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212강(눅22:35-3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13. 04:30

누가복음 강해 212(22:35-3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2 6()

 

생전에 사도와 제자들을 보내어 전도하게 하신 예수님께서 고난을 앞두시고 장래의 전도와 선교를 위한 채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다(22:35-38);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자신을 대신하여 사도와 제자들을 여러 지역에 파송하여 복음사역을 하도록 조치하신 경우가 차례 있습니다; 첫째, 갈릴리 지역에서 12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전도를 하도록 여러 마을로 파송하십니다(10:1, 5-15). 둘째, 사마리아 지역에서도 70인의 제자들에게 능력을 부여하여 21조로 전도를 하도록 여러 마을로 파견하십니다(10:1-12).

경우에 있어서 특이한 공통사항이 다음과 같습니다; “전대(錢臺, 돈을 간수하는 허리띠 모양의 지갑) 배낭과 여분의 옷이나 신발 그리고 지팡이를 가지지 말고 전도여행을 떠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에 복음과 치유의 은혜를 입은 마을에서 숙식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10:9-10, 10:4, 7). 실제로 사도와 제자들의 독자적인 전도여행에 있어서 복음사역의 열매가 풍성했으며 숙식문제와 물질문제에 있어서도 부족함이 없음을 있습니다(10:17-18, 22:35).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서 장차 사도와 제자들이 복음사역을 하기 위하여 파견이 되는 경우에는 이상 그렇게 하지를 말라고 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전대와 배낭을 가질 것이고 검도 지니고 다니라는 것입니다(22:36).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우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사도와 제자들이 독립적으로 행하고 있는 전도여행은 단기간의 것입니다. 반면에 앞으로는 장기간의 전도나 선교여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행경비와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합니다.

(2)   둘째, 공생애 기간에는 예수님께서 사도와 제자들을 직접 훈련시키시고 파송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도여행이 너무 힘들지 아니하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아버지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고 나면 그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영적으로 수많은 전도와 선교팀을 이끄신다고는 하지만 육신을 입고서 예수님께서 일일이 진두지휘하시던 그때와는 사정이 다른 것입니다.

(3)   셋째, 공생애 기간과 비교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이후에는 사도와 제자들을 대하는 선민과 백성들의 태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물론 공생애 기간 동안에도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공개적인 핍박을 가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엄청나므로 백성들이 상당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2:2). 하지만 일단 예수님을 체포하여 처형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유대교지도자들이 거리낌이 없이 사도와 제자들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강력하게 박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구책과 단단한 사전준비가 필요합니다.

(4)   넷째, 공생애 기간 중에는 예수님에 대한 비판과 배척이 심했지만 사도와 제자들에 대해서는 그러하지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부터는 사도와 제자들에 대하여 핍박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준비와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 배낭 신발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22:35);

(1)   마태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12사도를 훈련시켜서 여러 마을에 복음사역자로 파송하신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0:1, 5-11). 그리고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 70인의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21조로 여러 마을에 복음사역을 하라고 파견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0:1-9). 이미 모두(冒頭, 머리말)에서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경우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전대에 돈이 없이 그리고 여분의 옷이나 신발을 배낭에 지니지 못한 전도여행에 나서게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복음사역지에서 마을사람들이 전도자들의 숙식을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당시의 일을 회상해보라고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때 숙식의 어려움이 있었는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십니다. 사도들의 답변은 한결같이 부족한 것이 없이 모두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충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전도여행이나 선교여행에 있어서도 그와 같이 별다른 준비가 없이 그냥 나서게 되면 동일한 역사가 발생할까요? 언뜻 생각해보면,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하고 있는 12사도들 그리고 스승으로부터 직접 전도훈련을 받고서 파송이 되고 있는 70인의 제자들이 일찍이 경험한 바와 같은 역사가 또다시 발생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깊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당부의 말씀이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없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22:36); 부문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22:36a);

1)      장차 초대교회가 발생하게 되면, 가지 종류의 전도와 선교방법이 가능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돈이 없는 자는 전대가 없이 예수님 공생애 당시처럼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돈이 있는 자는 전대를 차고서 자비량 전도와 선교에 나서는 것입니다. 요컨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성령님께서 강림하셔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교회시대에 있어서는 가지가 모두 가능하다고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2)      어째서 그렇게 융통성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형편대로 전도와 선교여행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것의 의미를 사도행전에서 다음과 같이 뚜렷하게 엿볼 수가 있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교회공동체에 그것을 내놓고서 재물이 없는 자와 더불어 믿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물질적으로도 그리고 영적으로도 상부상조하는 생활공동체입니다. 그러한 믿음의 공동체가 지역사회를 복음화하는데 앞장을 서고 있으므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살아 있는 전도 선교의 중심기지라고 하겠습니다”(2:44-47).

(2)   배낭도 그리하고”(22:36b); 배낭에는 여분의 옷과 신발 등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게 여행장비를 꼼꼼하게 챙기는 것은 단기간의 전도여행이 아니라 장기간의 선교를 위한 사전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초대교회에서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3)   없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22:36c);

1)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겉옷은 중요하며 또한 비싼 옷입니다. 두꺼운 겉옷이 없으면 (, half) 사막성 기후에서 낮의 뜨거운 열기와 밤의 차가운 한기를 모두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나 중요한 겉옷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검을 하나씩 사서 가지고 다니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유를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기에서 생생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 여행하면서 위험과 강도 위험과 동족 위험과 이방인 위험과 시내 위험과 광야 위험과 바다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6).

2)      강과 바다, 광야와 이방인들의 어느 곳에서도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위해를 가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보호를 간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최소한의 무기를 지니고 있다고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자루의 검이라고 하겠습니다(22:36c). 참고로, 사도 베드로의 경우에 있어서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키기 위하여 항상 검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실제로 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22:50).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셔야만 하는 예수님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검이므로 베드로가 야단을 맞고 있습니다(26:52-54). 하지만 전도와 선교여행에 있어서 최소한의 자기방어수단을 지니고 가는 것은 본문에서 있듯이 허용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하리니, 내게 관한 이루어져 감이니라”(22:37);

(1)   공생애 초기에 있어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으며 또한 호의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선보였으며 히브리정경의 해석에 있어서 지혜가 뛰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근히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모두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간구하고 있는 메시아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2)   하지만 날이 갈수록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배신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먼저 갈릴리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를 비난하다가 가버나움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의 행적에 대하여 실망을 하고 또한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7:18-20).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헤롯 왕가를 몰아내고 감옥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 자신을 구해주며 선민들이 원하고 있는 다윗 왕가의 재건을 도모할 의사가 전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7:22-23).

(3)   다음에는 유대교지도자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을 용서하고 함께 영생구원을 받자고 주장하고 있는 예수의 천국복음이 선민구원과 현세적인 영광을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어긋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을 살려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이단으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정죄를 하고 또한 로마에 대한 반역자로 몰아서 십자가 처형을 하고자 합니다. 결과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뜻을 받들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부르짖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는 어처구니가 없게도 그만 불법자로 여김을 받고 십자가 죽음을 당하고 맙니다(22:37). 사실을 700년전에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범죄자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53:12).

(4)   그렇게 되고 나면 사도들과 제자들의 앞날이 걱정입니다. 그들 역시 가는 곳마다 국수주의(國粹主義, 자기나라와 민족의 우수성만을 주장하면서 타국이나 민족을 배척하는 사상) 호국신(護國神, 자기나라만을 지켜주는 보호신을 말함)사상에 젖어 있는 민족들로부터 죄인취급을 받게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10:16)라고 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미래를 내다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최소한의 자구책과 스스로 움직일 있는 채비를 갖추라고 본문에서와 같이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넷째로,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22:38); 예수님의 사도는 12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검은 자루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뜻이 무엇일까요? 자루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장비입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위해서는 나름대로 쓰임새가 있습니다. 12 가운데 2사람이 자루의 검으로 적의 공격을 잠시 막아내고 있는 동안에 나머지 10명은 피신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절은 전도여행과 선교여행에 나서는 사도나 제자들은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호신용 무기만을 지닐 이상의 공격무기를 갖추지 말라고 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어째서 자신을 십자가에 처형하고자 하는지 이유를 이미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장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그들 선민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유대교사상과 어긋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장차 이방지역에서 복음선교를 하자면 사도와 제자들이 엄청난 저항과 위험에 부딪힐 것입니다. 이방인들 역시 한결같이 국수주의와 호국신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디로, 예수님 사후에 초대교회가 시작이 되지만 앞길이 험난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도와 제자들을 현실적으로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경비와 보호장비를 가지고 전도와 선교여행에 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공생애 기간 동안 차례 실시했던 사도와 제자들의 단기적인 전도여행 때의 지시사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물론 공생애 당시의 전도여행과 복음사역에서 있는 바와 같이 전도자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관심과 보호하심이 각별할 것입니다(10:17-20, 22:35). 그렇다고 하여 그저 맨몸뚱이로 무조건 전도와 선교에 나서고자 하는 무모함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라는 말씀입니다(22:36-38). 아무쪼록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시기를 바라며 차제에 제자들을 알뜰하게 챙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