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95강(눅20:41-4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2. 07:22

누가복음 강해 195(20:41-4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15()

 

여호와 하나님’(the Lord) 다윗의 나의 주님’(my Lord)과의 관계에 대하여(20:41-44)

 

누가복음 20장의 주제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대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할 있는 이유와 예수님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 가르치는 권위, 침례를 있는 권위, 종교적인 교권을 행사하는 권위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종교적인 전통이나 사람들이 만든 조직 또는 조직화된 세력이 주고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는 안됩니다(20:1-8).

(2)   둘째, 삶의 터전이나 사명 그리고 전도와 선교의 대상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며 농부들은 경영을 위탁 받고 있는 종들에 불과합니다. 종들이 주인의 것을 제멋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해서는 안됩니다(20:9-18).

(3)   셋째, 세상적인 논리와 하나님의 논리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세상적인 논리로 약육강식의 지배라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제국이 선민들을 지배하든지, 선민의 제국이 성립되어 이방인들을 지배하든지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는 다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하나님의 방법으로 실천해야만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논리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적인 논리를 동원하여 세상적인 지배의 제국을 건설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의 논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만 합니다(20:19-26).

(4)   넷째, 유대교에서는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사두개인들과 종말적인 육신의 부활만을 믿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종말적인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 당장 성도들에게 임할 있는 영적인 부활을 원하십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부활의 은혜를 믿고서 영적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지상명령을 실천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활의 영이 임하고 육신을 벗게 되면 영적인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완전한 부활과 영생의 구원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20:27-40, 14:16-17, 8:11).   말씀에 대한 증거로써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과 3일만의 무덤 부활의 사건이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5)   다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위일체(一位一體, 오직 하나의 보좌만을 가지시는 여호와) 하나님사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암송하고 있는 시편의 말씀 가운데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하는 ’(the Lord)께서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자신의 ’(my Lord)에게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앉으라고 하시는 천국의 모습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ing) 창조주의 위격(位格)임을 백성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20:41-44).

(6)   여섯째,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외식(外飾, 가식적인 겉포장) 해서는 안됩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높은 자리와 명예를 탐하고 또한 재물을 탐하여 가난한 자의 등을 치고 있습니다. 가식적인 기도를 길게 하지만 그들의 실제 행동을 보고서 하나님께서는 엄중하게 심판을 하시는 것입니다(20:45-47).

위와 같은 20장의 구성 가운데 본문은 다섯 번째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의 주제와 대목의 강조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20:41);

(1)   20장의 내용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의 복음으로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질문을 내용과 그들에게 바른 말씀의 풀이를 해주신 예수님의 이야기들입니다. 가운데 그리스도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예수님께서 유대교지도자들과 예루살렘의 백성들에게 설명을 해주시고 있는 대목이 바로 본문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인들에게 익숙한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신분과 정체성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먼저 백성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20:41). 말씀의 의미를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을 하는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20:41a); 여기서 그들 예루살렘성전에 모여 있는 무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 날카로운 질문을 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유대교 지도자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질문을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먼저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2)      사람들이 어찌하여”(20:41b); 당시의 유대교인들인 선민들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교인들은 이상 그들의 율법선생인 바리새인 랍비들이 가르쳐주고 있는 유대교리를 가지고 히브리정경에 실려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운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무슨 문제인지를 예수님께서 설명을 하고자 하십니다.

3)      그리스도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20:41c); 문제는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각한 문제인데 점을 유대교인들이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를 그저 육신을 가진 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 가운데 사람을 선택하여 거룩한 기름을 부어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맡기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하면 그리스도가 다윗이 옛날에 성취했던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와 헤롯의 왕가 등의 외세를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모조리 쫓아내고 선민들의 제국을 다시 크게 건설하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옛날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은 다윗 대왕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했던 이스라엘 제국을 장차 그리스도가 재건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바로 선민들의 메시아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며 당연히 혈통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둘째로,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20:42-43);

(1)   히브리정경인 성문서 시편 110편에 실려 있는 다윗의 시의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수들로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 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110:1-7).

(2)   다윗의 시에서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주로 삼아 하나님 보좌의 오른쪽에 앉히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특별히 시편 110 1절의 내용을 백성들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시편 다윗 친히 말하였으되, 께서 주께 이르시되, 내가 원수를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20:42-43). 그러므로 가지의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여호와 ’(the Lor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에게는 분의 주인이 계십니다. 주인을 다윗은 나의 ’(my Lord)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천국에서 다윗의 주에게 보좌 오른쪽에 앉으라고 하셨다는 찬양입니다.

2)      다윗의 그리스도이시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자신의 주인이시라고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혈통이며 후손이 수가 있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이십니다. 그것은 마치 누가 주인이며 종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유대인들이 범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주가 되는 그리스도의 신분과 정체성을 여호와와 동격이 되는 위격으로 보지 아니하고 유대교인들이 단순하게 다윗의 후손인 인간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은 심각한 신앙상의 잘못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셋째로,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20:44); 예수님은 단지 여기서는 그리스도가 다윗의 주라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해석에 의지하여 시편 110편의 내용을 계속 음미하게 되면 그리스도가 세상의 심판주로 오시게 되는 여호와의 위격이심을 넉넉하게 짐작하게 됩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목숨처럼 신봉하고 있는 일위일체론(一位一體論, 오직 뿐이신 여호와만을 섬긴다는 이론)적인 여호와의 신론(神論, 신에 관한 이론이나 관념) 예수님의 설명에 따라 균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여기서 벌써 여호와는 그리스도와 함께 개의 위격을 지니시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삼위일체론으로 나아가게 되는 해석론적인 징검다리가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뿌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기에 유사성이 많다고 하지만 그리스도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떠한 신앙고백을 하느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하여 끝까지 육신적인 사고로 보고 있는 것이 유대교의 입장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여호와의 위격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의 차이가 본문에서 예수님의 지적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고 여호와께서 거룩한 기름을 부어 그리스도로 세우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옛날 다윗대왕처럼 외세를 몰아내고 선민의 제국을 완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선물을 선민들에게 주시는 그리스도를 유대교인들이 오늘날에도 앙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명 그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리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십니다. 장차 사도와 제자들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게 되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종말심판이 임하고 하늘과 땅이 창조가 되면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는 여호와이신 아버지와 그리스도이신 하나님의 아들과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시게 되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역사로 땅에 건설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소망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복음사역에 전념하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