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48강(눅14:7-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4. 21:14

누가복음 강해 148(14:7-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29()

 

인생을 사는 가지의 방법에 대한 비유적인 예수님의 말씀(14:7-11)

 

본문의 말씀은 창세기에 등장하고 있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일대기를 묵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아브라함은 북부 시리아 하란 땅에 계속 머물고 있는 아버지 데라를 떠나서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 가나안으로 남하를 하고 있습니다(11:31, 12:1-4). 부자 족장인 아버지 데라의 집을 떠남으로써 아브라함이 잃어버린 것과 얻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75세의 아브라함은 족장 데라의 장남입니다(11:26). 그는 나이 많은 145세의 부자 아버지 데라의 상속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쫓아서 가나안으로 남하를 함으로 말미암아 상속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2)   대신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얻게 미래의 축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손의 번성(12:2a) 둘째 아브라함의 이름의 창대함(12:2b) 셋째, 나그네 길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심(12:3a) 넷째, 가는 곳마다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게 (12:3b) 다섯째, 자손들에게 약속의 땅을 주심 등입니다(13:15).

(3)   가나안, 애굽, 블레셋의 그랄 등을 떠돌면서 아브라함 부부가 겪은 고난은 대단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감으로써 이방 땅에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제대로 보여주게 됩니다(20:7).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전쟁에서의 승리와(14:14-16) 출애굽의 은혜(12:16-20) 그리고 블레셋의 연맹 왕인 아비멜렉과 대등하게 평화조약을 맺게 하는 영광까지 주시고 있습니다(21:22-33).

(4)   그와 같이 세상적인 재물과 상속자의 신분을 포기함으로써 성도들이 마치 아브라함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격상시켜 주시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떳떳한 성도의 삶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아니한 인생살이라고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청함을 받은 사람들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14:7);

(1)   본문은 앞절에서 이어지고 있는 문장입니다. 그러므로 무대가 같습니다. 그곳은 어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입니다(14:1a). 바리새인 지도자는 안식일에 회당예배를 마치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떡을 떼자고 많은 손님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14:1b).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서로 상석을 차지하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14:7a). 모습을 그곳에 참석하신 예수님께서 유심히 보신 것입니다.

(2)   만약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겼다면 상석에 모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조치하지 아니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맞은 편에 수종병자를 배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4:2). 누구나 병색이 완연한 사람의 맞은 자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배당이 자리가 바로 말석에 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아니하게 알아챌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세상적으로 자신의 위신을 높이고 상석에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란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선지자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정확하게 전했느냐가 중요하지 자신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민인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세상적으로 서로 대접을 먼저 받겠다고 상석을 차지하고자 열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원하는 심정으로 비유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14:7b).

둘째로,네가 누구에게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14:8-9);

(1)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자리에 참석하는 경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혼인잔치 자리에 초청을 받게 되는 것도 영광이지만 특히 천국의 혼인잔치 자리에 청함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상의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혼주(婚主, 혼인잔치를 베푸는 주인으로서 주로 신랑의 아버지가 자리를 맡음) 되시고 그리스도 예수님이 신랑이 되시며 새로 천국에 입성하는 성도들이 신부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3:29, 21:2).

(2)   그런데 혼인잔치 자리에 초청을 받았을 때에는 한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석을 피하라는 것입니다(14:8a). 이유는 좌석의 배치가 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유동성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보라 나중 자로서 먼저 자도 있고 먼저 자로서 나중 자도 있느니라”(13:30). 그러므로 나중 가운데 많은 헌신을 자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를 예상하여 하나님께서는 앞자리를 항상 자리 비워 놓고 계십니다. 그것은 마치 항공여객기에 앞자리가 상당히 비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3)   그런데 세상에서 상석을 좋아하던 버릇이 있는 성도가 하나님나라의 잔치자리에서도 자신의 격을 스스로 높여서 비어 있는 상석으로 가서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창피를 당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많이 희생하고 헌신한 종이 잔치자리에 들어서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리를 내어 주라고 지시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4:8b-9a). 그렇게 되면 심히 부끄러워서 스스로 말석으로 가서 앉게 되는 것입니다(14:9b).

셋째로,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14:10);

(1)   만약 혼인잔치 자리에 초청을 받았을 때에 처음부터 말석을 선호하여 차지하고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14:10a) 낮은 자리가 없으므로 결코 자리에서 부끄럽게 물러나는 경우가 없을 것입니다. 대신에 좋은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눈이 밝으시고 공의를 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의 서열을 따지지 아니하시고 신앙의 태도와 헌신의 정도를 재평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결과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적인 평가에 의하여 자리이동이 단행이 됩니다. 낮은 자리가 없으므로 당연하게 자리가 격상이 되는 것입니다(14:10b). 그렇게 되면 그것은 부끄러운 인사이동이 아니라 참으로 감격스러운 승진이 것입니다(14:10c). 아무쪼록 그러한 영광을 누려보라고 예수님께서 자리에 참석하여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권유를 하시고 계십니다. 

넷째로,무릇 자기를 높이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높아지리라”(14:11);

(1)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높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정확한 뜻은 자신을 정직하게 평가할 일이지 외식적으로 포장하지를 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세상적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인기를 얻고자 하면 자신의 겉모습을 자꾸만 포장하게 됩니다. 대신에 내적인 성장과 성숙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맙니다. 결과 높은 자리를 탐하여 혹시 얻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리에 맞는 역할을 못하게 됩니다. 자신과 사회에 그리고 하나님의 일에 모두 상처를 남기게 되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따름입니다(14:11a).

(2)   그러므로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여 능력보다 조금 낮은 자리가 좋습니다. 그러면 일을 처리하여 이웃에게 도움을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도 넉넉하게 그리고 충실하게 처리를 수가 있게 됩니다. 더구나 장차 좋은 일이 찾아옵니다. 업무의 재평가가 있게 되면 진급이 되는 것입니다. 눈이 밝으신 하나님께서 장차 그렇게 조치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4:11b). 그렇게 여유가 있고 앞날을 기대할 있는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을 맺기 위하여 색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합니다; 21세기는 패션의 시대이며 지식창조의 시대입니다. 환언하면, 새로운 지식과 패션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동아시아에서 한국사람들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좋은 머리로 새로운 유행과 지식산업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사람들이 창조적인 구성과 내용을 가지고 있는 연예계의 아이템까지 개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을 해외로 수출하게 되어 소위 한류열풍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운데 영화나 드라마는 스토리를 가지고 극중인물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데 한국사람들이 창의적인 극본과 천재적인 연기력으로 그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류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한국 내에서도 천만 이상이 보게 되는 이른바 대박 영화 심심치 아니하게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쪽박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영화도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대박과 쪽박 사이에는 어떤 스토리와 내용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환언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대박 인생과 쪽박 인생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비밀을 밝혀줄 있는 성경말씀이 바로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본문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1)   상류사회를 무대로 하여 서로 상석(上席, 윗자리) 대권(大權, 최고통치자의 권력) 차지하겠다고 피나게 싸우는 스토리를 계속 다루게 되면 쪽박을 차게 됩니다. 그것이 호화스러운 것이며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대중들에게 식상해지기 때문입니다.

(2)   반면에, 마치 아브라함이나 요셉의 일생처럼 이방 땅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하나님신앙으로 자신을 반듯하게 세워 나가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게 됩니다. 그것이 성경이야기 가운데 재미나는 것이듯이 세상에서도 그러합니다. 말석으로 떨어진 인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앞쪽으로 이동을 시켜주고 있는지 스토리가 참으로 흥미진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현실생활에서도 말석에서부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진하시는 성도의 삶을 줄기차게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모두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