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97강(눅21: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5. 3. 04:00

누가복음 강해 197(21: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17()

 

의사 누가는 어째서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家産, 집안의 재산) 삼키고 있다는 예수님의 지적에 이어서(20:47) 성전을 출입하고 있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가?(21:1-4)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이라고 하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일하고 있는 고위직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회가 유대교의 최고 재판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서기관들이 대제사장을 보좌하여 유대교리와 율법에 비추어서 종교재판을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기관들은 율법학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바리새인이라고 하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히브리정경과 율법에 대하여 유권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시키고 있는 랍비들과 그들의 제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가운데 유대교의 스승은 율법학자인 서기관들이라고 말할 있습니다(5:33-40, 22:3). 그들은 성전에서 그리고 공회에서 나아가서 바리새인들 사이에서도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는 교법사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유대교의 교리를 수호하고 율법의 해석을 담당하며 많은 랍비들을 키워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유대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몸에 받고 있는 서기관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야단을 치십니다; “그들(서기관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20:47). 점잖게 표현을 해서 그렇지 말은 가난한 과부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들의 생존비까지 갈취하고 있다 엄청난 모욕적인 발언입니다. , 유대교리를 책임지고 있는 서기관들을 아주 철면피한 인간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율법학자들이 불쌍한 과부의 돈까지 착취를 하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의문에 대하여 답을 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본문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입니다(21:1-4). 그와 같은 의도로 의사 누가가 본문을 20 말미 다음에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떠한 교훈을 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어떤 가난한 과부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21:1-2);

(1)   예루살렘성전의 동쪽 문인 미문(beautiful gate or golden gate) 앞에는 13개의 헌금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뜰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미문 앞에서 헌금을 수가 있습니다. 헤롯 왕가는 대제사장과 함께 예루살렘성전을 증축하고 있었는데 경비에 충당하기 위하여 미문 앞에 있는 헌금함에 백성들이 많은 헌금을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놋쇠로 만든 나팔모양의 헌금함입니다. 그것을 13개나 만들어서 각각 헌금이 사용되는 용도를 달리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1)      첫째, 성전 증축을 위하여 필요한 항목이 그곳에 적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헌금이 성전 증축의 어느 부문에 사용이 되는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따라서 자발적으로 많은 헌금을 하게 됩니다.

2)      둘째, 나팔모양으로 되어 있는 놋쇠로 만든 헌금함입니다. 입구가 나팔처럼 넓게 되어 있어 동전을 넣기에 편리합니다. 그리고 동전을 그곳에 떨어뜨리면 딸랑하고 소리가 납니다.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서 몇개의 동전을 헌금하고 있는지 금방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신과 체면을 중시하고 있는 율법사회에서 적은 양의 돈을 넣을 수는 없습니다. 되도록 가치가 낮은 동전을 많이 바꾸어서 헌금을 합니다. 가급적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들을 있도록 딸랑 딸랑거리면서 동전을 계속 나팔관에 밀어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2)   가난한 과부가 렙돈 동전을 헌금함에 넣고 있습니다(21:2). 2렙돈의 가치는 하나의 고드란트 해당하며 장정의 하루치 임금인 데나리온 64분의 1입니다. 그러므로 하루 품삯을 100불로 가정하면 1.5 정도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식빵 하나를 사서 가난한 과부가 하루를 굶지 않고 버틸 있는 돈입니다. 참고로, 선민 유대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은화와 동전에 대하여 알아보고 다음에는 예루살렘성전의 구조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대인들은 은화와 동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화는 3.8g으로 로마가 만든 데나리온’(Denarius) 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장정의 하루치 품삯이기 때문에 편리합니다(20:2). 헬라 시대에 사용이 4.3g 드라크마’(Drachma) 로마시대인 예수님 당시에 주로 예물용으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15:8). 백성들은 가치가 은화를 성전의 헌금함에 넣기보다는 동전으로 바꾸어서 넣기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이방인들의 뜰에 있는 환전소가 바쁩니다(21:12, 19:45). 로마의 동전 앗사리온’(Assarius) 16분의 1 데나리온입니다(12:6). 그리고 역시 로마의 동전인 고드란트’(Quadrans) 이름 그대로 4분의 1앗사리온입니다(12:42). 작은 동전을 헌금하기 위하여 헬라의 최소 동전인 렙돈’(Lepton) 사용이 되고 있는데 그것은 2분의 1고드란트에 해당하고 있습니다(12:42, 21:2).

2)      예루살렘성전의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전은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은 직사각형 모양입니다. 지성소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번제단과 성소는 동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전으로 들어오는 문은 동쪽입니다. 동쪽의 문으로 들어오면 성전의 뜰을 만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차례대로 이방인의 , 여인의 , 이스라엘의 , 제사장의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뜰과 이스라엘의 사이에는 미문이 설치가 되어 있으며 앞에 13개의 놋쇠로 만든 나팔모양의 헌금함이 비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가르치시고 나서 미문으로 여인의 뜰로 나오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설치가 되어 있는 헌금함을 주목하십니다;

1)      마침 어떤 부자가 많은 동전을 한꺼번에 나팔모양의 놋쇠 헌금함에 넣고 있는지 소리가 와르르울리고 있습니다(21:1).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어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십니다(21:2). 가벼운 쇳소리가 울리고 조용합니다. 아마도 가장 가벼운 동전인 렙돈을 두개 넣은 모양입니다. 여인은 주위를 둘러보기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서 자리를 물러나고 있습니다.

2)      모습을 조용히 지켜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가난한 과부에게 있어서 2렙돈이라면 하루치 빵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과부는 성전의 미문에 13개나 설치가 되어 있는 헌금함을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자신의 하루치 값을 전부 속에 넣고 말았으니 오늘 하루는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아마도 저녁 끼니를 굶고서 잠자리에 들어야 것입니다.

3)      그녀는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을 증축하는데 값을 전부 헌금하였으니 참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잠을 이루게 될까요? 히브리 정경을 해석하고 유대교리를 정립하고 있는 서기관들과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랍비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설교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4)      하지만 모습을 지켜 보신 예수님께서는 탄식을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와 고아를 굶지 아니하도록 선민들이 도와주라고 말씀하셨는데(14:29) 유대교지도자들은 성전을 증축하겠다고 거의 반강제적으로 교묘한 방법으로 모금을 하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최종적인 유권해석을 담당하고 있는 서기관들의 잘못이 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20:47)라고 서기관들을 강력하게 질책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로,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21:3);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여호와 하나님께 정성을 드린다고 하여 바친 2렙돈의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칭찬을 하십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생계비의 하루치를 몽땅 헌금을 하고 말았으니 그날 하루는 금식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금식이 것입니다. 가장 돈을 헌금한 것으로 보고서 예수님께서 인정하셨으니 정상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참작하실 것입니다.

셋째로,저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21:4); 부자는 은전을 넣어도 되는데 일부러 작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동전으로 많이 바꾸어 와서 헌금함에 계속 넣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전 넣는 소리가 사방에 시끄럽도록 울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율법생활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용하게 자신의 하루치 생계비를 전부 헌금함에 넣고서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고 있는 과부의 경우는 다릅니다. 남에게 과시하고 있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것이 그것 밖에 없어서 대단히 죄송스럽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칭찬이 다음과 같이 뒤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21:4).

결론적으로, 가난한 과부가 하루치의 생계비를 전부 헌금했다고 하는 사실은 분명히 칭찬을 받을 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성전의 미문 앞에 소리나는 놋쇠로 만든 헌금함을 13개나 만들어 놓고서 헌금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행태는 예수님의 강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헌금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가난한 과부의 생계를 보조하는 방향으로 사용이 필요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본문을 음미하시면서 균형 잡힌 사고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시선이 향하시는 곳을 함께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마음이 머무시는 곳에 자신의 마음을 같이하는 제자의 삶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진은 예루살렘성전의 구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