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57강(눅15:11-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9. 14:03

누가복음 강해 157(15:11-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10 8()

 

세상 뜻대로 살아보고자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사전에 상속받아서 살아본 결과 어찌되고 마는가?(15:11-16)

 

흔히 본문에서 등장하고 있는 둘째 아들을 탕자’(蕩子,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는 아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을 받아 가지고 나라로 가서 모두 탕진을 해버린 아들이기 때문입니다(15:11-13). 그러한 탕자를 아들로 두고 있는 아버지는 참으로 아들이 보기가 싫고 괘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탕자의 비유에서는 집으로 돌아온 아들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동네잔치를 벌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15:22-24).

본문을 포함하여 탕자의 비유 통하여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해주고자 하시는 말씀은 크게 보아 다음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1)   첫째, 선민이라고 하는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마치 자신의 것인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탕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도 신앙생활에서 실족하게 되는 주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2)   둘째, 재산을 탕진하고 세상에서 고생을 무진장 후에 비로소 탕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으로라도 사용해 달라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기뻐하시고 천국의 잔치를 열어 주십니다.

그와 같은 개념을 예수님은 비유 가운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시는지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있는데,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15:11-12);

(1)   아들이 둘인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 가시기 전에 자신에게 돌아올 재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아들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아버지의 재산은 어디까지나 아버지의 것이므로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사용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에 자신의 몫이 당연히 들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것을 미리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두가지의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아버지의 소유권을 침해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아버지의 것인데 둘째 아들이 중의 일부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재산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재물의 탕진입니다.

(2)   그렇게 잘못된 요구를 하고 있는 둘째 아들의 말을 아버지가 어째서 그대로 들어주고 있는 것일까요?(15:12) 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것일까요? 그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둘째 아들이 재산을 얻어서 다른 나라로 가서 탕진을 하고나서 엄청나게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미래지사를 어렵지 아니하게 짐작을 하고 있는 자가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청을 들어주고 있는 것일까요? 해답을 이야기의 전환점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들에서 돼지를 치게 되는 아들이 매우 굶주리고 있습니다. 굶어서 죽을 지경이 되자 옛날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비로소 아버지의 집을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것은 체험을 해보지 아니하게 되면 확실하게 수가 없는 돈으로 수가 없는 너무나 귀중한 깨달음입니다”(15:13-20).

둘째로,그후 며칠이 안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모아 가지고 나라에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낭비하더니”(15:13);

(1)   예수님께서는 비유 가운데 아버지의 나라와는 전혀 다른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는 어떠한 나라일까요? 마디로,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곳과는 아주 다른 나라이며 돈으로 환락을 누릴 수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은 나라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게 됩니다(15:13).

(2)   나라는 돈을 주고 유흥과 환락을 즐길 있도록 세상적인 즐거움이 가득한 곳입니다. 마치 창세기에 등장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세겜과 같은 성읍입니다(13:10-13, 33:18-20). 일찍이 그곳에서 롯과 야곱이 악한 사회에 휩쓸리고 패가망신을 당하게 되는 위기에 봉착한 적이 있습니다(19:15-16, 34:25-30). 그와 비슷하게 둘째 아들은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낭비하고 마는 것입니다(15:13).

셋째로, 없앤 나라에 크게 흉년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나라 백성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15:14-15);

(1)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는 주요한 요인의 하나가 흉년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차례나 외국으로 이주합니다. 애굽과 블레셋의 그랄 땅이 그러합니다(12:10, 20:1). 나라에서 아내 사라를 최고권력자의 후궁으로 빼앗길 뻔하는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12:15, 20:2). 둘째, 이삭은 가나안 땅의 흉년을 피하여 블레셋의 그랄 땅으로 이주를 합니다(26:1). 역시 아내 리브가를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26:7-8). 셋째,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계속되는 가나안 남부의 흉년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총리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이민을 떠나고 맙니다(45:9-11).

(2)   재산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하고 나자 돈이 떨어집니다(15:14a). 이제는 일자리를 찾아서 먹고 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고 있습니다(15:14b). 일자리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결과 탕자는 들에서 돼지를 치는 일이라도 하여 생존을 하려고 합니다(15:15). 참으로 비참한 처지가 되고 것입니다.  

넷째로,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5:16);

(1)   들판에서 돼지가 먹을 것이 없는 계절이 있습니다. 겨울철입니다. 그때에는 주인이 돼지먹이로 쥐엄 열매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해에는 혹독한 가뭄으로 흉년이 심합니다. 사람들이 먹고 양식도 부족하고 돼지에게 먹이 쥐엄 나무의 열매도 공급이 되지를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굶주린 사람들이 도시에서 쥐엄 나무 열매로 배를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들판에서 돼지 떼도 굶고 있고 탕자도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대로 들판에 계속 있다가는 죽고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자 탕자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극심한 흉년이 탕자의 마음을 아버지께로 향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15:17-20).

(2)   여기서 쥐엄 나무’(하루빔 나무, locust tree) 열매는 이방 땅에서는 돼지의 먹이로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아니하므로 돼지 사육을 하지 않습니다(11:7-8). 따라서 쥐엄 나무의 열매를 돼지 먹이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흉년이 심할 때에는 열매를 마지막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쥐엄 나무의 열매가 녹색일 때는 떫어서 먹지를 못하지만 완전히 익게 되면 갈색으로 변합니다. 그러면 열매로 죽을 끓여서 먹게 됩니다. 당분과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어서 약간 단맛을 내면서 식량이 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광야에서는 쥐엄 나무를 찾아서 열매를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열매를 먹었다는 의미에서 메뚜기를 먹었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연유로 유대인들은 쥐엄 나무의 열매를 st. John’s bread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쥐엄 나무의 열매에는 10-15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데 하나의 무게가 0.2g으로서 게라 단위입니다. 그것이 보석의 무게  케럿 원형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불효자라고 하면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서 마음대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으므로 마치 창조주 여호와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 주장을 하고 있는 사탄과 같은 자라고 하겠습니다(4:6, 8:44).

반역자라고 하면 아예 주인을 없애고 종이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자입니다(14:13-15, 21:37-41). 여기 탕자의 비유에서의 둘째 아들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상속을 받아서 나라에 가서 제멋대로 탕진해버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불효자와 반역자를 합하여 패역한 라고 구약에서 부르고 있는데 전철을 밟고 있는 자입니다(21:18-20, 32:20).

더구나, 그렇게 못쓸 일을 자가 바로 선민 유대인들이라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유는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애초부터 자신들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기고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 되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행동한 자들이 훗날 어떠한 곤경에 처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어떻게 회개를 하게 되는지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비유의 말씀을 음미하면서 신앙생활의 올바른 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진은 쥐엄 나무와 열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