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44강(눅13:26-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1. 17:15

누가복음 강해 144(13:26-3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25(주일)

 

예수님께 배우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반드시 예수님처럼 살아가라는 말씀에 대하여(13:26-30)

 

만약 예수님의 제자들이 천국복음을 배우는데 그치고 자신들의 삶을 예수님처럼 살아가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13:26-30);

(1)   첫째, 그러한 무늬 뿐인 성도의 삶이란 마디로 예루살렘성전에만 출입을 것이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있는 소위 좁은 문을 들어가는 신앙생활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3:24-27). 역사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서 다음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①안식일이 되면 성전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교사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②그리고 율법학자인 서기관들과 율법선생들인 랍비들이 서로 율법사상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을 듣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③집에 돌아와서도 안식일에는 하루 종일 말씀을 묵상하고 안식일 규례를 지키고 있습니다. ④하지만 그들은 평일에는 평소의 삶이 그렇게 거룩하지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어기고 살더라도 속죄일의 제사를 통하여 일년 동안의 죄를 모두 속죄 받을 있는 성전제사의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16:29-30). 참으로 편리한 선민위주의 신앙생활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   둘째,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자면 예수님 유월절 어린양의 생명책에 성도의 이름이 기록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21:27). 뜻은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지 아니하게 되면 예루살렘 성문을 통과하지를 못한다는 의미입니다(12:1-2). 환언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에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말씀을 배우고 공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13:26). 왜냐하면, 배운 그대로 예수님처럼 실천하는 인생을 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훗날 그러한 자를 모른다고 증언하시고 맙니다(13:27, 7:21-23).

(3)   셋째, 혈통적으로 선민이며 할례와 성전예배, 제사에 대한 율법 규례 모든 것을 지켰다고 주장해보아야 좁은 문을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13:28-30). 이유는 선민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 그리고 중보의 기도를 해주는 아브라함(18:23-32) 같은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인데 그것을 선민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전혀 실천하지를 아니했기 때문입니다(19:5-6, 11:29-32).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그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行惡,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처럼 자신의 인생을 살지 아니하는 )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13:26-27);

(1)   훗날 사도 요한이 적고 있는 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12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이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12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12중의 하나로 예수를 자러라”(6:63-71);

1)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게 되면 생명 살리는 역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영적인 말씀을 자신들의 육적인 이익을 도모하는데 사용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2)      만약 영적으로 말씀을 실천했더라면 과거의 은원(恩怨, 은혜와 원수) 청산하고 동서남북의 모든 이방인들과 원수까지 구원하는 놀라운 역사가 발생하게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민들은 그렇게 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천국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주고자 애를 쓰지를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에 나가서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13:27). 자신에게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배웠다고 하면서 정작 세상에 나가서는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신앙생활만을 도모하고 있으니 그것은 전통적인 유대교인의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자신을 따르고 있는 많은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십니다;

1)      그러자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이 섭섭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떠나가고 있습니다(6:66).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들어보아야 현실적인 이익이 그들에게 없고 대신에 손해만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예를 들면, 선민들인 자신들에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록 원수같이 여겨지는 이방인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해야 하며 특히 그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하여 선민인 하나님의 백성들은 스스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입니다”. 그것은 비위가 뒤틀리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선민으로서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 유대인들이 모두들 예수님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6:66).

(3)   결과 예수님의 제자로 끝까지 남게 되는 자는 12사도들입니다(6:67-69). 그렇지만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팔게 되는 가룟 유다가 들어 있습니다(6:70-71). 가룟 유다는 의사 누가가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행악자 대표자라고 하겠습니다(13:27). 왜냐하면, 가룟 유다는 나중에 자신의 이익과 입지를 다지기 위하여 대제사장편에 붙어서 스승이신 예수님까지 팔아 치우게 되는 악을 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22:4-6).

둘째로,너희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든 선지자 하나님나라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13:28);

(1)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의 언약이 반드시 성취가 것으로 믿고서 한평생 이방 땅을 떠돌면서 여호와신앙이 무엇인지를 자신들의 삶으로 보여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살아갔습니다(20:7). 그것이 이방 땅에 하나님의 복을 전해주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12:1-4). ②둘째, 헤브론 막벨라 굴에 안장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서 언약이 성취가 되는 것을 보고자 소원하고 있습니다(47:29-31, 49:29-33, 11:13-16). ③셋째, 예수님께서는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다고 비유적으로 천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16:22).

(2)   그러므로 아브라함이야 말로 모든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조상이라고 부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평생을 살아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이 모든 선지자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있다고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13:28a).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정통성을 잇고 있는 자손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생활이 그들 믿음의 조상들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신앙을 전하고 보여주는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1:29-30).

(3)   그저 자신들 선민들만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원수와 같은 이방인들은 전부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며 멸망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마디로,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축복을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퍼붓고 있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이 계속이 되면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예언을 하시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13:28b).

셋째로,사람들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로서 먼저 자도 있고, 먼저 로서 나중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13:29-30);

(1)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며 먼저 구원의 열매를 맺게 것임을 예수님께서 예언하고 있습니다(13:29). 이유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전하고 있는 예수님을 배척하고 말기 때문입니다(9:22).

(2)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널리 세상에 전해질 것임을 본문에서 동서남북이라는 용어로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13:29a).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들 이방인들이 옛날 니느웨 백성들처럼 크게 회개하고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알고서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11:32, 12:1). 따라서 그들이 이방인 선지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천국에 입성하게 되면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13:29b).

(3)   반면에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던 유대인들은 구원의 순서에 있어서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이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19:5). 그렇지만 이방인을 구원하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지를 아니했기 때문에 천국입성에 있어서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것입니다(19:6, 13:28);

1)      그와 같은 훗날의 역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너무 실망하지를 말라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나중 로서 먼저 자도 있고, 먼저 로서 나중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13:30). 뜻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먼저 경험한 바가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이방인들보다 영생구원에 있어서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13:28). 하지만 마찬가지 원리에 의하여 후순위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먼저 회개를 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영생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3:30).

2)      결국 말씀은 민족적인 차원의 차별이 아니라 구원은 개인적인 회개와 삶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동족 이스라엘의 영생구원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는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선민)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11:11-12). 이방인과 더불어 선민들이 또한 영생구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의사 누가가 본문에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 마태가 그의 복음서 7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다음 말씀과 같은 취지의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7:21-23).

요컨대, 말로써만 믿고 행동과 실천이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아니한 신앙은 죽은 믿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배우고 익힌 것을 삶에 적용하지 아니하면 화석화되고 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천국복음으로 배우게 성도들은 다음과 같이 간구해야만 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데 그치지 아니하고 예수님처럼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저의 사고방식과 살아가는 방법을 모두 변화시켜 주실 믿습니다. 아멘!”.

아무쪼록 그와 같은 기도가 매일 이루어지는 성도님들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