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14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1. 19. 13:59

역대하 제14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14
 
14:1-8. “1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 2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3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4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5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7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8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

아비야의 때에는 전쟁이 있었으나 그가 죽고 그의 아들 아사가 왕이 되었을 때에 유다는 평안이 있었다. 이처럼 평안이 없는 시대에 지도자가 교체됨으로 인하여 그 시대는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한 시대의 샬롬은 지도자의 지도력에 의존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아사의 지도력을 통하여 어떤 지도자가 자기 시대에 샬롬을 가져다주는지 알 수 있다. 아사는 유다의 왕이 된 후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고, 또한 이방 제단과 산당을 헐고 주상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구하고 율법에 따라 행할 것을 명했다(14:2-5). 특별히 5절은 아사 시대에 샬롬을 누리게 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해 주고 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기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라는 말은 한 공동체가 샬롬을 누리기 위하여 전제 되어야 할 것은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상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불러일으키고(출20:5,신4:25,왕상14:9),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패하게 하는 것임으로(신9:12,왕상21:26), 그것들이 있는 곳에서 샬롬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시편은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를 “괴로움을 더하는 것(시16:4)”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들이 많을수록 샬롬은 우리로부터 더욱 멀어지지만, 하나님을 신뢰할수록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이른다는 것을 말해 준다(14:7).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14:6)” 샬롬은 건설적인 일을 위하여 요청 되는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른 말로 표현 한다면 한 개인이나 공동체에 샬롬이 없다면 결코 건설적인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아사는 하나님께서 자기 시대에 샬롬을 주셨기 때문에 성읍들을 건축할 수 있었고, 성곽들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사의 군대는 유다 중에서 큰 방패와 창을 잡는 자가 삼십만 명이요 베냐민 중에서 작은 방패를 잡으며 활을 당기는 자가 이십팔만 명이라 그들은 다 큰 용사였더라(14:8)” 아사의 군대 수는 그가 나라를 견고히 하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샬롬으로 인하여 이룰 수 있는 일이었다.

14:9-15. “9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10 아사가 마주 나가서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에 전열을 갖추고 11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12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13 아사와 그와 함께 한 백성이 구스 사람들을 추격하여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들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의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매우 많았더라 14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에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15 또 짐승 지키는 천막을 치고 양과 낙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아사 때에 구스의 침략으로 인하여 국가적으로 큰 위기 가운데 있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허락해 주신 유다에 어떤 이유로 인하여 이런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한다면 한 가지 확실한 대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는 시대에도 전쟁이 있어왔다는 것이다. 특별히 이런 전쟁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믿음을 훈련시키시기 위하여 허용하신 전쟁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전쟁들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보다 더 깊은 신앙의 고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목적의 전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한 가지 공동적인 사실은 침략자의 군사력에 비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군사력이 크게 열세 가운데 있어서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구하게 하고 결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 하나님에 대하여 깊은 신앙의 고백을 갖도록 한다. 유다가 구스의 침략을 받았을 때 군사적 열세에 있던 유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군사력을 비교해보면 이 전쟁에서 유다는 결코 구스와 싸워 승리할 수 없었다. 구스의 백만 명의 군사와 병거 삼백승에 비하여 유다는 오십 팔만 명의 군사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14:8). 그러므로 전쟁이 오직 군사력에 의해서만 승패가 좌우된다면 유다는 구스와 싸워 결코 승리할 수 없었다. 유다의 아사는 이런 위기 가운데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14:11)” 여기 “강한 자와 약한 자”라는 말은 아사가 군사력에 있어서 자신을 침략한 자인 구스보다 약한 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이 전쟁이 단순히 힘의 대결이라면 유다가 구스와 싸워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아사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아사는 먼저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이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아사의 신앙 고백이다. 아사는 하나님의 능하심을 믿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하나님은 약한 자를 도와 승리하게 해 줄 수 있는 분이었다. 이것은 비록 구스가 자신보다 강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신다면 능히 승리할 것을 믿었다는 의미다. 아사는 계속하여 이렇게 기도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아사는 이 전쟁이 주를 의지하고 주의 이름을 의탁한 전쟁임을 말하였다. 아사는 이렇게 말함으로 이 전쟁이 자신과 구스와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님과 구스와의 전쟁이 되게 했다. 그래서 아사는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믿음이란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사를 통하여 자신의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함으로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구스의 침략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된 전쟁에 나가 싸워야할 사람들은 아사와 유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사는 이 전쟁을 하나님과 사람의 싸움으로 해석하고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나가야할 싸움임을 말하고 있다. 어째서 그 전쟁이 하나님과 구스와의 전쟁인가? 아사는 하나님께서 택해 주신 백성 유다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유다의 승리와 패배는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아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구스의 침략으로 인하여 위기 가운데 있는 유다를 구원해 주심으로 세상에 구원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라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응답 받는 기도를 하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바꾸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믿음은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로 알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한 기회로 알 때 가질 수 있는 믿음이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라면 이때 우리는 아사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구원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런 기도야말로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돌리는 믿음이고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 주신다. 따라서 믿음의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위기로부터 자유 할 수 있게 해 주는 열쇠(Key)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 좇는 자가 구스 사람을 좇아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이 엎드러지고 살아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심히 많았더라(14:12,13)” 유다가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이다. 본문은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구스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가 없었고 유다는 이 전쟁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였고 또한 심히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소문으로 인하여 주변의 나라들이 유다를 두려워했다. 이처럼 유다를 위협하던 이 전쟁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유다에게 오히려 영광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