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49강(눅14:12-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4. 4. 21:15

누가복음 강해 149(14:12-1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9 30()

 

온전한 보상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대하여(14:12-14)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안식일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초청을 받아 함께 떡을 떼고 계시는 자리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계속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14:1-24). 그것은 예루살렘이 가까운 유대 땅에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기술의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예수님께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수종병 환자인 손님을 고쳐 주십니다(14:2-6).

(2)   둘째, 예수님께서 상석에 서로 앉으려고 경쟁하는 바리새인들의 행동을 보시고 그들의 신앙행태에 대하여 비판하십니다(14:7-11).

(3)   셋째,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지도자가 그러하듯이 선민들이 친지와 부자들을 초청하여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반면에 가난한 자와 병자 장애자를 초청하여 대접하지 아니하는 신앙행태에 대하여 날카롭게 비판하십니다(14:12-14).

(4)   넷째,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바리새인들과 선민들이 천국잔치보다 자신들의 세상적인 일과 잔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14:15-20).

(5)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선민 대신에 천국잔치 자리에 초청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14:21-24).

가운데 번째 사항이 바로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한 배경과 스토리의 맥락을 염두에 두시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자기를 청한 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이나 형제 친척이나 부한 이웃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14:12); 다음과 같이 분설(分說, 나누어서 설명함)해보고자 합니다;

(1)   자기를 청한 에게 이르시되”(14:12a); 여기서 예수님을 초청한 자는 유대 땅에 살고 있는 어느 바리새인 지도자입니다. 그는 안식일에 회당예배에 참석하신 예수님께 자신의 집으로 가서 함께 떡을 떼자고 초청을 것으로 보입니다(14:1). 집에서 떡을 떼려고 하는데 마침 예수님 좌석의 맞은 편에 수종병이 환자가 앉아 있습니다(14:2).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비록 안식일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것이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 뜻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3:4, 14:3-6).

(2)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14:12b);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느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서 함께 떡을 떼는 자리가 점심식사 자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있습니다. 더구나 날이 안식일이므로 모두가 회당예배를 드리고 지도자의 집으로 이동하여 함께 떡을 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점심식사 자리 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식사초대의 자리라고 하더라도 명심해야만 하는 사실이 있다는 뜻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그래서 식사초청자리를 일반화하기 위하여 점심다음에 저녁 첨가하고 있습니다

(3)   이나 형제 친척이나 부한 이웃 청하지 말라”(14:12c);

1)      형제와 친척보다 벗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유는 바리새인들이나 선민들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벗을 대접하는 것이 요긴하다고 벌써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루살렘 가까운 유대의 성읍은 형제와 친척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농경지역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제법 도시화된 성읍입니다. ,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벗과의 사귐이 훨씬 중요한 사회생활이라고 하겠습니다.

2)      가운데에서도 경제적으로 도움을 얻자면 평소 부자 친구와의 사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웃에 형제나 친척이 살고 있다면 그들도 식사자리에 초청의 대상이 것입니다. 그렇지만 초청의 우선순위는 역시 부자인 친지가 먼저입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엿볼 있는 세태에 대한 지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부자를 중심으로 친지를 초청하는 모임을 그만 두라고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4)   두렵건대,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14:12d);

1)      흔히 사회적으로 초청을 받은 인사가 나중에 자신도 사람을 초청하여 신세를 갚아주는 것을 상호 호혜주의’(相互互惠主義, Reciprocity,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 갚아주는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행을 알기 쉽게 서로 주고 받는 관계’(give and take relationship)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그러한 사회적인 관행을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땅에서 보답을 받게 되면 하늘나라에 쌓아 놓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의 구좌에 잔고가 별로 없어서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둘째로,잔치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들과 불편한 들과 저는 들과 맹인들을 청하라”(14:13);

(1)   구약에서 선민사회가 돌보아 주어야만 하는 대상을 고아와 과부 그리고 재산이 없는 레위인과 나그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4:29).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사람답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2:21-24). 그러한 맥락에서 나오미와 룻을 도와준 베들레헴 사람 보아스가 다윗의 조상이 되기도 합니다(2:8-16, 4:13-22).

(2)   그와 같은 입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부유한 친지들을 집으로 초청하여 안식일에 함께 떡을 떼는 것을 문제가 있다고 보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자들끼리 서로 돕고 살자고 하는 이른바 끼리끼리 문화또는 패거리 문화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교모임과 비슷합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서로 초청하여 빚을 갚고 있으므로 그것은 소위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 불과한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것이 전혀 없습니다.

(3)   그보다는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방법은 앞으로 세상적인 도움을 상대방으로부터 받을 생각을 아예 접고서 희생적인 식사모임을 주선하는 것입니다. 마디로, 잔치자리에 가난한 자들을 초청하면 됩니다. 질병과 장애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난한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들을 잔치자리에 초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가난한 들과 불편한 들과 저는 들과 맹인”(14:13)이라고 예수님께서 알기 쉽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6장에서는 알기 쉽게 거지 나사로의 비유’(16:19-31) 설명을 주시고 있습니다.

셋째로,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되리니, 이는 의인들 부활시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4:14);

(1)   세상에서 가난한 특히 질병과 장애 때문에 거지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먹을 것을 주고 잔치를 열어주게 되면 보답을 장차 누가 대신해 주실까요?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 하시고”(25:40),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버지께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25:34-26).

(2)   가난한 특히 질병과 장애로 거지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은 잔치자리에 초청이 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서는 갚을 있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창조하여 세상의 사회에서 소외된 자로 살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보답의 방법이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그대로 아버지께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25:34) 것입니다. 그와 같은 뜻으로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되리니”(14:14a)라고 언급을 하시고 계십니다.

(3)   또한 이는 의인들 부활시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4:14b) 말씀은 다음과 같은 가지 의미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땅에서 질병과 장애 등으로 원하지 아니하는 삶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가난한 자들을 여기서 의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유는 부유한 자들에게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고 도와 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22:21-24). 그렇게 온몸으로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보여주고 있기에 그들을 여호와의 으로 수도 있을 것입니다(53:2-4).

2)      둘째,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 여호와의 종이 부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와의 비유가운데서 보여주고 있습니다(16:22-23). 의인들이 부활을 하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서 아버지 하나님께 세상에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람대접을 해주고 잔치자리에 초청을 해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하여 증언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답을 천국에서 대신 시행해주시는 것입니다(14:14b).

결론적으로, 고대사회에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세상에서 보답으로 살게 되고 반대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이유를 도무지 없는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의 친구가 병문안을 와서는 잘못을 회개하고 길을 찾으라고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2:11-22:30). 그러나 욥은 도무지 그들의 지적과 조언에 대하여 동의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반드시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서 시원하게 대답을 듣고서 죽음을 맞이하고자 합니다(19:25-27). 막상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에 나타났을 때에 욥이 회개를 하게 됩니다(42:1-6). 이유는 영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한 영생의 세계를 천국으로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고난에 대해서는 천국에서 영생으로 갚아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온전한 보상은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평생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나라에 기록이 있도록 자신의 구좌에 크레딧(credit) 적립을 해야만 합니다. 방법의 하나를 예수님께서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잔치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들과 불편한 들과 저는 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되리니, 이는 의인들 부활시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14:13-14).

그러므로 아무쪼록 하나님나라에 저금을 하시는 의미가 있는 삶을 땅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실 있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