스로 조심하고 정신을 차려야만 합니다.

3)      특히 다음 두가지의 신앙생활은 스스로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의 뜻에서 크게 어긋나고 있습니다; 첫째, 그저 종말이란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고서 평소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하고 게으른 종의 모습과 같습니다(24:48:51). 둘째, 반대로 세상의 종말에만 관심을 가지고 평소 자신의 영적인 삶을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리라”(21:32) 말씀,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정신차려서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조하시는 말씀의 취지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7-8) 예수님 말씀의 뜻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주님의 지상명령을(28:18-20) 평소에 소홀히 하고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4)      그러므로 결론은 내일 세상의 종말이 임한다고 하더라도 성도는 오늘 주님이 맡기신 지상명령을 신실하게 수행을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스로 정신을 차려서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바람직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2)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 취함 생활의 염려 마음이 (영적으로) 둔하여지고”(21:34b); 악하고 게으른 종은 영적으로 둔감해진 자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불시에 다시 오신다고 하는 말씀을 잊어버리고 육신적인 그리고 세상적인 재미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말세가 될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세상적인 유혹과 영적인 시험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다음 세가지를 지적하십니다;

1)      첫째, 방탕함입니다; 도덕과 윤리를 어기고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질서 책무를 도외시하면서 자신의 쾌락만 추구하는 삶이 바로 방탕함입니다. 좋은 예로서는 도박과 음란입니다.

2)      둘째, 취함입니다;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하고 중추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이 취함입니다. 범주에는 마약도 들어가고 있습니다.

3)      셋째, 생활의 염려입니다; 물질적인 성공과 부의 획득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목적은 생활을 안정시키고 가족을 돌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나친 탐욕과 절제할 없는 과소비욕구가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 가난) 처할 줄도 알고 (, 풍부) 처할 줄도 아는 이른바  지분사상’(知分思想, 스스로 분수를 알고 절제하며 만족할 아는 ) 필요합니다(4:12). 그러한 자기통제’(自己統制, self-control) 없으면 헤어나올 수가 없는 무서운 유혹입니다.

(3)   뜻밖에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c); 시간만큼 빠른 것이 없습니다. 흔히 피부로 느끼는 시간의 속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0대에는 시간이 시속 10km 지나가고, 20대에는 20km 지나가며, 30대에는 30km 지나간다. 60대가 되면 시속이 60km이고, 70대이면 70km 느끼게 된다”;

1)      그런데 실제로는 인생이 지나가는 속도는 그보다 빠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언제 평생의 시간이 모두 지나가고 임종의 자리에 누워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말도 별로 다르지가 않습니다. 일단 의식이 끊어지고 육신의 묶임을 벗고 나면 영적인 빠르기로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특히 세상살이의 재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두가지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첫째, 뜻밖의 시간대에 자신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 찾아오게 됩니다. 자신이 예상하고 있던 운명의 시간과 전혀 맞지 아니하는 시간대입니다. 그러므로 아차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둘째, 사전에 영적으로 깨어나 스스로 조심하고 운명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아니하게 되면 의외의 시간에 찾아오는 자신의 종말은 마치 덫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이상 발버둥을 수도 없으며 자신을 구원할 있는 방법이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4)   날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21:35);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에게 자신들의 인생의 종점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누구도 육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하는 과정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5:25-29). 둘째, 세상의 종말과 전인류에 대한 심판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인류에게 동시에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기존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하늘과 땅이 창조가 되며 예루살렘성이 하나님나라의 수도로서 세상에 임한다고 하겠습니다(21:1-8).

둘째로,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1)   불시에 찾아오는 자신의 임종의 시간을 의미 있게 맞이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세상의 종말 가운데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영위해야만 할까요?(21:36a)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라”(21:36b의역) 말씀하십니다.

(2)   예수님의 말씀은 옛날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신 신앙생활의 비결과 동일한 것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그것은 여호와의 종의 법도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 앞에 있을 때에 완전합니다. 왜냐하면, 주인의 명령을 앞에서 정확하게 받아서 올바로 실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인 앞에 서있지 않게 되면 왜곡과 변질이 발생하게 됩니다. 제멋대로 주인의 뜻을 해석하여 이기적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예수께서 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에서 쉬시, 모든 백성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21:37-38);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에 대하여 항상 실천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말씀의 본보기를 여기서 자신의 삶으로 다음과 같이 보여주십니다; “예수께서 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에서 쉬시”(21:37). 낮에는 예루살렘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평소에는 오후 늦게 감람산을 넘어 동쪽에 있는 근교마을 베다니에서 식사를 하십니다(11:11, 19, 10:38-40, 12:1-2). 다만 잡히시기 전날 저녁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만찬을 가지십니다(22:7, 12-20). 다음에는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조용하게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십니다(22:39-46). 참고로, 예루살렘에서 그러한 신앙생활이 반복이 되고 있기에 의사 누가는 습관을 따라”(22:39)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예루살렘에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있는 예수님의 동선(動線, 움직임이나 행적) 그러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평일이지만 예루살렘성전으로 아침 일찍 몰려들고 있습니다. 의사 누가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많이들 몰려들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21:38).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내용이 가지입니다; 하나는 말씀사역이고, 하나는 치유사역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앞다투어 일찍 성전으로 나아옵니다. 이유는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뜻을 예수님으로부터 천국복음으로 듣고 마음을 치유하며 신앙생활의 자세를 바르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갈 있도록 영육 간에 치유함을 얻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각종 질병과 장애를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니 백성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면서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서 새로운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11:20).

결론적으로, 제자들은 스승의 삶의 모범을 배워서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스승이신 예수님의 평소의 신앙생활을 본받으면 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운명과 예기치 아니한 시간에 찾아오는 종말을 평소에 준비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의사 누가는 고맙게도 예수님의 삶의 모범에 대하여 두가지로 정리를 해주고 있습니다; 첫째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가운데에는 영과 육에 대한 치유의 사역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둘째가 저녁식사를 끝내시고 동네의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앙생활의 모범을 본받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은혜가 여러 성도님들에게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