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83강(눅8:19-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14. 02:31

누가복음 강해 83(8:19-2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6 7 26()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동참하는 자가 영적인 가족이 된다는 말씀에 대하여(8:19-21);

 

본문에서 의사 누가는 혈육관계보다는 영적인 관계가 우선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은 스토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지역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현장을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2)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으므로 쉽게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때 딱한 사정을 알고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가족들이 방문하여 만나고자 한다는 사실을 전해줍니다.

(3)   말씀을 들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8:21)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십니다.

내용은 공관복음인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동일하게 적혀 있습니다(12:46-50, 3:31-35). 그리고 4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같은 교훈이 다른 스토리로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1:12-13).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일까요? 깊은 속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본문의 말씀을 구절씩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예수의 어머니 동생들 왔으나 무리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8:19);

(1)   예수님의 어머니는 분이십니다. 아론의 후손인 마리아입니다(1:5, 36, 38). 그런데 동생들은 여러 명입니다. 그들은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르므로 사실은 half-brothers and sisters입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다른 복음서에서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는 목수 (요셉) 아들이 아니냐? 어머니는 마리아,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하지 않느냐? 누이들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13:55-56).

(2)   누가복음에서는 동생들이마치 남자형제들인 동생으로 보입니다(8:19-20). 그러므로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남자동생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가운데 두사람 이상이 예수님을 방문한 것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서는 달리 보고 있습니다. 동생들은 여동생까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12:50),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3)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동생들이 참으로 오래간만에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을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 갈릴리의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남동생들이 목수일을 하여 겨우 먹고 살고 있는 가난한 집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현장을 방문하기 위하여 며칠씩 집을 비울 있는 형편이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둘째, 동생들의 입장에서는 형인 예수님을 곱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형은 나이 30 되자 훌쩍 모든 집안 일과 목수 일을 자신들에게 떠다넘기고 혼자서 공생애를 떠나버린 야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3:23).

(4)   남동생인 야고보와 요셉 그리고 시몬과 유다가 예수에 대하여 감정이 좋지가 않다는 사실을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1-5). 예수의 남동생들은 자신들에게 가난한 집안 장남의 의무와 경제적인 부담을 왕창 떠다 넘기고 혼자서 뜻을 펴겠다고 대처( 도시) 빠져나가버린 형이 용서가 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런데 바로 아래 동생인 야고보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감정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감정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유는 다윗 왕의 직계 후손 스룹바벨이 그들의 중시조이기 때문입니다(3:27, 31). 아버지 목수 요셉은 다윗 왕의 직계에 속하고 있는 후손입니다(1:20).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는 아론 대제사장의 후손입니다(1:5, 36). 다윗 왕의 직계와 대제사장의 후손이 결혼을 하여 정식으로 낳은 맏아들이 사실은 야고보입니다(1:25). 그러므로 세상에서 다윗 왕의 후계자가 메시아로 세상에 온다고 한다면 사람은 반쪽 형인 예수가 아니고 당연히 완전한 혈통을 지니고 있는 야고보 자신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요셉의 피가 조금도 섞여 있지 아니한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라고 세상에 떠벌리고 있으니 그것이 사기극인 것으로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6)   그와 같은 동생 야고보의 생각을 진작에 알고 있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오직 다윗의 후계자로 세상에 오는 메시아만을 혈통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자손 선민의 구원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를 원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3:16-17). 그러므로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을 누릴  있도록 하는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11:4-12).

(7)   그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뜻대로 실천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가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혈통적인 선민의 제약을 진작에 벗어던지고 있는 새로운 영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선민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이익을 함께 도모하고자 하는 이스라엘 제국의 재건이 아닙니다. 마디로, 사람들의 집단적인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1:13). 대신에 모든 세상적인 이익과 자신들의 원초적인 관계를 내려놓고서 모든 피조물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서 헌신하고 희생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있으며 새로운 형제자매가 탄생할 있습니다(16:24, 1:12-13). 그들이 서로 먼저 살기 위하여 죽고 해치는 세상을 모두를 구원하는 하나님나라로 변화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있나이다”(8:20);

(1)   예수님께서 한창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에게 하나님말씀의 뜻을 천국의 복음으로 풀이하여 설명을 해주시기에 바쁘십니다. 그리고 병든 자와 약한 자들을 위하여 안수기도를 해주시고 있습니다. 주위에서는 12사도와 제자들이 많은 무리들을 정돈시키고 질서있게 집회를 행할 있도록 조치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2)   바로 그러한 때에 밖에서부터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오고 있습니다(3:31). 그는 무리 바깥에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와서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고 전갈을 해주고 있습니다.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무리들이 모두 예수님의 사정을 아시고 양보를 해주고자 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서 모친과 동생 분들을 만나보고 오시라는 고마운 말씀입니다(3:32).

(3)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무리들을 둘러보시고 예수님께서 참으로 중요한 말씀을 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3:33-34). 내용이 바로 다음 구절입니다(3:35, 8:21). 핵심내용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에 세상의 어떤 것도 우선시켜서는 아니된다고 하는 강력한 가르치심입니다. 왜냐하면, 훗날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일에 대하여 가장 먼저 대답을 요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의 질문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 너는 평생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했느냐? 아니면 혈육을 돌보기에 바빠서 또는 사회적인 일을 처리하느라고 바빠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등한시했느냐?”(3:35의역).

셋째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머니와 동생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라 하시니라”(8:21);

(1)   예수님의 말씀은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는 감동적인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먼길을 찾아온 모친과 동생들에게는 충격적인 것입니다. 마디로, 가족도 몰라보고 있는 참으로 한심한 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후로 동생들은 아예 예수님과 내왕을 끊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모친 마리아만이 훗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고 있는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 다니시고 있습니다(27:55-56, 15:40-41, 23:27, 49, 55, 24:10, 19:25-27).

(2)   그러나 놀라운 반전이 훗날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골고다 언덕 근처에 있는 바위 굴에서부터 부활의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적으로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의 몸을 입으시고 되살아나셔서 제자들을 찾아나서신 것입니다(24:13-49, 21:1-23). 소식을 전해듣고서 예수님의 동생들은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들은 다윗대왕과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이라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만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의 정체를 몰라본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들이었던 것입니다.

(3)   그래서 동생들은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그때부터 집안 일을 제쳐두고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도들과 함께 울면서 기도에 힘쓰게 됩니다(1:14). 그리고 오순절 성령세례를 받고 나서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개척하는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열심히 배우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과 예수님의 동생들은 초대교회에서 장로들이 됩니다. 특히 야고보는 사도 베드로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총회장으로서 일하게 되는 낙타무릎 야고보가 됩니다(15:13-21, 1:18-19).  그는 동생 유다와 함께 각각 서신서를 남기고 있습니다(1:1, 1:1). 그들은 육신적인 형제관계를 뛰어넘어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서 영적인 사귐을 얻게 인물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이 말하고 있는 교훈의 핵심은 가지입니다; “그것은 육친의 관계나 인간적인 관계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자들의 영적인 관계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훗날 바르트가 로마서 8장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그의 로마서강해에서 바르트가 영은 의식의 흐름이다(der Geist ist die Erkenntnis)”라고 정의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에르켄트니스’(Erkenntnis)라고 하는 용어는 지성적인 인식’(recognition of knowledge)이라고 하는 의미이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깊은 내면적인 의식과 자각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영적인 의식과 깨달음이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미 영적인 삶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로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을 이루고 있는 유기체와 같습니다(12:5, 고전10:17, 12:13).

그와 같은 새로운 신분과 인간관계는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천국에까지 동행하게 되는 아름다운 영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함께 하나님나라를 건설해나가는 동역의 아름다움과 형제사랑이 항상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님들의 거듭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