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01강(눅21:20-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5. 17:22

누가복음 강해 201(21:20-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2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할 때와 같은 일이 역사적인 심판으로 예루살렘에서 다시 발생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에 대하여(21:20-24);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상고(詳考, 자세하게 깊이 고찰함)하지 아니하면 이해하기가 힘든 말씀입니다. 특히, 과거 가지의 역사가 다음과 같이 본문의 내용과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1)   첫째, 주전 701 히스기야 때에 예루살렘성이 앗수르 제국의 산헤립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포위가 됩니다(왕하18:17-37);

1)      다윗왕조의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왕도인 예루살렘 성에 갇힌 종주국인 애굽 제국의 군대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구원군이 립나에서 앗수르 산헤립 황제의 매복전략에 걸려서 물러가고 맙니다(왕하19:8-11).

2)      소식을 듣고서 히스기야 왕은 절망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고서 예루살렘성전으로 들어가서 바짝 엎드리고 통곡의 기도를 합니다; “이제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이 구원을 얻을 길이 모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부디 불쌍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오만한 산헤립 황제와 앗수르 군대를 벌하여 주십시오”(왕하19:11-19).

3)      결과 그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제국인 애굽을 크게 의지했던 히스기야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던 여호와의 다윗 왕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사자를 보내어 앗수르 군대를 징벌해 주십니다(왕하19:34-36). 어쨌든 예루살렘성이 구원을 얻게 역사입니다.

(2)   둘째, 주전 588 시드기야 때에 신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또다시 포위가 됩니다(왕하25:1); 시드기야 왕과 신하들이 똘똘 뭉쳐서 끝까지 저항을 했지만 역부족으로 그만 주전 586년에 선민의 나라가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5:2-7). 115 히스기야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의 대군이 몰살을 당하는 기적이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 때에는 그러한 이적이 발생하지 아니하여 지상의 마지막 선민의 나라가 사라지고 맙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3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여 40일간 제자들을 재교육시키시고 주후 32년경에 승천을 하십니다(24:1-6, 50-51, 1:3). 그리고 38 후인 주후 70년에는 본문의 예수님의 예언과 같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로마군대에 의하여 망하고 유대인들이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21:20-24).

어째서 주전 586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일이 다시 역사적으로 반복이 되는 것일까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불치의 병은 물론 자신의 나라 선민의 나라까지 구원을 받은 경험을(왕하19:34-36, 20:5-6) 가지고 있는 히스기야 왕의 그후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멀리서 바벨론의 망명왕으로부터 함께 앗수르 동맹을 결성하자고 사자가 찾아왔을 때에 히스기야 왕은 자랑을 합니다(왕하20:12); “자신의 기도로 예루살렘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제국의 대군이 몰살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앞장을 서게 되면 앗수르 제국을 무너뜨릴 수가 있으므로 자신을 앗수르 동맹의 리더로 세우는 것이 어떠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자신의 의로운 기도의 힘으로 대신하고 있는 교만입니다.

(2)   둘째, 그리고 자신의 부와 무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국가의 보물창고와 무기창고까지 바벨론의 사자에게 전부 보여주고 맙니다(왕하20:13). 소식을 듣고서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의 예언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왕의 몸에서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왕하20:17-18).

(3)   셋째,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히스기야 왕이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이유는 자신의 당대에 있어서는 유다 왕국이 망하지 아니하고 번영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왕하20:19). 자신이 죽은 다음에 예루살렘이 망하고 왕족들이 제국의 환관이 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고 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지독한 이기주의와 현세주의신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39:8). 말을 듣고서 선지자 이사야는 다윗왕조에 대하여 절망을 하고서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와 메시아가 오시기만을 앙망한 것으로 보입니다(40-66).

(4)   넷째, 다윗왕조의 히스기야가 그러한 잘못된 신앙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 왕만이 아니고 전체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이 이기적이고 현세주의 성격의 것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상의 구원은 선민 유대인들이 크게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상 바랄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선민들의 잘못된 신앙태도를 바로잡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세상에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이기적인 선민구원사상이 아니라 제사장나라로서 만민구원사상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만을 추구하지 말고 모두가 구원을 얻어서 함께 영생의 구원을 누릴 있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만약 선민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배척하였기에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가 예루살렘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21:20-21);

(1)   모두(冒頭, 첫머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이 이방인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는 때가 크게 보아 차례 있습니다; 하나는 주전 701 앗수르 제국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기적이 일어나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는 주전 586년에 선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성에서 3년간 버티다가 마침내 역부족으로 신바벨론 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이 망하게 되는 때입니다.

(2)   히스기야 때에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한번 구원을 해주시고 시드기야 때에는 어째서 멸망을 받도록 내어버려 두시는 것일까요? 이유에 대해서는 구원을 받은 이후의 히스기야 왕과 선민들의 신앙생활의 태도에서 엿볼 수가 있음도 글에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보다 세상나라 애굽 제국의 구원병을 크게 의존했던 자신들의 신앙상의 잘못을 전혀 회개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히스기야 왕과 신하들이 성전에서 기도만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적군을 몰살시켜 버리시고 구원해 주신다고 하는 이상한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요컨대,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오로지 선민의 영광과 현세적인 축복을 주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들의 종인 우상 정도로 생각하고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를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며 하나님말씀을 전해주고 중보의 기도를 드리는 거룩한 선민의 삶을 전혀 살아가지를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날이 갈수록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만을 율법으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결과 예수님이 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정면으로 배척하고 맙니다. 따라서, 옛날 선민의 나라가 망하듯이 예수님 당시의 선민의 사회가 다시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본문, “너희가 예루살렘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21:20-21) 구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이 됩니다;

1)      너희가 예루살렘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21:2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에 부활 승천하시고 나면 유대 땅에 로마의 군대가 쳐들어올 것임을 예언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일은 주후 70년에 역사적인 사건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옛날 히스기야 때와 같은 선민나라의 구원이 없다고 예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유대의 멸망이 가까이 줄을 알고서 피신을 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2)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21:21a); 유대교의 총본산인 예루살렘성전이 있는 수도가 적군에게 포위가 되어 있습니다. 그때에는 유대 땅에 흩어져 있는 방방곡곡의 선민들은 빨리 산으로 도망을 가라고 하십니다. 수도 예루살렘성을 구하겠다고 나서지를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온 로마의 군대는 잔인하므로 무력으로 대항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산으로 피신하는 그것이 피해를 줄일 있는 방법이 것입니다.

3)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21:21b); 예루살렘 성내의 주민들에게 만약 적군들이 도망갈 틈을 내어주고 있다고 한다면 그때에는 망서리지 말고 성을 빠져나가라고 하십니다. 성안에서 버티어 보아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 아니므로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 나가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성밖의 촌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일체 성안으로 들어가지를 말라고 예언으로 주의사항을 주십니다. 이유는 로마의 진압군이 예루살렘 성문을 열고 안으로 진입하게 되면 모조리 처참하게 도륙하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쟁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의 보고를 따르게 되면 당시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로마군대에 의하여 살해가 백성의 수가 110만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둘째로,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자들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환난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21:22-23);

(1)   여호와의 날에는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의 날입니다. 그날에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구원하심을 크게 감사하는 날입니다. 그것은 옛날 유월절 심판 가운데 어린양의 피로 구원을 얻고 출애굽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기쁨과 같습니다(12:13-14, 35-42). 하나는 징벌과 진노의 날입니다. 그날에는 자비와 긍휼이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패역한 무리들에게 진노와 징벌만이 임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두려운 날입니다. 옛날 유월절 밤에 애굽인들의 장자를 모조리 쳐죽이시던 날과 같습니다(12:29). 집집마다 초상이 나고 통곡소리가 천지에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12:30).

(2)   출애굽 당시에는 애굽인들에게는 진노와 징벌이 있었지만 반대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의 구원과 노예해방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전 586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망하던 때와 그리고 주후 70 예루살렘과 유대인 사회가 망하게 되는 때에는 그러한 구별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따르며 실천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구원의 은혜가 임하고 모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도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 가운데 들어가게 되고 맙니다. 따라서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의 땅에서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예언하시고 계십니다; “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이니라. 그날에는 아이 자들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환난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21:22-23).

셋째로,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1:24); 선민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완전히 제거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의 진노가 다음과 같이 세가지로 임하게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1)   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21:24a); 로마의 검은 뭉뚱하고 짧은 검입니다. 그것으로 인명을 살상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은 로마병사의 검으로 살해를 당한 자가 엄청나게 많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검은 참으로 무자비한 것입니다. 그러한 칼날에 선민 유대인들이 엄청나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예언입니다.

(2)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21:24b); 살아남은 유대인들을 로마의 군인들이 유대인 땅에서 살지 못하도록 이방지역으로 쫓아내어 버립니다. 물론 만한 지식인들은 로마로 데리고 갑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서 살지를 못하도록 아예 예루살렘성전과 성을 파괴해버립니다. 그리고 지방의 성읍들도 파괴해버립니다. 때문에 유대교의 성전이 사라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도 문을 닫게 됩니다. 사도와 성도들이 주후 70년에는 이방 땅으로 피난을 가서 선교에 열중하게 됩니다. 사도 요한도 이모가 되는 마리아를 모시고 소아시아 에베소로 이주를 하게 것이라고 훗날 전해지게 됩니다.

(3)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21:24c); 아주 훗날 예루살렘의 회복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21:24c)라고 언급하십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복음이 전달이 되고 후라고 여겨집니다. 세상의 아주 구석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5대양 6대주에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달이 되고 나면 예루살렘이 회복이 되고 선민의 자손들이 그곳으로 돌아와서 다시 선민의 나라를 건설하게 것이라는 예언으로 보입니다. 그때는 아무래도 20세기 중반 현대 이스라엘국가의 성립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뜻인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받아 들이지 아니한 결과가 실로 끔찍합니다. 주전 6세기 신바벨론 제국에 의한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히스기야 왕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은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자신들만 구원을 받고 세상적인 복을 누리면 그만이라고 하는 이기적이고도 물질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면 같은 비극을 당하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속히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피신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운 공생애와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전도와 선교의 삶으로 살아가는 제자로서의 삶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 그것이 종말의 심판 가운데에서도 구원을 얻을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구원과 은혜를 누리시기에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