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론; 정당정치의 현안문제를 중심으로
작성자; 손진길(정치학박사)
작성일; 주후 2018년 5월 9일(수)
1. 한국의 정당정치는 어느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가?
(1)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발전은 정당정치의 발전에 달려 있다. 먼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경우에는 하나의 독보적인 정당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으며 다른 위성정당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것은 의미 있는 정당 사이의 경쟁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므로 정치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몇개의 의미 있는 정당이 서로 정책대결을 통하여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국민의 표를 얻고 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게 되면 정권을 차지하게 되고 실패하게 되면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정당을 양성하고 서로 정책대결을 할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을 만들어 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치발전을 이루어가는 관건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복수의 정당 간의 의미 있는 정책대결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분석하여 그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발전의 단계를 측정해보기도 한다.
(2) 여기서 의미가 있는 정당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간략하게 4가지만 언급을 하고자 한다;
1) 첫째가 지역정당이다. 국가의 어느 한 지역에서만 득표를 하고 있는 정당은 전국적인 정당이 아니므로 의미가 있는 정당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당체계에 들지 못하게 된다.
2) 둘째가, 인물정당내지 명사정당이다. 그것은 정당에서 정치적인 인물이 자라나고 배출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유명한 정치인이 스스로 자신의 정당을 만들거나 마음대로 폐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유명한 정치인이나 사회적인 명망가에 의하여 정당이 지배를 받고 있는 경우에는 의미 있는 정당으로 보지를 않는다.
3) 셋째가 선거용 철새정당이다. 단지 공천장사만을 하기 위하여 정당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정당으로 계산하지를 않는다.
4) 넷째가 정책이 없는 정당이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현안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국민들에게 그에 대한 정책을 전혀 제시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미가 있는 정당이 아니다.
(3) 이상 설명한 4가지 지표만 가지고 보더라도 한국의 정당정치가 지금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조금 더 알기 쉽게 다음 4가지의 질문으로 그 대답을 스스로 찾아보기를 바란다;
1) 첫째, 과연 전국적으로 골고루 득표를 하고 있는 정당의 수가 몇개인가? 그러한 정당이 아니라고 한다면 빨리 지역정당을 벗어나서 전국정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는 대통령 후보를 낼 수가 있고 한국을 대표하여 정치활동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2) 둘째, 정말 정책대결을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고 있는가? 단지 보수 또는 진보라고 하는 편가르기를 하여 득표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더구나 상대방을 국익을 해치는 불순분자로 몰아 부쳐 인민재판을 통하여 제거를 하고 정권만을 차지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구시대적인 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셋째, 정당에서 정치인들이 점점 거물로 자라가고 있는가? 그 점을 확인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가 있고 그 다음에 광역자치단체가 있다. 나아가서 국회가 있고 그 다음에는 대권이 있다. 정당활동을 통하여 그러한 순서를 밟아가면서 정치초년생이 점점 거물로 성장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다.
4) 넷째, 정당의 존속기간이 어느 정도인가? 대통령이나 유명한 정치인이 필요에 따라 정당을 마음대로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제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정당이라고 하면 사실 국민들에게 별로 의미가 있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사르토리의 민주주의 이론과 정당체계이론과의 관계
(1) ‘지오바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는 20세기 후반에 구미지역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정치철학자이다. 그는 이태리 사람이며 그곳에서 다당제가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연구를 했다. 나중에는 미국의 유명한 대학들에 초청이 되어서 미국의 정치제도를 연구하면서 그것을 유럽의 정치제도와 비교를 했다. 그리고 그의 정당체계이론을 중심으로 하여 민주주의 이론을 정립하고 있다.
(2) 사르토리는 민주주의란 정당체계가 자리를 잡고 있을 때에 성립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이비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지적이 명쾌하다. 예를 들면, 하나의 정당이 독재를 하고 있으면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또한 우월적인 정당이 왜소한 정당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계속 집권을 하고 있다면 그것도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정당한 정책대결이 부재하고 국민들의 선택을 기본적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지배정당과 관료행정체계만이 가동이 되고 있을 뿐이다.
(3)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르토리는 의미가 있는 정당들이 정당한 룰에 따라서 서로 경쟁을 하고 정책대결을 통하여 국민의 지지를 획득하여 그것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어 나가고 있을 때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당체계 안에 들어올 수가 있는 정당이 있고 그렇지 못한 정당이 있다. 의미가 없는 정당의 모습에 대해서는 벌써 위에서 설명을 하였으므로 생략하고자 한다.
3. 정치발전을 위한 정당체계구조화 이론
(1) 사르토리는 정당체계가 구조화되어 있어 정치가 안정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정당체계가 구조화되어 있지 아니하여 정치가 불안한지를 구별하고 있다. 정당체계의 개념은 이미 설명한 대로, 몇개의 의미가 있는 정당들이 공정한 룰에 따라 정책대결을 하여 정권을 획득하거나 교체하고 있을 때에 정당체계(Political Party System)가 형성이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체계의 구조화(structuralization)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여러 번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 있어서 특정한 정당과 특정한 이익집단 사이의 접합관계가 별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 이유는 정당의 정책이 이익집단의 이익을 크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의미 있는 정당들이라고 하면 여러 이익집단에 뿌리를 내리고 그들의 요구를 수렴하고 조정하여 국가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정당의 정책으로 다른 정당과 경쟁을 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그 결과 다수 득표를 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다. 설혹 국민의 지지가 적어서 정권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익집단들과의 협의를 통하여 더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제시를 한다면 다음 번의 선거에서는 정권교체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일단 이익집단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그들의 이익을 잘 절충하고 대변하고 있는 정당은 여러 번의 선거과정에서도 그 결속력이 크게 손상이 되지를 않는다. 그러한 경우 사르토리는 정당체계가 구조화되어 있으며 정당정치가 안정이 되어 있다고 정의를 하고 있다.
(3) 반대로, 정당정치가 불안정한 경우에는 이익집단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선동적인 정당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그러한 정당들은 선거의 결과에 따라 그 존립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또한 이익집단들도 특정한 정당을 지지하지를 못하고 눈치를 보거나 여러 정당에 줄을 대게 된다. 그러한 모양이 되면 정당체계는 정책대결이 아니라 흑색선전이나 서로 흠집내기에 몰두하게 된다. 그것은 선거의 결과에 따라서 언제나 정당의 존립이 위협을 받게 되고 정당정치는 불안전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안정과 정치발전은 여전히 기대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상은 사로토리가 연구하여 제시하고 있는 정당체계구조화와 정치발전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의 결과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견해에도 오늘날 약간 생각해볼 점이 있다는 것이다.
4. 이익집단과 정당과의 확고한 결합이 어떤 정책을 생산하고 있는가?
(1) 거대한 이론도 조그만 틈이 보이면 마치 둑이 무너지듯이 그렇게 설명력이 약화가 될 수가 있다. 저자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는 강남과 강북을 연결하는 교량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하버 브릿지’(Harbour Bridge)이다. 호주 시드니의 지형이 오클랜드와 흡사하여 그곳에도 동일한 위치에 ‘하버 브릿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두 교량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시드니의 경우에는 인구가 400만이나 되기 때문에 하나의 교량으로는 역부족이므로 해저터널을 뚫는다거나 하여 교통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오클랜드에서는 아직 그 정도의 교통량이 아니라고 하여 계속 보완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있다.
(2) 최근에 국제사회에서 오클랜드의 다리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제2의 ‘하버 브리지’나 해저터널을 건설해줄 터이니 뉴질랜드의 건설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은 묵살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뉴질랜드의 건설업 협회라고 하는 강력한 이익집단이 철옹성을 쌓고 있으며 그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결코 그 이익집단을 저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클랜드의 시민들이 교통의 불편함을 도저히 견디지를 못하여 정당의 정책을 수정하도록 강력한 압력을 선거를 통하여 가하기 전에는 그와 같은 특정한 이익집단과 정당과의 결합은 깨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3) 결국 사르토리가 주장하고 있는 정당체계의 구조화라고 하는 것도 어떤 경우에는 시대적인 변화에 매우 둔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사르토리는 정책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정사’(政社, faction)와 자기 정당에 정책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파벌’(派閥, fraction)을 구별하고 있다. 정당 내부에서는 파벌이 먼저 그러한 미묘한 흐름을 느끼고 이합집산을 함으로 정당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사르토리가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파벌이 움직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조화된 정당의 경우 커다란 정책변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5. 지역동맹을 강조하는 21세기에는 정당이 어떠한 정책을 생산해야 하는가?
(1) 뉴질랜드는 호주에서 비행기를 타면 두세 시간이 걸리는 외떨어진 섬이다. 그러므로 건설업 협회처럼 그렇게 자신들만의 이익을 주장할 수가 있으며 정당은 건설시장의 개방을 협회의 건의에 따라 계속 미룰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화시대 그것도 세계경제가 급격하게 개방으로 달려가고 있는 21세기에 있어서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정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정치집단인 정당도 국제적으로 무한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제는 정책의 개발에 있어서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2) 언제까지나 정책정당이 국내 시장의 보호에만 매어 달려서 기존의 이익집단의 요구만 대변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이 정당체계의 구조화이며 정치안정을 이루고 정치발전을 도모하는 초석이라고 강변하기에는 세계의 변화가 너무 심한 것이다. 국제적인 무한경쟁의 시대가 오늘날 지역별로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일단은 유럽공동체가 앞서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은 벌써 대륙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하나의 공동체라고 볼 수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동남아의 아세안기구가 그 뒤를 따르고 있으며 멀지 아니하여 동북아에서도 그러한 공동체가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에는 한국의 정당들이 어떻게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정책대안을 마련해야만 할지 지금부터 생각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6. 국가적인 현안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의 미래는 어떠한가?
(1) 오늘날 한반도는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초래하고 있는 위기가 한동안 한반도를 뒤덮고 있다가 급기야는 국제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힘의 대결이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사태에 직면하여 한국의 정당체계는 어떻게 정책을 마련하여 정책대결을 해야만 하는가?
(2) 적극적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들의 여망을 담고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정당은 살아 남을 것이며 그러하지 못한 정당은 퇴보하고 말 것이다. 눈에 뻔하게 보이는 멀지 아니한 한국정당정치의 미래상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개발을 하지도 아니하고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당자체의 불행일 뿐만 아니라 국민에게도 손해를 입히는 행위이다. 이제는 모든 정치적인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고 그 반사적인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를 청산해야만 할 때이다. 그것이 정당이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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