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87강(눅19:41-4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8. 01:45

누가복음 강해 187(19:41-4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7()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예루살렘과 선민들에게 장차 임하게 되는 역사적인 심판을 미리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19:41-44);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셨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19:41). 그리고 그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1)   첫째, 예루살렘 성이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19:42).

(2)   둘째,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이 성에 어떠한 방법으로 나타날 것인지 예언을 해주고 있습니다(19:43).

(3)   셋째, 예루살렘 성이 적군에게 점령을 당하고 어떠한 일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19:44a).

(4)   넷째, 선민 유대인들이 생활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여호와의 보살핌을 외면한 결과라고 밝히고 있습니다(19:44b).

위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가까이 오사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은 뻔하였거니와 지금 눈에 숨겨졌도다”(19:41-42);

(1)   복음서 가운데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장면은 차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 여기 본문에서 장차 예루살렘 성과 유대인들이 당할 참상을 안타까워하면서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가까이 오사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시며”(19:41). 둘째,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아니하고 있는 베다니 나사로 집의 가족과 문상객들을 보시고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11:35).

(2)   예루살렘 성이 멸망을 당하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백성들의 불신앙 때문입니다. 따라서 선민이나 성도들이 불신앙에 빠져들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결과 초래되는 심판과 멸망을 예견하시고서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밝히고 계시는 예루살렘 성의 멸망의 정확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은 뻔하였거니와 지금 눈에 숨겨졌도다”(19:42);

1)      사람들이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있는 방법은 아주 쉬운 것입니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자신들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렇게 종으로서의 법도를 하나님 앞에서 확실하게 지키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현실생활에 있어서 그렇게 하기를 싫어합니다. 이유는 자신의 방법이 현실에 맞고 문제해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나아가서 자신이 의롭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주장을 하다가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조차 자신이 의롭다고 강변하게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수도 없이 선지자를 파송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죄인이며 우상을 섬기고 있다고 지적을 해주고 있지만 그것이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지적이 틀렸으며 자신들의 방법이 옳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따라서 예수님께서 3 이상 공생애를 사시면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전해 주셨지만 효과가 미미합니다.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유대교리로 체계화하고 있는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보상이 옳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공동체에 있어서 사람들 보기에 자신들이 율법생활을 정확하게 하고 있다면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구원과 복락을 주셔야만 한다는 논리입니다.

4)      그러므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사상은 곳이 없습니다.  선민들이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 함께 들어갈 있도록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가르쳤지만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대신에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바라고 있는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만들어 시온의 영광을 세상에 떨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방법이며 일을 수행하지 아니하는 메시아는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생각을 고수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잘못된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회개하지 아니하는 이상 하나님과 화해를 수가 없습니다.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임하게 됩니다;

1)      멀지 아니하여 역사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안타깝게도 유대인들이 전혀 짐작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전히 자신들이 종교적으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하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는 자들에게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판까지 유대인들은 예지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날이 이를지라. 원수들 토둔(土屯, 흙으로 쌓은 언덕)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19:43);

(1)   예수님의 눈에는 40 후에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 임하게 되는 그날의 전란의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19:43a). 그것은 유대인들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는 적의 공격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이 난공불락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성은 해발 780m 높은 산지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북쪽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3면에는 낭떠러지가 형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골짜기 맞은 편에는 높는 산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성은 동과 서의 양쪽 산에 복병을 두고서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에게 집중적으로 화살을 날리게 되면 철옹성과 같은 요새입니다.

(2)   하지만 40년후의 로마의 군대는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고 유대 땅을 초토화시켜버릴 것입니다. 전략적으로, 전국을 유린한 후에 예루살렘성을 고립시키고 오래 포위하여 공격할 것입니다(19:43c). 나중에는 아예 흙으로 높은 언덕을 쌓아서 동서의 매복병들의 공격을 무산시켜버립니다(19:43b). 그리하면 지리적인 이점이 사라져버린 예루살렘성은 적의 수중에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너와 가운데 있는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하나도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19:44);

(1)   훗날 예루살렘성에서는 참으로 비극적인 모습이 연출이 됩니다. 어른들이 엄청난 살상을 당할 뿐만 아니라 후세대를 이어갈 자녀들마저 척살이 되고 있습니다(19:44a). 그리고 궁궐과 성전은 불에 타버릴 것이고 성벽은 모두 무너져버릴 것입니다(19:44b). 그것은 마디로 로마군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게 되면 초토화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참혹한 역사가 임하게 될까요?

1)      예언은 그대로 주후 70년경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디두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의 정예병들이 유대 땅을 짓밟고 마침내 예루살렘성을 함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을 110만명 정도 학살합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도 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 없도록 조치를 하고 맙니다.

2)      결과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문을 닫게 됩니다. 당시에 생존하게 되는 유일한 사도인 요한도 일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모친을 모시고 소아시아의 항구도시 에베소로 탈출을 했다고 합니다. 선민들이 모두 유대 땅에서 살지를 못하고 이방 땅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3)      그때부터 이방지역에 있는 회당이 본토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의 안식일 회당이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교회는 사라지고 유대인 성도들이 흩어져서 시리아, 애굽, 소아시아, 유럽 등지의 이방인교회에 합류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서부터 소아시아 서쪽지역을 여행하면서 7개의 현지인 교회를 방문하고 돌보았다고 하는 기록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1:11).

(2)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19:44c); 예루살렘성이 멸망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선민 유대인들을 보살피고 계시는 것일까요?

1)      무엇보다 중요한 보살핌은 유대인들에게 선지자들을 많이 보내시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아들을 메시아로 보내셔서 하나님말씀의 정확한 뜻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이방인이 아니라 선민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로 선민들의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도록 하십니다. 그것은 선민들에게 주고 있는 엄청난 특혜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도록 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바로 자신들 선민들의 죄를 속죄하는 가장 강력한 제사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유대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됩니다. 나아가서 무덤속의 부활도 유대인들의 수도인 예루살렘 근방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3)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한 뜻을 배울 있는 기회,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할 있는 기회,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 영생구원을 확신할 있는 기회 모든 특혜를 누리고 있는 백성입니다. 모든 것들을 여기서는 보살핌을 받는 날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9:44c).

4)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은 보살핌을 선민 유대인들이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배려와 특혜에 대한 배신 행위입니다. 따라서 결과 비참한 역사적인 심판이 예루살렘성에 임하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전히 선민 자신들을 두텁게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땅이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그러한 훗날의 역사는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배척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족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라고 가르쳤지만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배척하고 맙니다. 그리고 유대인 백성들은 오랜 세월 익숙한 유대교리와 율법생활에만 만족할 뿐입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현실과 미래에 대하여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이방 땅으로 널리 퍼져나갈 것임을 또한 내다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절망을 넘어서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섭리를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유대인들처럼 지나친 선민의식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만민구원을 위하여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시는 예수님 복음의 전파자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