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77강(눅7:44-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8. 14:52

누가복음 강해 77(7:44-4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7 20()

 

대속자 그리스도가 진짜 필요한 자와 별로 필요하지 아니한 자의 신앙태도의 차이에 대하여(7:44-47)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가 죄인입니다(3:9-10).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에게 사실을 알기 쉽게 모두가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와 같다고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7:41). 그러나 시몬은 말씀의 뜻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고 있는 바리새인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있는 여인의 신앙의 태도는 시몬의 경우와 다릅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함을 주시며 치유의 사역을 베풀어주시는 예수님에게 진실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애지중지하고 있는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왕으로 모셔들이고 최상의 감사와 경배를 드린다는 표시입니다.  

그에 비해서 시몬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전혀 실감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대를 했지만 결례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의 대속의 사역과 치유의 사역이 자신에게 있어서는 별로 필요하지가 않다는 의식을 바리새인 시몬이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죄인이라고 깊이 실감하고 있는 여인과 전혀 그렇게 느끼지를  아니하고서 자신은 여전히 율법생활에 비추어 , 흠이 없는 선민이며 의로운 자라고 자부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신앙행태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속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대접하는데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와 같은 시각에서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여자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여자를 보느냐? 내가 집에 들어올 너는 내게 씻을 주지 아니하였으되, 여자는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닦았으며”(7:44);

(1)   시몬은 예수님을 그저 자기 집에 초대한 손님 정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은 정도의 대접도 아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중하게 정식으로 손님으로 맞아들일 같으면 사전에 씻을 물부터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예수님에게 정도의 성의도 표시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시몬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저 흥미와 관심거리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정식으로 제대로 모시고서 식사를 대접하고 무언가 천국의 복음을 듣고 배우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루살렘 근처에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경우와(3:1-15) 확연하게 다른 점입니다.

(2)   반면에, 집에 초청을 받지 아니한 여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식사 중에 있는 예수님의 뒤에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얼른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울며 눈물과 자신의 머리털로써 예수님의 발을 닦고 있습니다(7:38a). 먼지를 털어낸 발에 키스를 하면서 자신의 옥합을 깨뜨리고 비싼 향유를 발에 붓고 있습니다(7:38b).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녀의 죄를 대속하시고 치유의 은혜를 주시는 그리스도임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에서 죄인으로 치부가 되고 있는 여인에게 있어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그것을 주실 있는 유일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그녀가 절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을 가르치실 때에 하나의 황금율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결국, 그리스도 예수님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자가 사함의 은혜를 크게 얻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인색한 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사함의 필요성이 절실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둘째로,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7:45);

(1)   고대사회에서 남자가 남자에게 입을 맞추는 경우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지에게 행하는 의식입니다(29:13, 33:4). 그것은 가까운 사이임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만나면 무지하게 반갑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이하면서 그와 같은 반가움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키스도 없이 무덤덤하게 식사자리에 앉도록 안내를 하고 있습니다.

(2)   그에 비해서 죄인으로 불리고 있는 여인은 갑자기 출현하여 예수님의 발을 붙들고서 울기를 시작합니다. 눈물이 발에 떨어지자 아예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서 깨끗하게 다음에 눈물의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척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당신의 입술이 아니라 발에라도 입맞춤을 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손님 정도가 아니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극진하게 모신다고 하는 의사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3)   가지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묻고 계십니다: “시몬아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저 한번 호기심의 대상으로 맞아 들이는 손님에 불과하냐? 네가 나를 위하여 한끼 식사를 준비한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냐?”.  만약 예수님에게 씻을 물을 먼저 제공하고 진심으로 중요한 손님으로 맞아들여서 천국의 복음을 듣기를 소원하였더라면 시몬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다른 시몬 베드로가 탄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1:42).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에게는 자신이 죄인이므로 대속자 메시아가 절실하다고 하는 깨달음과 의식이 전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리새인 시몬이 지니고 있는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셋째로,너는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발에 부었느니라”(7:46);

(1)   가나안 남부지역은 반사막성 기후입니다. 북부에 속하고 있는 갈릴리 지역에서도 비가 적게 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물이 귀한 가나안 땅이라 자주 머리를 감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가운 날씨이므로 머리카락이 바짝 마르고 영양이 부족합니다. 그러한 형편이므로 손님에게 감람유를 주어 머리기름으로 사용하도록 해주는 것은 극진한 대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손님으로 초대하면서 그러한 접대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별로 중요한 손님이 아니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2)   이에 비해서 느닷없이 나타난 여인은 예수님을 너무나 귀하게 대접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이제 식사자리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의 피곤한 발을 씻기우고 향유를 발라주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극진하며 귀한 손님대접인지 모릅니다. 시몬의 경우와는 완전히 대조적입니다. 사실을 예수님께서 예리하게 지적하시고 계십니다(7:46).

넷째로,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7:47);

(1)   예수님께서 결론을 맺고 계십니다; “예수님을 대속의 그리스도로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맞아들이고 극진하게 대접한 여인은 사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 시몬은 별로 사함을 받지를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7:47 의역).

(2)   실제로 바리새인 시몬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이유는 예수님으로부터 사함을 받거나 치유의 은혜를 받은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태여 예수님으로부터 대속의 은혜를 받을 필요성도 없습니다.

(3)   자신이 유대교리와 율법에 비추어 이미 의인으로 간주가 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사함을 요청하겠습니까? 참으로 선민사상과 의인사상에 빠져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만만한 신앙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바리새인 시몬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모두가 죄인일 뿐입니다. 하지만 교만하게도 사람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신앙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1)   첫째, 그리스도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일원에서 놀라운 복음사역을 행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님에 대하여 바리새인 시몬처럼 그저 선지자쯤으로 여기고 단지 호기심을 보이고 있을 따름입니다. 따라서 산헤드린 공회원인 니고데모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고 판단하고서 천국에 들어갈 있는 방법에 관하여 진지하게 문의를 하고 있는 바리새인은 지극히 희귀한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2)   둘째,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하여 대접이 별로입니다. 예를 들면, 씻을 물도 주지를 않으며 머리에 바를 감람유 기름도 내놓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반갑다고 하는 감격의 포옹이나 맞춤도 없습니다. 그저 맨숭맨숭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시간 자신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무엇이 잘못 되어 있는지 다시 점검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성도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만큼 대속의 예수님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사함의 은혜가 더욱 감격스럽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큼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와 같은 감격과 기쁨으로 전진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이 모두 있기를 간구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