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17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1. 22. 14:37

역대하 제17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17
 
17:1-6. “1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2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또 유다 땅과 그의 아버지 아사가 정복한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 3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4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6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를 대신하여 유다 왕이 되었다. 그는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였고(17:3),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자였으므로(17:6), 우상숭배자 아합이 통치하는 북쪽 이스라엘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물론 후기에 그는 아합과 가까이 함으로 여러 가지 올무에 걸렸지만). 여기 여호사밧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였다”는 것은 북쪽 이스라엘의 침략에 대한 방비였고 또한 그들의 우상숭배의 유입에 대한 방비였다.
5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호사밧이 통치하던 시대의 모습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하나님은 전심으로 말씀에 따라 사는 여호사밧을 축복해 주심으로 부귀와 영광을 크게 더해 주셨고 또한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사밧을 통하여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여기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로 걸어갔다”는 말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사용 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4절은 여호사밧의 삶의 모습을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이와 같은 삶을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 구하는 삶”이다, 그는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였다. 여기 “하나님께 구했다”는 말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말한다(잠3:5,6). 이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묻고 도움을 구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다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사밧은 오직 하나님께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삶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하시므로 순종하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속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정직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오히려 스스로를 속이며 살고 있는 자들이다.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다는 의미들 가운데 떠 또 다른 하나는 세속적인 사람들의 삶을 본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17:4). 여기 “이스라엘”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북쪽 이스라엘을 말한다. 그들은 유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을 멀리하고 스스로 세속적인 삶을 택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인들처럼 우상을 숭배했고 자신의 향락을 위하여 도덕적으로 부패한 삶을 살았다. 이처럼 세속적인 사람들은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누룩과 같은 존재가 되어서 공동체 전체를 부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죄로 인하여 부패한 심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돌아보며 경건에 힘쓰지 않는다면 세속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했다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하여 힘썼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처럼 경건한 삶을 위하여 스스로를 지키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것이다.

17:7-9. “ 7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 8 또 그들과 함께 레위 사람 스마야와 느다냐와 스바댜와 아사헬과 스미라못과 여호나단과 아도니야와 도비야와 도바도니야 등 레위 사람들을 보내고 또 저희와 함께 제사장 엘리사마와 여호람을 보내었더니 9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

여호사밧은 자신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것이 아니고 백성들 모두에게 율법을 가르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유다 왕이 된 후 삼년에 방백들 다섯 명과 제사장 두 명 그리고 레위인 아홉 명을 유다 각 지역에 파견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도록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말씀을 배우는 일로부터 시작 된다. 듣지 못한 자는 알 수 없고 알 수 없는 자가 행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사밧이 지도자들을 택하여 그들을 유다 각 지역에 보내어 백성들을 가르치게 한 것은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요청 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동일한 요청을 바울의 권고 가운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다도다 졸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 여기 “아름다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라는 말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의 복됨을 말해 주고 있는데 세상은 이들을 통해 아름다워지기(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기) 때문이다.

17:10-19. “10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11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조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숫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칠백 마리를 드렸더라 12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13 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 14 군사의 수효가 그들의 족속대로 이러하니라 유다에 속한 천부장 중에는 아드나가 으뜸이 되어 큰 용사 삼십만 명을 거느렸고 15 그 다음은 지휘관 여호하난이니 이십팔만 명을 거느렸고 16 그 다음은 시그리의 아들 아마시야니 그는 자기를 여호와께 즐거이 드린 자라 큰 용사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17 베냐민에 속한 자 중에 큰 용사 엘리아다는 활과 방패를 잡은 자 이십만 명을 거느렸고 18 그 다음은 여호사밧이라 싸움을 준비한 자 십팔만 명을 거느렸으니 19 이는 다 왕을 모시는 자요 이 외에 또 온 유다 견고한 성읍들에 왕이 군사를 두었더라

하나님은 유다에 샬롬을 주셨다. 여기 “여호와께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사”라는 말은 유다의 샬롬이 그들의 강함으로 인하여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해 준다.

하나님은 또한 여호사밧을 축복해 주심으로 유다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허락해 주셨다. “블레셋사람들 중에서는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리며 은으로 공을 바쳤고 아라비아 사람들도 짐승 떼 곧 수양 칠천칠백 마리와 숫염소 칠천 칠백을 드렸더라(17:11)” 여호사밧의 시대에 유다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나라를 강하게 해 주셨다. “여호사밧이 점점 강대하여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유다 여러 성에 공사를 많이 하고 또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으니(17:12,13)”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부르심을 형통하게 해 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축복했을 때 그는 유다 왕으로서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