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47강(눅1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4. 13:45

누가복음 강해 147(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28()

 

안식일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수종병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말씀(14:1-6)

 

의사 누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이 당시 유대교의 율법선생이 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생각과 어떠한 기본적인 차이를 지니고 있는지 점에 대하여 알기 쉽게 백성들에게 설명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 누가의 복음서에는 지금까지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여러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식사의 자리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고 있는 집주인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관점이 날카롭게 대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지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누가복음 7장의 기록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바리새인이 식사초대를 하고 있습니다(7:36).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예수님께 동네에서 죄인으로 알려지고 있는 여인이 슬며시 뒤에서 접근하여 향유를 발에 붓고 있습니다. 자신의 눈물과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주고 있습니다. 모습을 보고서 집주인 바리새인은 죄인인 여인의 돌발행동을 말리거나 물리치지 아니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태도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합니다(7:39).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회개의 모습을 바리새인의 태도와 비교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정중하게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씻을 물도 제공하지 아니한 것입니다(7:44).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 그것은 손님에 대한 결례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대접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지 한번 알아보고자 하는 관심에 불과하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 누가복음 11장의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를 떠나 사마리아를 거쳐서 유대 땅으로 들어와서 복음사역을 계속하십니다. 그러자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자고 집으로 초청을 합니다(11:37). 예수님은 자리에서 손을 씻지 아니하신 식사를 하십니다. 그렇게 결례의 율법을 어기고 계시는 예수님의 행동에 대하여 바리새인이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11:38).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귀한 교훈을 주십니다; “신앙생활이란 겉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속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속을 먼저 투시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11:40-41 의역).

(3)   셋째, 본문 14장의 기록입니다. 유대인 땅에서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고 있습니다(14:1a). 떡을 잡수시러 오라고 것입니다. 집에는 이미 많은 바리새인들이 함께 초청이 되어 있습니다(14:1b). 그때 예수님은 자신 앞에 있는 수종병자를 보게 됩니다(14:2). 하필이면 예수님께서 떡을 잡수시는 자리에 몸이 크게 부어 있는 그야말로 병색이 완연한 사람을 배치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것만 같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실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실 그것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의도를 이미 아시고서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겸하여 그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안식일에 고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느냐? 아니면 부당한 것이냐?”(14:3 의역).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의도와 숨은 함정이 탄로가 나게 되자 즉각 반응을 못하고 있습니다(14: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수종병자를 고쳐서 보내시면서 바리새인들에게 따가운 말씀을 하십니다(14:5-6).

내용이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안식일 예수께서 바리새인 지도자 집에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바리새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수종병 사람이 있는지라”(14:1-2);

(1)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이 가까운 유대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회당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마을의 유대교지도자인 바리새인이 자기의 집으로 가서 함께 떡을 먹자고 제안을 합니다(14:1a). 예수님은 흔쾌히 청을 수락하십니다.

(2)   그런데 집에는 마을의 많은 바리새인들이 함께 초청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거지에 대하여 관심이 지대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예수님의 행동을 엿보고 있습니다(14:1b). 여기까지의 서술에 대해서는 별로 특기사항이 없습니다.

(3)   공교롭게도 예수님의 자리에 수종병(水腫病, dropsy) 환자가 앉아 있습니다(14:2). 수종병은 의학적으로 부종(浮腫, edema)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주로 핏속의 물과 같은 액체가 혈관벽으로 새어 나와서 몸의 조직에 스며든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붓게 됩니다. 따라서 누가 보아도 수종병 환자는 눈에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 고쳐 주는 합당하냐? 아니하냐?”(14:3);

(1)   어째서 예수님 좌석에 수종병 환자가 배치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좌우에서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반응을 서로 모른 척하면서 유심히 살피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들이 바리새인 지도자가 사전에 계획하여 연출하고 있는 일종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소문에 듣던 바와 같이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병자를 보면 고쳐주는 일을 행할 것인지 그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것을 빌미삼아 안식일 율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인근 예루살렘에 있는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할 예정으로 보입니다.

(2)   그래서 의사 누가는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14:3a)라고 적고 있습니다. 누가가 대답이라고 하는 용어를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시험문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답변을 하시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하나님말씀의 핵심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견해를 먼저 묻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특히 율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은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것이다(3:4).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고자 각오를 새로이 하는 날이 안식일이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자를 고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면 모른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너희들의 생각을 먼저 말해보도록 하라!”(14:3b).

셋째로,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14:4);

(1)   의사 누가는 떡을 떼는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 자들이 율법선생인 랍비들과 그들의 제자들인 생도들이라는 의미에서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14:3a)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설정하고 있는 올무를 예수님께서 진작에 간파하시고 도리어 반격을 가하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말씀의 진의에 대하여 신앙고백을 요구하고 있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답변을 해야만 할지 막막합니다.

(2)   그들도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창조물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10:27-37). 그것은 이웃의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사랑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2:30-31).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즉석에서 그렇다고 대답을 수가 없습니다(14:4a). 이유는 예수님을 안식일 규정의 위반으로 처벌할 있도록 만들라고 하는 산헤드리 공회의 지침에 대하여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요컨대, 종교적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진리에 대하여 눈을 감고 있는 바리새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바리새인들의 딱한 처지를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속이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수종병자를 데려다가 단숨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14:4b). 그리고 이제는 건강하게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라고 집으로 보내어 주십니다. 부종병이 낫게 사람은 그날의 안식일을 평생 잊지못할 것입니다. 안식일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에 구속자를 만나고 자신의 병이 낫게 되었으며 영적인 평안을 회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나 우물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하니라”(14:5-6);

(1)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을 떠나시기 전에 랍비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십니다. 비록 세상적인 일을 멀리하고 하나님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영적인 삶을 돌본다고 하는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급한 일은 처리하는 법이라고 하십니다. 예를 들면, 율법선생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져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뛰어가서 구해낸다는 것입니다(14:5).

(2)   자신들의 자녀나 가축의 생명을 끔찍하게 아껴서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뛰어가서 구해내는 바리새인들이 일반백성들에 대해서는 그것은 거룩한 일이 아니므로 삼가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이중적인 잣대라는 말씀입니다. 눈이 밝으신 하나님을 정직하게 섬긴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속과 겉이 투명해야만 합니다. 다르고 겉이 달라서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의 모습을 꿰뚫어 보시고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 그저 숨을 죽이고 있는 바리새인들입니다(14:6).

결론적으로, 생명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골고루 번성과 세상경영의 복을 나누어 주신 하나님이십니다(1:26-27).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의 목숨이 소중한 만큼 남의 목숨도 소중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웃과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살리고 자신과 같이 돌보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 말씀의 근본적인 뜻입니다.

안식일 규정이나 어떠한 율법 규정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하나님말씀의 기본취지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말씀의 본뜻을 밝혀 주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하나님말씀의 소유자이시며 계시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11:27, 6:38). 따라서 본문에서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밝혀 주시는 하나님말씀의 진리 앞에 누구나 잠잠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이 진리의 하나님을 예수님의 교훈과 공생애 가운데서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게 주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