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18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1. 25. 03:56

역대하 제18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18
 
18:1-3. “1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 2 이 년 후에 그가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더니 아합이 그와 시종을 위하여 양과 소를 많이 잡고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 치기를 권하였더라 3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하는지라

여기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혼했다는 것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을 말한다. 저자는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라고 말한 후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는 여호사밧이 인간적인 탐욕에 끌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있는 아합과 연혼한 어리석음을 말하기 위함 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함께 해서는 안 될 사람과 같이 함으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고 또한 이 일로 인하여 후손들에게 까지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여호사밧이 연혼한 아합은 북쪽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었다. 그는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취하였고, 그의 충동으로 인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버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탄압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 우상의 숭배지로 만들어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우상 숭배자에 빠지게 했다.

경건한 여호사밧이 어떻게 이와 같은 아합과 연혼 할 수 있었을까?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혼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와 한 민족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합 시대 북쪽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여호사밧은 이와 같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은 정치적으로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지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혼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는 일이었다. 여호사밧이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외적인 조건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적인 조건에서 본다면 아합은 당시 유능한 통치자 중의 하나이고 그의 나라는 국가적인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비춰본다면 그는 우상숭배 자였고, 하나님의 종들을 탄압하고 백성들을 미혹하여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 자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호사밧이 아합과 연혼한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와 함께 한 경우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런 만남을 기뻐하실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무슨 일을 하든지 외적인 조건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을 우선해야 할 것을 말해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 함께 하며 축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인의 길을 좇지 말 것과 죄인의 길에 서지 말 것과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시1:1,2)

“이스라엘 왕 아합이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시겠느냐 하니 여호사밧이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18:3)” 길르앗 라못은 야르묵(Yarmuk) 강 남방, 요단 동편 이스라엘의 동방 모퉁이에 위치한 주요 성읍이었으며, 북으로 다메섹과 그 너머로 이어지는 길르앗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하였다. 그곳을 이전에 다메섹의 아람 왕에게 빼앗겼었는데(16:4, 왕상20:34), 아합은 아람인들이 카르카르에서의 패배로 인하여 이때 즉 853년 이후인 당시에 재탈환을 꾀할 만큼 충분히 약해졌다고 느꼈던 것 같다(엑스포지스터 성경주석). 그래서 아합은 라못을 되찾는 일에 여호사밧이 함께 해 주기를 청한 것이다.

여호사밧은 아합의 요청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답하되 나는 당신과 다름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여호사밧은 아합과 이스라엘을 단순히 혈육적인 관계에서만 보고 이처럼 대답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와 우상숭배자가 어떻게 하나 될 수 있겠는가?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명백하게 말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 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6:14-16)”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것을 말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롬2:28,29)” 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한 어리석음을 범한 것은 표면만을 보고 그 이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8:4-11. “4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 하더라 5 이스라엘 왕이 이에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하니 그들이 이르되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하더라 6 여호사밧이 이르되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7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이 이르되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하니 8 이스라엘 왕이 한 내시를 불러 이르되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속히 오게 하라 하니라 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보좌에 앉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그 앞에서 예언을 하는데 10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11 여러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여호사밧은 아합의 요청에 따라 라못을 치는 일에 함께 할 것을 말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제안했다. 이런 여호사밧의 요청은 그가 삶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라면 전쟁에 나갈 때 먼저 하나님께 물어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여호사밧은 왕으로서 따라야 할 이와 같은 경건이 삶 가운데 생활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합은 여호사밧의 요청대로 선지자 사백인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18:5)”라고 물었다. 그들은 아합의 말에 대하여 즉시 대답해 주었다.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10,11절은 이때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모습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 하고 여러 선지자들도 그와 같이 예언하여 이르기를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하더라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아합이 불러 모은 선지자들에 대하여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즉 아합은 선지자들을 박해했는데 어떻게 아합이 이스라엘에서 사백인이나 되는 선지자를 모을 수 있었을까? 이 물음을 생각해 볼 때 아합이 불러 모은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들이 아니고 선지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아합에게 협조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전쟁사를 살펴볼 때 아합처럼 왕이 어떤 일을 물어보고자 했을 때 선지자를 이처럼 많이 한 자리에 모아서 물어본 적이 없다. 왕이 장래의 일이나 또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고자 했을 때 필요한 선지자는 진실하고 신뢰할만한 한 사람이면 족했다. 또한 어떤 시대도 이처럼 사 백 명이나 되는 선지자가 활동한 일이 있었던 때도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박해 받고 있던 아합의 시대에 이처럼 많은 선지자들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예언하는 모습을 지켜 본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18:6)”라고 물었다. 여호사밧이 이와 같이 물었던 것은 그들에 대한 신뢰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전2:·13). 그러므로 경건한 여호사밧이 그들이 하는 예언이 거짓이라는 것을 분변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합은 여호사밧의 요청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18:7)” 여기 “한 사람이 있으니”라는 말은 당시 북쪽 이스라엘 가운데 참선지자가 얼마나 귀했는지 말해 주고 있다. 선지자 미가야는 언제나 아합에게 불길한 것만 예언해 주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었다.

18:12-27. “12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자가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좋게 말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처럼 좋게 말하소서 하니 13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14 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하는지라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그들이 왕의 손에 넘긴 바 되리이다 하니 15 왕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하겠느냐 하니 16 그가 이르되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하는지라 17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나쁜 일로만 예언할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더라 18 미가야가 이르되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1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0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21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22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23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하는지라 24 미가야가 이르되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 하더라 25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미가야를 잡아 시장 아몬과 왕자 요아스에게로 끌고 돌아가서 26 왕이 이같이 말하기를 이 놈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 하셨나이다 하니 27 미가야가 이르되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

미가야는 사자로부터 왕의 마음을 살 수 있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18:13)”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선포하라고 주신 메시지를 그대로 선포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미가야는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대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18:16-22)” 미가야가 이렇게 예언하였을 때, 가장 먼저 반응한 자는 거짓선지자들이었다. “그나아나의 아들 시드기야가 가까이 와서 미가야의 뺨을 치며 이르되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18:23)”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미가야의 예언이 옳은 것이라면 그것은 곧 자신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왕에게 자신의 예언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미가야는 자신의 뺨을 치며 거짓을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렇게 예언했다. “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바로 그 날에 보리라 하더라(18:24)”

아합도 미가야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미가야를 잡아 옥에 가두도록 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18:26)” 이에 대하여 미가야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고 또 이르되 너희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 하니라(18:27)” 미가야가 백성들에게 “너의 백성들아 다 들을지어다”라고 한 것은 자신의 말을 듣고 후에 증거하라는 의미다.

아합은 처음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실 된 뜻을 들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다만 그가 선지자들을 부른 것은 그들을 통하여 자신이 듣고자 하는 말을 듣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하여 불길한 예언의 말을 한 선지자 미가야를 옥에 가둔 것은 이미 예측 된 일이었다.

아합은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으로 인하여 전쟁을 강행했다. 물론 여호사밧도 사백인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그들의 예언과 다른 선지자 미가야로부터 예언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는 그 예언들의 진실성을 확인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대세(大勢)에 밀려 결국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아합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을 박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도 참된 예언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불신앙으로 인하여 예언의 말씀에 따르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 전쟁에서 예언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했다. 만일 아합이 미가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전쟁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합이 이 전쟁에 나가 죽은 것은 자신이 뿌린 불신앙의 씨앗을 스스로 거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28-34. “28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29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30 아람 왕이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한지라 31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32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 33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의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나를 진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4 이 날의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이스라엘 왕이 병거에서 겨우 지탱하며 저녁 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다가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치기 위하여 전쟁에 나갈 때 계략을 써서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군인 옷으로 변장함으로 전쟁의 위험에서 피해보고자 했지만 하나님은 전쟁 중에서도 아합과 여호사밧을 분별하셨다. 아람 군대는 그들의 왕으로부터 오직 이스라엘의 왕에 대해서만 공격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해하고 오직 그에게만 공격을 가했지만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생명을 지켜 주심으로 그는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다. “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아서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18:31,32)” 여호사밧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위험에서 구원해 주셨다. 그러나 아합은 군사로 변장하여 여호사밧처럼 적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람의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전쟁 중에서도 악인과 의인을 분별하시고 구원해야 할 자와 버려야할 자를 아신다. 변장은 사람의 눈을 가릴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눈을 가리지는 못한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사람 미가야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이 패함으로 그리고 아합이 죽임을 당함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