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56강(눅15:8-1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9. 14:01

누가복음 강해 156(15:8-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0 7()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끝까지 찾는 비유를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15:8-10)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주제나 이슈를 집중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다루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특징이 본문이 담겨 있는 누가복음 15장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누가는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그러므로 직업적으로 그는 과학적인 사고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사 누가는 내적으로는 데오빌로 각하를 위하여 객관적이면서도 설득력이 있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그의 복음서는 사건의 발생원인을 근원적으로 따지고 증거자료를 수집하여 이슈별로 논증을 하고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1:1-4). , 그의 복음서는 이슈별로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의사 누가가 그의 복음서를 저술하여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회람을 시켰을 때에 현재의 장과 절의 형식적인 분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독자들에게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분류를 것입니다. 그런데 분류를 함에 있어서 의사 누가의 글은 참으로 편리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주제와 이슈에 충실하게 이미 자료가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본문이 담겨 있는 15장의 구성이 그러한 특징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먼저 의사 누가가 15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의도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와 본문의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는 같은 주제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조명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자의 비유는 들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양과 아직도 들판을 헤매고 있는 양에 관한 이야기이며 양을 찾고 있는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후자의 비유는 집안에서 잃어버린 사랑의 징표를 찾고 있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마치 죄인이라 불리고 있는 이방인을 찾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처음사랑의 징표를 잃어버린 선민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각각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   둘째, 그러한 측면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있는 목자의 심정과 잃어버린 사랑의 징표를 찾고 있는 여인의 심정은 나간 탕자가 회개를 하고서 돌아오기를 한없이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는 훌륭한 설명의 도구가 되고 있습니다.

(3)   셋째, 아버지의 재산 가운데 일부를 당연히 자신의 것인 착각하고 떼를 써서 사전에 상속을 받아 세상에 나아가서 탕진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신앙인들의 사고방식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5장의 설명은 14장에서 논하고 있는 신앙생활의 비결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음미할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위와 같은 다양한 생각을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는 15장의 글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어떤 여자 10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15:8);

(1)   예수님의 비유가 절묘합니다. 여인이 지니고 있는 10드라크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크마는 헬라 시대에 사용이 그리스의 은화입니다. 무게는 4.3g이며 사람 장정의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은화가 주전 330년경부터 헬라 제국의 속국이 가나안 땅에서 통용이 되고 있습니다.

(2)   주전 37년경 로마에 의하여 유다의 왕으로 즉위하게 헤롯 대왕이 로마의 은전 데나리온( 3.88g)으로 헬라의 은전 드라크마를 대신하게 하고 있지만 완전히 대체가 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유대인들이 드라크마를 가지고 사랑의 징표로 여전히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때에 신랑이 신부에게 10드라크마를 사랑의 징표인 혼례품으로 선물하게 되면 그것을 신부가 머리에 꿰어서 장식을 합니다. 다음에는 사랑의 징표를 고이 집안에 간직을 하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만 사랑의 징표 가운데 하나가 사라지고 없습니다(15:8a). 처음 사랑을 원상 그대로 찾고 싶은 여인의 마음이 절실합니다. 따라서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15:8b) 예수님의 설명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처음사랑을 되찾고 싶어하십니다.

(4)   그렇지만 선민들의 마음은 여호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꾸만 이방신을 섬기며 우상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넓은 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요구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편파적인 이익을 옹호해주고 있는 이방인들의 수호신과 우상문화가 훨씬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 찾아내었노라 하리라”(15:9);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게 감격과 기쁨이 어느 정도일까요? 마디로, 많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서 내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았다고 선포하면서 크게 잔치를 벌일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다(15:9);

(1)   결혼을 때에 신랑으로부터 받은 10드라크마가 평생 함께하자는 사랑의 징표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1드라크마가 없어져버렸습니다. 하나는 중의 하나라는 의미 이전에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인에게 있어서 그것은 깨어진 사랑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찾기 위하여 집안을 샅샅이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15:8). 결과 되찾게 됩니다. 그것은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첫째, 잃어버린 사랑 선민들의 하나님신앙을 회복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15:8).

2)      둘째,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하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너무나 기뻐서 천국잔치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15:9).

(2)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서 선민들을 찾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모세를 애굽에 보내어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여호와이십니다(19:5). 그들을 선민으로 선택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맡기십니다(19:6).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고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거룩한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3)   그런데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그러한 선민의 사명을 감당한 자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변방 갈릴리 출신의 선지자 요나가 유일한지도 모릅니다(1:1-2). 그것은 하나님사랑을 버린 선민의 현주소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습니다(11:29). 그런데 선민들을 도로 찾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신앙으로 돌아오게 되면 기쁨이 천국잔치를 베푸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15:9).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의 비유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을 부르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사람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10);

(1)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1드라크마가 바로 죄인 사람 상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5:10a). 그리고 은화를 찾는 것이 죄인의 회개 의미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15:10b). 따라서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아간 인생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하고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15:10c).

(2)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10c)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좀더 넓은 뜻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있습니다. 이유는 세례 요한의 고백과 다니엘의 증언이 다음과 같이 신구약에 기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3:28-29),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12:3). 마디로,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함께 들어가는 자가 또한 하나님의 사자가 얻는 기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5:10c).

  결론적으로, 잃어버린 양은 목자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제멋대로 들판을 헤매고 있는 이방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선민의 집에서 잃어버린 그들의 처음 하나님사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차별이 없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살고 있는 자들은 모두 구원의 대상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있는 이방인이나 하나님사랑을 버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는 선민이거나 하나같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성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죄인을 끝까지 찾아가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모두 회개시켜서 함께 천국의 잔치자리에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