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90강(눅20:9-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9. 20:12

누가복음 강해 190(20:9-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10()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만들어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소출 얼마를 받고자 하시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째서 그것을 반대하고 있는가?(20:9-15)

 

먼저, 가지의 개념을 분명히 하여야 이해가 있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첫째, 포도원의 소출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둘째, 선민들이 소출을 바치지 아니하고 포도원을 영구히 차지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오경을 살펴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대로(12:1-3, 15:13-21) 모세의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세상제국 애굽의 지배에서 해방을 시키고 선민으로 삼으시며(19:1-6)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가나안 일대의 땅을 그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주십니다(11:16-23).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포도원 약속의 가나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가나안 원주민들을 고토에서 쫓아내시고 땅을 약속의 땅으로 그들에게 주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하게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은 야곱인 이스라엘의(32:28, 35:10)  자손 뿐만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삭 외에도 서장자인 이스마엘과 후처 그두라의 아들 6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삭의 아들은 쌍둥이인데 장자가 에서이고 차자가 야곱입니다”(16:15-16, 25:1-6, 24-26).

그런데 야곱 이스라엘 자손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승계하고 있는 백성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거는 무엇일까요? 가지로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의 언약을 믿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삭이 승계했으며 그것을 또한 야곱이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방계의 자손들은 그러한 하나님신앙의 승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2)   둘째,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출애굽기의 기록이며 역사서 여호수아의 기록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예언이 실제로 모세의 시대에 출애굽의 역사로 이루어졌으며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약속의 가나안을 차지하는 역사로 실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신앙을 유일하게 파수하고 있는 자신들은 선민의 영광을 누릴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지의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시키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이유를 그들이 외면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선택하여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행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19:5-6). 여기서 제사장나라는 선민들이 모두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나라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민만의 속죄가 아니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만민을 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민족이라는 의미입니다.

2)      그리고 거룩한 백성은 옛날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을 살리기 위하여 여호와께 끈질기게 중보의 기도를 드릴 있는 백성을 말하고 있습니다(18:23-32). 그러므로 자신들만 심판 가운데 구원을 받아 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기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영생구원의 복을 함께 누리고자 하는 선민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3)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변방의 선지자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보내어 보지만 그는 심판이 아닌 구원을 받게 되는 니느웨 사람들을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 모릅니다(1:1-3, 4:1-4). 그래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그들이 다시 범죄하여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4:5).

4)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포도원 약속의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선민들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의무를 실천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대신에 이기적인 신앙생활과 현세적인 축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둘째,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들을 보내어 주십니다. 목적은 부디 회개를 하고서 선민의 의무를 이행하라고 촉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하지만 선민들은 선지자들을 배척하면서 마침내 포도원을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들 선민들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신앙을 시정하라고 보내어주고 있는 선지자들을 내쫓고 마침내는 포도원의 상속자까지 죽이고 마는 것입니다(20:9-15).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가 비유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20:9-10);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후 날마다 성전에 들리셔서 백성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천국의 복음으로 풀이하여 가르쳐 주십니다(20:1).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뜻은 선민구원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을 받아서 선민 자신들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뜻은 만민이 함께 하나님의 구원과 복을 기뻐할 있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예수님의 복음선포를 유대교지도자들은 그대로 두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유대교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그러한 말씀풀이를 함부로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있는지를 따진 바가 있습니다(20:2). 예수님께서는 말씀에 대한 권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세상의 종교적인 조직체와 전통이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전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유대교적인 제도와 전통만을 의존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권위와 말씀풀이의 맹점을 지적하십니다. 다음에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범하고 있는 근본적인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고자 자신의 복음선포를 듣고 있는 성전 내의 백성들에게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0:9-18).

(3)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는 소위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1)      그가 비유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20:9); 이스라엘 자손들이 누대로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란 본래 그들 소유의 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땅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빌려서 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유하건대,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있는 것과 같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20:9a). 그런데 포도원주인이 오랜 세월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있습니다(20:9b). 세월이 오래 지나다 보니까 그만 포도원을 경작하고 있는 농부들이 마치 밭이 조상때부터 자신들의 소유인 것으로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20:10); 참으로 오래간만에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주인이 자신의 포도원을 경작하고 있는 농부들에게 자신의 종을 보내고 있습니다(20:10b). 오랜 세월 소작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20:10a). 소작료라고 하는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서두에서 살펴본 그대로 소작료라고 하는 것은 선민들의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주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와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의무를 선민들이 도무지 이행하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종을 보내어서 이행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민들은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자신들만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하심을 누리면서 살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악한 이웃인 이방인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로 망하거나 선민들의 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선민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시오니즘입니다. 따라서 귀찮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는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맙니다(20:10c).

둘째로,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번째 종을 보내니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20:11-13);

(1)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수호신과 우상들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1)      이유는 그들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경작하고 있는 땅이 사람의 소유이지 신의 소유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을 위하여 수고를 하거나 제사를 드려주는 그와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않고도 살고 있습니다.

2)      이방인들이 섬기고 있는 수호신과 우상들은 참으로 편리한 신들입니다. 오로지 제물을 받고서 일방적으로 이방인들의 행복과 소원성취만을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사람들의 요구에 들어맞는 신들의 모습입니다.

3)      따라서 어느 사이엔가 선민들이 이방인들의 신에게 매력을 느끼고 우상문화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있어서도 마치 이방신처럼 그렇게 우상으로 여기고서 섬기고 있습니다; “ 마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더라도 선민들의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복을 주면 제대로 섬기고 그렇지 아니하면 볼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상 여호와가 자신들의 주인이 아니고 반대라는 의미입니다. 선민들이 세상의 주인이며 여호와는 선민들에게 기생하고 있는 신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이 없으면 여호와도 존재할 수가 없으며 뜻을 수가 없고 영광도 얻을 수가 없다는 사고방식입니다. 요컨대, 여호와를 선민들이 자신들의 종처럼 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2)   그러한 실정이므로 포도원주인이 정당한 소작료를 농부들에게서 징수하기 위하여 계속하여 종들을 보내어보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따름입니다. 모두들 농부들에게서 얻어 맞고 부상을 입은 쫓겨오고 있기 때문입니다(20:11-12). 그래서 주인은 포도원으로 군대를 데리고 들어가서 아예 농부들을 몰살을 시켜버릴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20:13a).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한번의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 것입니다(20:13b). 농부들에게 최소한의 신앙과 양심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그들이 주인의 아들을 선대하고 회개하는 심정으로 밀린 소작료를 정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20:13c).

셋째로,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20:14-15);

(1)   포도원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포도원을 경작하고 있는 농부들인 선민들이 너무나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들에게 포도원을 맡기셨는지 도무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곳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부터 하나님 경외의 신앙을 발전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웃나라에 전하고 그들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보이라고 것인데 뜻을 전혀 깨닫거나 실천하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신앙을 사유화하고 말씀을 이기적으로 풀이하여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어 주시는 선지자들을 배척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방법으로 아들을 메시아로 보내어 주시지만 그마저 해치고자 시도합니다(20:14a). 이유는 상속자를 쳐죽이고 나면 포도원은 영구히 자신들의 차지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0:14b).

(3)   계획과 음모로만 끝나지를 않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을 성전에서 끌어내어 백성들과 분리시키고 처형을 해버리고 있습니다;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20:15a). 모습을 지켜 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하실까요?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반대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자신이 어떠한 최후를 예루살렘에서 맞이하게 되실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자신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속죄의 십자가 희생이 없으면 대노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당장에 유대인들을 몰살시켜버릴 것만 같습니다.

2)      따라서 옛날의 모세처럼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32:7-14, 14:11-20). 그것이 십자가를 지시는 이유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헛된 욕심을 이루고자 예수님 자신을 처형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잘못된 행태가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그래서 비록 비유이지만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묻고 계십니다;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20:15b).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는 포도원과 농부의 비유 통하여 배울 있는 교훈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자손대대로 경작하고 있는 땅과 토지가 사실은 사람들의 소유가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2)   둘째, 땅을 경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인에게 소작료를 바치듯이 여호와의 종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처럼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셋째, 선민들은 그러한 의무를 행하지 아니하고 포도원만을 모두 차지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을 배척하고 이제는 상속자인 그리스도마저 해치려고 합니다. 결과 어떠한 심판을 받게 될까요?

그와 같은 비유적인 가르침은 예수님 당시에만 적용이 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며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는 여호와의 신실한 종으로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만약 유대교지도자들이나 선민 유대인들처럼 그것을 사유화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구원을 자신들의 이기적이고도 세속적인 목적을 위하여 제한하고자 한다면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하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수님의 비유의 뜻을 음미하면서 올바른 신앙을 파수하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