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99강(눅9:37-4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3. 3. 22:51

누가복음 강해 99(9:37-4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8 11()

 

헬몬 남쪽자락에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예수님(9:37-43)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초기에 주로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있습니다. 차례 갈릴리 호수 동편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방인들의 도시 거라사로 가셔서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 적이 있지만 그것은 단기간의 사역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 때문에 자신들의 돼지 2 마리 가량이 갈릴리 호수에 빠져 죽는 불상사가 발생하였기에 거라사 이방인들의 요청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8:33-37).  

예수님 일행의 갈릴리 지역 복음사역은 성공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 때에는 2만명의 군중이 운집을 했습니다(9:14). 그러자 백성들은 치유사역에도 능하시고 하늘 곳간을 열어서 먹을 것도 제공해주시는 예수님을 아예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했습니다(6:15).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북쪽 헬몬 방향으로 피신을 하신 것입니다(16:9, 13). 자신의 목적은 세상임금이 되는 것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목적으로 복음사역을 하시는 예수님께서 만약 선민 유대인만을 위하시는 임금이 되신다고 한다면 그것은 만민구원을 포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여 백성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하고 질병과 장애를 고쳐준다고 하는 것은 영생구원을 현세적인 구원으로 격하시키는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평소 선민 유대인들이 우상을 섬기며 현세구원과 물질적인 축복사상에 집착하고 있는데 그러한 그들의 잘못된 신앙행태를 고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2사도와 함께 분봉 빌립이 다스리고 있는 이두래 지역에(3:1) 들어선 김에 산에 올라가서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도 많이 하시고 사도들과 앞날에 대하여 이야기도 많이 나누십니다(16:13-25, 9:18-27). 그리고 3명의 사도들에게는 변화산상에서 하나님나라의 모습까지 미리 환상 가운데 보여주십니다(9:28-36). 그리고 나서 하산을 하시는데 많은 백성들이 벌써 소문을 듣고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9:37). 그래서 예수님은 12사도를 먼저 보내어 그들에게 복음사역을 하도록 일단 조치를 하십니다.

그런데 사도가 고치지를 못하고 있는 귀신들린 아이가 있습니다(9:40).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직접 고쳐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9:41)라고 언급하시면서 한탄을 하십니다. 이상한 말씀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무리가 맞을새, 무리 중의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외아들이니이다. 귀신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 일으켜 거품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9:37-39);

(1)   헬몬 일대는 이두래 지역에 속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쪽 산기슭에서 기도하시고 사도들과 함께 이튿날 하산하십니다. 그러자 이두래 지역의 백성들이 치유능력이 능하신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 아래에 운집해 있습니다(9:37). 그들은 예수님의 천국복음보다는 그들의 질병과 장애를 낫게 해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기를 소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사정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12사도에게 배운 대로 한번 치유사역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2)   그렇게 일이 진행이 되고 있는 중에 무리 가운데서 갑자기 사람이 예수님께 소리로 뛰어나와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외아들을 낫게 해달라는 것입니다(9:38). 아들은 귀신이 들려서 상태가 심각합니다; “귀신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 일으켜 거품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9:39).

(3)   귀신이 심하게 사람을 못살게 굴면서 지배하게 되는 가지의 증세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①첫째, 속이 답답하여 견디지를 못하고 귀신의 소리로 고함을 지르게 됩니다. ②둘째, 정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면 급기야 경련을 일으키게 됩니다. ③셋째, 육체적으로 기운이 진하게 되면 마침내 거품을 물고 늘어지고 맙니다. ④넷째, 그렇게 사람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면 그때부터 귀신이 제멋대로 들락날락하게 됩니다.

둘째로,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 없고 패역 세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9:40-41);

(1)   예수님께서 직접 보시고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아이의 부친이 다음과 같이 사정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9:40). 12사도들이 아이의 귀신을 내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평소와 달리 예수님께서 한탄을 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지의 이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   첫째, 사도들의 믿음이 없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9:41a).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변화산상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3사도들은 천국의 모습을 환상 가운데 보게 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9:28-36). 하나님나라의 임재를 영적으로 있다고 하는 것은 엄청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로 복음사역을 열심히 하다가 천국에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영적으로 거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신감을 가지고서 귀신에 대하여 아이에게서 나오라고 강력하게 외치면 하나님의 능력이 충분히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영적으로 것과 자신들의 믿음의 확신을 조금도 연결시키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둘째, 아이의 아버지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12 혈루병이 여인의 경우에는 마지막 소원을 여호와 하나님께 두고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며시 만지자 지병이 일순간에 떠나가고 말았습니다(8:43-44). 예수님께서 허락도 아니하셨는데 자신을 통하여 창조주의 치유의 능력이 흘러 나가버리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자나 가족이 절실하게 여호와 하나님께 직접 매어 달려야만 합니다. 그저 용한 의원 찾듯이 사도들에게 가서 병을 보이고, 안되면 예수님께 보이고 하여, 고침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더욱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성령님의 역사를 간절히 소망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그래서 예수님의 지적과 한탄이 엄청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 없고 패역 세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9:41). 믿음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문제는 패역한 세대라는 지적입니다(9:41b). 아버지의 권위를 자녀가 부인하게 되면 그것이 패륜입니다. 그리고 종이 주인을 몰아내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 반역입니다. 두가지 잘못을 모두 행하고 있는 것이 패역(悖逆, 패륜과 반역) 행위입니다. 어째서 그러한 끔찍한 용어를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변방의 이스라엘 자손들을 책망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해답은 패역한 행위라고 있는 다음 가지 신앙행태가 그들의 신앙생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아버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생명의 아버지로 섬겨야만 하는데 선민들은 아버지를 버리고 이방 신과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축복과 구원이 아니라 현세적인 구원과 축복을 얻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선민들이 예수님처럼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헌신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하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오직 선민들의 영광과 구원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선민들은 오로지 이방인들을 징계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구할 따름입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뜻을 받드는 종과 같은 하나님만을 원하고있습니다.

(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를 향하여 패역하다고 질책하실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귀신들린 아이를 자기 앞으로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십니다(9:41c).

셋째로,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 놀라니라”(9:42-43);

(1)   겉으로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간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귀신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닙니다. 감히 앞에 마주 수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앞으로 끌려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아이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습니다(9:42a). 만약 예수님께서 손을 대신다면 심하게 아이를 괴롭힐 것이라고 하는 사인입니다.

(2)   그러한 귀신의 발악을 보시고서 예수님께서는 강하게 질책을 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의 바알세불의 졸개는 이상 아이를 괴롭히지 말고 당장 떠나가라는 것입니다(9:42b, 11:14-15). 순간 변화산상에서 나타났던 예수님의 광채가 영적으로 그곳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9:29). 그것은 창조에 참여하신 독생자의 영광입니다(1:3, 14). 모습을 보고서 혼비백산하여 귀신이 당장 줄행랑을 치고 있습니다(9:42c). 따라서, 예수님이 아이를 안으시니 모든 증세가 즉시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이를 예수님께서 친절하게도 아이 부친에게 돌려드리고 있습니다(9:42d).

(3)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 놀라니라”(9:43) 하는 표현은 굉장히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시는 모습이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다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1)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함께 검토해볼 있는 문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귀신의 )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11:19-20).

2)      뜻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손을 빌려서 쫓아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이 창조주의 위엄과 영광을 보고서 꼬리를 말고서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결과 장소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가 이미 자리에 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무리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자리에서 경험하고 있다는 표현은(9:43) 정확한 상황의 묘사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들의 믿음과 이두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믿음이 다같이 예수님 보시기에 수준 이하입니다. 가운데 3명의 사도들은 어저께 산에서 하나님나라가 임하는 광경을 환상 가운데 보게 되는 체험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보다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쳐서 강력한 복음사역을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린아이를 지배하고 있는 귀신도 쫓아내지 못할 정도로그 믿음의 확신이 약한 것입니다.

한편 이두래 주민들이 많이 몰려왔지만 그들은 그저 치유의 능력이 탁월한 선지자가 그들의 지역에 방문한 것을 환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의 질병과 장애를 고치고 귀신이라도 쫓아내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그들은 마디로,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전파하고 있는 만민구원사상이라든가 영생구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병이나 고치고 무병장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강력하게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2천년전 예수님의 복음사역 당시에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모시고 신앙생활하면서 그저 무병장수하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생각하는 신앙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성도들이 그러한 신앙행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예수님의 꾸지람을 받게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평생을 바쳐서 만민구원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서 복음사역에 열심을 다하는 믿음생활이 필요합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믿음생활을 영위하시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사진은 예수님 공생애 당시의 가나안 일대의 지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