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94강(눅20:37-4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2. 07:20

누가복음 강해 194(20:37-4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14()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의 (20:37-40)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의 뜻에 대하여 풀이를 해주십니다. 말의 뜻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옛날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4-15). 간략하게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있는 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모세에게 알려주십니다(3:14a). 말은 적어도 다음 두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1)      첫번째의 뜻은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이지 누구의 간섭이나 통제를 전혀 받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 피조물이 아니고 창조주이며 종이 아니고 주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우상처럼 생각하여 함부로 종으로 부려서도 안되며 인위적으로 제어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물론 하나님을 피조물인 사람의 수준으로 격하하거나 상상해서도 안됩니다.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2)      두번째의 뜻은 여호와는 항상 스스로 존재할 있으므로 영생의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피조물이므로 스스로 존재할 수가 없고 영생의 존재가 되지를 못합니다. 다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악한 영을 하나님인 잘못 알고서 그와 더불어 지내게 되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계속 묵여 있게 따름입니다(8:1-2).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주십니다. 모세를 보내어 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주시고 메시아까지 보내어 주십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영생의 하나님을 믿게 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만 완전한 부활과 영생의 구원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제사가 다음과 같이 필요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대속의 십자가),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3-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복음사역)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그와 같은 스스로 있는 여호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의 뜻을 생각해봅니다; 첫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각자의 인생에 영생의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들의 인격은 각각 다르지만 그들과 함께하시는 영생의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영생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길에 동행하시기 때문에 믿음의 생활을 영위하고 천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둘째, 땅에서의 사명을 마친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생의 나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셋째, 땅에서도 영생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았기에 그들 믿음의 조상들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하나님 안에서는 믿는 자들이 항상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20:37);

(1)   부활이 없다고 믿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질문을 하자(20:27-33) 예수님께서 계속하여 답변을 주고 있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20:37a)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하여 옛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다고 증거하십니다. 내용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20:37)라는 것입니다.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모두 부활시켜서 함께 영생을 누리신다는 것입니다.

(2)   명제에는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언제 그들의 부활이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 가운데 함께하심으로 영생의 효력이 남은 생애에 어떻게 미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부활의 열매가 되십니다(고전15:20-21).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들부터 차례대로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도 그리스도의 때가 이르기를 학수고대했다고 말씀하십니다(8:56).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부활에 참여하게 되고 이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11:13-16).

2)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의 마르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4-26). 메시아의 오심을 믿고 기다린 믿음의 선진들은 비록 죽었지만 부활하여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생전에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고 영생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이치는 또다른 보혜사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14:16-17). 영혼을 살리고 심령 속에 내주하여 성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적인 삶이 가능해집니다. 죽음조차 건드릴 수가 없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으리라”(8:38-39).

둘째로,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20:38); 영생의 하나님에 대하여 알기 쉽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지로 설명하십니다;

(1)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20:38a); 죽은 자는 육신적으로는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세상살이에 완전히 빠져 있는 자입니다. 그러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를 않습니다(20:38a).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영이 죽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그러한 가운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있습니다(11:31). 그는 선교의 목적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도중에서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계속 머물고 있습니다. 그렇게 205 향년을 맞이할 때까지 60 이상 하란 땅에 끝까지 머물고 있는 데라에 대하여(11:26, 32, 12:4)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충만한 집사 스데반의 증언을 통하여 이미 죽은 자로 취급하십니다(7:4).

(2)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20:38b); 살아 있는 자는 계속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창조주의 생명력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력을 얻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십니다(7:7-8). 그리고 그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20:38b).

(3)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20:38c);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살리는 능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1)      능력이 예수님을 무덤에서 3일만에 살려내는 부활의 능력으로 발휘가 되고 있습니다(8:11). 다음에는 믿음의 선진들과 사도들 그리고 제자들이 뒤를 이어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것입니다(22:28-30, 고전15:20-22).

2)      애초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땅에 보내셔서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구원하고자 하십니다(3:16-17).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자로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을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고자 하는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그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것입니다.

셋째로,서기관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물을 없음이더라”(20:39-40);

(1)   애초의 질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시고 있는 예수님은 부활과 영생에 대한 개념이 확실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무리들 가운데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부활이 있다고 주장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호의적입니다. 따라서 찬성의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서기관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20:39). 그와 같은 현상은 훗날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발생하고 있습니다(23:6-9).

(2)   부활이 있다고 믿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편을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이 없다고 믿고 있는 사두개인들이 앞에서 계속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12 불리한 국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들의 입장을 접고서 조용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물을 없음이더라”(20:40).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자신에게 하나님이 아니 계시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때에는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재빨리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태가 오래 지속이 되면 영적으로 죽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의 성도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부활 승천하시고 다른 보혜사로 성령님을 보내어 주시어서 성도들에게 내주 역사하시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구원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 그리고 영생의 즐거움을 남은 인생 가운데 미리 맛볼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를 미리 맛배기로 실감나게 누리시는 성도님들의 생애가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