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58강(눅15:17-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12. 00:58

누가복음 강해 158(15:17-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0 9(주일)

 

탕자의 깨달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길을 찾아가고 있는가?(15:17-20)

 

둘째 아들의 요구를 아버지가 어째서 그대로 들어주었는지 의문이 본문에서 풀리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자신의 몫이 있으며 당연히 그것을 분깃으로 미리 받을 있다고 여기고 있는 아들이 둘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몫을 미리 달라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요청하고 있습니다(15:12a). 아버지는 재산을 떼어주면 차남이 세상나라로 나가서 탕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이미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을 떼어주고 있습니다(15:12b). 어째서 그렇게 조치한 것일까요?

사람은 시행착오(施行錯誤, trial and error) 경험하지 아니하게 되면 아무리 훌륭한 교훈이라고 하더라도 체화(體化, 몸으로 익혀서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므로 간접경험이 엄청나게 많다고 하더라도 직접 체험을 하고 뼈에 새기고 있는 자와는 상대가 되지를 못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평생 잊을 없는 값비싼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재산이 생긴 차남은 그것을 가지고 세상나라로 나아가서 제멋대로 세상 재미나게 살아보고자 합니다(15:13a). 그런데 생각보다 씀씀이가 자꾸만 커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얼마나 재미 있는 것이 많은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재미를 다보기도 전에 그만 재산이 바닥이 나고 맙니다(15:13b).

돈을 벌어본 일이 별로 없는 탕자는 들에서 돼지를 치는 일꾼으로 전락하고 맙니다(15:15). 그런데 나라에 흉년이 크게 들자 돼지먹이로 제공이 되던 쥐엄 나무 열매조차 사람들이 구황작물(救荒作物, 흉년을 견디게 해주는 작물) 먹어 치우고 돼지 떼는 굶고 있습니다. 일꾼들도 먹을 것이 떨어진 오래입니다(15:16). 꼼짝 없이 굶어 죽게 생긴 때에 탕자는 아버지가 계신 나라를 생각하게 됩니다(15:17). 재미나는 세상나라는 굶주림이 찾아오고 있는데 아버지가 계신 그곳에는 종들도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나라와 아버지의 나라를 비교하게 탕자가 비로소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을 하게 됩니다(15:18).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것입니다.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면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5:17);

(1)   회개 번째 요건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 돌이키는 입니다(15:17a). 그러므로 강압적으로 억지로 돌이키게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이치에 맞지 아니한 요구에 순순히 응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재산을 떼어주게 되면 그것을 가지고 세상나라에 나가서 탕진할 것이 뻔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렇게 설명을 하고서 재산을 주지 아니하게 되면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며 동시에 세상나라를 동경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2)   그것보다는 재산을 떼어주고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서 마음대로 한번 살아보게 하는 편이 낫습니다. 물론 재산은 탕진을 하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 얻게 되는 보석과 같이 영롱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재미난 세상나라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흉년과 굶주림이 어떠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계신 나라의 풍요로움을 깨닫게 됩니다(15:17b). 이제는 스스로 결단을 하고서 아버지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길만이 세상나라에서 굶어 죽지를 아니하고 아버지의 집에서 생명을 얻을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것입니다(15:17c).

둘째로,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 아버지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5:18-19);

(1)   회개 번째 요건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나라에 주저 앉는 것이 아닙니다. 과감하게 일어나서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는 것입니다(15:18a). 비록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모습 그대로 아버지의 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15:18b).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2)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15:18b) 라고 하는 구절은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함이 무엇인가를 가장 알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버지께 죄를 짓는 것이 패륜입니다. 둘째,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 반역입니다. 지금 탕자는 하나님께도 그리고 아버지께도 모두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1)      아버지께 죄를 지은 것은 상속을 미리 해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15:12). 부친이 돌아가시지도 아니했는데 사망후에 받도록 되어 있는 재산을 미리 달라고 했으니 그것이 불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가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는 패륜아와 같은 행태이기 때문입니다.

2)      하늘에 죄를 지은 것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잘못 주장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5:13). 모든 재물은 사실 하늘에 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것을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관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탕자는 그것이 자신의 소유물인 줄로만 알고서 그만 세상나라에서 탕진하고 말았으니 죄가 것입니다.

(3)   탕자는 자신의 잘못과 죄가 얼마나 것인지를 깊은 차원에서 깨닫고 있습니다;

1)      첫째, 아버지를 아버지로 대접하지 아니하고 오직 재산을 상속해주는 사람으로만 여긴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재산이라도 없었으면 자신이 어떻게 아버지를 대했을 것일까요? 그런 아버지는 필요가 없다고 인연을 끊었을지도 모릅니다. 마디로 배은망덕한 아들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세상나라에서 여러가지 재미를 보느라고 시간과 재화를 모두 소진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잘못 살아간 것입니다.

3)      셋째, 결과 탕자는 하나님과 아버지 앞에 고개를 수가 없습니다. 속죄의 방법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아들의 신분을 내려놓고 오로지 품꾼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15:19). 그러한 생각과 각오로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고 있는 회개한 탕자입니다.

셋째로,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15:20);

(1)   탕자는 세상나라를 떠나서 아버지가 계시는 나라로 되돌아갑니다(15:20a). 아버지의 집이 가까워지자 자꾸만 자신의 죄가 생각이 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서 아버지의 집이 있는 동네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여러 해가 흘렀기에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런데 멀리서 사람의 노인이 달려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도 늙으신 아버지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마음을 빨리 늙게 것만 같습니다. 너무나 죄스러워서 고개를 떨구고 있습니다.

(2)   모습을 보고서 아들을 향해서 달려 나온 아버지가 다짜고짜 끌어안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둘째 아들의 모습이 상당히 초췌하게 변해 있다고 하더라도 금방 아버지는 아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언제나 집을 나간 아들이 찾아오는지 동구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어찌 눈에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멀리서 보고서도 단숨에 둘째 아들인 것을 알아보고서 힘껏 달려온 것입니다(15:20b).

(3)   돌아온 탕자의 몰골과 행색이 불쌍하기 그지 없습니다(15:20c). 그래서 가슴이 아픈 아버지가 아들을 껴안고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목을 안고서 입을 맞추고 있는 늙은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히고 있습니다(15:20d).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서 그만 아들은 대성통곡을 하고 맙니다.

결론적으로, 크게 보아 둘째 아들의 잘못은 가지입니다; 첫째, 아버지의 재산을 탐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몫을 미리 받아서 나라로 떠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보다 재산을 사랑하고 있는 아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재물을 함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도 재물도 모든 것의 실제 소유주가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의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요컨대, 그것이 죄인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인생도 살아가고 재물도 사용해야만 한다고 하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비유의 말씀은 선민들과 그들의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자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선민이 되지 아니하도록 오늘날의 성도들도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자신의 신앙생태를    비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많은 깨달음을 얻고 올바로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