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53강(눅14:28-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8. 01:58

누가복음 강해 153(14:28-3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0 4()

 

자신이 가진 것과 세상의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성취할 수가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14:28-33)

 

자신이 가진 재화와 능력 그리고 세상의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며 하나님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을까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14:28-32).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자면 어찌해야만 할까요?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소유의식을 버리고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의식을 새로이 하는 각성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할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14:33). 그것이 예수님의 세상구원의 방법이므로 제자들도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미가 무엇일까요?

답을 얻기 위하여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너희 중에 누가 망대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준공하기까지에 (충분)할는지 먼저 앉아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14:28);

(1)   예수님 공생애 당시인 주후 30년경에 예루살렘 성밖에 망대를 세우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과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까지 로마황제를 대리(代理, 법적인 위임을 받아 대신함)하여 다스리고 있는 로마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이기 때문입니다. 주후 26년경 예루살렘에 부임한 빌라도 총독은 예루살렘 성에 주민이 늘어나자 상수도 확충공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밖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실로암 못의 물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많이 끌어들이기 위하여 상수도 공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수도공사에 동원이 되고 있는 인부들을 전체적으로 감독하기 위하여 그곳에 망대를 세우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일부 성경학자들은 망대가 부실공사로 말미암아 붕괴가 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때 상수도공사에 참여하고 있던 인부 18명이 압사를 당한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18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있는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13:4-5) 말씀하신 것으로 수가 있다고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3)   또한 일부 성경학자들은 당시 상수도공사 자금이 부족하자 빌라도 총독이 예루살렘성전에 바친 유대교인들의 헌금을 전용했으며 때문에 유대인들과 마찰을 빗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성전에 모여든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바친 헌금인 고르반에 로마총독 빌라도가 멋대로 손을 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항의시위를 것입니다. 시위가 사그라지지를 아니하고 로마의 군정(軍政, military regime) 대한 반대시위로 이어지려고 하자 빌라도가 로마군대를 동원하여 진압을 시작합니다. 혹시 유혈사태가 커질까 염려하여 군인들에게 로마의 칼을 사용하지 말고 대신 몽둥이로 시위대를 해산시키라고 명령했지만 그래도 사상자가 발생합니다. 당시 처참한 진압 광경을 목격한 자들 두어 사람이 격분하여 예수님을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13:1). 그들은 예루살렘 가까운 북쪽 지역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 현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보고서 그들을 선동하기 위하여 예수님께 소식을 전하는 척하면서 소리로 외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4)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유대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시사성이 있는 사건을 원용하여 본문에서 다른 의미의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준공하기까지에 (충분)할는지 먼저 앉아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14:28).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현실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빌라도 총독이 예루살렘 상수도 공사를 하다가 도중에 재원이 부족하니까 성전의 헌금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건설공사에 들어가는 경비를 철저하게 계산을 했더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건설공사에 있어서는 설계변경의 가능성 때문에 여분의 경비를 처음부터 계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 14% 정도의 이익까지 반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중에 경비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2)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빌라도의 행동이 일종의 반면교사(反面敎師, 거울에 비쳐보면 반대로 있는 )로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 가진 재정으로는 애초부터 공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재원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적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잘못입니다. 처음부터 영적인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기도와 간구로 시작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빌라도가 공사를 하다가 보니까 재정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돈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수순을 밟게 되면 시험에 빠지게 되고 분쟁이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것에 손을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반대로 사유를 해야만 합니다.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세상의 재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 그리고 사람들의 인생까지 전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목적과 수단을 명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둘째로,그렇게 아니하여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비웃어 이르되,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14:29-30);

(1)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시험에 빠지고 분쟁에 휘말려서 모습이 처참하게 일그러진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서구사회에 있어서는 웅장하면서도 화려했던 성당과 교회의 건물들이 이제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적어서 유지보수조차 제대로 되지를 못하여 아예 처분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운데 일부는 술을 파는 장소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것은 세상적으로 냉소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2)   예배용 건물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따라서 결과적인 모습이 달라지게 됩니다;

1)      첫째,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신앙생활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기에 하나님나라를 위에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겨우 잘못을 깨닫게 되어 시정하고자 늦게 나서게 되면 기초만 세우고 위에는 아무런 건물도 세우지 못한 인생이 끝나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14:29-30).

2)      둘째, 모두가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있는 소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이루고자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경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원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 그리스도의 소원이며 예수님의 제자의 소망입니다. 그러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도우심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기쁨을 인생 가운데 맛볼 수가 있습니다(24:44-49, 1:8).

셋째로,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때에 먼저 앉아 일만 으로써 이만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14:31-32);

(1)   예수님께서 전쟁의 경우를 예로 들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의 비결을 알기 쉽게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의 설명 그대로 성도의 삶이란 영적인 전쟁의 연속입니다(6:12).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경우와 패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2)   첫째, 패전을 하는 경우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전투에 임하는 경우입니다. 그때는 백전백패의 결과가 초래됩니다. 이유는 사탄과 귀신 악한 영들의 힘이 사람의 힘보다 강하며 지혜가 사람의 지혜보다 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같이 안다 말까지 유행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영적인 존재를 약한 육신을 가진 인간이 일대일 상대한다고 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알기 쉽게 1만명의 군사로 2만명의 적군과 싸우고자 하는 경우 같다고 말씀하십니다(14:31).

(3)   둘째, 패전을 하는 것이 뻔한 것을 알게 되는 경우에는 가지의 선택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어느 방법을 선택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1)      첫째, 적군에게 사신을 보내는 방법입니다(14:32a). 그것이 참패를 면할 있는 똑똑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해보는 것이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겠느냐? 측면에서 화친을 청할 지니라” (14:32b)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성도들은 화친의 대상을 골라야만 합니다. 악한 영들과 화친을 경우에는 영생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성도들은 악한 세력과 공존하기 위하여 화친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만 할까요? 정답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혹시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면 얼른 잘못을 회개하고서 도우심을 요청해야만 합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힘과 지혜 그리고 세상적인 능력으로 악한 영들과 싸워서 승리를 얻겠다고 시도했던 자신의 교만함과 과오를 정직하게 인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를 얻는 방법입니다.

넷째로,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33);

(1)   중요한 대목이므로 예수님께서 한번 설명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남은 인생을 예수님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 것입니다(14:33). 말씀은 풀이에 있어서 조심을 해야만 합니다. 잘못 해석을 하게 되면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2)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문자 그대로 해석을 하게 되면 나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맹신론적인 열광주의자의 함정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의 설명을 오해하는 경우입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버려버렸으므로(3:7-8) 이제는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진리의 말씀을 오로지 영적인 선문선답(禪問禪答, 완전히 속세를 떠난 신선들의 대화)으로만 풀어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과 같아서 현실적인 감각이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에 떨어져서 박살이 뿐입니다.

(3)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바로 그것입니다. 말씀의 성육신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세상에서 어떻게 실천하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육체를 가진 자신의 공생애와 대속의 죽음으로 직접 다음과 같이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생활에 적용할 있도록 풀이를 주십니다. 결코 구름 위를 걷는 영적인 풀이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둘째, 세상적인 지혜와 능력도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모두 사용이 되는 것들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 그리고 의지가 하나님의 뜻에 영적으로 지배를 받을 있을 때에 올바르게 사용이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있는 부대로 변화가 되면 되는 것입니다. 방법이 자신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새로운 마음의 신앙고백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며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들도 주인의 것이라고 하는 인식의 전환이 있게 되면 모든 것들이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보람 있게 사용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도우심이 각별합니다. 결코 악한 영에게 수가 없으며 세상의 노예로 사로잡혀서 살아가지를 않게 됩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정직한 신앙고백 위에 자신과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