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101강(눅9:49-5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7. 02:28

누가복음 강해 101(9:49-5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8 13()

 

예수님은 무엇을 보시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복음사역의 무대를 옮기려고 하시는가?(9:49-51, 6:15, 7:1-6)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을 이제 마무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결심을 굳히고 계십니다(9:51). 이유를 본문에서는 가지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과 7장을 살펴보면 다른 이유 가지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당장 엿볼 있는 이유는 첫째, 예수님 일행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자생적인 복음의 일꾼들이 갈릴리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9:49). 그만큼 예수님의 명성과 복음사역의 내용이 갈릴리 사람들에게 폭넓게 알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하를 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가 것으로 예수님께서 판단하고 계십니다. ②둘째,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고 있기 때문입니다(9:51).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발견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예수님이 하늘 곳간을 열어서 굶주린 회중들을 먹이는 기적을 갈릴리 호수 동편에서 차례나 시행했습니다(14:17-21, 15:34-38). 그러자 갈릴리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6:15). 이유는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손쉽게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세상임금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생구원과는 한참 거리가 이야기입니다(12:31).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을 떠나시고자 하십니다.

(2)   둘째, 예수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있는 동생들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습니다(7:5). 예수님은 남동생이 4명입니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그들이며 모두 목수 요셉의 친아들입니다(6:3). 반면에 예수님은 목수 요셉의 피가 전혀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입니다(1:34-38, 1:18-25). 따라서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호적에 맏아들로 등재가 되어 있지만(2:17) 실제로는 다윗의 혈손이 아닌 것입니다;

1)      그와 같은 집안의 비밀을 알고 있는 동생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다윗의 후손이며 메시아의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짜 다윗의 자손인 예수가 메시아로 행세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나이 30 예수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생계를 내팽개치고서 공생애를 시작한다고 비겁하게도 집을 떠나버린 야속한 사람입니다(3:23). 그러므로 형제관계가 좋을 리가 없습니다.

2)      이에 따라 계속 갈릴리 고향을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예수를 동생들은 예루살렘으로 쫓아버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생들이 예수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7:3-5). 뜻을 알아차리고서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아니하였지만 조금 일찍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작심을 하신 것입니다(7:6, 10).

위와 같은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요한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9:49);

(1)   갈릴리 지역에 새로운 풍조가 하나 생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일행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9:49b). 어떤 사람이 예수님 일행에게서 보고 배운 그대로 급한 김에 귀신들린 정신병자에게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외치노니, 귀신은 사람에게서 떠나가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귀신이 반항을 하지를 못하고 그대로 정신병자에게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는 소위 퇴마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기이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도들이 알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사람을 찾아가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집안일과 돌보아야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9:49c, 59-62). 이에 화가 사도들 가운데 성격이 급하고 젊은 혈기가 넘치는 사도 요한이(9:49a, 54, 3:17) 사람에게 다시는 축사의 능력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치를 다음에 사도 요한이 일을 자랑스럽게 스승이신 예수님께 보고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9:49d).

둘째로,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9:50);

(1)   그런데 사도 요한이 짐작도 하지 못한 뜻밖의 반응이 예수님으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축사의 능력 행함을 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9:50a).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유는 단지 반대자가 아니면 같은 우군(友軍, 자기 편의 군대)이라고 하는 단순한 논리적 이분법입니다(9:50b). 과연 정도의 이유밖에 없는 것일까요?

(2)   깊은 속사정이 말씀속에 들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생전에 예수님을 직접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공생애를 보내지 아니한 자들 가운데 앞으로 많은 영적인 사도와 제자들이 발생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이야기를 귀로 들은 자들과 문헌으로 접한 자들일 것입니다.

(3)   그러한 자들에게도 성령님께서 임하시면 장차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복음사역을 있는 기회가 제공이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아니하고 영적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는 성도들이 많이 나타날 것임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20:29).

(4)   또한 이제는 갈릴리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해야만 하는 시점입니다. 예수님 일행은 그곳을 떠나 남하를 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것입니다(9:51). 비록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지역을 떠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기억과 이야기가 그곳에 살아남아서 많은 백성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옛날 선지자를 기름 부어 세우시듯이 그렇게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이어서 수행할 있는 성도들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예수님 일행이 금지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9:51);

(1)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나라를 완전하게 건설하시는 때와 세상나라의 존속 기한은 아버지 하나님의 소관이시며 고유 권한입니다(1:7).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의 기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짐작을 하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서 불편하게 땅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제 자신을 옥죄고 있는 유한한 육신을 벗고서 부활 승천하여 무한한 독생자의 영광을 회복할 있는지 그것이 참으로 궁금합니다. 그래서 평소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많이 여쭈어 것으로 보입니다.

(2)   결과 이제는 마지막 공생애의 기간을 준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되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9:51a). 예루살렘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시게 되면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을 하게 것입니다. 모든 일들이 유대교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그곳으로 가시는 걸음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위하여 가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속으로 단단히 결심을 하시고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하를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9:51b).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대속의 죽음이 발생하게 되는 예루살렘으로 가야 때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처형을 당하시고 다음에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게 것입니다(9:51a). 그와 같은 예루살렘에서의 일정에 대하여 이미 제자들에게 차례나 예언을 해주신 바도 있습니다(9:22, 44).

그와 같은 결심과 각오로 조속히 갈릴리에서의 복음사역을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전혀 스승이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예언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말을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갈릴리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금지시키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고자 열심들입니다.

사도와 제자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남하를 하시게 되면 곧바로 외세를 몰아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게 되는 착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 젖어 있는 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이 무겁습니다. 따라서 표현이 굳게 결심하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9:51).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땅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위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맡기신 복음사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대속의 삶을 명예롭게 마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공생애가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제자의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시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