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61강(눅6:27-3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31. 21:47

누가복음 강해 제61(6:27-31)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7 4()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선민사상을 청산할 수 있는 9가지의 방법에 대하여(6:27-31)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이기적인 삶을 투쟁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면 본문의 예수님 말씀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면 냉정하고 경쟁적인 이 세상에서 낙오자가 되고 패배만을 경험하게 될 따름입니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그와 같은 어리석은 삶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그리스도처럼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을 살아가는지 아니하는지 똑똑하게 지켜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세상살이의 모습과 거의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여호와의 종의 모습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53:1-11, 6:27-31). 그러므로 그것은 굉장히 역설적인 것으로 보입니다이 세상에서의 삶에 국한하여 평가를 하자면 그것은 멍청한 짓입니다철저하게 짓밟히고 생존의 위협에 처할 수밖에 없는 삶의 방식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하나님나라의 존재와 그 나라에서의 상급과 영광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면 모든 이야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의 선민사상 그리고 현세적인 축복과 소원성취만을 추구하고 있는 우상문화를 동시에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요그러한 사조와 세태로부터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할 수 있는 방도가 과연 무엇일까요구속자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 비결을 본문에서 9가지의 실천사항으로 정리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그와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또한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너희 원수 사랑하며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6:27);

(1)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6:27a); 여기서 그러나’는 앞에 있는 말들에(6:24-26대하여 반대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앞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은 잘못된 제자도(弟子道제자의 길)에 관한 것입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초래하고 있는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삶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    그러므로 그 진노와 화를 벗어나서 다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회개를 하고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만 하는 것일까요이제부터 예수님께서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 설명을 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2)  “너희 원수 사랑하며(6:27b); 첫 번째 방법이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여기서 원수’라고 하는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사탄과 악한 영들에게 포로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해내기 위한 것입니다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탄과 악한 영들의 세력과 영향권으로부터 사람들을 끄집어내어야만 합니다어떻게 하면 될까요?

2)    그 방법은 사탄과 악한 영들이 주장하고 있는 세상의 논리를 뒤집어야만 합니다세상의 논리 그대로 원수를 미워하게 되면 이 세상은 보복의 악순환을 계속하게 됩니다원수를 갚는다는 정당성에 의존하여 살인과 피 흘림의 역사는 확대재생산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그것이야 말로 사탄과 악한 영들이 바라고 있는 것이며 자신들의 인간지배를 영속화하는 길입니다.

3)    그렇다면 세상논리와 반대로 원수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사랑해야만 하는데 그것이 영 쉽지가 않습니다그렇게 살아가다가는 일방적으로 피해만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두 가지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①첫째진짜 원수인 사탄과 악한 영은 미워하지만 그 지배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4)    따라서 그러한 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고 구해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②둘째아무리 사탄과 악한 영에게 조종을 당하여 원수와 같은 행동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영적으로 이해를 하고자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여전히 그러한 원수와 같은 행동을 자행한 당사자는 보복의 대상으로 보이고 있을 따름입니다어떻게 사람이 제 정신을 가지고 그 사람을 용서하고 오히려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랑해줄 수가 있을까요?

5)    말은 쉽지만 그것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써는 불가능한 교훈입니다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를 하십니다; 볼지어다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24: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6)    여기서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제자들이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그렇게 대속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성령님을 통하여 전달받아서 행할 때에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으로 억지로 원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여 그것으로 자연스럽게 원수를 사랑하는 신앙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한다고 하겠습니다.

(3)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6:27c); 사람들은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자를 미워하기 마련입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행동을 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    자신을 미워하는 자에 대하여 미워하는 그만큼 거꾸로 잘해주라는 것입니다그것이 가능할까요사람이 치매에 걸리거나 미치지 아니하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행동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그러한 행동의 변화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그 인식의 변화가 바로 예수님께서 고난 가운데 보여주시고 있는 긍휼’이라고 하겠습니다.

2)    예를 들면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을 미워하여 아우성을 치고 있는 백성들이 불쌍하다는 것입니다그러한 미움 끝에 그 백성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영벌(永罰영원한 형벌)뿐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진노가 있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어리석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주저함이 없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자 하십니다.

3)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行惡者악을 행한 사람)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하나는 좌편에 있더라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3-34). 그와 같은 예수님의 긍휼을 닮아서 실천하는 자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28); 저주와 축복은 반대말입니다마찬가지로 모욕과 기도도 반대의 개념이라고 하겠습니다;

(1)  세상적인 논리로 말하자면 저주에는 저주로 대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왜냐하면그들도 모두 구원의 복을 받아서 누려야만 하는 전도의 대상들이기 때문입니다그렇지만 끝까지 예수님과 제자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저주하면서 회개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요그들을 위한 축복의 결과가 그들에게 임하지 못하며 도리어 축복을 한 자들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훗날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하십니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10:12-13).

(2)  자신을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기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옛날 중세시대의 기사도에 의하면기사란 모욕을 받게 되면 반드시 결투를 신청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결투의 결과 이기는 자의 행위는 모두가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가 되고 맙니다반면에 결투에서 패배한 자는 모욕을 감수해야 하며 더 이상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그래서 승자가 바로 정의이며 법이라고 하는 말이 생겨나고 있습니다사실 그와 같은 전통은 고대사회로부터 있어온 것으로서 그 뿌리가 깊은 것입니다.

(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결투로서 정의를 가려내는 방법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십니다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를 해줄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승자가 되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자가 된다고 하는 의미를 전해주고 계십니다예수님께서 스스로 그 쉽지 아니한 행위의 선례가 되시고 있습니다자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처형하는 그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부디 그들을 용서해달라고 간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3:34).

셋째로,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을 돌려대며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6:29);

(1)  사람을 구타하는 자는 가해자이며 구타를 당하는 자는 피해자입니다세상의 법칙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눈은 눈으로이는 이로손은 손으로발은 발로덴 것은 덴 것으로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21:23-25).

(2)  그리고 물건을 빼앗는 것은 약탈이며 강도의 행위입니다결코 정당화될 수가 없는 범죄행위입니다따라서 사회의 정의구현의 차원에서도 처벌의 대상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사회의 정의나 율법의 가르침을 넘어서서 자신의 제자들은 반대로 행동을 해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곧 계속 피해자가 되라는 것입니다뺨을 때리거든 되받아 치지를 말고 나머지 뺨마저 맞도록 하라는 것입니다(6:29a). 그리고 겉옷을 빼앗는 강도에게 달려들지를 말고 속옷까지 달라고 하면 그냥 벗어 주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6:29b).

(3)  어째서 그렇게 행동을 해야만 할까요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범죄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보복을 행하지 아니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행위입니다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그 십자가를 제자들에게 지라고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침을 베푸시는데 그치고 있지를 않습니다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의 생애로써 그 본을 보여주십니다그것이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4)  예수님을 정죄하고 저주하며 비난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들의 속죄를 위하여그리고 하나님을 떠나서 제멋대로 자신들의 세상적인 논리로 살고 있는 이방인들을 위하여자신의 몸을 바쳐서 영원한 속죄의 제사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그 제사의 의미를 깨닫는 자는 남은 인생을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그 제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왜냐하면그 대속의 죽음 다음에 무덤 속 부활과 승천 그리고 천국으로의 입성이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5)  물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자신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서 현세에 만족하며 한 평생 세상적인 논리에 충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모범과 가르치심이 우이독경(牛耳讀經쇠귀에 경읽기)이 되고 말 것입니다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현세적인 삶이므로 그것도 존중이 될 것입니다모세의 권면과 같이(30:19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권면을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기도해줄 수는 있지만 억지로 그 선택을 타의로 뒤집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6)  그와 같은 맥락에서끝까지 그렇게 잘못 선택한 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을 위한 심판의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그 이유는 창조주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한 차례 개인적으로 심판을 행하고 한꺼번에 정리를 하는 수순이 예수님에 의하여 벌써 예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듣는 자는 살아나리라(5:24-25),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9).

넷째로,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6:30);

(1)  하늘의 곳간은 누구에게 열리게 되는 것일까요예수님께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현장을 살펴보게 되면 하나의 실마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예수께서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날이 저물어 가매 12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이니이다(9:11-1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15:32).

(2)  그 무리들은 모두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말씀의 뜻을 듣고 깨닫기를 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기뻐하고 있습니다그런데 그 일에 매달리다가 보니까 그만 시장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내게 되면 귀가 길에 기진하여 쓰러질까 염려하십니다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늘의 곳간을 열어서 그들 무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십니다.

(3)  만약 그 무리들이 세상적인 재미에 빠져서 굶주리고 있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곳간을 열기 위하여 기도를 하시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그와 같은 맥락에서위의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말씀 곧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며(6:30)는 하나의 전제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는 자가 굶주리고 있거나 길을 가다가 기진하여 쓰러질 지경에 처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처럼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며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그들을 살려주라는 것입니다.

(4)  요컨대그것은 생존의 위기에 처한 자를 구조하는 것이므로 다시 돌려받고자 생각하지 말하는 것입니다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제자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주십니다(10:33-37). 그렇다면구조활동과 전도활동을 하기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장차 어떠한 상급이 있게 될까요?  그것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에 해당합니다(6:19-21).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대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25:40). 명쾌하게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

   다섯째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

(1) 흔히 산상수훈 가운데 황금률로 부르고 있는 구절이(7:12여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그 말씀은 이 세상에서나 하나님나라에서나 두루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따라서 황금과 같은 말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이 세상에서 남을 먼저 대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훗날 그 대접이 되돌아 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11:1). 그와 반대로남을 대접하지 아니하고 자신은 남으로부터 대접만 받겠다고 그렇게 행동을 하게 되면 멀지 아니하여 모든 초청에서 제외가 되고 말 것입니다.

(2) 나아가서 이 세상에서 아무런 조건이나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아니하고서 순수하게 그대로 남을 대접하고 베풀어준 자비와 긍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십니다왜냐하면그것은 상급의 약속이 있는 제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이미 위에서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0:42).

결론적으로본문에서는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 9가지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1)  “너희 원수 사랑하라(6:27a);

(2)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6:27b);

(3)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6:28a);

(4)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28b);

(5)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을 돌려대라(6:29a);

(6)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6:29b);

(7)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라(6:30a);

(8)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하지 말라(6:30b);

(9)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6:31);

  그 의미에 대해서는 위의 강해말씀을 다시 음미해보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위와 같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실천하시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그리하면 그에 따른 상급이 영적으로 이 땅에서 그리고 구체적으로 하나님나라에서 성도님들에게 풍성하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아무쪼록 그 상급을 받아 누리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