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91강(눅20:16-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9. 20:14

누가복음 강해 191(20:16-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11()

 

포도원을 새로이 관리하게 되는 농부들은 누구의 모범을 따라야만 하는가?(20:16-19)

 

포도원이란 무엇일까요? 세가지로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을 선지자 이사야는 포도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5:7). 둘째,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경작하도록 맡긴 약속의 가나안입니다(20:9). 셋째, 본문에서는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땅의 기업입니다(20:16). 이상 가지의 개념을 연계하여 묵상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19:1-6). 그들이 선민(選民,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민족)이며 하나님의 포도원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5:7).

(2)   둘째, 선민들에게 땅의 기업으로 가나안 땅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포도원을 경작하도록 맡기신 것과 같습니다(20:9). 약속의 땅을 주신 이유는 옛날 아브라함처럼 이웃나라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신앙의 본을 보이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12:3, 20:7, 19:5-6). 요컨대, 선민들을 이방인 선지자로 세워서 세상의 온갖 족속들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3)   셋째,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은 선민들을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인도하지를 않습니다. 선민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만 강조할 뿐입니다. 따라서 유대교의 전통에 물든 선민들이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지 않으며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방인들을 원수같이 미워하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정복하고 지배하고자 합니다.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선민들이 메시아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무찌르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선민의 타락상을 예수님께서 바로잡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유대교의 전통인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반대가 심합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그들에 의하여 처형을 당하시게 됩니다(18:31-34). 결과 하나님의 포도원이라고 불리고 있는 아름다운 선민의 칭호와(5:7)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20:9) 누구에게 넘어가게 되는 것일까요?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와서 농부들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20:16);

(1)   농부들이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이고 자신들이 포도원을 대신 차지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포도원 주인이 타국에 가서 스스로 다시 돌아올 수가 없으므로 동안 종들을 보내고 드디어는 아들까지 보낸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 주인의 아들을 살해하고 맙니다. 그렇다면 농부들은 자신들이 계획한대로 무사히 포도원을 차지할 수가 있게 될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농부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   무엇보다도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의 능력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올 없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농부들을 진멸하고 자신의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십니다(20:16a). 비록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이시지만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마치 선민들의 권리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이방인들에게 넘어가는 것처럼 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이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20:16b). 선민으로서의 기득권만 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민의 의무를 일체 행하지 아니한 유대인들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까지 처형을 하고서 용서함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둘째로,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쩜이냐?”(20:17);

(1)   예수님께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주시고 있는 말씀은 일찍이 시편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이제는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이라.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118:17-24). 먼저 시편의 예언의 말씀을 조금 살펴봅니다;

1)      선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처형하였다고 하여 모두가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죽음에 넘기지 아니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지시기 때문입니다(118:17-18).

2)      자신들의 선민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유대인들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그들이 회개를 하고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서 장차 만민구원과 영생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게 된다면 의의 문으로 들어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118:19-21).

3)      그렇지만 당장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처형한 잘못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이 이방 땅으로 먼저 넘어가게 됩니다(118:22-23). 그리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118:24). 그것은 유대교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유대교리와 율법사상에 어긋난다고 하여 버려버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상이 신기하게도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초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118:22, 20:17). 그것이 진실로 기묘한 하나님의 지혜이며 역사의 섭리입니다.

(2)   훗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3일에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4-48). 말씀 그대로 세상만민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다음과 같습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시편에서 이미 메시아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24:44). 메시아의 복음사역이 선민의 땅에서 먼저 있게 되지만 유대인들이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선민사상과 유대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예수님을 처형해버리게 됩니다(118:22).

2)      결과 메시아의 만민구원사상과 영생구원사상은 이방인들을 살리는 복음으로 먼저 역사를 하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한 만민구원에 감격하는 이방인들이 성경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24:45-47).

3)      선민의 예루살렘에서 시작이 메시아의 대속의 제사와 부활의 역사가 이방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이루고 마침내 선민들의 구원을 이루게 것입니다(118:17-20, 11:11-12, 29-36). 그와 같은 히브리정경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나사렛 예수로 말미암아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은 이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24:47-48, 28:18-20).

셋째로,무릇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20:18);

(1)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세가지로 풀이하여 세상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피조물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결코 선민만을 구원하고자 하는 편협한 호국신(護國神) 아닙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만민구원사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둘째, 선민들이 그만 세상적인 복락을 오래 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세상적인 성공과 소원성취를 이루어 준다고 하는 우상문화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부터 교리와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 심각하게 그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영생구원에 있으며 하나님나라의 건설에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3)      셋째,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하나같이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선민들이 이방인들을 저주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고자 합니다. 따라서 그들의 잘못을 시정하고자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자 하십니다.

(2)   이제 남은 문제는 선민들의 진정한 회개입니다.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편협하며 세속적인 신앙을 버리고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선민들에게는 예수님이 구주(救主, saviour) 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자신들이 옳다고 강변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죽인 죄를 청산하지 못하고 돌위에서 박살이 나고 것입니다; “무릇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20:18a).

(3)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오십니다. 따라서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있겠지만 그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종말심판이 임하고 맙니다. 그것은 마치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20:18b) 표현과 같습니다.

넷째로,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20:19);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 정확하게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지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실을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깨닫고 있습니다(20:19a). 그들은 얼마나 심정이 상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수만 있다면 당장 예수를 성전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돌로 쳐죽이고 싶습니다.

(2)   하지만 그들은 성질이 나는 대로 그렇게 함부로 행동을 수가 없습니다. 장소가 성전이며 안에는 보는 눈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20:19b). 특히 서기관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몸에 받고 있는 고귀한 율법학자들입니다. 평소에 백성들 앞에서 언제나 고상하고 품위가 있게 거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이 종들을 시켜서 나사렛 예수를 성전 바깥으로 내치라고 명령을 내리는 것은 품위가 한참 손상이 되는 행동입니다.

(3)   따라서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하고 싶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조용히 예수를 체포하고 순식간에 처형을 해버리고 싶습니다(22:2). 그렇게 서기관들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 지도자들과 함께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초에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몰려드는 가장 명절인 유월절을 지나서 조용히 예수를 처리하려고 합니다(26:3-5). 그러나 예수 일행 가운데 내부고발자 가룟 유다가 나타나는 바람에 유월절 직전에 한밤중에 거사를 치르게 됩니다(26:14-16, 22:3-6). 앞으로 의사 누가가 사실을 진술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을 진심으로 사랑하십니다. 생명을 일일이 돌보고 모두 살리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신을 배척하고 있는 선민들, 특히 자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   첫째,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처형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방인 뿐만 아니라 선민들의 죄도 회개만 하면 모두 사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2)   둘째,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유대인들이므로 선민의 특권은 사라질 것입니다: “기록된 ,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20:17). 그러므로 종래와 같이 선민의 특권만을 주장하면서 선민의 의무를 끝까지 이행하지 아니하게 되면 박살이 나고 것입니다(20:18).

(3)   셋째, 이제부터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이 없이 누구나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서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자들은 구원을 얻을 있습니다. 반대로 행동을 하는 자들은 심판을 당하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심판의 기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무릇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20:18).

  그러므로 선민이나 성도들이거나 모두 자신들의 특권에 안주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제자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새로이 포도원을 경작하는 농부의 삶입니다. 아무쪼록 부지런한 농부의 ,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온전히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