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해 제34강(눅3:18-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4. 1. 14. 18:20

누가복음 강해 제34(3:18-20)

작성자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주후 2016 6 7()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던 세례 요한이 갑자기 갈릴리 분봉 왕에 의하여 감옥에 갇힌 이유가 무엇인가?(3:18-20)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다윗의 후손 메시아와 세례 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지난 번 강해에서 다룬 내용 곧 3:15-17에서의 세례 요한의 증언은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다윗의 제국의 재건자인 메시아가 아니고 창조주의 신분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세례 요한의 증언이 금방 이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첫째이스라엘 자손들이 오랜 세월 계속적으로 외세 강대국의 통치와 지배에 시달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지금도 로마의 속국으로 살고 있습니다구체적으로로마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이방인 이두매 출신의 헤롯 왕가가 갈릴리와 변방지역에서 위임통치를 하고 있고예루살렘과 유대 땅에서는 로마총독이 군정을 실시하고 있으므로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주권을 상실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이스라엘 자손들이 선민우월사상과 시오니즘에 입각하여 하나님신앙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선민의 영광이 곧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논리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는 선민들이 곧 세상의 주인이며 지배자입니다반면에하나님신앙을 지니고 있지 못한 이방인들은 모두가 멸망의 대상입니다그러므로 세상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오로지 이스라엘의 품 안으로 들어와서 선민들을 섬기는 길뿐입니다.

(3)  셋째그와 같은 역사가 그 옛날 다윗의 제국으로 한번 실현이 된 적이 있습니다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시절을 지금도 잊지를 못하고 있습니다따라서 그들은 끊임없이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며 메시아를 앙망하고 있습니다한 마디로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오시면 그 옛날 선민의 영광을 재현시켜줄 것이라는 관념입니다.

그런데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꿈과 소망에 세례 요한이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가 아니며 선민구원만을 위해서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선언입니다이에 따라 더 이상 선민의 영광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선민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따를 때에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습니다만약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된 소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적인 선민사상만을 계속 추구하게 되면 선민이라고 하더라도 불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의 예언입니다(3:7, 15-17).

그와 같은 예언을 한 다음에 세례 요한은 많이 실망하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동족들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그들을 어떻게 하면 위로해줄 수가 있을까요그래서 선택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다음 행보가 오늘의 본문말씀입니다그는 외세의 선민지배가 잘못임을 그리스도에게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어합니다그리고 이방 이두매 출신의 왕조인 헤롯 왕가가 얼마나 율법적으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18:16, 3:19). 훗날 그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일까요?(11:7-15, 7:24-30)

위와 같은 기본인식과 이해를 가지고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그리고 말씀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3:18); 여기서 좋은 소식’이란 복음적인 성격의 하나님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1)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심판 대신에 구원하기로 계획하시고 독생자 그리스도를 보내어주신다고 하는 것이 좋은 소식입니다(3:16-17). 그것은 창조주께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생각하고 있는 선민만의 구원이 아닙니다더구나 선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이방인들의 심판과 멸망이 아닙니다이에 따라 선민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오랜 세월 젖어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좋은 소식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2)  그와 같은 결과가 도래할 것임을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아시고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침례를 받은 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침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7:29-30). 세례 요한이 여러 가지로 전하고 있는 좋은 소식을(3:18받아 들이고 침례를 받은 백성과끝까지 자신들의 관념과 교리를 고집하면서 거부를 한 사람들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음 구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선민들을 다스리고 있는 이방 이두매 출신 헤롯 왕가의 갈릴리 분봉 왕이 후자에 속하고 있습니다(3:19).

둘째로, 분봉 왕 헤롯(안디바)은 그의 (이복동생(또 다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3:19);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가 두 가지 종류의 일로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1)  분봉 왕 헤롯(안디바)은 그의 (이복동생(또 다른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3:19a); 헤롯 대왕은(2:1-1219아내가 모두 10명입니다그 가운데 5명의 아내가 유명합니다헤롯 대왕은 주전 4년에 아들 3명을 분봉 왕으로 세웁니다;

1)    처음 아내는 도리스이며 그 소생이 안티파터입니다그러나 야망이 큰 헤롯은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주 마리암네1세와 결혼하기 위하여 처자식을 추방하고 맙니다그 때문에 훗날 안티파터는 마리암네1세의 아들들을 모함하여 죽이고 헤롯의 후계자가 됩니다하지만 곧 변덕이 심한 헤롯의 견제를 받아 그 역시 죽게 됩니다.

2)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주였던 마리암네1세의 자손 가운데 손자가 아그립바1(AD37-44)인데 그는 로마의 황궁에서 자라나게 됩니다그가 훗날 유대 전체 지역을 다스리게 됩니다(12:1, 23). 그리고 그의 여동생이 삼촌들과 세 번 결혼한 헤로디아입니다(3:19).

3)    헤롯 대왕의 세 번째 부인은 대제사장 시몬의 딸인 마리암네2세입니다그녀의 소생이 빌립1(AD34사망)인데 그는 분봉 왕이 되지를 못합니다그의 아내가 헤로디아이며(3:19그들 사이의 딸이 훗날 의붓아버지인 갈릴리의 분봉 왕 헤롯 안디바에게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청한 살로메입니다(14:6-11).

4)    정치적 야망을 달성한 헤롯 대왕은 마음에 드는 사마리아 여자 말다케를 아내로 취합니다그녀의 소생인 아켈라오(bc4-AD6)에게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두매까지를 다스리게 합니다아켈라오는 분봉 왕이지만 큰 땅을 다스리게 됨으로써 스스로 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22). 그리고 역시 말다케의 소생인 안디바(bc4-AD39)가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리는 분봉 왕이 되고 있습니다(3:1).

5)    그 다음 아내가 클레오파트라인데 그녀의 소생인 빌립2(bc4-AD34)가 역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는 분봉 왕이 되고 있습니다(3:1). 그 땅은 갈릴리 동북쪽에 있는 헬몬 산에서부터 남쪽으로 야르묵 강까지 이르는 지역입니다.

6)    주후 23년경 갈릴리의 분봉 왕인 안디바가 이복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청혼을 합니다안디바는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 위하여 헤로디아에게 정략적인 결혼을 요청한 것입니다안디바는 갈릴리의 분봉 왕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옛날 그의 형 아켈레오처럼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전부 차지하고서 왕으로 한번 행세를 하고 싶어합니다그래서 정치적으로 로마의 황실과 교섭할 수 있는 자신의 신분의 상승이 필요합니다그 방법이 하스모니안 공주의 핏줄인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특히 안디바는 그의 어머니가 천한 사마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위하여 헤로디아와의 정략결혼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으로 보입니다.

7)    한편 헤로디아는 이왕이면 분봉 왕의 자리에 있는 안디바와 다시 결혼함으로써 왕비가 되고 싶어 합니다그래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재혼을 하였는데 그것이 율법에 위배가 되므로(18:16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그런 차 중에 선지자 세례 요한이 갈릴리의 분봉 왕에게 직격탄을 쏘고 있습니다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동생의 아내를 권력으로 유혹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있으니 헤롯 안디바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가뜩이나 이방 이두매 출신의 헤롯 왕가가 로마의 힘을 빌려서 자신들에게 위임통치를 행하고 있는데 대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심기가 불편한데 세례 요한이 거기에 불을 붙이고 있는 셈입니다.

(2)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3:19b); 갈릴리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의 잘못은 그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는 상당히 영리한 왕입니다그래서 로마에 잘 보이고자 갈릴리 서안의 성읍 하나에 로마식 건물양식으로 재건축을 하고서 그 성읍의 이름을 디베랴’라고 명명합니다(6:1). 그것은 디베료 황제를(3:1기념하는 도시라는 뜻입니다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호감을 얻기 위하여 작은 규모의 예루살렘 제2성전을 솔로몬 당시의 규모로 증축하고 있습니다(2:20). 그런데 그 자금을 충당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권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것이 유대인들 보기에 교묘한 착취행위입니다예를 들면예루살렘 성전 내에서 환전소를 차리고 제물장사를 허용하고 있는 것 등이 모두 그러한 정책의 일환입니다(21:12-13, 19:45-46, 2:14-16). 세례 요한이 그러한 교묘한 악한 정책에 대하여 헤롯 안디바를 질책한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로,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3:20); 세례 요한의 고향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곳입니다(1:26-27, 39-40). 그러므로 요단 강가에서 공생애를 시작한 세례 요한이 백성들에게 회개의 물세례를 주면서 점점 북쪽으로 고향을 향하여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그는 고향 갈릴리 지경에 들어서면서 분봉 왕 헤롯 안디바에 대하여 비난하고 있는 유대 백성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1)  세례 요한은 공식적으로 수백 년 만에 유대 땅에 나타난 선지자입니다그는 그 옛날 선지자들처럼 백성들과 권력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질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아무리 이방인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이두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하고 유다 남쪽에 살고 있는 족속들입니다그곳 출신인 헤롯 왕가도 유대교에 입교하였으므로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만 합니다.

(2)  그런데 금수(禽獸짐승)만도 못한 짓을 분봉 왕과 그 왕비가 자행하고 있습니다세례 요한의 질책의 강도가 높아지자 갈릴리의 백성들이 속 시원해하면서 그 주위로 자꾸만 몰려들고 있습니다급기야 반란의 조짐을 감지한 헤롯 안디바가 불행한 사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단안을 내리고 있습니다세례 요한을 전격적으로 체포하여 감옥에 수감하고 만 것입니다(3:20). 그렇다면 감옥에 들어가면서 세례 요한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3)  세례 요한의 임무는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입니다그 역시 선민출신의 선지자이므로 메시아에게 기대하고 있는 바가 큽니다자신이 희생적으로 헤롯 왕가의 잘못을 앞장서서 질책하고 감옥생활을 하고 있으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그냥 계시지는 아니하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4)  아무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백성이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이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 문제에 개입하시고 새로운 출애굽의 역사를 일으키셔야 합니다그 계기를 세례 요한 자신이 마련하고 방아쇠를 당길 수 있게 해주고자 스스로 헤롯 왕가의 율법위반을 강하게 질책하고 감옥 행을 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과연 세례 요한의 계산대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움직이실까요그리하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훗날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하도 답답하여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게 됩니다(7:18-20). 도대체 그리스도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르쳐달라고 하는 질문입니다그 말은 자신을 구출해주지 아니하고 외세를 몰아내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의 진지하신 답변에(7:22-23세례 요한은 실망하며 또한 본전도 못 찾게 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세례 요한처럼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때로는 그리스도의 일을 순탄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희생적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그렇지만 성도들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따라서 끝까지 그리스도의 신호를 기다려야만 합니다종이 주인의 명령도 없는데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쫓아서 지레짐작만으로 일을 벌였다가는 꾸지람을 듣기가 쉽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선민의 구원만이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자 이 세상에 오신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옛날 선지자들처럼 역시 선민사상이라고 하는 큰 울타리를 완전히 뛰어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역시 다윗의 후손이며 유대인의 왕으로서 우선적으로 외세를 물리치시고 시온의 영광을 사해에 떨치실 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세례 요한에게만 국한이 되고 있는 신앙의 모습이 아닙니다많은 성도들이 저를 포함하여 자신의 문제해결이 가장 우선입니다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시고 진행 중이신 그 일에 성도들이 다 함께 참여하고 힘을 모으시기를 기대하십니다자기생각으로 자신의 이익을 포함한 채 지레짐작으로 벌이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때로 냉담하십니다그럴 때는 참으로 마음이 상하고 하나님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의도와 생각을 다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모두를 살리기 위하여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다시 파악을 해야만 합니다종인 성도의 기다림과 손해와 희생이 있더라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돌볼 수가 있다면 그 편을 선택하시는 냉정한 주인이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수정할 준비가 항상 되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그와 같은 믿음의 성숙이 아무쪼록 성도님들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살롬!

 

(사진은 헤롯의 가계도임)