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82강(눅19: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5. 20:54

누가복음 강해 182(19: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1 2()

 

삭개오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므나의 비유 대하여(19:11-15)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하신 비유인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내에 있는 세관장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 자리에서 갑자기 므나의 비유 대한 말씀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시점은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여리고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예정이십니다. 그런데 임박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고 있는 각기 다른 시선을 예수님께서는 벌써 느끼시고 계십니다; 하나는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의 시선입니다. 하나는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의 시선입니다.

가지의 시선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정확한 의미를 가르쳐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므나의 비유 말씀하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과연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면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들이 말씀을 듣고 있을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9:11);

(1)   그들이 말씀을 듣고 있을 ,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19:11a); 때는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서 여리고의 세관장인 삭개오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입니다(19:1-2, 6);

1)      자리에서 삭개오가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빈민구제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합니다(19:8a). 그리고 자신에게 부당하게 착취를 당한 사람이 있으면 4배로 배상을 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19:8b). 모습을 바라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집에 이르렀다”(19:9) 삭개오의 집이 구원을 받았음을 선포해 주십니다.

2)      그런데 삭개오의 주위에서는 여리고 성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모여들어서 결코 곱지 아니한 시선으로 집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주시하고 있습니다(19:7). 선민인 유대인들은 동족들이 사용하는 수입물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돈을 거두어서 로마의 황제에게 전부 바치고 있는 세관원들을 무척 싫어하여 율법적으로 죄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그러한 사정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세관원들의 우두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서 식사를 함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같은 선지자 예수님의 행태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의심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그와 같은 상황 아래에서 예수님의 비유 자락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19:11a).

(2)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19:11b);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서 10므나의 비유 말씀하시는 이유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      첫째, 목전에 예루살렘 입성을 앞두고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난 3년간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알기 쉽게 백성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현세적인 축복이 아니라 영생의 축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견해의 차이 때문에 동족들이 예수님께서 전하시고 있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과 만민구원 영생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동조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제 여리고의 사역이 끝나고 나면 예루살렘에서의 동안의 사역만이 남게 됩니다. 후에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이 되실 것입니다. 별로 시간이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되도록 알기 쉽게 많은 백성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여기서 10므나의 비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3)      둘째, 그들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도래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누구나 3 동안 갈릴리 지역에서 들려오고 있는 가지 놀라운 소문을 듣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종 병자와 장애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하나님말씀의 뜻이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전부 구원하여 함께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천국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유대인들이 동의하기가 힘이 듭니다.

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사렛 예수가 옛날 어느 선지자도 보이지 못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옛날 엘리야나 엘리사가 각각 한번씩 죽은 자를 살려낸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서(왕상17:17-24, 왕하4:20-37) 나사렛 예수는 사람이나 살려낸 기적의 선지자입니다(7:11-17, 8:49-56). 그러므로 이제 여리고를 떠나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게 되면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할 것만 같습니다.

5)      유대인들은 선민의 제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결코 선민의 제국을 재건할 생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민만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선민과 이방인 구별하지 아니하고 누구나 우상을 버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회개를 하게 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사함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대속의 십자가를 예루살렘에서 지시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장차 예루살렘에서 회개하는 죄인을 모두 구원하는 영생의 하나님나라가 출범하는 것입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대인들은 선민의 제국을 하나님나라로 오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메시아의 역사가 당장 발생할 것으로 믿고서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의 기대는 조금 다릅니다; 첫째, 제자들은 메시아의 나라가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제국으로 현실화가 된다면 나라에서 자리씩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꿈에 부풀고 있습니다(10:35-41). 둘째, 유대교지도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선민들을 위하여 다윗의 제국을 재건해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를 유대교의 이단아(異端兒, 이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 몰아서 처형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11:45-53).  

둘째로,이르시되, 어떤 귀인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나라로 때에 10 불러 은화 10므나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19:12-13);

(1)   10명의 종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은 아직 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주인인 귀인은 나라에 가서 황제로부터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고자 합니다. 그런데 황제가 계시는 제국의 중심까지 가자면 많은 시일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동안 자신을 대신하여 재산을 관리하고 사업체를 경영하라고 10명의 종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자 합니다. 재산과 사업체를 10개로 나누어서 똑같이 균등하게 맡기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알기 쉽게 은화 1므나씩 10명의 종들에게 나누어 맡기고서 주인이 고향을 떠났다고 비유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므나는 570g이므로 50세겔에 해당합니다. 참고로, 1세겔은 11.4g이며 4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치 품삯입니다(20:2).

(2)   의사 누가가 여리고 성읍에서 발굴하여 여기에 게재하고 있는 10므나의 비유 마태복음 25장에 실려 있는 달란트의 비유 비슷합니다(19:12-27, 25:14-30). 그렇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므나의 비유에서는 10명의 종들에게 각각 1므나씩 균등하게 재산을 맡기고 있는데 비해서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차별적으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로 각각 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차이는 가지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므나의 비유에서는 종들의 능력이 서로 비슷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지만 달란트의 비유에서는 서로 재주와 능력이 다르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종들의 능력이 서로 비슷하다는 전제하에서 1므나씩 나누어 주었는데 나중에 결산을 해보니 능력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떤 종은 10배의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어떤 종은 5배의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번에는 능력의 차이를 감안하여야 것입니다. 그것이 달란트의 비유가 보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유로 보입니다.  

2)      둘째, 여호와의 종들의 능력을 바라보고 있는 의사 누가의 견해와 사도 마태의 견해가 다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는 처음에는 종들의 능력과 열심이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10배와 5배로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10배의 소득을 남긴 종이나 5배의 소득을 남긴 종이나 모두 주인의 칭찬을 들었다고 하는 사실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9:17, 19).

3)      사도 마태의 견해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왕 능력과 재주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으므로 점을 반영하여 애초부터 주인이 차이가 나게 달란트를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씩 나누어서 맡깁니다. 그렇지만 결산에 있어서는 평등합니다. 모두 곱절의 소득만 남기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5달란트를 맡은 종은 5달란트를 남기면 되고, 2달란트를 맡은 종은 2달란트를 남기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그런데 백성 미워하여 사자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사람이 우리의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19:14);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 하나님의 명령으로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기 위한 종으로 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예수님의 입장은 선민구원사상과 현세 축복사상에 젖어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입장과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파송한 바리새인들과의 마찰과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선민 유대인들의 입장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유대교지도자들의 편을 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요? 대답이 알기 쉽게 사도 요한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黜敎, 여기서는 유대교에서 쫓아내는 )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바리새인들) 무서워함이러라”(9:22). 백성들은 유대교에서 쫓겨날까 걱정이 되어서 감히 예수님의 편을 수가 없습니다.

(3)   따라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고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달라고 여호와 하나님께 은밀하게 간구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와 같은 은밀한 기도가 진행되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감지하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점을 반영하여 10므나의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백성 미워하여 사자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사람이 우리의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19:14);

(4)   그런데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현세 축복사상을 보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유대인의 되심을 원하지 아니한다고 하는 상소 성격의 바리새인들의 은밀한 기도가 과연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까요? 결과는 부정적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예수님의 천국복음에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문장이 사도 바울의 로마서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넷째로,귀인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19:15);

(1)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는 것을 방해하기 위하여 백성들과 그들의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황제에게 상소를 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아니합니다. 이유는 황제의 뜻이 귀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들의 주인인 귀인이 무사히 왕위를 받아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19:15a).

(2)   이제 왕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 귀하게 되어 비단옷을 입고서 영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오는 )하고 있는 주인은 가장 먼저 10명의 종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지 점검을 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일이 가장 우선일까요? 여전히 고향에서는 귀인이 왕으로 책봉을 받아서 금의환향하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는 많은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처벌하는 것이 우선일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자신의 종들부터 만나서 결산을 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심판보다는 구원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고약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후에 참형에 처하고 있습니다(19:27). 그것은 언제라도 있는 심판입니다. 그러나 구원은 다릅니다. 종들과 결산을 하고서 빨리 신실한 종을 선발하여 구원사역에 투입을 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일꾼을 길러내는 그와 같은 시급하고도 중차대한 일을 맡고 있는 기관이 바로 교회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을 길러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교회들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복음의 일꾼들을 통하여 전도와 선교가 다시 활성화되도록 교회와 성도들이 열심히 기도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은혜가 한국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