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 제78강(눅7:48-5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년 7월 21일(목)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죄 사함과 구원의 능력에 대하여;
한 평생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와 사망입니다”. 어째서 사람들이 죄와 사망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①첫째, 죄에 대해서는 처벌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영원한 처벌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임하게 되는 영원한 처벌인 것입니다. ②둘째, 사망을 두려워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종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과 기억이 모두 말소가 되고 마는 영원한 종말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두려운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그 문제가 여전히 해결이 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죄와 사망의 문제는 육신적인 문제로 보이지만 사실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세상의 법정에서 죄에 대하여 판결을 하고 육신적인 처벌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죄의 문제가 완전히 청산이 되지를 않습니다. 여전히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는 양심과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죽음으로 완전한 종말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서 자기 좋은 대로 마음대로 살다가 흔쾌히 죽음을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삶이 바람직하지가 않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영과 육으로 만들어져 있는 유일한 창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이라고 하는 것도 영과 육이라고 하는 두 가지의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범한 죄악에 대하여 법정에서 처벌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처벌로써 죄가 완전히 청산이 되지를 못합니다. 여전히 사람의 마음 속에는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양심과 영적인 죄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양심과 죄의식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은 인간이 창조될 때부터 그렇게 반응하도록 창조주의 프로그램이 내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체적인 죽음으로 그 모든 것들이 기능을 상실하고 완전한 자신의 종말을 맞이할 수가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죽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찬미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한 풍조는 잠깐 지나가고 있는 하나의 사상의 조류에 불과하고 사람들의 전체적인 사유의 흐름은 그것이 아니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성경말씀에 기초한 사색은 영원한 생명과 의로움이 창조주 안에 있으며 그것을 찾아서 사람들이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창조주를 다시 찾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동네에서 죄인으로 불리고 있는 한 여인이 창조주 하나님의 사자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녀의 선택은 열매를 얻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갈망을 아시고 죄 사함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눅7:48-50).
반면에, 죄인들이 창조주가 아닌 악한 영을 찾아간다고 하면 고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력적으로 깨달음을 얻어서 스스로 고칠 수가 있다고 생각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보더라도 본질적인 치유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망의 문제는 더욱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과 죽었다는 것의 판정이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으로 나누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육체적인 죽음으로 완전한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말기 때문에 별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의식이 사라져버릴 것인데 걱정을 해보아야 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960년대말에 미소 양진영간의 군비경쟁으로 지구를 여러 번 태워버릴 수 있는 핵무기를 소장하게 된 그때와 비슷합니다. 어차피 핵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지구상의 인류가 모두 죽게 되고 마는데 그것을 걱정해보아야 그때가서는 아무 소용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사후(after life)의 문제에 대하여 염려를 하고 있으며 자신의 완전한 종말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아직 육체적인 죽음으로 모든 생명이 끝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별도로 영적인 종말의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마10:28).
회개하는 죄인에게 주고 있는 메시아의 네 가지 선물, 죄 사함과 믿음 그리고 구원과 평안에 대하여(눅7:48-50)
의사 누가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인이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7:36-37). 그녀는 죄 사함을 얻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례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귀한 옥합을 깨뜨리고 그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있습니다(눅7:37-38). 눈물로 회개하고 그 눈물과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고 그 발에 입 맞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의 행위는 자신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그리고 남은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결단과 행동을 지켜보신 예수님께서 본문에서와 같이 죄 사함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눅7:48-50).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눅7:48);
(1)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자는 단지 여호와의 죄 사함의 신탁을 당사자에게 전달만 해줄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죄 사함의 신탁을 죄인인 여인에게 전해주는 역할만 수행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2) 그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의사 누가는 진작에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눅5:24-26).
(3) 풀이를 해보자면, 이 땅에서 죄인의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세를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사실일까요? 의심하는 백성들에게 그 증거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전신불수로 침상에 누워있는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시면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 즉시 그 병자가 일어나 걸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서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의 영광이 자신들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4) 그렇다면 의사 누가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더 알기 쉽게 표현을 해보자면, “여호와 하나님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그 옛날 승천한 엘리야로 이 세상에 다시 왔다는 사실을 의사 누가가 증거할 때에 벌써 그렇게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눅1:17). 어쨌든 의사 누가가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사도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한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10:30).
둘째로,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눅7:49);
(1)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아무리 자신의 신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해줄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불경스러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이라고 하는 피조된 몸을 입고 있는 비천한 존재가 감히 창조주이며 영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눅7:48)고 선언하는 것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죄에 해당이 될 수가 있습니다(요10:33). 이에 따라 그 자리에 있는 유대인들이 내심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눅7:49)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2)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그러한 불경함을 벗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자신이 선포한 그 죄 사함의 은혜를 확실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예수님이 스스로 죄인의 육신을 벗고 영적인 의인의 몸이 되어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무덤 속 부활, 그리고 부활의 몸을 입고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시는 일련의 사건이 사람들의 모든 의문을 해소하는 완전한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죄 사함과 구원의 모든 사역의 완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죄인인 여인의 회개의 눈물을 보고서 그 죄를 사해주시는 선언만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에게 영생의 구원을 약속해주시고 남은 인생을 믿음 안에서 평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믿음과 구원 그리고 평안에 대하여 잠깐 설명을 해보고자 합니다;
(1) 여기서의 믿음은 마치 그 여인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 죄인인 여인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보내어주신 것처럼(요6:37-39) 그 믿음도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6:37),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그러한 의미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다음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서 창조주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기도할 때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둘째, 그 믿음은 기도의 응답으로 유일한 구속자가 그리스도이심을 알고서 그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죄 사함과 치유함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2)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영생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공간적으로 갇혀 있는 육신적인 삶에서 탈출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영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구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공생애 끝에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무덤 속 부활로 증명하십니다. 부활의 몸을 입고서 승천하는 광경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눅24:50-53). 그리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앞으로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예수님이 본을 보여주신 그와 같은 영생구원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십니다(눅24:49, 요14:16-20).
(3) 그런데 제자들과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예수님처럼 자신들의 공생애를 살아가야만 합니다. 지상명령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남아 있습니다(마28:18-20). 그 남은 인생을 육체를 입고 있지만 영적인 삶으로 살아가야만 합니다(행1:8).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모범에서 배운 것을 성령님의 임재와 도우심으로 실천하고자 할 때에 가능해집니다. 그렇게 결단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평강이 주어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그 옛날 죄인인 여인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날 저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
결론적으로,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사로잡혀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자신의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속자로 그리고 왕으로 영접한 그 죄인인 여인에게 선포하신 그 말씀을 똑같이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오늘도 선언해주십니다;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눅7:48),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눅7:50).
그 말씀이 효력을 발생할 수 있도록 예수님은 공생애 끝에 자신의 몸으로 대속의 제사를 드리십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십니다. 요컨대, 부활과 영생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으로 주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은혜를 다시 확인하면서 아무쪼록 믿음의 길을 끝까지 달려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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