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19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1. 25. 17:54

역대하 제19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19
 
19:1-3. “1 유다 왕 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가니라 2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3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라못으로 올라가 아람과 전쟁하던 중 적의 공격으로 인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심으로 위기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함께 했던 아합은 죽임을 당했지만 여호사밧은 무사히 유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한 자 아합과 함께 했던 여호사밧의 죄에 대하여 침묵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선지자 예후를 여호사밧에게 보내어 아합과 함께 한 죄를 책망하셨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여기 “악한 자”란 아합을 말한다. 그는 우상 숭배자였고 또한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는 자였으므로 그를 돕는 것은 악한 자를 돕는 것이고 또한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어떤 동기로 아합과 함께 하였든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 행위는 하나님 앞에 악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한 의지를 가지고 행한 행위일지라도 그것이 죄인들의 악한 일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선지자는 이로 인하여 여호사밧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임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처럼 책망 중에도 그가 행한 선한 일을 잊지 않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그를 책망하실 때 그가 행한 선한 일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왕에게 선한 일도 있으니 이는 왕이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음이니이다 하였더라(19:3)”

19:4-7. “4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살더니 다시 나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 5 또 유다 온 나라의 견고한 성읍에 재판관을 세우되 성읍마다 있게 하고 6 재판관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 7 그런즉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 하니라

여호사밧은 아합과 함께 한 것으로 인하여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다. 책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낙심함으로 오늘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책망하심을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는 은혜의 기회로 삼았다. 이것이 여호사밧이 가지고 있는 탁원함이었다.

실제로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이전보다 더욱 열심으로 유다의 신앙 부흥을 위해 힘썼다. 그는 먼저 유다 각성에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율법에 따라 정직하게 백성들을 재판함으로 유다 가운데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세웠다. 여호사밧은 재판관들을 세우고 두 가지 권고의 말을 주었다. 하나는 “너희가 재판하는 것이 사람을 위하여 할 것인지 여호와를 위하여 할 것인지를 잘 살피라 너희가 재판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심이니라(19:6)” 이 말씀은 재판은 하나님께 위임 받은 일이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재판관은 자신의 뜻대로 재판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권고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19:7)”이다. 이 권고의 말씀은 재판관들이 재판할 때 인정이나 뇌물 등으로 인하여 재판을 굽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재판관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이라는 것”임을 말해 준다. 긍휼히 여겨야 할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 또는 용서해 주는 것 등은 재판 이후의 문제이다. 이런 것들은 죄를 저로 인정할 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8-11. “여호사밧이 또 예루살렘에서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족장들 중에서 사람을 세워 여호와께 속한 일과 예루살렘 주민의 모든 송사를 재판하게 하고 9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10 어떤 성읍에 사는 너희 형제가 혹 피를 흘림이나 혹 율법이나 계명이나 율례나 규례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와서 송사하거든 어떤 송사든지 그들에게 경고하여 여호와께 죄를 범하지 않게 하여 너희와 너희 형제에게 진노하심이 임하지 말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행하면 죄가 없으리라 11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 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 레위 사람들은 너희 앞에 관리가 되리라 너희는 힘써 행하라 여호와께서 선한 자와 함께 하실지로다 하니라

여호사밧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유다의 신앙 부흥을 위하여 행한 일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과 이스라엘 족장들 가운데서 사람들을 세워 유다의 신앙의 부흥을 위하여 할 일을 위임해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이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하여 지도자들을 세우고 그들의 책임 아래 위임해 준 일들을 행하도록 했다. 대제사장 아마랴를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을 위임 받은 자들 가운데 지도자로 세웠고, 스바댜를 왕에게 속한 일을 위해 위임 받은 자들 가운데는 지도자로 세웠고 그리고 레위 사람들은 유다에 속한 자들의 신앙을 위한 관리자로 세웠다. 이처럼 여호사밧은 유다를 구조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였다. 특별히 여호사밧은 “브엘세바로부터 에브라임 산지까지 순회하며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살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였으며(19:4), 또한 이러한 순회를 통하여 유다의 진정한 부흥을 위하여 요청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유다 백성들 가운데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사회 구조 자체를 개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