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제183강(눅19:16-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11월 3일(목)
선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하나님나라와의 차이에 대하여(눅19:16-23)
창세기 제1장을 살펴보면,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에 땅이라고 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우주를 창조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땅의 요소들이 서로 만나고 부딪치면서 빛이 발생하고 생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동식물이 공존하며 공생할 수 있는 창조의 질서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와 같이 만민과 만물이 서로 돌보며 생명을 살려내고 있는 질서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그 모습을 보시기를 심히 좋아하십니다(창1:31).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세상이며 하나님나라의 원형입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세상을 악한 세상으로 만들어 자신들이 지배하고자 하는 악한 영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제3장의 내용에 따르면, 그들의 화신인 뱀이 하나님의 청지기인 아담부부를 유혹하게 됩니다. 그 결과 탐욕과 교만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청지기들이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악한 영의 말을 따르게 되고 맙니다. 그것이 영적인 타락입니다.
그 결과 창세기 제6장에 따르게 되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는 사람들의 탐욕과 교만 때문에 온 세상이 부패하게 되고 맙니다. 사람들이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면서 약육강식의 세상을 만들어가자 동물들마저 흉포화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스트레스를 받게 된 식물들도 독소를 품어내게 됩니다. 마침내 땅이 전체적으로 부패하게 되고 말자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의 홍수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다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내실 것인가요? 주전 8세기말에 이사야는 그의 선지서 제11장에서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을 다시 지배하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세상임금들이 지배하고 있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하여 실현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하나님나라가 건설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후 1세기에 예수님께서는 3년 6개월간의 공생애와 복음사역을 통하여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온 메시아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전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의 온갖 질병과 장애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에게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죄 사함과 구원을 선포해 주시며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음을 말씀하십니다(눅11:20, 18:42, 19:9).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건설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메시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재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주전 6세기에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이후 페르시아 제국, 헬라 제국, 로마제국의 순서로 계속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비록 주전 140년경부터 약 80년 동안 잠시 레위인들의 하스모니안 왕조가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속국으로 지내고 있는 500년 이상의 세월에 비하면 너무 짧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계속하여 강대한 패권제국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나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다시 한번 보내어 주시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여 시온의 영광을 온 세상에 다시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만들어 주시는 선민의 제국이라는 떡만을 받아 먹겠다고 하는 선민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은 10므나의 비유’ 가운데 다른 내용의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눅19:21). 그것은 선민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종으로서 실천해야만 하는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눅19:16-24).
그것은 선민들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아니하게 되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건설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처벌이 되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10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10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19:16-17);
(1) 주인이 이웃나라로 가서 황제에게서 왕위를 받아서 금의환향을 했습니다. 임금이 된 주인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원수를 쳐부순 것이 아닙니다. 그 대신에 주인은 자신의 재산과 기업을 10개로 나누어 하나씩 맡긴 10명의 종들을 불러서 그들과 회계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 번 강해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원수는 언제라도 심판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심판이 임하기 전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신실한 종들이 먼저 구원사역을 해야만 합니다. 이제 그 일을 담당할 신실한 종들을 선발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급선무입니다”(눅19:15, 27).
(2) 제일 먼저 주인에게 자신이 한 일의 성과에 대하여 보고를 하는 종이 있습니다(눅19:16a). 그가 예수님의 경우에 있어서는 첫번째 제자인 셈입니다. 그 종은 주인이 맡긴 한 므나를 활용하여 그 열 배의 소득을 얻었다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눅19:16b). 그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종이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된 종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앞으로 구원사역에 큰 몫을 담당하게 합니다. 무려 10고을을 맡아서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고 치유의 사역을 전개할 것입니다. 나아가서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주인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 10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3) 참고로, 그 첫번째 종에게 주고 있는 주인의 칭찬이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눅19:17a). 그 능력과 충성심을 평가하여 크게 사용을 하고 또한 나중에는 하나님나라에서 큰 기업을 주고 있습니다;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10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19:17b),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둘째로,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5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5고을을 차지하라 하고”(눅19:18-19); 두번째로 종이 회계를 하고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한 므나의 재산을 잘 활용하여 5배의 소득을 얻었다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눅19:18). 그 보고를 들은 주인은 첫번째의 종에게 준 칭찬과 동일한 칭찬을 해줍니다(마25:21, 23). 그리고 그 종의 능력과 재주를 바르게 평가하여 다음 번 과업을 맡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5고을을 담당하여 복음사역을 시행하고 훗날 천국에서 그것을 기업으로 다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눅19:19).
셋째로,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눅19:20-21);
(1) 10명의 종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종류의 종에 대하여 이미 설명을 했습니다; ①첫째가 10배의 소득을 얻은 종입니다. 얼마나 신실하고 능력이 많은 종인지 모릅니다. 주인의 뒤를 이어서 복음사역을 잘한 종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에 맡게 10고을을 맡아서 복음사역을 하고 장차 하나님나라에서 10고을을 다스리라고 하는 권세를 얻고 있습니다. ②둘째가 5배의 소득을 얻은 종입니다. 그 역시 주인의 칭찬을 받고 능력에 어울리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2) 그 다음에 여기서는 세번째 부류의 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이 맡긴 한 므나를 활용하여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사역을 전혀 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눅19:20a). 그는 그 이유에 대하여 하나님의 창조성과 전능성을 너무나 믿고 의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그 종의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눅19:20b-21);
1) 혹시 주인이 맡긴 므나를 잘못 사용하여 이익을 남기지 못하고 적자를 보게 되면 그 문책이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왕위를 받아서 돌아올 때까지 단단히 수건으로 그 은화를 감싸고 안전하게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눅19:20b-21a)는 말의 의미입니다.
2) 자신의 비겁한 행동이 주인의 질책을 받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그 종은 좋은 핑계거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주인께서는 능력이 많으시기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심지않고서도 수확을 거두시는 창조의 능력까지 지니고 계십니다. 따라서 저와 같은 종이 한 므나로 소득을 얻는 것이 무엇이 그리 도움이 되시겠습니까? 그저 그 므나를 잘못하여 까먹지 아니하고 잘 보관하였다가 반납해드리는 것이 종의 도리로 보입니다”(눅19:21b의역).
(3) 그 종은 믿음이 좋은 종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해주시고 그는 그것을 맡아서 편하게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종이 아니라 상전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종의 모습을 비유 가운데 설명하시는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행태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선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외세를 물리치시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주시면 자신들은 그 복을 받아서 누리겠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아주 미성숙한 어리광이의 신앙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립적인 신앙인, 성숙한 신앙인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과 반대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눅19:22-23);
(1) 주인의 판결이 날카롭기 그지 없습니다. 그 종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예리하게 지적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그 돈을 은행에 맡기게 되면 이자라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눅19:22-23). 그런데 주인이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구태여 종에게 맡긴 이유는 은행이 하고 있는 돈놀이를 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주인은 종이 그것으로 주인이 원하고 있는 일을 하라고 맡긴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천국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백성들을 치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와 같은 복음사역을 하지 아니하는 종은 하나님나라에 자신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선민들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출19:5-6).
구체적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 주는 제사장나라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 옛날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인생을 살아갔는데(창18:23-32, 20:17-18) 그들은 그러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선민의 제국을 건설해주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미성숙하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선민들의 신앙생활을 청산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비유하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본문의 내용을 음미하시고 자신들의 신앙태도를 바로 잡으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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