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길 목사 설교요지 및 음성설교 모음

아사왕의 믿음의 정체성(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0. 12. 23. 20:08

제목;아사왕의 믿음의 정체성(대하14:8-15, 16:1-10, 왕상15:1-2, 9-14)

작성자; 손진길 목사

작성일; 주후 2020 7 5(주일)

 

1.      서언

 

우리는 신앙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에 대하여 혼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믿음에 대하여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평가를 하실 성도들이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땅에 보내셔서 정직하고도 온전한 믿음생활의 모범을 본보기로 이미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신약시대의 특혜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그러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진리의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이 없었던 구약시대의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자신의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별하기가 힘이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읽고 있는 성경말씀 가운데 구약으로 불리고 있는 히브리경전에 있어서는 정직한 믿음’(왕상15:5) 온전한 믿음’(왕상11:4)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가지 잣대를 가지고 자신의 믿음의 정체를 한번 파악해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잣대를 가지고 다윗왕조 유다왕국의 아사왕 일대기를 간략하게 비추어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믿음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자신의 믿음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아사왕은 성공한 왕인가? 아니면 실패한 왕인가?

 

아사왕은 조부가 솔로몬의 후계자인 르호보암왕입니다. 그리고 부친은 뒤를 이은 아비야(또는 아비얌)왕입니다. 부친 아비야왕이 재위 3 동안 여호와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였다고 한다면 아사왕은 그와 정반대입니다(왕상15:3, 11).

아사왕은 41년간이나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통치하면서 35 동안 우상을 혁파하고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종교개혁을 단행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즉위한지 36년째가 되자 그만 여호와신앙을 버리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그는 동족인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바아사왕이 라마에서 위협을 가해올 때에 그만 이방 족속인 아람의 왕에게 금은보화를 주고서 이스라엘의 북쪽 영토를 공격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결과 이방인의 공격을 받은 선민이며 동족인 북조 이스라엘왕국이 라마에서 철군하게 됩니다.

더구나 통치한지 39년에는 그의 발에 질병이 발생하자 아사왕은 먼저 여호와께 기도하고 선지자와 제사장들에게 도움을 청한 후에 의원을 찾지 아니하고 오로지 좋은 의원만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결과 아사왕은 하나님의 밖에 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아사왕은 말년에 실패한 왕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3.      아사왕의 행적에서 눈여겨볼 점들

 

흔히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아사왕의 행적 가운데 두가지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로, 열왕기상 15 아사왕의 기록 가운데 전혀 찾아볼 수가 없는 구스 사람 세라의 100 대군과의 전쟁이 버젓이 역대하 14 아사왕의 기록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기가 아사왕 통치 10년이 지난 시점이므로 대략 주전 900 경입니다.

구스 사람은 검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이디오피아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구스왕조를 이루어 상이집트를 정복하고 마침내 하이집트까지 점령한 시기가 대체로 주전 715년경입니다. 그것이 애굽의 25왕조이며 검은 피부의 바로가 애굽을 통치한 시대입니다.

그때 다윗왕조 유다왕국은 히스기야왕이 다스리고 있으며 앗수르 산헤립의 침입을 받고 있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당시에 구스왕 디르하가가 구원병을 이끌고 와서 산헤립왕과 립나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합니다(왕하19:9).

실제로 주전 8세기 이전에는 구스의 군대가 하이집트에서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스 사람 세라가 100만명이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유다왕국을 침입하여 가드와 그랄 사이에 있는 마레사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역사적인 자료에 비추어보면 공상소설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굽의 역사에서 주전1,000년경에 시작되고 있는 3중간기 역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되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구스왕조가 아니라 단지 구스 사람인 부족장 세라 100만명이나 되는 부족민을 이끌고 북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대하14:9).

3중간기는 역사적으로 애굽제국의 천하를 다시 통일하고 있는 강력한 바로가 없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왕국들이 난립하여 있습니다. 틈바구니를 뚫고서 남쪽에 있는 구스의 부족 가운데 일부가 능히 북상할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처음에는 유다의 아사왕이 세라 부족장의 군대가 백만명이나 되기에 겁을 집어 먹습니다(대하14:9).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결과 겁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응답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대하14:11-12).

그것은 사실입니다. 부족민 전부를 합하여 100만명이라고 하면 장정의 수는 4분의 1 25만명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와 비교하여 아사왕의 군사는 58만명이나 되고 있습니다(대하14:8).

구스의 군대가 정예병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은 그들 군대의 장군과 장수들이 타고 있는 병거가 300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만부장과 천부장은 병거를 타고서 전투에 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휘관인 백부장 가운데에서도 병거를 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군대를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백만대군이라고 한다면 병거의 수가 아무리 적어도 1,100대는 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00대에 불과한 것입니다.

둘째로, 열왕기상 15장의 기록에서 아사왕은 부왕 아비얌이 죽은 다음에 왕위를 계승하고 있습니다(왕상15:1-2, 9-10). 그런데 부친 아비얌의 모친의 이름과 아사왕의 모친의 이름이 똑같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아사왕의 모친을 모독하는 그러한 기록이 등재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사왕의 조부인 르호보암왕이 41세에 즉위하여 17년간 통치하였다는 사실과 그의 아들인 아비야가 3년간 통치하고 죽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대하12:13, 13:2).

다윗왕조의 르호보암왕이 죽은 그의 나이가 58세입니다. 그가 일찍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후계자인 야비야는 38 정도에 왕이 됩니다. 그리고 40세에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인 아사는 20 약관의 나이가 못되어 부왕의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17세나 18세라고 한다면 그의 모친인 태후 마아가 섭정을 하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훗날 유다왕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섭정이 아니라 아예 여왕이 되어 7년간이나 유다왕국을 통치한 사례가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왕하11:1-4).

그렇지만 섭정을 오래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의 나이가 20세가 되면 친정을 있도록 권력을 되돌려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권력에 맛을 들였는지 모친 마아가 왕권을 계속 행사하고 있습니다.

모자지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아사왕이 승리하게 됩니다. 이유는 모친 마아가가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고서 아사왕은 현명하게도 우상을 철폐하고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워야만 한다고 역설하였기 때문입니다(왕하15:10-13).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다윗왕조 유다왕국입니다. 젊은 아사의 주장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호응을 크게 얻고 있습니다. 결과 모친 마아가는 지지기반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녀의 아들인 아사왕은 모친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비참하게도 정치적인 보복으로 어머니를 폐서인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왕상15:13). 유다의 역사에 있어서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그것은 아사왕이 진심으로 여호와신앙을 바로 세운 자가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을 그의 잔인한 성격으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사왕의 믿음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직한 믿음일까요?

여기서 우리 성도들이 깊이 생각해야만 하는 한가지 이슈가 있습니다. ‘성경말씀 가운데 모순으로 보이고 있는 그러한 함정을 피해가자면 성도들이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방법은 두가지입니다;   

첫째로, 그와 같이 모순으로 보이고 있는 기록이 어째서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료를 대조하여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다가 보면 역사적인 해석 가운데 가려져 있는 진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넓은 밭을 사서 가운데 어느 한쪽 작은 깊이 파묻혀 있는 보화를 캐내어 그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도의 삶이라고 하겠습니다(13:44). 진리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귀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우리 성도들의 안목을 세속적이고 이성적인 말씀의 해석에서부터 높고 경건한 경지의 믿음으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만약 이성을 가진 인간의 지성과 합리적인 해석으로 성경말씀이 모두 해석이 되고 이해가 된다고 하면 그것은 영적인 진리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이시며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유하시고 통치하시는 방법이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을 진작에 초월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에게 좁은 시공간이라고 하는 성전에 갇혀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신앙생활을 넘어서라고 말씀하십니다(4:23).

이유는 시공간을 넘어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4:24).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섬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4:23-24). 요컨대, 진리의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그리고 구약 말씀 전체를 진심으로 묵상하면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영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4.      아사왕의 인생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구약의 말씀 가운데 다윗왕의 일대기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정직한 믿음 온전한 믿음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밧세바 사건을 제외하고 보면 다윗왕의 믿음생활의 특징은 정직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왕상15:5).

의미는 왕자무치의 사상에 빠져 있던 다윗이 창조주 여호와의 십계명은 왕이나 백성이나 차별이 없이 그대로 적용되고 만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서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여호와의 지혜로 지적하고 있는 말씀 앞에 다윗왕이 그대로 순종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왕이 어떠한 정치적인 생각이나 권력적인 측면에서 믿음생활을 영위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예가 됩니다. 그것이 한마디로, 정직한 신앙입니다.

그와 같은 정직한 신앙인의 모습을 아사왕에게서는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잔인하게 모친을 폐서인하고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이 확고하게 되었을 때에는 여호와의 뜻을 일체 묻지 아니하고 세속적인 방법만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여호와께서는 솔로몬의 신앙이 부친인 다윗처럼 온전하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계십니다(왕상11:4). 솔로몬왕이 40년간 다윗왕조 유다왕국을 통치하고 있는데 전반기는 여호와신앙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방여인들을 사랑하고 그녀들이 유다왕국에서 우상을 마음대로 섬기도록 허용하고 맙니다. 그리고 전국을 요새화하기 위하여 동족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5.      결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영적인 진리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창조주의 말씀이기에 성경말씀은 모든 피조물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말씀이기에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역사를 섭리하시는 진리이며 모든 성도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판별하는 기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두가지 차원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진리는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속마음과 겉마음이 다른 믿음생활은 외식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율법선생인 랍비와 그들의 모집단인 바리새인들을 그토록 질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관점을 구약에서는 정직한 믿음생활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진리는 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과 나중의 믿음이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생활은 성도들이 전인생을 통하여 한결같이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처음에는 섬기다가 나중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싫어하여 아사왕처럼 선견자 하나니를 감옥에 가두고 백성들을 학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대하16:7-10).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역대하 16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사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대하16:11). 깊은 이해와 깨달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