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76강(눅18:18-2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21. 10:14

누가복음 강해 176(18:18-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0 27()

 

부자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18:18-23)

 

의사 누가가 본문에 싣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는 공관복음에 공통적으로 적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에 따라서 약간씩 내용이 다릅니다. 우선 차이점부터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 마태복음 19장에서는 사람의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9:16), “ 청년이 이르되,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19:20), “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19:22).

2)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한 사도 마태의 기억으로는 예수님께 영생을 얻을 있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을 사람은 젊은이로서 재물이 많았던 부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마태의 생각으로는 청년은 부자 가문에서 태어난 소위 금수저출신의 젊은이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속재산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3)      그와 같은 사도 마태의 진술로 미루어 보아 마태가 전직 세관원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가 있습니다(9:9-10). 사람을 때에 먼저 신분과 재력부터 날카롭게 관찰하고 있음을 엿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참고로, 사도 마태의 진술은 옛날 부자인 족장 아버지 데라의 재산상속을 포기하고서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가나안 행을 결심했던 믿음의 장자 아브라함의 이야기를(11:31-12:4) 되돌아보게 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마가복음 10장에서는 사람의 겸손한 부자가 예수님께 동일한 질문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0:17),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켰나이다”(10:20), “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10:22).

2)      마가는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아들로 불리고 있습니다(벧전5:13). 그러므로 사도 마태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를 마가는 영적인 아버지 사도 베드로로부터 듣고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마가가 사도 베드로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예수님께 질문을 있는 사람은 대단히 겸손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길을 가시고 있는 예수님께 달려와서 위에 그대로 꿇어 앉아서 영생의 진리를 가르쳐 달라고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4)      마가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사도 베드로는 사람의 나이가 궁금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관심사는 먼저 자가 겸손한지 오만한지 그것에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다음에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재산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서기가 어려웠다고 영적인 아들 마가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누가복음 18 본문에서는 어떤 부자관리가 예수님께 동일한 내용을 묻고 있습니다;

1)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18),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키었나이다”(18:21), “ 사람이 부자이므로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8:23).

2)      의사 누가는 특이하게도 예수님께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질문했던 사람이 관리의 신분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누가의 다른 신분이 로마의 예루살렘총독의 업무를 감독하고 있는 상급기관 시리아총독이 비밀리에 파견한 요원이라고 본다면 그는 예루살렘 총독부의 관리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실세들과 산헤드린 공회의 관리들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3)      그러한 신분의 의사 누가가 사람의 정체를 관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인 사람은 유대 땅에서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자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길가에서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배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디로, 사람이 진심으로 현세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는 진리를 알기를 원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4)      그러한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어째서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서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점에 대하여 답을 얻을 있도록 의사 누가가 본문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18-19);

(1)   이미 살펴본 그대로, 의사 누가만이 사람의 신분이 유대의 관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8:18a). 여기서 유대인이면서 관리의 신분을 가질 있는 경우는 두가지입니다; 첫째, 로마의 총독부에 근무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둘째, 산헤드린 공회에 근무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은 착실한 유대교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생의 진리에 대하여 알기를 소원하고 있는 자입니다. 요컨대,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신실한 유대인이라고 하겠습니다.

(2)   그와 같은 자임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영적으로 알아채시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예수님의 태도가 역시 진지하며 진리를 깨닫도록 도와주고자 하십니다. 다만 방법이 사람이 평생 잊지 못하고 계속 묵상할 있도록 하는 다음과 같은 특이한 가르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1)      사람의 질문이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18b)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이용하여 가지의 진리부터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8:19);

2)      예수님의 대답은 육신을 지니고 있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선한 존재가 아니고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지금 육신을 입고 있는 예수님 자신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 서면 죄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진리로 깨닫는 것이 영생의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첫걸음이라고 하시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3)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기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시면서 절대적인 선을 지니고 계시는 분은 창조주 여호와밖에 없으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주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선함과 상대적인 선함을 구별할 있기를 바라신 것으로 보입니다. 절대적인 선은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릴 있는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그에 비해서 사람들의 선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좀더 인자하고 자비로우며 정의롭다는 인식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절대적인 생명살림의 선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도 영원한 생명으로 만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네가 계명을 아니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키었나이다”(18:20-21);

(1)   사람은 평소 동족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관리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질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18:19). 그래서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관리는 한번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절대적인 선함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지 아니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당장에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   그러한 반응을 이미 예수님께서 알아채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말하고 있는 의로움이 단지 상대적인 선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관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가르치심이 바로 십계명에 대한 질문입니다(18:20). 가운데 다음과 같은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1)      출애굽기 20장에 실려 있는 십계명의 올바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5계명 부모를 공경하라. 6계명 살인하지 말라. 7계명 간음하지 말라.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 9계명 거짓 증거하지 말라”(20:12-16).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순서를 바꾸고 계십니다; “네가 계명을 아니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18:20). 정상적인 살인, 간음, 도둑질 순서가 비정상적으로 간음, 살인, 도둑질 바뀌어 있습니다.

3)      그것은 당시 유대인사회에서 율법위반의 사례가 음란행위가 가장 심하고 기타가 살인과 도둑질의 순서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는 부모 공경이 가장 강조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가장 나중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 공경이라고 하는 가정의 문제가 기타 사회의 문제보다 후순위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십계명에 있어서 주안점은 사실 1-4계명인 하나님 경외에 관한 계명들입니다. 그것은 직접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이기에 절대적인 요구사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선 율법사회에서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사회규범과 가정규범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상대적인 의로움을 말하고 있는 규정으로 보입니다. 그것만이라도 일단 지키고 있는지 답변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3)   사실 1-4계명은 하나님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12:30). 그리고 5-10계명은 이웃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12:31). 사이의 연계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창조주가 나와 함께 만든 이웃을 나와 똑같이 생각하여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라고 하는 이기주의를 버릴 때에 가능합니다. 대신에 선택하고 있는 관념은 하나님의 눈으로 나와 이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눈으로 때에는 나와 이웃이 똑같은 자식들이며 동가성(同價性, 같은 가치를 지님) 가지고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것은 창조주를 같은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유기체적인 사랑의 관계라고 하겠습니다(4:4-6).

(4)   그런데 관리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있는지 방법론을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상급을 얻자면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이며 생명의 주인으로 인식하고서 말씀을 깨닫고 실천하는 삶이 있어야만 합니다. 방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함께 구원을 받아 영생을 누리자고 하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사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관리가 알기 쉽게 꺼꾸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웃사랑의 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그것을 예수님께서 관리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관리는 신이 나서 즉답(卽答, 즉시로 답변하는 ) 하고 있습니다;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지키었나이다”(18:21).

셋째로,예수께서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사람이 부자이므로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18:22-23);

(1)   사회적이고 가정적인 계명 이웃사랑에 대한 계명에 대해서는 점검이 끝났습니다. 관리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교육을 받고서 지켰다고 답변했기 때문입니다(18:21). 그만하면 바리새인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율법을 준행하였으므로 구원을 얻을 있다고 하겠습니다(10:5, 18:5). 하지만 그것으로 천국의 복을 마음속에 누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신앙생활의 본질을 아직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하나님의 영이 마음속에 평안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아버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창조주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돌보고 생명을 살리고자 합니다. 그것은 나와 너와 우리라고 하는 이기적인 집단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와 그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망라하고 있는 공의로운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을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6) 선언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은 자신의 상대적인 선함이나 사람들이 인정하는 계명준수를 가지고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이웃을 온전히 사랑했다고 주장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인간의 능력으로는 창조주가 원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피조물사랑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함의 역사와 성령 하나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3)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생도 재물도 신분도 모두 아버지 하나님께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관리에게 영생을 얻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8:22).

(3)   말씀을 듣고서 관리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18:23). 왜냐하면, 자신은 부자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재물을 어떻게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서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설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이 그렇게 옛날 엘리사처럼 출가를 해버리게 되면(왕상19:20-21) 처자식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 때문에 그들이 겪게 고초가 눈에 선합니다. 따라서 그는 질문을 마치고 그냥 돌아갈 따름입니다.

결론적으로, 부자관리의 눈에는 하늘의 보화가 아직 보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고 영생을 얻기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한 그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대신 채워주시는 은혜를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한번 경험해보라고 하는 말씀을 부자관리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18:22).

그것이 부자관리의 신앙생활의 한계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께서는 아무쪼록 부자관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신앙의 소유자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