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81강(눅8:9-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11. 20:49

누가복음 강해 81(8:9-1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7 24(주일)

 

예수님의 뿌리는 비유에서 발견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힘든 이유에 대하여(8:9-15)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의 현장에 몰려든 많은 무리들에게 뿌리는 자의 비유 대하여 말씀을 선포하십니다(8:4-8). 그런데 그것이 비유의 말씀인지라 쉽게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나중에 제자들이 조용히 스승이신 예수님께 뜻에 대하여 질문를 하게 됩니다(8:9). 이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내용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제자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이 되어 있으므로 비유와 상징을 풀어서 쉽게 가르쳐주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8:10a).

(2)   둘째, 그러나 대중들에게는 그렇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8:10b). 왜냐하면, 그들은 눈뜬 소경이며 귀머거리와 같기 때문입니다(8:10c, 6:9-10).

(3)   셋째,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의 씨로 뿌리지만(8:11) 그것이 제대로 자라나지를 못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가지입니다(8:12-14).

(4)   넷째, 어떻게 하면 가지의 경우에 처하고 있는 대중들의 마음 밭을 바꾸고 가꾸어 좋은 마음 밭을 지니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로 만들어나갈 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보라는 과제가 예수님의 비유의 설명 속에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8:15).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제자들 비유의 뜻을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나라의 비밀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이라”(8:9-10);

(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풀어서 가르쳐 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허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상당히 이상한 생각이 드는 구절입니다. 도대체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 말씀일까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출애굽기를 참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출애굽기에서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서 그것이 성취가 되는 믿고서 뜻대로 따르고 있는 백성과 그러하지 아니하는 완악한 백성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전자는 영적인 지도자 모세와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후자는 이방신과 우상문화를 지니고 있는 바로와 그의 백성들입니다.

2)      모세는 완악한 바로와 그의 신하들에 대하여 특이한 표현을 이중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8:15),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9:12).

3)      결과는 바로가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인에 대한 진단이 다릅니다. 전자는 바로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하나님말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후자는 하나님께서 바로를 완악한 자로 만드셨기 때문에 거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4)      이에 따라 바로의 마음을 좋은 옥토로 만들 있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시사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옥토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창조주께서 완악한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좋은 옥토로 변화시키시는 역사를 하셔야만 합니다. 그를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려주어야만 합니다. 다음에는 바로와 같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희생과 헌신을 믿고서 대속의 은혜를 받아들여서 좋은 마음 밭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야만 합니다. 일을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어 도와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생활을 올바르게 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2)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에 대하여 보고 들어도 뜻을 깨닫지를 못하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가질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옛날 바로의 마음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지 사실을 수가 있게 됩니다;

1)      첫째, 그와 같은 기이한 현상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벌써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실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6:9-10). 옛날 바로와 애굽의 백성들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다 보니까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도 이방신과 우상문화에 빠져서 그만 영적으로 하나님말씀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있어서는 눈뜬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영적으로 치유하여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사명을 감당할 있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만들 수가 있을까요? 방법은 바로와 애굽의 백성들을 고쳐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방법과 동일합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얻어야만 합니다. 다음에는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말씀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는 이요”(8:11-12); 복음의 씨앗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짓밟고 하늘에서 새가 날아와서 먹어치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8:5). 말씀의 뜻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쉽게 설명을 해주십니다;

(1)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예수님 일행의 천국말씀의 선포에 대하여 방해를 하고 치유의 사역마저 율법의 위반이라고 여러가지 명분으로 비난하고 있는 자들이 유대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그와 같은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일까요? 겉으로 보면,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고 있는 그들의 유대교리가 예수님 일행에 의하여 훼손이 되고 있는 것을 방어하고자 하는 애국애족심의 발로로 보입니다. 하지만 깊이 묵상해보면 그것이 아닙니다.

(2)   이유는 선민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이방인들의 이익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능력이나 메시아의 능력이 모두 선민들을 위해서만 사용이 되어져야만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이 모두 선민들에게 집중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이방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선민들과 유대교지도자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은 마디로, 여호와를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자신들의 수호신이며 우상과 같은 존재라고 폄하하고 있는 신성모독적인 종교적 행태라고 하겠습니다.

(3)   그러한 현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의 종교적 행태는 사탄과 악한 영들이 가장 좋아하고 있는 신앙의 행태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악한 영들을 보내어 마치 새가 먹이를 삼키듯이 그렇게 선민들의 마음 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을 앞장 세워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종교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일행을 따르고 말씀을 듣고 치유의 사역을 받게 되는 자는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하게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습니다(12:42). 때문에 예수님 일행으로부터 천국의 복음을 듣고 치유의 은혜를 입은 백성들조차 다음에는 안면을 몰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따라나서지는 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바위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8:13); 말씀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 신앙의 행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현실적으로,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과 진리의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사고할 때에 본문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치유의 방법에 대하여 성경말씀을 찾아봅니다;

(1)   예수님의 천국복음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박고서 자양분을 빨아올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시련이 오더라도 말라죽지를 않습니다. 점에 대하여 옥중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3:17-19).

(2)   그것은 옛날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심어놓은 에셀나무와 같습니다. 에셀나무는 가나안 땅에서 보기 드문 상록수입니다. 이유는 자기 키의 3배나 되는 뿌리를 깊이 뻗어서 생명수를 빨아 올리고 있으므로 혹독한 겨울과 가뭄도 모두 이겨내게 되기 때문입니다(21:33).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의 반석이 아니라 세상의 반석에 뿌리를 박고 있으므로 그것은 결국 말라버리는 식물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8:13). 따라서 신앙의 뿌리를 그리스도의 말씀과 대속의 생애에 깊이 박고서 제자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가시떨기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이생의 염려 재물 향락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8:14); 가시떨기는 현세주의와 우상문화 그리고 향락생활과 황금만능사상을 두루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소원성취를 하겠다고 날뛰게 되면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습니다. 남을 짓밟고서라도 자신을 높이 세우고자 하는 마음 속에 이웃사랑의 정신이 깃들 리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가시떨기를 모두 제거하지 아니하게 되면 복음의 씨앗이 발아를 하고 자라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다섯째로,좋은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8:15);

(1)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자면 무엇보다도 마음 밭을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개간해야만 합니다. 여기서 착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선하다고 하는 말에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돌보시고 생명을 모두 살리고자 하시는 선한 의지를 지니고 계십니다. 마음을 닮아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착하고 좋은 청지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똑같이 생명을 살리고 돌보고자 하는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착하고 좋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제자들에게 발아(싹이 트는 ) 되고 자라나며 실천이 되어지는 것입니다(8:15a).

(2)   그렇게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명을 맡기십니다(28:18-20). 그리고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있도록 성령님을 마음 속에 보내어주십니다(24:49, 1:8). 성령님께서는 내주 역사하시면서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돌보십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말씀과 기도로 그것을 이기고 나아갈 있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덕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생활에서 승리를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8:15b).

결론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좋으신 부모님과 같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들의 잘못과 허물에 대하여 일차적인 책임을 먼저 지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 당시에도 바로의 마음을 여호와께서 완악하게 하셨다고 창조주의 책임을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피조물인 바로가 교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완강하게 듣지 아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귀책사유를 자신에게 돌리심으로 말미암아 훗날 그리스도를 보내어 대속의 제사를 드리고 회개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서 청지기의 직분을 감당하면서 살아갈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있습니다(19:22-25).

그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생각하면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해보게 되면 세상사람들이 현세주의와 이기주의를 벗어나서 장차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는 은혜가 예수님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은혜로 땅에 임하게 것임을 짐작할 있게 됩니다. 이미 그와 같은 은혜를 받아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우리 모두 그렇게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거듭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