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89강(눅20: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9. 13:26

누가복음 강해 189(20:1-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9()

 

예루살렘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권위와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의 권위는 모두 어디에 기초해야만 하는가?(20:1-8)

 

흔히 정치적인 권력이란 사회적인 가치를 배분할 있는 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적인 제도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힘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제도와 책임자에게 권력을 위임해주고 있는 자들은 선거권자인 국민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국가적인 틀을 가지고 있지 못한 소위 로마의 속국 신세인 유대인사회에 있어서는 권력이란 개념이 어떠한 것일까요? 그것은 독특하게도 정치적인 제도에 근거하고 있는 권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군사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유대교라고 하는 민족종교의 집단이 산헤드린 공회의 구성원들인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부여해주고 있는 힘입니다. 힘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본문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입니다(20:1).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리셔서는 뜰에서 제물장사와 환전장사를 하고 있는 장사치들을 전부 내쫓고 있습니다(19:45-46).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은 불만이 가득합니다. 자신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종교적인 권력을 위임 받고 있는 권력자들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정치적 또는 종교적인 권력이 없는 나사렛 예수가 함부로 성전 내에서 설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따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권위를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0:1). 그들이 짐작하고 있는 예수님의 답변은 뻔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권위라고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말을 청종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주고 있는 권위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한 답변이 나타난다고 하면 유대교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대응할 것입니다;

(1)   첫째, 예수님의 권위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답변한다면 그때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해석에 대한 논쟁으로 몰고가면 됩니다. 오랜 세월 유대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율법학자들이 풀이를 해주고 있는 율법적인 설명을 유권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과 예수님의 해석 가운데 전통적으로 어느 것이 권위가 있는 것인지를 백성들에게 물으면 됩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전통적인 유대교의 권위체계가 신출내기 예수님의 것보다 훨씬 견고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답변의 방법을 선택하시지를 아니하십니다.

(2)   둘째, 예수님께서 권위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름대로 풀이하여 유대인들에게 가르칠 있는 이유가 그들이 경청을 하며 말씀의 풀이에 동의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변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의 말씀풀이가 전통적인 유대교리와 어긋나는 것이므로 말씀을 따르는 유대교인들은 출교를 당할 것이라고 위협을 가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9:22). 사실 유대인사회에서 일단 출교의 조치를 당하게 되면 이방지역으로 떠나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불이익입니다.

그러한 유대교지도자들의 교활한 책략을 예수님께서 진작에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대답이 기상천외(奇想天外, 너무나 기이하여 상상 밖의 것임) 것입니다; “나도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20:3-4). 예수님의 말씀의 뜻은 다음 두가지로 보입니다;

(1)   첫째, 세례 요한을 세상에 선지자로 보내신 이는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권위가 당연히 창조주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름부음 받은 자의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게 되면 예수님의 권위도 인정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둘째,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선지자라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님께 침례를 주고 메시아라고 백성들에게 증거를 바가 있습니다(1:31-34). 그러므로 세례 요한을 백성들이 선지자라고 여기고 있다고 하면 당연히 요한의 증거를 받은 바가 있는 나사렛 예수도 최소한 선지자로서의 권위를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예수님의 반대질문에 대하여 유대교지도자들은 항변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세례 요한으로부터 침례를 받으셨는지(3:13, 16, 3:21) 그리고 어째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고 언급을 하셨는지(3:15) 다소 짐작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마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권위를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0:1-2);

(1)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예수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평소에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의 올바른 뜻을 복음으로 가르치시며 상한 영과 육에 대하여 치유사역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생애 끝에는 선민과 이방인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2)   한창 예수님께서 열심히 예루살렘성전에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20:1a).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보시고 있는 시간대에서는 적으로부터 어떠한 시험과 도발에 대해서도 이길 있는 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성전에서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20:1b). 그들은 어떠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요?

1)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고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요약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어디에서부터 유권해석을 받은 것이냐고 시비조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20:2). 만약 그들이 정직하게 예수님께서 3년이상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 그동안 발생한 여러가지 사건과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더라면 결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2)      둘째, 유대교의 교인들인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있는 권한은 바리새파 출신인 랍비들인데 예수님은 누구로부터 율법선생의 자격을 취득한 것인지 출처를 밝혀 달라는 요구입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예수님은 랍비가 아니므로 율법을 가르칠 있는 선생의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밝히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지만 유대교지도자들은 가지 사실을 깜빡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들의 존재입니다. 전통적으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기름을 부어 선지자의 자격을 부여하고 사명을 맡긴 것이지(왕상17:1-2, 6:8-9,  1:1-3) 랍비 가운데서 선지자를 발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20:3-4);

(1)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나중에 등장한 선지자 세례 요한의 사례를 가지고 답변을 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이 아니며 랍비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는 공식적으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불리고 있는 말라기 이후에 400여년이 지나서 유대 땅에 나타난 귀한 선지자입니다. 세례 요한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위탁 받아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충만한 성령의 능력으로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앞에서는 감히 유대교지도자들이 자격을 운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행하고 있는 예수님 앞에서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시비를 걸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2)   일찍이 세례 요한이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질책을 겸하여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한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베풀거니와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7-12). 다음과 같은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은 선민사상을 버려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유대인들은 회개하는 의미로 선지자 요한 자신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셋째, 뒤를 이어 메시아가 세상에 오시는데 분은 주인이시고 선지자 요한은 분의 종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은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종용하고 표시로 물세례를 주는데 그치지만 메시아는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을 선보일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벌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딱하게 보십니다. 그래서 다만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주면서 유대교지도자들에게 회개를 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권위가 어디에서 것인지 아는 대로 대답들을 해보시라고 질문한 자들에게 되묻고 계십니다(20:3). 묘하게도, 공은 상대편에게 도리어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유대교지도자들은 어떻게 세례 요한의 권위의 기반에 대하여 답변을 할까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라고 인정을 할까요? 아니면 단지 백성들이 한때 어리석게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긴데 불과한 것이라고 답변을 할까요?”(20:4).

셋째로,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것이라 하고”(20:5-6);

(1)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종교적으로 답변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답변은 유대교의 역사에 비추어볼 , 세례 요한은 400여년만에 등장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므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회개를 하는 백성들에게 장차 구원을 얻을 있도록 표시로 물세례를 바가 있다는 내용이 것입니다.

(2)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종교적으로 정직하게 답변을 하지를 못합니다. 이유는 굉장히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외세 로마의 치하에서 유대교의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는 그들인지라 정치적인 감각이 남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답변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지를 먼저 따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치적으로 평가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것이라 하고”(20:5-6);

1)      첫째,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게 되면 나사렛 예수 역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가 됩니다. 그러면 선지자의 권위로써 얼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인정을 하게 되면 유대교지도자들인 자신들에게 정치적으로 손해가 됩니다(20:5). 그러므로 그러한 답변을 회피하고자 합니다.

2)      둘째, 만약 세례 요한에 대하여 백성들이 선지자로 잘못 알고서 한때 그들 따랐다고만 답변을 하게 되면 그것 역시 나중에 정치적인 부담이 발생합니다. 이유는 아직도 세례 요한이 선지자라고 유대인들이 인정들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0:6). 사실 요한은 용감한 선지자였습니다.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의 도덕적 율법적인 잘못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을 하다가 참수를 당했기 때문입니다(14:3-12). 따라서 백성들이 그를 여전히 존경하고 있습니다. 현실이 그러한데 세례 요한에 대하여 백성들이 선지자로 여기지 않고 있다고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넷째로,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0:7-8);

(1)   결과 종교적 지도자들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참으로 정치적인 답변만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20:7). 하나님 앞에 정직하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가 되는 것을 보고서 겸손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그들입니다.

(2)   그러한 무리들에게 진리에 대하여 계속 가르침을 베푼다고 하는 것이 시간 낭비일 것만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0:8). 이제는 그들의 속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회개할 기회를 주는 수순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무엇보다도 종교적 지도자들은 정직하고 순수해야만 합니다. 유대교지도자들처럼 정치적으로 물이 들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선포가 때에는 정직하게 뜻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그들에게서 종교인의 냄새가 아니라 정치인의 냄새가 진하게 풍기고 있을 뿐입니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가를 따지다가 보면, 하나님의 영적인 말씀과 역사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을 넘어서서 유대교지도자들과 같은 잘못을 오늘날에도 범하지 말아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