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32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2. 11. 09:21

역대하 제32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32
 
32:1-8. “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4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6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여기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라는 말은 앗수르의 침략이 히스기야가죄를 범함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살펴볼 때 전쟁은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로 인하여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으로 이방나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하신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허용하신 경우이다. 히스기야 시대에 있었던 앗수르의 침략은 후자에 속한 경우다. 그러므로 이런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할 때 반드시 승리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부흥을 가져다준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삶의 여정에서 전쟁과 같은 시련을 당할 때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죄가 있다면 회개해야 하고 특별히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을 만한 죄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런 시련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주시기 위하여 섭리 가운데 허락해 주신 시련으로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을 때 지혜롭게 행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먼저 적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차단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방백들과 용사들에게 성내에서 성밖으로 흐르는 물줄기를 막도록 했다(32:3,4). 다음으로 히스기야는 힘을 모아 퇴락한 성을 중수하였고, 외성 및 요새들을 쌓았고, 병기와 방패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앗수르의 침략이 있었을 때 히스기야는 그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실제적으로 요청 되는 군사적인 준비를 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히스기야는 이와 같은 일들뿐만 아니라 군대를 조직하고 그들을 성문 광장에 모이게 한 후 그들에게 용기를 불러 일으켜 주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32:7,8)” 히스기야는 전쟁에 직면하여 두려워 할 수밖에 없는 군사들을 안심시킴으로 두려워하지 않도록 했다. 그는 군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앗수르 군대 보다 크시다는 것을 말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히스기야의 이와 같은 말로 인하여 군사들은 안심했다. 여기 “유다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유다의 군사들이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의 말을 믿었다는 의미가 있고 다른 하나는 히스기야가 선포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안심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이 믿음의 말을 선포할 때 듣는 사람들은 믿음을 갖게 되어 샬롬을 누리게 된다. 특별히 사람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믿음의 말이란 하나님의 크심을 드러내 주는 말이다. 사람들이 샬롬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크심을 보고 세상의 일들을 작은 일로 여길 때뿐이기 때문이다.

32:9-19. “9 그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며 그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3 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14 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15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신들이 16 산헤립의 신하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18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점령하려 하였는데 19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

여기 “그 후”란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방어할 수 있는 준비를 마친 후를 말한다. 열왕기18장을 통해 볼 때 앗수르는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기 전에 이미 유다의 여러 성들을 쳐서 빼앗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사신들을 라기스로 보내어 앗수르 왕과 협상하고, 그가 유다를 떠나는 조건으로 은 삼백 달란트 금 삼십 달란트를 주기로 했다(18:13,14). 그러나 앗수르는 유다로부터 이와 같은 엄청난 양의 공물(供物)을 받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것이다. 이때 앗수르 왕은 다르단과 랍사게로 하여금 대군을 거느리고 라기스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히스기야를 치도록 명했는데 여기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에 보낸 신복은 다르단과 랍사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앗수르 왕은 그 신복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먼저 유다왕 히스기야와 유다 무리에게 “지금 예루살렘이 포위되었음”을 말하며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의뢰하느냐(32:10)”라고 물었다. 이것은 왕과 유다인들의 신앙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와 같은 도전은 유다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믿고 바라는 것과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줌으로 그들의 신앙을 파괴하고자 함이었다. 앗수르는 이처럼 유대인들의 신앙을 의식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계속하여 유다 백성들에게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32:11)”라고 했고 또한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32:12,13)”라고 말했다. 이 말은 히스기야가 유다의 모든 우상과 그 단들을 헐고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한 단만을 남겨 주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신(多神)을 숭배하는 앗수르의 눈으로 볼 때 신과 제단이 많을수록 그 신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행위는 신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거나 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살 만한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32:13)” “그런즉 이와 같이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32:14)”라고 말했다. 앗수르 왕이 보낸 자들이 히스기야와 백성들에게 한 말들을 보면 그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백성들과 왕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그들은 유다 사람들의 신앙을 파괴함으로 자신들의 목적한 것을 이루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유다 사람들에게 신앙이야 말로 왕과 백성들을 하나 되게 해 주는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 되게 해 주는 것은 신앙이다. 그리고 이 신앙을 붙잡고 있는 한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대적들은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그토록 집요하게 그들의 신앙을 공격하는 것이다.

“산헤립의 신하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32:16,17)” 그들은 더욱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비방했다. 그리고 산헤립도 편지를 써서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 하였다. 그는 스스로 교만하여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고 말했다. 무지는 사람으로 하여금 언제나 교만에 빠지게 한다. 마찬가지로 산헤립의 교만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때로 세상에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악한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실 때가 있다. 지금까지 앗수르가 열방과 싸워 승리를 얻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다. 그런데 앗수르의 산헤립은 어리석게도 그것이 자신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18,19절은 그가 얼마나 교만했는지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점령하려 하였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 하나님은 사람이 이처럼 교만에 빠지는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고 권고하셨다.

32:20-23. “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여기 “그러므로”란 “앗수르로 인하여 유다가 곤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란 의미다. 즉 히스기야는 시련을 만나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을 때 하나님께 나갔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선지자에게도 기별하여 하나님께 나가 유다를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도록 하셨다. 이로 인하여 앗수르왕은 패전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스스로 가장 강한 자라고 여기던 앗수르의 군사력이라는 것은 천사 한명으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미약한 것이었다. 다만 그것을 믿고 교만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독한 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었을 뿐이다. 여기 “앗수르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라는 말은 그가 그토록 승리를 확신했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 인하여 갖게 된 부끄러움을 표현해 주는 말이다. 실제로 앗수르 왕은 스스로 교만하여 승리를 확신했던 만큼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당하게 된 부끄러움도 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교만한 자들을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서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사14:12-15)”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앗수르는 유다에게 패배하였고, 패배한 앗수르 왕은 고국에 들어가서 그가 숭배하는 신전에 들어가서 우상을 숭배하는 중에 자기 아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만 의지한 히스기야는 이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또한 이 승리로 인하여 존귀함이 더해 졌다. 23절은 믿음의 사람 히스기야가 이 전쟁의 결과로 인하여 얻게 된 존귀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이처럼 동일한 전쟁일지라도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사람에게 그 전쟁을 통하여 영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게 해 주시지만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한 만큼 수치를 당하게 해 주신다.

32:24-26.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 받은 후 히스기야는 또 다른 시련을 당했다. 그가 죽을병에 걸린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그때도 하나님께 나가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므로 나음을 입었다. 히스기야는 이처럼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임했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않았다. 히스기야도 한 인간으로서 모든 것이 형통할 때에는 교만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교만에 대하여 징계하실 때 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32:27-30.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부와 영광이 극했다. 히스기야의 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말해 준다. 27-30절은 그의 부와 영광의 극함을 “세우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를 위하여 창고를, …창고를 세우며, …외양간을 세우며, …성읍들을 세웠으니,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32:31-33.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3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열왕기하 20장 12-21절에 언급 되어 있다.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죽을병에서 치유함을 받았을 때 그를 위로해 주기 위한 명목으로 사신들을 보내었는데 그 이면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한 기적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것과 그리고 앗수르를 대적한 히스기야를 자신의 동맹군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었다. 이와 같은 목적으로 바벨론의 사자들이 히스기야를 찾아왔을 때 하나님은 그를 떠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히스기야의 심중에 있는 것을 알고자 시험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시고자 하셨던 것은 어쩌면 형통했을 때에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지 아시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또한 이방인들이 찾아와서 호의를 베풀 때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가 보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형통할 때에도 하나님 앞에 겸손한지 아닌지는 자신의 형통함을 자신의 능력으로 돌리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가를 판단해 보면 알 수 있고, 이방인이 찾아와서 호의를 베풀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지키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베푸는 호의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 분별하여 취하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바벨론의 호의를 무조건 받아들였고 또한 그는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 주기 위하여 바벨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것들을 보여 주었다. 이로 인하여 유다는 후에 큰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왕하20:12-18). 이것으로 히스기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히스기야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 므낫세가 유다의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