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64강(눅6:39-4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2. 4. 09:40

누가복음 강해 제64(6:39-42)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7 7()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잘못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는 말씀(6:39-42)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의 신앙상의 문제점을 비유적으로 신랄하게 지적하고 계십니다한 마디로율법선생이며 학자로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하는 그들 바리새인들이 사실은 히브리정경에 들어 있는 여호와의 말씀의 진짜 의미에 대해서는 눈뜬 소경과 같다는 질책입니다(6:39). 그들의 눈은 여호와의 말씀의 뜻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가리워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들보가 그들의 눈에 박히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6:41).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율법선생이라고 자처하면서 백성들의 율법생활에 대하여 사사건건 감시와 감독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습니다(6:42a). 그러므로 그것이 목불인견(目不忍見눈뜨고는 차마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의 말씀입니다(6:42b).

그와 같은 예수님 말씀의 배경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검토를 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비유로 말씀하시되맹인 맹인 인도할 수 있느냐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6:39);

(1)  성경에서 맹인’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일찍이 이사야를 선지자로 세우시면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염려하건대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6:9-10). 한 마디로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말씀을 보더라도 그 뜻을 올바로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소경과 같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당시에는 율법선생이며 유대교리의 학자로 행세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그러합니다그들은 전통적으로 선민우월사상과 현세축복사상에 바탕을 두고서 여호와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습니다그렇게 유대교리를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열심히 율법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그들이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그러한 관행이 계속이 된다면둘 다 똑바로 보지를 못하고 그대로 길을 가다가 마침내 심판의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 것입니다.

둘째로,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6:40);

(1)  선민인 유대인들은 율법선생인 랍비들로부터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배우고 있습니다안식일이 되면 모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전과 각 지역의 회당에서 예배를 드립니다예배시간에는 랍비들이 양피지에 적혀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뜻을 그들의 유대교리로 풀이하여 모인 회중들에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랍비들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의 제자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2)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여호와말씀의 취지가 되고 있는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 그리고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본뜻을 모르고 있는 맹인과 같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이기적으로 그리고 현세적인 시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선민사상과 현세축복사상으로 제멋대로 해석하여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그것이 랍비들의 율법교육입니다.

(3)  그것은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고 있는 형편인지라 그냥 두게 되면 스승과 제자가 모두 구덩이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6:39). 그것이 안타까워서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처방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그것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6:40)는 것입니다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자가 선생보다 높지를 못합니다(6:40a). 학문에 있어서도 그러하고 유대교리의 이해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그러므로 제자는 선생으로부터 겸손하게 배워야만 합니다.

2)    그렇지만 배우는 그 내용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하나님말씀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기본적인 이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그 점을 깨닫고 백성들이 선민사상과 현세축복사상이 아니라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과 그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된다면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될 것입니다.

3)    그렇게만 된다면 히브리정경에 적혀 있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처럼 박학다식하게 많이 알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진리성에 대해서만은 정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만약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것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그것을 같은 비율로 본다면 그 수준은 선생의 수준과 같은 것이 된다고 하겠습니다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6:40b).

셋째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는 보고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6:41); 예수님께서 사실 제자들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6:40b)는 것 그 이상입니다왜냐하면말씀공부에 있어서 지식의 많음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모르고 있는 백성들의 잘못은 ’와 같이 경미한 것입니다그에 비해서 선민들에게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서 백성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율법선생들의 잘못은 들보’와 같이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훗날 사도 바울의 지적과 같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잘못된 열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

넷째로,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외식하는 자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6:4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일러주십니다그 내용은 간단합니다; 남의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서 자신들의 잘못부터 고치면 된다는 것입니다(6:42 의미).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백성들의 잘못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문화하고 있는 율법조항의 시행세칙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그 잘못을 율법에 정통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면 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 앞에서는 죄인과 같이 주눅이 들고 맙니다.

(2)  그런데 율법준수를 하지 않았다고 백성들을 비난하고 자아비판을 시킨다고 하더라도 백성들의 율법생활이 온전하게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백성들은 바리새인들의 눈만 피하면 의인이라고 인정함을 받을 수가 있으므로 그저 그러한 형식적인 율법생활에 진력할 따름입니다그것은 즐거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왜냐하면삶의 활력과 내적인 기쁨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러므로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이 먼저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하나님말씀의 취지가 그들의 선민사상에 의하여 왜곡이 되고 변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야만 합니다그리고 겉으로 사람의 행동양식을 규제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그 방법은 이스라엘 자손을 선민으로 삼으신 이유를 발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4)  여호와의 뜻은 선민만이 구원을 받고 이 세상에서 번영을 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목적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의 사명을 선민들에게 맡기신 것입니다(19:5-6).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신앙의 모범을 보여주고 중보의 기도를 드려주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5)  그러한 깨달음을 얻고 보면 이방인을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미워하고 백성들의 율법불이행을 지적하는 일이 능사가 아닙니다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부터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선민사상을 벗어버리고 만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방인들에게 전해야만 합니다그리고 선민들을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길러내어야만 합니다그것이 형식적이고도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며 생명살림의 역사에 동참하는 방법입니다.

결론적으로본문의 내용은 마치 국가의 모든 법규가 헌법의 기본정신을 위반해서는 아니 된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1)  헌법과 같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그것은 창조주의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즉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시각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만민구원이 아니라 선민만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의 복은 현세적인 축복으로 선민들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이 세상과 내세까지를 모두 바라보는 영생구원사상이 아닙니다요컨대현세에 국한이 된 인과응보적인 사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말씀의 기본취지를 벗어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바로잡아야만 합니다그것이 그들의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작업입니다그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율법선생으로서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오늘날에도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그 이유는 새로운 선민사상이 현대인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널리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차제에 신앙적으로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만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아무쪼록 깊은 성찰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